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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중국의 위협과 트럼프의 한 수

 

이야기가 멀리 돌아왔는데, 현재의 달러 시스템에 가장 큰 위협이 되는 것은 또 다른 패권국이 등장하는 것이다. 예를들어 유로화나 엔화가 달러처럼 널리 쓰이게 된다면, 무역국가들은 벌어들인 흑자를 달러가 아닌 엔화나 유로화로 쌓을 것이고, 미국은 더 이상 마음대로 돈을 빌릴 수도, 그 돈으로 국방력을 유지할 수도 없다.

 

그래서 미국은 언제나 자신들에게 위협이 될 만한 국가들은 특별 관리를 해 왔다. 어떤나라의 GDP가 미국 GDP의 절반 정도가 되면 보통 심각한 위협으로 받아들여진다고 하는데, 1980년대의 일본이 좋은 예로 남아있다. 미국은 일본과의 플라자합의를 통해 일본 엔화의 가치를 하루아침에 절상시켜 버렸고, 이렇게 급격하게 엔화의 값어치가 오르자 일본 경제는 곤두박질친다. 잃어버린 20년이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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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지금 중국의 GDP가 미국 GDP의 한 60%가량 된다. 또한 압도적인 인구수와 그를 바탕으로 한 거대한 자국시장을 가졌기에, 미국입장에서는 규모만으로도 강력한 위협으로 인식 할 만 하다.

 

여기에 중국은 미국의 우방이 아니다. 과거 냉전시대 서독, 한국, 일본처럼 미국과 전략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으면서, 군사적 경제적 협력을 하는 사이도 아닌데 중국은 지가 알아서 잘 컸다.

 

심지어, 중국은 지정학적으로는 일대일로라는 이름의 주변 경제시장을 하나로 묶는다는 그랜드 플랜을 내놓았고, 경제적으로는 중국제조 2025라는 이름으로 양적성장을 질적성장으로 바꾸겠다는 계획 또한 밝혔다. 무역국가로서 앞으로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패권국가로 성장하겠다는 야심을 드러낸 것이다.

 

이러한 잠재적 위협에 미국이 대응을 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이미, 오바마 정권부터 아시아로의 회귀를 주장하며, 중국을 포위하는 군사력을 증강시킨 반면, 앞바다인 남중국해에선 항해의 자유를 주장하며 중국의 신경을 긁은 바 있다.

 

이 모든 맥락을 감안하더라도, 이번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 무역전쟁은 상당히 전격적이다. 과거 미국의 정책이 견제를 날리는 수준이었다면, 이번 보복조치는 비상소집, 선전포고, 국경돌파, 수도포위를 한꺼번에 실시한 느낌이다. 대미 수출 500억 중에 총 450억을 관세 대상으로 놓고 중국을 전면 압박중이다. 왜 이렇게 전개가 빨라진 걸까?

 

첫째, 트럼프에겐 지금 중국과 싸우면 무조건 이긴다는 확신이 있다. 위에서 살펴본 대로, 미국은 무역전쟁에서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여기에 더불어, 군사적으로는 훨씬 더 확실한 우위를 점유하고 있다. 이렇게 미국쪽으로 힘이 기울어져 있는 상태에서 중국이 응전을 하면, 미국은 싸움을 통한 이득을 얻을수 있고, 중국이 항복을 하면, 일본과 맺은 플라자합의 비슷한 걸 맺어서 중국경제를 꺾을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지금 미국에겐 싸울 여력이 충분하다. 미국경제는 최근 몇 년간 금융위기 이후로 최고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 완전고용 상태를 이루고 있으며, 경제성장률 마저도 다른 선진국을 앞도하고 있다. 여기에 트럼프 행정부는 작년도 세금감면안을 통과시켜, 돈을 추가로 더 풀었다. 이렇다 보니 중국으로부터 관세 좀 얻어 맞아도 버틸 수 있단 계산이 선 것 같다.

 

셋째, 반면 지금 중국의 경제상황은 미국처럼 좋지 못하다. 2015년 고점을 찍었던 중국경제는 최근 몇 년간 성장율 저하, 주식시장 및 위안화 가치하락 등의 하락세를 경험하고 있다. 그나마 중국정부가 대규모 자금을 푼 덕에 현상유지를 하고 있지만, 미중 무역전쟁과 같은 외부 충격을 견딜 여력은 없다. 실제로, 무역전쟁이 본격화 된 이후 중국 주식시장은 약 20%가량 폭락했으며, 위안화 역시 10% 가량 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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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이번 트럼프의 무역전쟁 압박은 앞으로의 전개와 상관없이 이미 의도된 효과를 거두고 있는 중이다. 도저히 받아칠 수 없는 무려 450조나 되는 칼을 뽑음으로써, 중국과 시장에 엄청난 압박감을 주는 데 성공했다. 중국지도부는 지금으로선 절대 미국과 싸워 이길 수 없다는 패배감을 느꼇을 것이고, 이 국력의 차이를 내부적으로 설명하고, 반미감정을 억제하고 있을 것이다 (이는 장기집권을 시도중인 시진핑 정권에 엄청난 부담이 될 것이다) 또한 시장의 투자자들은 앞으로 다가올 무역전쟁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미국의 의도대로 베트남이나 인도 등으로 자본을 옮기는 것을 검토할 것이다.

 

여기까지 적어놓으면, 트럼프가 엄청난 대단한 대통령인 것 같지만 (실제로도 대단하고 똑똑한 사람인 것 같긴 하다), 사실 지금 트럼프가 선택한 옵션은 부시에게도 있었고, 오바마에게도 있었다. 대중 무역적자가 본격적으로 늘어난 건 부시정권 때였고, 고착화된 것은 오바마정권 때였기 때문이다. 만약 부시나 오바마가 중국과 무역전쟁을 벌이기로 마음 먹었다면, 충분히 벌일 수도 있었고, 그때도 지금처럼 이겼을 것이다.

 

그러지 않았던 것은, 일단 타이밍이 좀 안 맞았다. 부시는 미국의 군사력과 지정학적 영향력을 테러와의 전쟁에 갈아 넣었고, 오바마 때는 중국이 고성장을 거듭하던 반면, 미국은 금융위기로부터 회복중이었다.

 

하지만, 좀 더 근본적인 이유는 이 방식이 달러 시스템에 앞으로 미칠 영향력 때문이다. 일단 이게 좀 억지다. 달러 시스템이 지금처럼 전세계에서 널리 통용되는 이유는, 전세계 어떤 나라나 이 시스템 속에서 무역을 통해 돈을 벌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인데, 중국이 돈을 많이 벌었다는 이유만으로 중국을 시스템 바깥으로 쫓아낸다면? 미국이 만든 이 시스템의 불합리성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다 (최소한 일본을 조질 때는, 일단 플라자 호텔로 불러내서 어깃장을 놓든, 조인트를 까든 조용히 처리한 담에, 일본 스스로가 환율시장을 정상화 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또한, 장기적으로는 미국과 적대관계를 취하는 이란, 러시아 등이 중국과 연합, 독자적인 경제 시스템을 만들어서 탈-달러 시스템을 구축할지도 모른다. 지금이야 미국에 힘이 있으니까 대부분의 국가가 달러 시스템에 남아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미래는 모르는 것 아닌가? 그래서 미국의 지도자들은 당장 몇 년 해먹겠다고, 수십년 동안 쌓아 올린 달러 시스템의 개방성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중국을 냅뒀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트럼프는 이걸 다 감수하고 무역전쟁 카드를 꺼내들었다. 일단, 중국을 더 냅뒀다간 진짜 패권을 넘겨줄 수 있겠다란 위기감이 들었을 수도 있다. 여기서 괜히 아꼈다간, 아무리 좋은 카드라도 곧 똥이 될 수 있다란 생각으로 질렀을 수 있다.

 

또한, 트럼프는 미국의 달러 시스템의 룰 자체를 수정할 의지와 계획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겉으로는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면서, 사방에 무역전쟁을 걸고 다니고 있지만, 지난달 G7 정상들과의 회담에서는 관세, 무역 장벽, 보조금 등의 철폐를 주장하였다. 얼핏보면 트럼프에게 정신분열이 온 것 같지만, 이 둘을 함께 놓고 보면, 나는 무역전쟁의 진짜 의도가 숨어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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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우방 중의 우방이라고 할 수 있는 G7과의 대화에서는 좀 더 자유로운 자본의 이동과 교역이 가능, 좀 더 오픈되고 강화된 형태의 달러 시스템을 구상했고, 그 외의 국가에 가서는 이러한 새로운 기준을 받아들이든지, 아니면 미국과 이길 수 없는 무역전쟁을 하든지 선택을 강요하고 있는 것 같다.

 

, 트럼프가 무역전쟁을 통해 중국으로부터 궁극적으로 얻어낼려고 하는 것은, 관세 몇 푼 혹은 중국이란 나라 자체의 붕괴가 아니라, 미국이 새롭게 제시하는 기준의 달러 시스템에의 참여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동안 중국이 얄밉게 자국 산업은 규제와 감독 등으로 보호하면서, 지적재산권은 느슨하게 적용하여 해외와의 격차를 좁혀가는 짓을 멈추고, 미국이 만든 새로운 기준을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이 새로운 기준이란, 구글과 페이스북이 중국에 가서 돈을 벌고, 미국 사모펀드들이 헐값의 중국기업들을 매입하고, 고평가된 기업들엔 자유롭게 공매도를 할 수 있는 체제를 의미한다. , 상품무역에서 미국이 볼 피해를, 미국 기업들이 경쟁력 있는 IT와 금융 같은 서비스 산업을 통해 메울 수 있는 체제를 의미한다. 이를 통해 미국은, 현재의 경제적 우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자 할 것이다.

 

물론, 트럼프가 평소 말하는던 대로, 이 모든 게 자국의 농업을 지원하고, 몰락한 중산층을 위해 제조업을 재건하고자 벌인 순수한 의미의 무역 전쟁일 수도 있다. 정말 트럼프가 원한다면, 레노보가 그랬듯이 중국기업들이 미국으로 달려가 공장을 지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로부터 얻어낼 수사적 의미를 뺀 실익은 크지 않을 것이고, 지속 가능할 것 같지도 않다.

 

어느 쪽으로 결착이 나든, 트럼프는 무역전쟁의 방아쇠를 당겼고, 이 전쟁의 주도권은 트럼프에게 있다. 그리고 좋든 싫든, 우리는 이 전쟁의 한복판으로 점점 끌려 들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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