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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 철학 하면 떠오르는 가장 유명한 개념은 변증법, 흔히 헤겔의 변증법이라고 하는 '정반합'이다. 헤겔의 역사 철학을 한 단어로 요약하는 말이다. 본래 헤겔은 참된 인식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변증법을 제시했다.

 

변증법(辨證法)은 별스러워 보이는 한자어지만 그냥 '대화법' 혹은 '대화'란 뜻이다. 간단히 말해 대화를 통해 진리를 찾아가고 진리가 아닌 불확실한 것들을 가지치기한다는 뜻이다. 소크라테스와 공자, 부처님 같은 인물들이 제자를 가르치거나 논쟁을 할 때 구사한 이야기 모두가 변증법이다. 전혀 특별하지도 어렵지도 않은 개념이다. 변증법과 정반합은 다르다. 수많은 변증법 중에서 헤겔이 제시한 변증법이 정반합이다. 대화가 아니라도 진리를 탐색하는 전개 방식을 띤 이야기라면 모두 변증법이라고 부를 수 있다.

 

물컵을 가지고 쉬운 예를 들어보겠다.

 

1) 물컵이 있다. 물컵을 위에서 바라보니 동그랗다. 명제가 만들어진다. “이 물컵은 동그랗다.” 이것이 독일어로 테제(These)이며, 원래의 이해된 상태다. 정(正)으로 번역된다.

 

2) 그런데 완전히 옆에서 보니까 동그랗지가 않다. 사각형이다. 원래의 테제(정)에 오류가 있다. 다른 것 또한 사실이다. 이것이 안티테제(Antithese)다. 반(反)으로 번역된다.

 

3)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두 명제 모두 맞다. 그렇다면 정 명제와 반 명제를 합치면 된다. 그러므로 “물컵은 원통형이다.”라는 새로운 명제가 도출된다. 진테제(Synthese)이며 번역어는 합(合)이다. 셋을 순서대로 이어 '정반합'이라 부른다. 합은 또다시 새로운 정이 된다. 이런 식으로 정반합이 반복되며 앎이 구축된다. 인간은 물컵이 단단한 줄 알았지만 현대에 발견된 과학적 사실에 따르면 물건은 단단하지도 꽉 차 있지도 않다. 물질의 최소 단위인 원자는 알맹이가 아니라 거의 텅 비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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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컵이 단단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전자가 원자핵 주변을 너무나 빠른 속도로 돌기 때문이다. 우주도 우리 자신도 물컵도 빈 공간이나 마찬가지다. 이 사실도 물컵은 원통형 물질이라는 테제에 짝지어지는 안티테제가 된다. 정과 반이 만나면 “사실은 빈 공간이나 마찬가지인 물질을 우리는 꽉 찬 실체로 인지한다.”라는 새로운 합이 도출된다. 이렇게 앎을 확장해나가면 된다.

 

역사도 마찬가지다.

 

인류 역사는 변증법적으로 발전한다. 우리 역사에서 예를 찾자면 1980년대의 대한민국 국민은 정치적 자유를 원했다. 국민은 민주주의의 가치를 알았다. 서구의 선배들이 민주주의를 발명한 덕택이다. 이 상태가 테제다. 그런데 전두환 같은 독재자가 출현했다. 정을 방해하는 안티테제다. 마르크스 철학의 영향으로 '반동'이라고도 한다. 우여곡절을 거치며 국민은 어떻게 하면 독재자를 막고 끌어내리는지 학습한다. 민주주의가 좋다는 사실 뿐 아니라 지켜내는 법도 알게 되었다. 진테제다.

 

프랑스 혁명 과정을 보고 헤겔이 도출한 결론은 진보는 결코 매끄럽지 않다는 사실이다. 프랑스 혁명의 대의는 더없이 좋지만 로베스피에르가 나타나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단두대에 보내기도 했다. 프랑스 혁명의 과정은 무자비한 피칠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시적으로는 인류 진보에 크게 기여했다. 헤겔은 프랑스 혁명의 영향으로 독일 사회도 발전하는 모습을 눈으로 봤다.

 

역사는 한 상태에서 다음 상태로 넘어갈 때 홍역을 치른다. 정반합의 가운데에 괜히 '반'이 있지 않다. 헤겔의 역사 발전 방식은 주식 그래프와 같다. 반등도 하고 하락도 하지만 결국 멀리서 보면 뚜렷한 상승세를 보인다. 하락 곡선은 인류가 역사 발전의 과정에서 흘리는 피값이다. 헤겔이 살던 당대 독일의 현실도 주식의 하락세와 같다. 결국 반등할 것이라는 전망이 헤겔의 처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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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은 변증법에서 아우프헤벤(Aufheben)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정반합의 결과 일어나는 긍정적 현상으로 '폐기한다', '보관한다', '끌어올린다'는 뜻을 가지는 독일어다. 헤겔은 모국어에 더없이 적절한 단어가 있다며 몹시 만족했다.

 

발전이 일어나면 역사도 앎도 이전의 상태는 버려진다. 그러나 교양도 역사도 쌓아 올리는 것이므로 한 편으로는 예전의 모습도 토대로 간직한다. 이렇게 다음 단계로 올라간다. 한자어로는 '지양(止揚)'으로 번역된다. 절묘한 번역이다. '양(揚)의 상태에 다다른다'이다. 이 양(揚)자는 도끼나 깃발을 쳐드는 동작을 뜻한다. 가벼운 막대라면 '스윽'하고 들어 올릴 수 있다. 무겁고 펄럭이는 것을 올릴 때는 다르다. 어영차 힘을 주다 보면 깃발은 이제 됐다는 듯이 '펄럭'하고 똑바로 선다.

 

지양이라는 번역어는 정과 반이 투쟁하다가 문득 진보로 나아가는 모양새를 기막히게 표현한다. 다이어트와 비슷하다. 100일 동안 10kg의 체중을 감량할 때, 하루에 100g씩 차곡차곡 빠지지 않는다. 보름간 체중이 그대로이기도 하고 어느 날은 오히려 몸이 불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살이 눈에 띄게 쏙 빠져 있는 날을 만나게 된다. 계단형이다. 마찬가지로 단번에 올라가는 순간이 아우프헤벤이다.

 

헤겔은 가장 저급한 사회를 동양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역사 발전 순서를 동양 - 그리스 로마 - 중세(게르만 사회) - 서양 근대로 해석했다.

 

헤겔의 역사관에서 동양은 한 사람의 군주를 위해 모두가 희생해야 하는 저급한 단계다. 그리스-로마는 민주주의와 공화정을 이해했지만 사람들이 숭고하지 못했다. 그리스 도시국가들과 로마 제국은 지나치게 노골적인 이익집단이었다. 도시국가들은 무역과 전쟁, 약탈에서 오는 이익만 중요했고 로마는 제국을 살찌우기 위해 주변 민족을 착취했다.

 

중세 게르만 사회가 되면 사회 시스템은 후진적으로 퇴보하지만 사람들은 종교적인 가치를 배운다. 지고한 선과 숭고함, 희생, 헌신의 가치를 알게 됐다는 장점은 있다. 이 모든 과거의 장점이 만나 결국 서양 근대가 도래했다는 것이 헤겔의 역사 발전 순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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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은 중국을 특히 혐오했다. 전족 풍습 따위를 전해 들었으니 이해를 전혀 못 할 일은 아니다. 그는 “중국은 공간만 있고 시간은 없는 나라”라고 했는데, 헤겔의 철학을 이해한다면 그가 할 수 있는 최강의 모욕임을 알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헤겔의 철학은 중국을 비롯한 한자 문명권에 깊은 자국을 남겼다. 시간이 멈춘 곳이기는커녕 그의 수제자일 정도다. 한국과 일본의 철학계는 헤겔을 중요하게 취급한다. 중국과 베트남, 북한은 공산 혁명을 거쳤다. 공산주의는 헤겔의 영향을 받은 자칭 '거꾸로 선 헤겔' 마르크스에서 유래했다.

 

역사를 발전시키는 주체는 가이스트(Geist 정신)이다. 헤겔 철학에서는 '생의 집단적 의지' 정도에 해당하는 말이다. 우주의 시공간이 하나 된 자체, 말하자면 오직 하나로서 실재하는 전체가 존재한다. 이것의 의지가 압솔루터가이스트(AbsoluterGeist 절대정신)다.

 

절대정신이 특정 시대에 맞게 모습을 드러내는 양상이 자이트가이스트(ZeitGeist 시대정신)이다. 여말선초(고려 말 조선 초)의 시대정신은 민본(民本 백성의 먹고사는 문제가 나라의 근본임)이었다. 프랑스 혁명기의 시대정신은 자유시민이었다. 시대정신을 이룩하기 위해 각성한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의지가 벨트가이스트(WeltGeist 세계정신)다. 헤겔이 본 나폴레옹은 '말을 탄 세계정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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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론자인 칼 마르크스는 가이스트가 아닌 물질적 조건으로 역사가 발전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헤겔의 역사 발전 모델에서 절대정신을 빼고 그 자리에 자본, 노동, 이윤, 잉여생산물을 넣었다. 시대정신은 분배정의로 대체했다.

 

헤겔은 역사철학에서 정반합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후세의 학자들이 그의 역사 이론을 쉽게 설명하면서도 거짓말을 하지 않기 위해 '헤겔의 언어로' 정리한 결과가 역사적 변증법이다. 무엇보다 마르크스와 그의 사상적 동지 엥겔스가 헤겔의 역사철학을 정반합으로 진보하는 변증법적 역사관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돈했다. 우리가 헤겔 철학을 이만큼이라도 쉽게 이해하는 데엔 '거꾸로 선 헤겔'의 덕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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