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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연재글을 쓸 때 나는 이 일을 가볍게 여겼다.

 

신경정신과 담당의도, 평소 친하게 지내는 수녀님도 트라우마가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라며 만류했지만, 귀담아듣지 않았다. 20년도 더 된 얘기를 하는 게 뭐 얼마나 힘들겠나 싶었다. 글을 쓰다 보니, 완전히 잊었다고 생각했던 그날의 기억이 너무도 선명하게 떠올랐다.

 

잊고 지낼 땐 몰랐는데, 기억하려고 드니 그날의 습도, 온도, 사이렌 소리, 피비린내, 먼지 하나하나까지 전부 어제 일처럼 또렷하게 떠올랐다. 이 일이 더 힘들었던 건, 끔찍한 사고의 현장에 계속 머물며 적절한 단어나 문장을 찾아내야 하는 것이었다. 대단히 고통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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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다시 아프기 시작했다.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마음 아픈 것에 대해 잘 모른다.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는다고 하면, 흔히들 이렇게 충고한다.

 

"마음 굳세게 먹어, 약에 의지해 좋을 거 없어. 운동을 해, 그러면 좋아질 거야"

 

라고 말이다.

 

물론 저렇게 해서 좋아지는 사람도 있겠지, 그러니 하는 말이겠지, 불행히도 나는 아니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보자, 당신에게 아픈 이빨이 있다고 치자, 마음 굳세게 먹고 약에 의지하지 않고, 운동해서 해결할 건가? 가끔 생각한다. 어째서 사람들은 찢어진 영혼을 충치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거냐고.

 

불안 장애가 시작되면 불면의 밤이 이어진다. 짧게는 삼 사 일, 길게는 열흘까지 간다. 그러면 일상생활이 파괴된다. 우울감에 피로가 겹쳐 극도로 예민해지고 손 끝도 온종일 가늘게 떨린다. 그 감정이 최고에 달하면, 가슴 속 어딘가 정말 찢어지는 것만 같아, 가슴을 부여잡고 한참을 뒹군다. 하지만 다행히 이런 일이 자주 있는 건 아니다. 평소에 스트레스 관리를 잘 하면 괜찮은데, 스트레스 관리를 못해 불안 증세가 심해지면 가끔 겪는다.

 

딴지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또 개인적으로 신경 쓸 일도 겹쳐 멘탈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또 다시 두려운 불면의 밤이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지난 7월 9일, 나는 외근을 나가다 핸들을 틀어 분당의 단골병원으로 가 28일치의 신경안정제와 수면제 처방을 받아왔다. (최근에 서울로 이사 와서 병원에 자주 갈 수 없는 처지다)

 

급한대로 병원에서 파란색의 신경안정제 한 알을 먹고 출발했는데, 갑자기 도로 한복판에서 브레이크를 잡기 힘들 정도로 몸이 나른해졌다. 겨우 집까지 가서, 몸이 좀 나아지면 다시 회사로 가야지 했는데, 그땐 어려서 나를 아주 많이 예뻐해 주신 외숙모의 슬픈 부고를 들었다. 소식을 듣고 완전히 패닉이 되어, '어째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계속 세상에서 사라 지는가'에 대해 생각하며 울다가 약을 먹고, 가슴을 쥐어뜯고, 방안을 뒹굴다 다시 일어나 약을 먹고 또 다시 정신이 들면 약을 먹고 그렇게 밤새 울면서 10일치 이상의 약을 뜯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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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새벽에, 업무용 차가 집에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 정신에 차를 회사에 다시 가져다 놓겠다고 몰고 나가 회사 주차장에서 가드레일을 들이받는 사고를 냈다. 그러고는 다시 집으로 와 외숙모 장례식장에 가야 한다고 팀장님께 보고하고는 정작 장례식장엔 가지도 못하고 약에 취해 이틀 내리 계속 잤다.

 

며칠 뒤 회사에 갔더니, 사내에는 나에 대한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있었고, 익명 게시판에는 이런 식의 글이 올라와 있었다.

 

"만취가 된 상태로 업무용 차를 끌고 새벽에 주차장으로 들어와 사고를 내고도, 반성도 안 하고, 뻔뻔하다"

 

그 글에는 백 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는데, "원래 개념 없기로 유명하고 근태도 엉망인데 (성적인 표현은 생략하겠다) 윗사람들이 봐준다"라는 내용의 글이었다. 그 말들이 사실이든 아니든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글을 쓴 게 다름 아닌 직장 동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날 일에 대해서 나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건 사실이고,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잘못했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벌받아 마땅하다. 벌주면 기꺼이 받을 생각이다. 그리고 인정한다. 평소에도 그다지 근태가 훌륭한 편이 아니다. 한 번 일에 꽂히면 누가 따로 시키지 않아도 새벽에 나와 밤이 늦도록 일을 하지만, 어쩌다 불안장애와 극도의 우울감에 시달릴 때는 방법이 없다.

 

전 날 손목을 그었는데 어떻게 다음날 출근을 하겠는가, 당연히 아프다고 갑자기 휴가를 내겠지. 그리고는 며칠 뒤 손목에 아대를 감고 나타나 다시 일을 했다. 사실, 대한민국 직장인 중에 극히 드문 케이스라고 하긴 하던데 나는 입사 이래로 여태 좋은 상사들을 만났다. 그래서 그분들께 이해받고 인정받아, 글을 쓴 동료들이 말하는 상대적 특권을 누렸다면 누렸다. 하지만 이 일도, 앞으로는 조심 또 조심할 생각이다.

 

이런 일들을 겪으며 나는 한동안 대단히 혼란스러운 날들을 보냈다. 해서 여러 날, 음악도 듣지 못하고 책도 읽지 못하고 집에 가면 가만히 누워 생각했다. 대체 사람이 미우면 어떻게 이렇게까지 미울까, 어떻게 내 앞에서는 눈썹 하나 찡그리지 않는 사람들이 돌아서서는 이렇게 무서운 생각들을 하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들을 하면서 말이다. 나름 불행에는 도가 텄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또 달랐다.

 

이 일이 내게 절절하게 아팠던 것은, 불행과 함께해 온 내가, 그럼에도 이 세상은 생각보다 따뜻하다고, 악한 사람들이 눈에 띄여 그렇지 선하고 따뜻한 사람들이 훨씬 많다고 생각했는데, 마치 세상이 나를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이래도 너 그런 말 할 수 있어?" 하며 시험을 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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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누워 지난날을 되돌아 봤다.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이 생을 어떻게 지켜냈는지 떠올렸다. 아무것도 아닌 일상, 이 별 거 아닌 일상을 유지하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기억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나를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던지는 돌에 다치지 말자고, 더한 일도 겪지 않았더냐고, 이깟 게 뭐라고, 피가 나길 하나, 고막이 터지길 했나, 이깟 게 뭐라고 이러느냐고.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나 결심했다. 만약 누가 다시 내게 돌을 던지면 이렇게 따져 묻자고

 

"당신들은 그렇게 떳떳하냐고, 뭐가 얼마나 대단해서들 이러느냐고,"

 

우리 모두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던지는 돌에 맞아 다치지 말자. 세상은 차갑고 냉정하고 비열하기만 하다는 악마의 논리에도 지지 말자.

 

우리 진짜 그러지 말자.

 

 

 

#추신 : 담당의와 이 일에 대해 진지하게 상담했는데, 이왕 여기까지 온 거 처방대로 약 잘 챙겨 먹으면서 계속 쓰란다. 그럴 예정이다. 이 글이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이나 오늘은 특히나 더욱 개인적이라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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