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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프롤로그~한국에서 담배를 사다준 친구한테 보답하고 싶은데~

 

필자는 흡연자입니다. 스트레스 가득한 일상에서, 점점 무거워지는 삶의 무게를 담배로 조금 가볍게 만들려고 한다는 말은 아마 핑계. 효과는 딱히 없는 것 같은데 일단 이렇게 스스로 위로하는 거죠.

 

필자가 담배를 피우는 데엔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는 돈. 새로운 재원을 찾지 못하는 재무관료들의 무능에 피해를 입은 동지들도 많이 있을 테고, 공감해 주는 독자분도 꼭 있을 겁니다. 그래도 담뱃값은 어떻게 보면 감당하려면 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하루에 세 캔씩이나 먹던 맥주를 두 캔으로 줄이면 되는 이야기니까 말이죠(물론 억울하기는 하지만).

 

더 심각하고 결정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 따로 있습니다. 필자가 즐겨 피는 담배가 한국산 담배, 더 원 화이트(the One White)라는 점입니다. 물품이 담배인 만큼 ‘있을 때만 즐기고 없어도 괜찮다’는 성질의 문제가 아닙니다. 피고 싶으면 바로 필 수 있어야 하는 거예요. 물론 업체에 시켜서 개인 수입 형식으로 지속적・정기적으로 구매하는 방법도 있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아 무리입니다. 그렇다고 필자가 빈번하게 한국에 가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일본 거주자인 필자는 외국산 담배를 딱 한 보루만 반입할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한계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도쿄를 찾아오는 친구가 있으면 꼭 면세점에서 담배를 사다 달라고 부탁하는 습성이 생겨 버렸지요. 거부당한 적 없는 것은 필자의 인성 때문인지 친구의 인성 때문인지, 하여튼 외국 거주자가 일본에 입국할 때에는 두 보루까지 반입할 수 있기 때문에 담배 보따리상으로서는 필자보다 두 배나 힘이 센 셈입니다.

 

이렇게 더 원 화이트를 비축해 놓고 겨우 담배생활을 유지하던 때였죠. 슬슬 누가 놀러 왔으면 좋겠다 싶던 차에 친구가 도쿄에 놀러온다고 합니다. 너무나 반갑게도 동행자 한 명을 데리고 말이지요. 그런데 돈 주고 담배만 받으면 ‘담배 보따리상’이라는 말이 비유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묘사하는 말이 되어 버리고, 무엇보다 공항에서 소중한 시간을 내서 담배를 사다 준 친구한테 송구한 것이지요. 모처럼 만나는 귀한 기회, 이야기도 나누고 같이 식사도 하고, 경우에 따라 시내구경도 하고… 이게 인간의 도리죠.

 

반가운 마음에 어디를 구경할 예정이냐 물어봤더니, 하코네 온천(도쿄에서 멀지 않은 가나가와현에 있어요), 도쿄 디즈니랜드, 시간이 있으면 아사쿠사나 이케부쿠로 운운… 고민이 생겼습니다. 일단 온천은 비싸서 도저히 동행할 수 없고, 디즈니랜드는 아예 좋아하지 않는데다 35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에 무슨 재미가 있을지... 놀이기구를 타기 위해 최단 1시간, 길면 2~3시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은 상상만으로도 각하 결정. 아사쿠사, 이케부쿠로는 무덥지 않다면 나갈 수 있으니 짐이 되는데도 잔소리 하나 없이 담배를 사다준 마음에 보답하는 차원에서라도 나가고 싶습니다. 하지만 입추를 지났다 해도 그것은 음력의 이야기지, 아직 여름이고, 여름은 무덥습니다. 어떻게 하나 싶던 차에 관광지 후보로 ‘도쿄 스카이트리’가 거론되었고, 마음에 한 줄기의 빛. 스카이트리에는 대형 쇼핑몰이나 백화점 같은 실내가 있으니 식당가도 있지 않을까?

 

 

1. 오해하고 있던 스카이트리와 소라마치의 관계

 

도쿄 스카이트리의 부속시설에 대해 알아보려고 공식 홈페이지를 방문했습니다. 그리고는 큰 오해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스카이트리를 중심으로 시설이 모여 있다기보다 오히려 ‘도쿄 소라마치(東京ソラマチ)’라는 복합시설을 구성하는 부속시설 중에 스카이트리가 있다는 게 더 적절해 보이는 겁니다. 스카이트리를 올라간 김에 기념품을 사고 식사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소라마치를 즐기는 일환에 스카이트리 전망대 방문이 있다는 느낌이지요. ‘소라마치’라는 이름 자체가 ‘소라(空, 하늘)’와 ‘마치(町, 도시)’의 합성어잖아요. ‘하늘에 가까운 도시’라는 컨셉을 갖고있는 거겠지요. 스카이트리가 소라마치의 상징이자 대표적 구경거리임은 틀림없는데, 스카이트리 주변에 아기자기하게 상업・문화시설이 있는 것이 아니고, 소라마치 한가운데에 그를 상징하는 것으로 스카이트리가 솟아 있는 느낌이라 할까요?

 

소라마치 전체 안내도를 보면 크게 패션 및 잡화를 중심으로 한 쇼핑 구역, 백화점의 식품매장과 비슷한 푸드마르쉐 구역, 푸드코트와 식당가 구역, 그리고 수족관, 플라네타륨 등 문화공간 구역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에 스카이트리가 우뚝 서 있는 구조죠. 더위를 피하고 싶은 필자가 당장 놓여 있는 상황을 전제로 말하자면 소라마치는 ‘날씨에 영향을 거의 안 받는 실내형 시설’인 셈이지요. 한국에서도 널리 알려진 오다이바・비너스 포트라는 실내형 쇼핑몰이 관광명소라던데 이렇게 보면 그거랑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잠재력을 갖춘 시설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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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소라마치 전체 안내도. 수족관이나 플라네타륨, 우정(郵政)박물관 등은 그것만으로 좋은 구경거리가 될 것 같지요.

 

당초 필자는 담배를 받는 김에 간단하게 식사나 할 수 있으면 충분하다 생각했는데 짚어볼수록 도쿄 소라마치가 궁금해졌습니다. 상업시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필자이지만 약속시간보다 좀 더 일찍 가서 소라마치를 구경하기로 했지요.

 

 

2. 도쿄 소라마치

 

도쿄 소라마치는 전철회사인 도부철도(東武鉄道)의 자회사, 도부타운소라마치(東武タウンソラマチ)가 운영하는 상업시설. 2012년 5월에 문을 열었답니다. 정확히는 소라마치, 스카이트리, 오피스빌딩, 교육관련 시설 등 각종 시설이 모여 이룬 ‘도쿄 스카이트리 타운’의 일부인데 일반인이 보기에는 도쿄 소라마치에 스카이트리를 비롯한 쇼핑몰이나 문화시설이 들어 있다는 느낌이지요. 전철역(오시아게(押上)역 혹은 도쿄스카이트리(東京スカイツリー)역)과 바로 연결이 되어 있어 비나 눈이 내리거나 덥거나 추울 때도 날씨의 영향을 받지 않는 점이 매우 좋습니다. 필자가 세운 ‘더위의 영향을 최소한으로 하며 친구 만나기’라는 과제에 딱딱 맞는 구조.

 

즐길거리는 크게 세 가지. 놀고, 사고, 먹는 거지요. 놀고 즐기는 대목은 뭐니뭐니해도 스카이트리. 또 그 외에도 스미다수족관(すみだ水族館)이나 플라네타륨 “텐쿠(天空)”, 우정박물관(郵政博物館) 등이 있고, 수시로 여러 가지 행사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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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소라마치 홈페이지 중 ‘놀다’ 영역. 수족관, 플라네타륨, 박물관에 더해 페이지 하단에 보면 각종 행사도 실시 중임을 알 수 있습니다.

 

도쿄 소라마치가 워낙 크다 보니까 시간적 여유가 없을 때 무작정 돌아다니면 나중에 후회할 수 있어요. 어떤 가게나 식당, 시설이 있는지를 미리 체크하고 가는 것이 좋습니다. 일본 체재 중에 사려는 상품을 파는 가게가 있는지, 먹고 싶던 음식을 파는 식당이 있는지 등등 체크항목을 마련한 뒤 소라마치 안내도를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지요.

 

아니면 도쿄 소라마치 공식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모델코스’를 참고해도 괜찮은 것 같아요. 홈페이지에 보면 스카이트리 타운을 즐기는 법들이 소개돼 있는데, 모두 4가지. ‘도쿄 스카이트리 타운을 만끽하다’, ‘연인과 주말 데이트를 즐기다’, ‘어른의 쇼핑을 즐기다’, ‘푸드마르쉐(식품매장)를 즐기다’입니다. 제목이랑 코스 내용이 반드시 맞는 건 아닌 것 같지만 제시된 코스를 바탕으로 독자적인 플랜을 꾸미는 것도 재미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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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홈페이지의 추천 코스 중 만끽 코스와 데이트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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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과 푸드마르쉐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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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과 데이트를 즐기다' 코스에 들어가니 좀 더 자세한 동선을 제시해 주네요. 소요시간도 같이 제시하니 계획을 세울 때 참고할 수 있습니다.

 

소라마치를 어떻게 즐기는지는 각자 각색, 가는 사람마다 알아서 결정하면 되는 거지만, 필자는 처음이자 (아마) 마지막으로 가는 거니 되도록 거기서만 즐길 수 있는 것 위주로 구경하는 게 낫겠지요.

 

그렇다면 어디에 가는 것이 좋을까요? 먼저 도쿄 스카이트리가 떠오르지요. 소라마치의 상징이기도 하니까요. 스미다수족관이나 플라네타륨도 괜찮을 것 같고, 일본의 우편에 관한 소장품을 전시하고 있어 보이는 우정(郵政)박물관 역시 재미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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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다수족관 안내도. 커보이지는 않지만 나름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도록 꾸며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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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네타륨 ‘텐쿠(天空)’에서 볼 수 있는 프로그램. 별이 총총한 밤하늘 영상을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특정 컨셉이나 스토리가 있는 프로그램을 보는 느낌인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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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가장 땡기는 우정박물관. 상설전시 뿐 아니라 특별전시도 있는 모양이지요.

 

안내도에서 관심이 갔던 건 ‘재팬 익스피리언스 존(Japa Experience Zone)’이라는 어색해도 너무 어색한 문구. 평소 영어를 접하는 기회가 없는 필자는 순간 머리가 어질어질해졌어요. (재팬 익스피리언스 존이 있는) 5층의 안내도를 자세히 봤는데 역시 뭐가 뭔지... 일단 ‘일본을 체험할 수 있는 곳’ 정도일 텐데 소라마치에 있으면 그게 일본을 체험하고 있는 것이지… 뭐, 시간이 있으면 살짝 구경해 봐도 되겠다 해서 넘어가겠습니다.

 

소라마치에서만 즐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역시 ‘소라마치 한정 기념품’이겠지요. 소라마치에서만 살 수 있는 물품이 꼭 있을 거고, 적당한 기념품이 있으면 선물로 사는 것도 좋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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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별 안내도를 봐도 역시 ‘재팬 익스피리언스 존’은 정체불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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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에 ‘스카이트리 샵’이라는 가게가 있네요. 스카이트리 관련 상품을 파는 곳이라 한정품이 있겠다 싶었어요.

 

애당초 필자가 소라마치로 간 이유는 면세점에서 더 원 화이트(한국 담배)를 사다준 친구 일행과 식사를 하는 것이었지요. 그래서 도쿄 소라마치에 있는 식당가를 짚어봤더니 크게 세 군데가 있더라고요. 30층・31층에 있는 ‘소라마치 다이닝 스카이트리뷰’, 6층・7층에 있는 ‘소라마치 다이닝’과 나머지 하나는 ‘소라마치 타베테라스’입니다.

 

첫 번째 ‘스카이트리뷰’에는 이름 그대로 높은 층에 있어요. 스카이트리를 바라보면서 식사할 수 있지요. 쉬이 비싼 가게만 있을 거란 걸 가늠할 수 있기 때문에 무슨 음식을 팔고 값은 어느 정도인지를 아예 안 알아 봤지요(알아봤자 가난함을 재확인할 뿐 얻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궁금한 분이 있으면 각자 알아보십시오).

 

6층・7층의 ‘소라마치 다이닝’은 결코 싸지는 않지만 나들이를 나와 흥분상태에 있으면 들어갈지도 모르겠는 좀 괜찮은 레스토랑이 있는 구역. 장어 전문점, 스시집, 일식 식당 겸 이자카야, 일식 소바(메밀국수) 전문점, 덴푸라(일식 튀김) 전문점 등은 일식이라기보다 스카이트리가 위치한 스미다구(墨田区)의 명물을 모은 인상. 그 외에도 돈까스 전문점, 히츠마부시(나고야식 장어 정식?) 전문점 등 일식당이 있는가 하면 양식, 인도 요리, 파스타 전문점 등 외국 음식점도 있습니다.

 

한편 웨스트 야드 3층에 있는 ‘소라마치 타베테라스’. 아마 일어 ‘타베루(食べる, 먹다)’와 영어 ‘테라스(terrace)’의 합성어로, ‘식사할 수 있는 널찍한 공간’ 정도의 뜻일 겁니다. 한 마디로 그냥 푸드코트. 학교나 회사 구내식당 같이 테이블이 배치된 넓은 공간을 음식점이 둘러싼 것이지요. 타코야키집이나 라멘집, 소바집, 빵집 등 비교적 가볍게 먹는 것을 파는 곳도 있고, 돌솥비빔밥 전문점, 양식・그릴요리 전문점도 있네요. 가격대가 비교적 낮은 편으로 보이고요. 소라마치를 하루종일 즐기려는 분들은 여기서 점심을 간단하게 먹고, 저녁은 소라마치 다이닝에서 간지나게 먹어도 좋을 것 같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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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마치 다이닝에 들어 있는 레스토랑 일람(스카이트리뷰 포함). 고급스러운 집이 모여 있음을 알 수 있지요. 스카이트리 등 가까운 동네의 명물을 찾아온 손님들에게 ‘에도(江戸)’를 느낄 수 있게 하려는 노력을 엿볼 수 있는 게 은근하면서도 확실한 장점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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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푸드코트 ‘타베테라스’의 라인업은 비교적 저렴하거나 간단한 음식이 많다는 인상. 일본이나 에도를 강조하는 대신 데이트나 나들이 온 손님들이 쉽게 한 끼니 해결할 수 있는 것을 컨셉으로 한 것 같네요.

 

필자는 친구 일행과 어디서 회식하면 될까요? ‘스카이트리뷰’는 비쌀 것 같으니 아예 후보가 안 되고, 푸드코트인 ‘타베테라스’는 아무리 그래도 좀 그렇잖아요. 역시 ‘소라마치 다이닝’에 있는 식당에서 먹는 것이 무난하겠지요.

 

이렇게 생각하던 중에 마침, 행운의 여신이 필자에게 미소를 지어 줬습니다. ‘그루폰(Groupon)’이라는 쿠폰 판매사이트에서 소라마치 다이닝에 있는 양식 레스토랑의 쿠폰을 출시했던 겁니다. 양식 플레이트(양식 백반?)와 음료 세트, 정가 2,600엔어치를 1,500엔에 말이죠. 그루폰에 출시되는 쿠폰의 가성비는 천차만별이라 좋을 때도 있고 후회할 때도 있는데 이번에는 그리 비싸지 않은 것도 있어서 바로 구매했습니다. 3장에 4,500엔. 요리가 레스토랑의 설명대로 나온다면 나쁘지 않은 결단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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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루폰(GROUPON) 사이트 첫 페이지. 레스토랑뿐 아니라, 미용 관련 서비스나 여행, 숙박 서비스 등 각종 상품/서비스를 저렴하게 사거나 이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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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구입한 쿠폰. 햄버그스테이크, 새우튀김, 오므라이스 플레이트(양식 백반?)와 음료 1잔 세트. 정가에 사면 2,600엔 정도 되는 메뉴를 1,500엔에 샀습니다. 3인분으로 따지면 3,000엔이나 절약한 셈이지요.

 

이상으로 소라마치 구경의 대방침도 세웠고, 회식 장소도 정했습니다. 이제 소라마치를 구경하러 출발합시다.

 

 

3. 구경하기 전에 먼저 배를 채워 둡시다

 

약속 당일 필자는 모처럼 도쿄에 나가는 김에 살짝 오카치마치(御徒町, 우에노(上野) 바로 옆 동네)에 들렀다 소라마치에 갔습니다. JR선과 지하철, 그리고 기타 전철회사의 철도망이 비교적 잘 정비된 도쿄인 만큼 몇 개의 경로가 있고, 경로에 따라 크게는 150엔(약 1,500원) 정도 차이가 나지요.

 

우에노에서 소라마치까지 가장 싸게 갈 수 있는 루트는, 도영(都営)지하철 오에도선(大江戸線) 우에노오카치마치(上野御徒町)역에서 쿠라마에(蔵前)역까지 간 다음, 역시 도영지하철인 아사쿠사선(浅草線)으로 갈아타 오시아게(押上)역으로 가는 것. 소요시간은 약 30분, 약 220엔에 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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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우에노오카치마치역 가까이에 있는 우에노히로코지(上野広小路)역이나 나카오카치마치(仲御徒町)역에서 출발해도 걸리는 시간은 비슷한데 요금이 280엔이 돼요. 우에노히로코지나 나카오카치마치에서 타는 지하철은 도영지하철이 아니라 도쿄메트로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다른 철도회사가 운영하는 노선인 겁니다. 그래서 우에노히로코지나 나카오카치마치를 출발역으로 할 경우 도쿄메트로와 도영지하철 두 개 전철회사의 기본요금(각각 170엔, 180엔)을 내야 하는 거죠.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갈아탈 경우에는 70엔만 할인해 준다는 규칙이 있어서, 결국 280엔을 내는 셈이고요.

 

반면 필자는 중간(쿠라마에역)에서 갈아타기는 했으나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 다 ‘도영’. 즉 도쿄도가 운영하는 지하철노선이기 때문에 기본운임(180엔)에다 이동거리에 따른 추가요금이 부과된 220엔인 거지요. 관광으로 가는 분들은 일일 무한승차 패스 같은 것을 이용할 테지만, 패스가 없을 경우에는 경로에 따른 운임 차이에 조금만 신경 쓰면 음료수 한 병 살 돈은 아낄 수 있겠습니다.

 

하여튼, 60엔을 아끼면서 오시아게역에 도착했어요.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쏟아져 내리더니 다 똑같은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지요. 길치인 필자는 길을 잃어버리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는데 완전히 기우였습니다. 플랫폼에도 커다란 안내판이 있어서 지하철역을 헤맬 걱정은 전혀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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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아게역에서 내리면 보이는 간판. 언제부턴가 역이름을 히라가나로 표기하는 것 같네요. 오시아게역에게는 ‘도쿄스카이트리 앞’이라는 별명이 있나 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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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내리면 곳곳에 커다란 안내문이 있어요.

 

필자가 친구를 만나는 장소로 소라마치를 뽑은 이유는 더위를 피하기 위해서였지요. 그래도 지하철역 출구에서 소라마치까지는 매우 더울 거고 그것만은 어쩔 수 없겠다 각오했었어요.

 

하지만 도쿄 소라마치는 괜찮습니다. 개찰구를 나가면 바로 앞쪽에 ‘스카이트리 타운’이라는 화려한 표시와 함께 소라마치 입구가 있고, 안에 들어가면 눈에 띄는 데에 안내도가 있고, 좀 더 안쪽에는 안내원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시아게역에서 밖으로 나가지 않고도 바로 소라마치로 들어갈 수 있는 구조인 겁니다. 시원한 바람이 부는 지하철 안보단 덥기는 하지만 땀이 흘러나올 정도로 더운 지상으로 나갈 필요가 없다는 것만으로 대단히 고맙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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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아게역 개찰구에서 좀 더 가면 도쿄 소라마치 입구가 있습니다. 지하철역과 연결되어 있어서 궂은 날씨에도 괜찮습다. 생각보다 훨씬 편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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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마치에 들어가면 안내판이 눈에 띕니다. 시설은 매우 큰데 구조가 복잡하지가 않아서 알기 쉽지요.

 

무사히 도착했다고 안심해서인지 갑자기 배가 고픕니다. 생각해 보니 아침에 카시와역에서 타치구이 우동(立ち食いうどん, 서서 먹는 우동)을 먹은 뒤 아무것도 안 먹었네요.

 

저렴하게 먹으려면 역시 푸드코트가 좋지요. 뭐가 좋을까 중얼거리는데 ‘니쿠소바 나리히라(肉そば業平)’라는 가게가 시선을 끌었습니다. 일단 ‘고기 소바’ 정도의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는 ‘니쿠소바’부터가 필자에게는 생소했고, ‘나리히라(業平)’라는 가게 이름이 소라마치의 옆 동네 지명이라 혹시 그 동네 명물이 아닌가 하는 기대감이 든 겁니다. 소바가 빨리 가볍게 먹는데 딱 좋기도 해서 니쿠소바를 먹는 것으로 결정, 3층까지 올라가서 웨스트 야드(서쪽 구역) 쪽으로 이동했습니다.

 

타베테라스(푸드코트)에 도착했더니 필자가 평소 알던 푸드코트와 좀 다른 분위기. 시내 대형마트 같은 데에도 푸드코트가 있는데 솔직히 학교 구내식당보다 살짝 나은 정도거든요. 그런데 타베테라스는 나름 예쁘게 꾸며져 있었습니다. 화려한 분위기 말고도 또 놀랐던 게 점심시간이 훌쩍 넘었는데도 사람이 꽤 많았던 점. 아이를 데리고 나들이 온 가족이 여기저기서 식사하는 모습은 여름방학임을 새삼 실감하게 해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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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마치 공식 홈페이지에 있는 ‘니쿠소바 나리히라(肉そば業平)’의 소개 페이지. 고기가 들어간 육수에 소바를 찍어 먹는 스타일 같네요. 신용카드를 이용할 수 있는 것이 역시 대형 상업시설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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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소라마치 서쪽 구역 3층에 있는 푸드코트인 ‘소라마치 타베테라스’의 입구. 시내 대형마트 등에 있는 푸드코트보다 약간 세련된 분위기인 것 같습니다.

 

다행히 필자가 먹으려고 했던 나리히라 앞에 빈자리가 있었습니다. 의자에 배낭을 두고 바로 주문하러 갔지요. 그런데 어떤 이유 때문인지 주문을 나리히라 옆에 있는 ‘도쿄챔프’라는 가게에서 받는다네요. 식사가 나온 것을 알려주는 진동벨도 도쿄챔프 거였고, 뭔가 사정이 있었던 거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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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가 가게 바로 앞이라 의자에 가방을 두고 주문하러 갈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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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 좋게 필자가 앉은 자리 가까이에 급수대가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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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옆 가게인 도쿄챔프에서 주문(니쿠소바(곱빼기)). 알림용 진동벨도 도쿄챔프 것이었습니다.

 

음식을 적당히 기다리는 시간은 조미료가 되지요. 스미다구 명물 니쿠소바를 기다릴 때도 두근두근댔어요. 진동벨이 흔들리자 바로 받으러 갔지요.

 

하지만 말입니다. 니쿠소바를 보는 순간 왠지 안 좋은 예감. 설마설마하며 자리에 앉아 젓가락을 소바에 꽂아봤더니 역시나였지요. 물기가 빠져 끈적끈적 자꾸 젓가락에 달라붙는 소바. 아마 미리 끓인 소바를 그릇에 담아놓고는 그대로 준 거겠지요. 아무리 푸드코트라 해도 1,000엔이라는 가격은 싼 게 아닌데, 주문받은 뒤 살짝 물에 담그는 정도는 해도 되지 않나요?

 

속으로 “실망입니다, 그만 좀 괴롭히십시오”라 외치면서 소바 옆 국물을 마셨는데, 대박. 얇게 자른 돼지고기로 육수를 내고 간장으로 맛을 내며 미림으로 조율한 것 같아요. 이 국물만으로 공깃밥 세 그릇은 먹을 수 있을 정도였지요. 특히 돼지고기에서 나오는 아련한 풍미를 좋아하는 (필자 같은) 사람한테는 더할 것 없는 최고의 국물입니다(그만큼 완전히 말라버린 소바가 안타깝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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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등장한 니쿠소바. 다진 김 밑에 보이는 파는 필요 없어 보이지만 그만큼 국물의 힘이 셀 것 같아 기대감 최고조. 그러나 틈에서 보이는 소바는 건조한 모양이어서 나쁜 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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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끓여놓은 소바를 그대로 그릇에 담았기 때문에 면이 말라버렸어요. 젓가락에 착 달라붙는 소바에 실망감. 힘이 빠져버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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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국물은 최고. 돼지고기의 강력한 육수를 간장과 미림으로 조율한 절묘한 맛. 짙은 국물을 좋아하는 분 입에는 딱 맞을 겁니다.

 

소바와 국물의 궁합은 어떨까요. 말라버린 소바를 끊기지 않도록 조심조심 집어 올린 뒤 국물에 담급니다. 마른 소바를 얇게 싼 국물이 희미하게 빛나는 듯합니다. 침을 삼키고 그대로 입안에 투입했더니, 평소 먹는 소바츠유(そばつゆ ; 소바를 찍어 먹는 소스?)의 맑은 맛과 대조적으로 따뜻한 고기국물의 강력한 맛을 소바의 소박한 맛과 식감이 딱 맞게 조절해 주는 느낌. 맛있습니다. 소바를 국물에 찍어 먹다 고기만 먹어도 되고, 아니면 소바를 집은 젓가락으로 고기를 같이 집어도 맛있고요. 소바 관리가 소홀했던 것이 참으로 안타깝지만, 전체적으로 만족스러운 니쿠소바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소바를 먹는다기보다는 오히려 소바나 다진 김, 파로 국물 맛을 조절하면서 먹는 요리라고 보아도 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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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바와 국물의 궁합은 최고였지요. 다진 김과 다진 파가 좋은 엑센트를 준 것 같아요.

 

어, 잔소리했다 칭찬하면서 넉넉히 먹다 벌써 이런 시간. 약속시간인 오후 6시까지 3시간밖에 안 남았네요. 그릇을 반납하고 테이블을 닦고 빨리 소라마치를 구경하러 갑시다.

 

 

(“도쿄소라마치(중)”으로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