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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롤로그 - 개발자와 장기 졸

1.1. 입던은 점프

1.2. 개발자를 정의합니다

1.3. 주화입마

 

2. 작은 회사에서의 삶

2.1. 돌격 앞으로

2.2. 돌격 앞으로 실패! - 갑, 을, 병, 정 관계의 형성

2.3  머슴살이

2.4  독신자 기숙사

2.5 정리해고

2.6 우아한 출장

 

 

 

2.6 우아한 출장

 

2.6.1 개발자도 간다

 

한층 더워진 여름이다. 정오의 태양 아래서 조금만 걸어도 머리 정수리가 뜨겁다. 강렬한 밝기에 자연스레 인상은 찌푸려지며 그늘 속으로 들어 때까지 눈을 가늘게 밖에 없다. 습기와 더위를 겹이나 먹은 공기는 드러낸 살결에 눌러 붙어 몸을 뜨겁게 달구며 조금이나마 경사진 곳을 걸으면 구레나룻 아래와 목덜미 쪽으로 땀방울이 금새 흐르고 신발 속의 발은 더운 열기에 후끈 거리기 시작한다.

 

이런 뜨거운 날이면 개발자들은 더더욱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달라 붙지 않는 라운드넥 티셔츠와 단정한 청바지를 입고 에어컨 밑에 앉아 프로그램 코드만 열심히 작성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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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개발자도 어쩔 없이 움직일 수 밖에 없을 때가 있다. 출장이다물론 모든 개발자가 출장을 가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사업부서나 영업부서처럼 빈번한 출장을 가는 것도 아니고 화려한 출장도 아니다. (물론 출장지 사무실에서 밖으로 나오진 않지만) 하지만 개발자도 어쨌든 간다.

 

개발자의 출장은 뭔가 복불복 같은 구석이 있다. 직장 생활 내내 출장을 한 번도 가지 않는 개발자가 있는 반면 출장에 지쳐 퇴사를 하는 개발자도 있다업무가 국내용 서비스나 ICT 제품이라면 출장을 가지 않을 확률이 높다. 반면 업무가 수출용 서비스나 ICT 제품 담당이거나 생산공장과 연구실이 다른 지역에 포진해 있는 회사라면 튼튼하고 좋은 제품의 여행용 백을 구비해 놓아야 한다.

 

개발자 출장에도 레벨이 존재하는데 대충 나누어 본다면 아래와 같다.

 

- LV 1. 일반 난이도의 출장

- LV 50. 어려움 난이도의 출장

- LV 100. 고인물의 향연

 

그렇다면 개발자들의 출장 플레이 난이도를 살펴 보자

 

 

 

2.6.2 LV 1. 일반 난이도의 출장

 

일반 난이도의 출장은 특색이 없고 우리가 상상하는 출장의 범주와 비슷하므로 길게 언급 것도 없다영업 부서나 사업 부서 사람들이 출장을 가서 미팅을 가지듯 개발자들도 미팅을 가진다. 이런 간단한 미팅 정도의 출장은 정례적인 업무들에 대한 출장이거나 예외성이 적은 업무들이다. 그리고 주요하고 즉시적인 의사 결정이 필요 없는 출장이다.

 

프로젝트의 경우, 대규모의 인원으로 미팅을 때도 있다. 개발 파트 대표자들이 전부 모여 '천하제일 단정한 청바지 대회' 개최한다. 영업부나 사업부 사람들처럼 세련된 모임은 아니다. 수줍어 어쩔 몰라하는 여고생처럼(물론 수염이 거뭇하고 배가 나왔지만) 말을 아끼며 서로 어떻게 개발하면 적합한지, 개발 가능한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를 기술적으로 후다닥 체크하고 오늘부로 결별하는 연인처럼 하게 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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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다른 경우도 있는데 문제가 생긴 곳으로 문제 수정을 위한 출장이나 제품 필드 테스트의 경우도 있다. 문제 수정은 노트북에 프로그램 소스를 담고 문제 발생지로 가서 직접 디버깅(문제의 확인 수정) 하는 것이며 필드 테스트의 경우는 스마트폰이나 네비게이션 등 실제 형태가 있는 제품의 완성 단계에서 제품 시연 테스트를 나간다고 생각하면 된다.

 

혹시나 아파트 지하주차장 혹은 외곽 지역 등에서 승합차에 노트북을 뚫어져라 보고 있는 아저씨들이 있다면 필드 테스트 차량일 확률이 높다. 스마트폰 Protocol(통신분야) 개발자들은 승합차에 타고 전국 고속 도로를 누비며 하루 종일 전화 기능만 확인하고 다니기도 한다(수출용 제품이라면 해외로 필드 테스트를 나가기도 한다).

 

 

 

2.6.3 LV 50. 어려움 난이도의 출장 - 해외

 

개발자로 온갖 오묘한 일은 겪어 보지만 사실 해외 출장이라는 영역에 있어서는 건설업계와 해운업계 종사하는 친구를 이기진 못한다. 일단 건설업계 현장 출장은 한 번 나갔다 하면 단위의 기간이기에 쉬이 명함을 내밀기 힘들다. 국내 굴지 기업인 'H 건설' 근무하는 친구에 의하면 반드시 해외 현장은 한 번 다녀와야 한단다. 현장이 여러 곳에 있는데 가고 싶은 현장을 지원해서 다녀 오면 된다는데 친구는 지원한 곳은 떨어지고 역시나 '중동' 다녀 왔다.

 

그게 언제냐 하면 503호에 거주 하시는 분이 '살려야 한다' 표어 앞에서 요구르트 점퍼를 입고 전화 받는 코스프레 사진이 히트를 쳤을 때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MERS) 세계와 한국을 몰아 쳤을 메르스의 발생지인 중동에서 근무했다.

 

아무리 내가 바보 같은 직장 생활에 자부심이 있다한들 건설용 안전모를 뒤집어 쓰고 작열하는 사막의 태양과 메르스의 위협을 정면돌파 하고 있는 <아라비아의 로렌스> 어떻게 이긴단 말인가이라크 모술로 달려가서 'Jesus loves you' 볼륨으로 반복 재생되고 있는 카스테레오에 성조기로 도색된 승합차를 타고 운전석과 보조석의 창문을 활짝 열어 놓고 이라크 전역의 필드 테스트를 진행하면 견줄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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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은 극단적인 상황은 아니더라도 어려움 난이도의 출장이 존재한다. 일단 출발했다 하면 1~2개월은 넘기는 출장들이다. ICT 개발자들이 많이 해당되는데 해외 판매 제품을 개발하는 개발자들이 주로 걸린다.

 

분야도 생각보다 다양하다. 자동차, 스마트폰, 네트워트 장비, 열차 분야 그리고 순수 SW 분야도 해외 출장이 꽤나 있다. 우리가 아는 자동차 회사 브랜드만 해도 국내 브랜드를 제외하면 주요 브랜드는 유럽, 일본, 미국 등에 위치하고 있다. 실제로 유럽으로도 많이들 가는데 유럽까지의 왕복 비용은 절대 싸지 않다. 때문에 일단 출국하면 최대한 오래 체류 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지속적인 프로젝트가 이루어지는 곳은 지속적으로 개발자 투입이 필요하기 때문에 바통 교체 형식으로 개발자를 계속해서 보내기도 하고 복귀 1~2 다시 보내기도 한다.

 

기업이나 돈이 많은 기업은 출장을 그냥 보내지만 작은 기업의 경우는 경비를 아끼기 위해서 출장 인원은 최소화 시키고 현지의 원활한 대응을 위해 국내에 남은 개발자들에게 출장지 현지 시간에 맞춰서 업무를 시키는 아주 환상적인 경우도 발생한다. 그러면 국내에 남은 개발자들도 헬게이트가 열린다. 국내 업무도 진행 하면서 해외 업무 대응도 해야 하므로 근무 시간의 경계가 무너진다. (나도 시차 4시간 나는 지역과 대응을 해보았는데 정시 퇴근이 11시가 되는 마법을 보았다. 그리고 출근은 그냥 정시 출근이었다)

 

출장지를 보자면 유럽은 정말 좋은 케이스 하나다.

 

선배는 멕시코로 출장 갔는데 숙소가 멕시코시티에 위치한 오피스텔이었다. 2개월간 머물렀는데 길거리에서 종종 총성이 울렸고 오피스텔 1층에 있는 편의점은 두  동안 3번의 무장강도 습격을 받아 털렸다고 한다. 그리고 외출 때는 항상 바지 주머니에 현금으로 20만원 가량의 페소를 들고 다녔는데 용도가 무장 강도를 만나게 되면 상해를 입지 않고 빠져 나오기 위한 상납용이었다. 상납용 현찰 준비는 즉흥적으로 떠올린 것이 아니라 출장지 현지에서 교육을 받는 사항이라고 한다.

 

다른 후배 녀석 하나는 일본 도호쿠 지방 지진이 일어나 후쿠시마 사태가 벌어지고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일본 도쿄로 장기 출장을 갔다가 복귀 병원에 검진 받으러 병원에 직행을 어이없는 사례도 있다.

 

그리고 해외라 해서 이것 저것 구경을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복귀 시간이 정해져 있기 밤낮 없이 개발에 매진하며 업무 강도가 상당히 높은 편이다. 실제로 해외 출장 과로로 인한 사망 사례도 있다. 때문에 여유로운 생활은 누리기 힘들다. 보통 귀국 하루 전날이나 이틀 전날에 하루 정도 해당 지역을 둘러보는 것이 통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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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4 LV 100. 고인물의 향연

 

개발자들이 가는 출장 중에 매우 난이도가 높은 출장이 있다. 난이도 정도로 치면 하드코어 레벨이나 불지옥 난이도로 보면 되는데 이런 출장이 발생하는 계기는 매우 단순하다. 회사가 개발자들에게 마법의 주문 하나만 외우면 된다.

 

"문제가 해결 때까지!!!"

 

이게 무슨 이상한 소리냐고 궁금해 할 만도 하다출장을 가기 전에 며칠 정도 소요될 것이냐를 당연히 계획한다. 출장지에도 나름 일정과 사정이 있을 테니까 말이다. 막무가내로 가서 "안녕하세요. 왔습니다. 오는 길에 파는 용달차가 있길래 사와 봤습니다."  없다.

 

그리고 당연히 회사 입장에서는 비용도 생각 한다. 출장비 경비 처리에 관련해서 갈 수 있으면 최고 좋고 2 보낼 것을 명으로 줄이면 좋고, 이런저런 계산을 한다하지만 프로젝트 진행 심각한 오류로 인해 출시 일정 지체가 예상이 되면 회사는 내용처럼 비용이고 뭐고 일단 특공대를 투입해서 현장으로 급파를 한다.

 

특공대는 비장함( 성공하리라 하는 비장함이 아니라 인생이 박살 날 것 같은 비장함) 젖어 출장을 지시 상사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다.

 

특공대 : 부장님. 가면 언제 복귀인가요?

부장 : 문제 해결 하면!!!

 

그리고 특공대는 인생은 도대체 어디서부터가 되었는가 하는 한탄과 함께 문제의 출장지로 낙하 한다이런 출장, 정말 골치 아프다. 일주일은 그냥 지나가고 심하면 4~6개월 넘어가기도 하며 출장의 빈도도 매우 잦게 일어날 수도 있어서 장기로 한 번 갔다 오는 것이 아니라 복귀하고 며칠 쉬고 다시 출장  있다.

 

특공대들은 숙소가 여의치 않거나 사무실이 여의치 않아 인근 모텔에서 개월을 버티기도 하고 심할 경우 모텔이 사무실로 변할 때도 있다. 3개월 이상 하고 나면 다음의 현상을 맞이 한다.

 

'모텔에서의 생활 + 퇴근 없는 고강도의 업무 + 불규칙한 식단 + 운동 부족'

 

요소들이 결합하여 건강과 체력을 바닥나게 만들고 '주화입마' 빠지게 만든다. 이런 출장을 한 번 다녀 오면 퇴사하는 사람도 있고 건강이 심하게 나빠지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비용 문제가 항상 우리를 괴롭힌다. 규모가 작아서 비용 집행이 어려운 회사나 사장이 제정신이 아닌 회사들은 장기 출장에 대한 출장비도 없는 경우가 많다몸도 몸이지만 정당한 노동에 대한 대가를 지급 받지 못하는 것이 '주화입마' 더욱 빠른 속도로 빠져들게 만들며 심한 경우 퇴사를 하거나 아예 업계 자체를 박차고 나오게 만든다. (이것은 나도 직접 격은 일이기에 다음에 자세히 소개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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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출장이 생기는 이유는 간단하다. ... 관계에서 발생하는 단가 후려치기. 후려치기로 인한 일정의 과한 축소, 그리고 병과 정에서 단가를 맞추기 위해 해당 업무와는 이해관계가 없는 신규 개발자들의 대거 투입으로 인해 발생한다.

 

쪼그라든 일정 속에 시스템을 파악할 시간도 없이 투입되어 문제는 계속해서 터질 밖에 없다. 또한 과도한 업무의 피로감과 부족한 시간에 의해 근본적인 문제 개선이 아니라 터진 문제만 급하게 막는 식으로 일이 진행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프로젝트의 문제는 계속 생길 밖에 없어 개발자를 투입한 회사는 신용 카드 돌려 막기 식으로 다른 프로젝트의 개발자를 빼서 현장으로 특공대로 급파, 급한 불을 끄려는 것이다.

 

이런 출장을 보낼만한 회사들은 사원의 개인 사정을 거의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삶에서 중요한 순간을 놓치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선배는 공을 들여 만든 연인과 연애 만에 장기 출장을 갔다가 헤어지게 되어 다시 무적의 솔로부대로 씩씩하게 복귀 해버리고 말았다. 다른 선배는 결혼생활 5만에 자녀가 태어났지만 태어나고 얼마 있지 않아 해외로 장기출장을 가게 되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을 놓치기도 했다.

 

간혹 아주 쉬운 레벨의 출장이 갑자기 이런 악몽 같은 레벨로 변하기도 하는데 이등병이 갑자기 특공대가 되기도 한다.

 

막내 사원 시절에 아닌 업무라 하여 당일 코스 출장을 적이 있다. 팀장도 아니니 아침에 갔다가 오후에 기차 타고 복귀하면 된다고 했다. 혼자 가는 출장도 아니고 대리가 주고 나는 보조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맘 편히 크로스백 하나 메고 서울로 상경 했다. 말단 사원이 따라와서 만한 것이 있겠는가? 함께 대리 옆에 달라 붙어서 열심히 테스트 지원을 해댔다. 오후 3시가 되었을까 대리는 전화 통을 심각하게 받더니 나에게 굳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대리 : 복귀하지 말라는데

: ? 대리님이요? 왜요?

대리 : 아니 너랑 나랑 말이야. 바보야.

: ? 그럼 언제 복귀 하라고 하시는데요?

대리 : 문제 해결되면 복귀 하란다. 해결 안되면 복귀하지 말래

 

하필 그날은 월요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내 멋진 단벌 신사가 되었다. 상의, 하의, 신발 모두 변함없이 벌이었고 5일이 지나자 상의에서는 역시나 향기가 나기 시작했으며 크로스백은 아파트 외벽의 그림처럼 나에게 붙어 있었다그리고 제대 이후 팬티와 런닝 셋트 양말의 단일 종류 구매 최고 기록을 세웠다. 

 

 

 

2.6.5 뉴비의 추억

 

부끄러운 출장 뉴비 시절 추억을 하나 털어 놓을까 한다계급이 주임인 선배 명과 1박 2짜리 간단한 출장을 갔을 때였다. 업무 자체는 간단한 업무였으나 거리가 제법 되는 곳이라 숙박을 반드시 했어야 했다. 교통은 대중 교통이 아니라 회사 차량을 이용했으며 운전은 선배가 했다. 같은 선배로 다행히 친분은 돈독한 편이어서 가는 길까지는 지루하진 않았다.

 

출장지에 도착하고 확인한 결과, 해당 출장지는 제법 번화한 곳이었다. 술집들이 즐비하고 환락 요소들이 즐비한 . 문제는 우리 그곳이 초행이었고 인원 구성도 주임+사원 조합이었다는 것이다.

 

저녁 6시가 넘어 해당 지역에 도착했고 주차가 가능한 숙박 업소를 찾아야만 했다. 네비게이션이 지금처럼 친절한 때도 아니었기에 우선 서행을 하면서 보이는 모텔에 들어 가기로 했다. 인근 편의점에서 그날 저녁 마실 간단한 음료와 맥주를 차를 타고 돌아 다녔다. 화려한 환락의 네온 사인들 사이에서 번째 모텔을 발견하고 숙박을 하기 위해 들어 갔으나 보기 좋게 거절 당했다. 번째 모텔도 역시 거절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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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이고 초행이라 지금처럼 뭔가 막히면 쉽게 검색을 해서 움직일 없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군대 계급으로 치면 일병+이등병 조합으로 외부에 나갔는데 얼마나 유연한 선택을 있었겠는가? 과장쯤 되면 일단 여유를 가지고 다른 곳으로 가든 하겠지만 우리는 뉴비였다. 일단 숙소가 구해질 때까지 인근을 벗어나지 않고 무작정 보이는 모텔 찾아 들어 갔다. 번째 모텔에서도 역시 거절 당했다. 물론 "당신들에게 방은 없습니다! 나가세요"라고 매몰차게 쫓겨난 것은 아니었지만 4번째 방문한 모텔에서 방을 구해 룸의 문을 여는 순간 앞의 모든 모텔에서 거절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가 크게 망각하고 움직였던 사실은 '유흥과 환락이 가득 ' 이라는 사실이었다. 남녀 대실 손님으로 넘쳐나는 이곳에 노트북을 둘러 남자 2 숙박 손님을 좋아할 만한 업주가 어디에 있겠는가?

 

방은 정사각형 형태의 모형을 갖추고 있었다. 서쪽 벽에서부터 머리 방향으로 놓인 킹사이즈 침대가 대다수의 공간을 차지하고 맞은 동쪽 벽에는 작은 사이즈의 TV선반과 TV, 미니 냉장고가 위치해 있었다. 침대 왼편의 작은 공간에는 재떨이가 놓인 간이 테이블과 의자 2개가 위치했다. 북쪽 벽면은 블라인드로 가려진 창문이 있고 남쪽 벽면은 욕실이 위치하고 있었다.

 

남자 둘이서 침대에서 자야 했는데 이불은 대형 이불 하나였고 침대는 지나치게 푹신했다. 참혹하게도 모텔 천장은 전부 유리로 되어있어 고개를 들어 천장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결정적인 문제점은 욕실의 벽면과 문이 투명 유리로 되어 있었다는 것이었고 대형 원형 욕조가 달린 시설이라 크기도 일반 가정의 욕실 보다 훨씬 컸는데 크기가 남쪽 벽면을 전부 차지할 만큼의 괴랄 욕실이었다. 빅사이즈 욕실의 투명 유리는 블러(Blur) 처리가 반투명에다가 중간에 인어라든지 비너스 모형이 크게 새겨져 있고 모형 부분은 완전한 투명이었다. 그리고 인어의 정면에 변기통이 위치해 있었다.

 

만약 그곳에 연인과 함께라면 상상력만으로도 대동맥이 터져버릴 같은 곳이었지만 우린 출장 중이었고 보는 순간 대동맥이 미세혈관이 되어버릴 것만 같았다. 천장 따위야 눕자마자 눈을 감아 버리면 그만이지만 욕실의 사정은 처참하다. 다음날 아침까지는 어쨌든 버텨야 하는 곳이었다. 좁은 룸에 비해 어처구니 없이 사이즈의 욕실을 시야에서 회피 시키기는 쉽지 않았다.

 

일단 서로 씻지도 않고 사온 요기 거리와 맥주부터 마셨다어쩌겠는가, 그런 상황에서 "선배... 저부터 씻겠습니다" 없지 않은가. 마시던 맥주가 떨어져 때쯤 예정된 비극은 신호탄을 쏴대면 찾아 왔는데 하루 종일 안에 있다가 맥주를 마셔대서 그런지 복통이 찾아 왔다. 참고 뭐고 것도 없을 만큼 즉흥적인 복통이었다.

 

: 선배 복통으로 화장실을 써야 같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 화장실 사용 때는 절대로 보지 않기로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앞에 TV 보는 겁니다.

선배 : 그러자. 봐봐야 뭐하겠냐. 난감하긴 하네...  인어는 저렇게...

 

그리고 화장실로 들어 와서 변기통에 앉았다. 투명 유리 너머로 보이는 선배의 얼굴을 보자니 용변을 보면서 다른 사람 얼굴을 보긴 태어나 처음이라 꽤나 난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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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선배의 머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태엽으로 동작하는 인형의 관절이 천천히 움직이듯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고가 정지되는 가운데 지켜보니 선배의 시선은 점점 욕실로 향하고 있었다. 급기야 완전히 욕실 쪽으로 고개가 틀어졌고 변기에 앉아 있는 나와 시선이 마주치고 말았다. "선배 하시는 겁니까? 쳐다봐요" 라고 고함을 질렀다.

 

선배는 세상 가장 오묘한 미소를 띄고는 다시 태엽 감긴 인형의 관절처럼 천천히 TV쪽으로 돌아갔다. 급히 용변을 마치고 나가서는 선배한테 따졌다.

 

: 아니 그걸 봅니까?

선배 : ... 그게...(세상 가장 오묘한 미소를 띄며) 미안... 그러니까... 더러운 광경을 나도 봤는지 지금 후회 하는데... 고개가 돌아갔는지 나도 모르겠네...  미안... 그러니까 인어...  저렇게...

 

가정집에서 기르는 고양이가 전용 화장실 모래에서 볼일 주인이 빤히 쳐다본다면 이런 기분일까? 어쨌든 매일 이런 짓을 당해야 한다면 반려묘 삶도 팍팍한 것에는 틀림이 없다이런 저런 소란 끝에 다음날 해는 밝았고 우리는 모텔을 나왔다. 나오면서 선배와 나는 역시나 투덜거렸.

 

선배 : 여자 친구랑도 와보지 못한 곳을 너랑 처음 오게 되다니...

: 선배 여자 친구 없잖아요. 그래도... 침대가 원형이 아닌 것이 어딥니까? 그리고 팀장님이랑 함께 안 온 것이 어딥니까?

 

그렇게 둘은 입안이 꺼끌거리는 도심의 이른 아침 공기를 마시며 출장지 사무실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