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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아직 미개하구나.”

 

기무사에 관한 이야기가 불거져 나왔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기무사의 주 임무가 방첩이나 군사보안을 지키는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군 정보기관이라고 보는 경우도 있겠지만, 역시나 아니다. 기무사의 핵심 임무는 “군대를 감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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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대혁명 당시 민주주의를 외치던 이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 중 하나가 ‘군사 엘리트의 등장’이었다. 야망과 실력을 가진 이들이 혁명을 뒤집어 엎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고민의 산물로 나온 게 ‘파견 의원’이다. 실제로 당시 프랑스의 군부는 혁명에 대해서 ‘불온한’ 움직임을 보였고, 이에 대한 견제를 위해 파견 의원들은 군을 감시할 필요가 있었다.

 

(결국 나폴레옹은 막지 못했지만... 나폴레옹의 쿠데타를 두고, ‘강간을 한 게 아니라, 스스로 다리를 벌린 것’이라고 말한 국민의회 의원의 말을 생각하면... 뭐... 그렇다)

 

이 당시 파견 의원들의 권한은 막강했는데, 군 지휘관의 해임이나 처형을 내릴 정도였다. 이런 파견 의원과 함께 군 역사상 가장 악명 높았던 게 ‘정치 장교’다.

 

공산 혁명 이후 자신들의 체제를 위협할 수 있는 ‘군’을 통제하기 위해 만든 게 바로 정치 장교이다(북한은 정치 장교로도 부족해 보위부까지 뒀다). 정치 장교는 군사적으로 하등 쓸모없는 존재이다. 신속하게 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지휘권이 두 개로 쪼개져 있다면 그 군대는 어떻게 작전을 펼칠까?

 

정치 장교의 핵심은 “체제 유지”다. 군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기무사의 존재가 그러하다. 기무사의 대외적인 존재 이유는 “군내 방첩 업무 및 군인과 군사 기밀에 대한 보안 감시”를 하는 곳이다. 기무사는 다른 예하부대에 소속돼 있는 게 아니라 국방부 직할 부대다(국방부 직할이 아니라 청와대 직할이라 보는 게 맞다). 이들의 역사는 해방 직후부터였다. 관동군 출신으로 독립군 때려잡던 김창룡이 초대 사령관이었으니 말 다 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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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기무사의 역사를 살펴보면 한국 근현대사에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대충 우리 기억 속에 있는 것만 봐도(간첩조작이나 그런 거 빼고, 쿠데타 모의나 실행만) 전두환이 12.12사태(이때 전두환이 보안 사령관이었다. 기무사의 전신이 보안사)를 일으켰고, ‘범죄와의 전쟁’을 촉발 시킨 윤석양 이병의 ‘민간인 사찰 폭로 사건’이 있다. 특히 윤석양 이병의 폭로는 ‘쿠데타 계획 폭로’라 볼 수 있는 게, 민간인들을 사찰한 이유 때문이다. 이 사찰 문건은 쿠데타나 계엄령 선포 시 최우선으로 체포할 대상이기 때문이다. 이 폭로를 덮기 위해 노태우가 들고 나온 게 ‘범죄와의 전쟁’이었다.

 

까놓고 말하자. 기무사의 존재 이유는 하나다. “군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전 세계 군대, 그중에서 선진국의 ‘군사강국’이라 분류된 나라에서 이 정도 규모의 방첩부대(방첩부대라 말하고, 군 감시부대)를 보유한 나라는 없다. 여단 단위가 넘어가는 방첩기구란 게 말이 될까? 그 폐해를 고스란히 보여준 게 민병삼 대령의 발언이다. 국회의원 앞... 아니, 국민들 앞에서 상관인 국방부장관에게 덤벼들었다. 이게 가능한 걸까? 가능하다. 민병삼 대령은 100기무부대장이다. 그는 국방부와 국방장관을 ‘감시’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다.

 

이런 식이다. 각 예하부대, 사단, 군단에 기무부대가 파견된다. 이들은 군인들을 감시한다. 이유가 뭘까? 간단하다. 군 간부들의 동향을 파악해 보고하는 거다. 이걸 문건으로 만들어 청와대에 보고한다. “내가 네 목줄을 쥐고 있다.”라는 거다. 이러니 사단장이 중령들의 눈치를 보는 거다(사단급에 중령, 군단급에 대령을 보낸다). 승진에 민감한 군 간부들의 목줄을 틀어쥐고는 정치 군인이 돼 가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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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무사의 힘은 역시나 ‘청와대’에서 나온다. 권력의 크기는 청와대 문고리에 얼마나 가깝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박근혜가 이걸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지 않았나?). 그런 의미로 기무사는 최고의 ‘정치 군인’이 될 수밖에 없다. 권력이 모일 수밖에 없다.

 

‘정보’라는 무기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경찰의 상황을 보면 된다. 경찰청장 출신들을 살펴보면, 상당수가 경찰청 정보국 출신들이다. 이들이 수집한 정보는 바로 청와대 존안자료로 올라간다. 기무사도 마찬가지다. 다 떠나서 ‘국정원’은 어떤가? 정보 라인은 출세 코스이고,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기무사 문건의 정치적 함의나, 기무사 문건에 대한 정치적 논쟁에 대해서는 내가 말하지 않더라도 남들이 다하고 있으니 넘어가겠다. 내가 주목하는 건, 기무사의 존재 이유 자체다.

 

“군대는 문민통제(civilian control) 아래에 있다.”

 

국민이 뽑은 ‘선출된 권력’이 군 통수권을 가지는 게 상식이다. 쿠데타는 이 상식을 뒤엎는 초헌법적인 행위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등장이다. 기무사의 존재는 군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다. 혹은, 군을 완전히 믿지 못하겠다는 전제 하에서만 그 존재 이유가 증명되는 조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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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군을 감시하는 행위 자체를 보면 알 수 있다. 이들은 영장 없이 군 간부들의 통신을 도청한다. 대통령은 때가 되면 의례적으로 군 간부들에 대한 도청을 허용하는 명령을 포괄적으로 내리고, 기무사는 이걸 근거로 으레 간부들을 도청한다. 이게 ‘방첩’이나 ‘보안’을 위한 걸까?

 

까놓고 말하자. 기무사는 대통령의 군 통수권 확보를 위한 ‘통수부대’ 성격의 부대다. 군의 동향을 파악하고, 혹시 모를 군사 반란을 감시한다. 이걸 다시 말하자면 이런 의미가 된다.

 

“우리 사회가 아직 문민통제를 완성하지 못했다.”

 

나라를 세운지 70년이 되는 상황에서 쿠데타만 2번 일어났고, 그 기간 동안 배출된 군 출신 대통령만 3명. 이들이 통치한 기간만 30년이다. 아직 군을 완전히 믿지 못하는 건 이해한다. 그렇지만, 지금의 상황은 어떠한가?

 

국민 대다수가 고등 교육을 받았고, OECD 11위권의 경제 대국이 됐다. 지난 박근혜 탄핵 정국 당시에 보여준 비폭력 시위를 보라. 시민들의 정치 성숙도를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쿠데타라고? 쿠데타를 막기 위해 만들어진 기무사가 쿠데타를 실행한 게 1번이고, 모의한 건(드러난 것만) 2번이 넘어간다. 이 정도면 뭐가 잘못되도 한참 잘못됐단 느낌이 들지 않는가?

 

상식적으로 OECD 가맹국들 중 이 정도 규모의 방첩부대를 가진 나라는 없다. 아니, 방첩부대가 아니라 군 감시부대다. 한국형 ‘정치 장교’라고 해야 할까? 군을 믿지 못해서 군 간부들을 도청하고, 이들의 사생활을 감시하는 부대를 따로 둔다는 것이 말이다.

 

물론, 국가의 안보가 걸려있는 문제이므로 방첩과 보안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각 단위부대의 지휘관들을 사찰한다는 건 그 자체로 군을 믿지 못한다는 거다.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성숙도와 군의 문민 통제가 아직 영글지 않았던 걸까?

 

아니면, 군의 사고방식이 아직도 1980년대에 머물러 있는 걸까?

 

이도 저도 아니면, 만에 하나의 가능성까지 대비한 철저함일까?

 

형식적 민주주의를 완성한지 30여 년. 헌정 질서 속에서 ‘완벽하게’ 대통령을 탄핵시킨 ‘성숙’을 보여준 게 대한민국이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우리는 ‘군’을 믿지 못하고 있고, ‘군’을 감시하고 있다. 아이러니한 건 정작 쿠데타를 막아야 할 기무사가 쿠데타를 실행했고(성공하기도 했고), 또 모의했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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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무사의 존재 이유에 대해 고민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