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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또 하나의 구경 컨셉은 역시 “알뜰하게”

 

배를 채웠으니 본격적으로 구경을 시작해보지요. 컨셉으로 "소라마치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을 보자"를 내세운 것은 이미 말한 바인데, 또 하나 '알뜰하게'도 추가하려고 합니다. 관광지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지갑이나 핸드폰, 여권 등 귀중품 분실, 그리고 흥분상태 때문에 일어나는 과소비라 할 수 있을 겁니다. 배도 부르니 이제 '소라마치에서 볼 수 있는 것'만 '알뜰하게' 구경하러 갑시다.

 

담배를 피우는 분들은 공감하시겠지만 식사하고 나서 피우는 담배는 특별히 맛있지요. 필자 역시 식사를 한 후에 꼭 한 대 피우는 편인데 도쿄 소라마치는 이런 흡연자의 마음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시설 안에 적당한 흡연실이 있는 것도 그렇지만 필자가 특히 감탄한 것은 식당가나 푸드코트에서 가까운 곳에 배치해 놓은 점. 가족이나 친구끼리 밥을 먹은 다음에 흡연자는 “한 대 피고 싶은데 지금 당장 자리를 떠나면 언제 필 수 있지… 담배 피우는 동안 기다리게 하는 것도 그렇고”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식당 가까이에 흡연실이 있다면 식사가 끝나가는 타이밍에 “한 대 피고 올 테니 5분만 기다려줘”라고 하며 부담없이 피고 올 수 있는 겁니다(실제로는 10분인 경우가 많겠지만). 비흡연자들한테 주는 부담을 최소화시킬 수 있는 거지요. 또 다른 특징은 흡연실이 꼭 휴게소가 옆에 있다는 점. 구경하다가 어쩔 수 없이 담배를 피울 경우 비흡연자도 잠깐 쉴 수 있습니다. 소라마치를 설계한 사람은 진짜 똑똑한 것 같지요. 정말 놀랬습니다. 필자는 타베테라스(푸드코트) 옆에도 흡연실이 있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구경 삼아 반대쪽에 있는 흡연실까지 걸어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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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도에 흡연실 위치도 나와 있습니다. 식사하고 바로 피울 수 있어 편해요. 경험상 흡연실을 잘 배치한 시설은 시설 전체의 설계가 잘 되어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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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의 분위기와 조화를 이룬 외관. 역시 설계자의 만만찮은 실력을 실감하네요. 흡연실과 휴게소가 꼭 같이 있다는 점에서도 훌륭한 설계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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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연실 안은 이렇습니다. 사진에는 안 나왔는데 JT(일본의 담배회사)의 모니터광고나 배경음악 등 예전에 겪어본 적이 있는 분위기. 생각해보니 공항에 있는 새로운 흡연실과 되게 유사하더라고요. 아주 쾌적합니다.

 

타베테라스가 있는 3층 웨스트 야드에서 반대쪽인 이스트 야드까지 걸어왔는데 딱히 눈에 띄는 것은 없었습니다. ABCㅇ트나 유니ㅇ로, 로ㅇ트 등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가게, 아니면 개인적으로 관심이 없는 멋부린 생활잡화점 등이 있는 구역인 것 같아요.

 

단 하나 눈에 띄었던 게 '오니츠카 타이거(Onitsuka Tiger)'. 애당초 운동화를 만드는 회사였다가 우여곡절 끝에 현재 종합 운동용품 메이커인 아식스(ASICS)라는 이름으로 영업하고 있죠. 그게 끝인 줄 알았는데 틀림없이 “Onitsuka Tiger”라는 간판이 달려 있는 겁니다. 깜짝 놀랐지요. 나중에 봤더니 최근 레트로붐을 타서 다시 '오니츠카 타이거'라는 브랜드로 운동화를 판매하기 시작했답니다. 패션도 인기를 끌고 있어 신발뿐 아니라 옷까지 다 오니츠카로 꾸미는 '오니츠카 코디'도 유행이라네요. 오니츠카는 나이키의 관계도 흥미로우니 관심이 있는 분은 한번 알아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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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팬이나 스포츠슈즈 덕후(라는 게 있어요)들은 물론, 아식스를 촌스럽게 보는 젊은이들도 끌어들일 수 있는 분위기네요. 티셔츠나 츄리닝도 판매하는 모양입니다. 절반 패션브랜드화가 된 느낌이라던데 필자는 거기까지는 못 따라갈 것 같아요.

 

3층에는 딱히 볼 것이 없는 것 같으니, 한 층 더 올라가서 스카이트리를 밑부분에서 올려다보기로 했습니다. 소라마치의 상징이자 도쿄를 대표하는 관광명소이기도 하니까요. 스카이트리 입구가 4층에 있으니 4층으로 이동, 기념품 상가를 지나가서 웨스트 야드랑 이스트 야드 사이에 있는 타워 야드 쪽으로 갑니다('왜 트리 야드가 아니라 타워 야드인가?'라는 의문이 떠올랐지만 스카이트리를 타워로도 볼 수 있으므로 그만 넘어갈게요).

 

그러다 발견했어요. 세계 어디 가든 꼭 있지만 실은 일본 출신인 새끼고냥이. 역시 여기에도 있었습니다. '다니엘'이라는 남친이 있는, 그렇습니다, '키티'지요. 키티의 특기가 '현지화'인 것은 한국에서 얘가 저고리를 입고 있는 걸 본 적 있는 분이면 금방 알 겁니다. 아니나 다를까 소라마치에서도 소라마치 주민인 척하고 다니는 모양. '스카이트리 콜라보'라는 미명하에 구매욕을 강력하게 자극해 옵니다. 순간 기념품으로 사버릴 뻔했는데 '알뜰하게' 방침이 필자를 말려줬지요. 일견 귀엽게 보이지만 정말 나쁜 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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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키 만한 크기의 키티. 호소력도 짱이니 어린아이가 있는 가족은 피해가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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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쪽에 쓰여 있는 'スカイツリーコラボ(스카이트리 콜라보)'. 나라마다, 지방마다 그 곳에서만 파는 이른바 'ご当地キティ(본고장 키티)'의 한 종류이지요.

 

키티의 유혹을 뿌리친 필자는 건물 밖으로 나가서 스카이트리 밑부분 쪽으로 향하려고 했어요. 스카이트리 전망대에 가려면 입장료를 내야 되는데 굳이 갈 필요있나, 흔들리기는 했지만 평생 다시 올 기회도 없을 거고, 그나마 이야기거리라도 될 거니까 일단 가보기라도 하려고 했지요. 그런데 밖에 나가는 순간 열기가 온몸을 감쌌어요. 건물 안에서는 전혀 의식하지 못했었는데 너무나 무더운 날씨(건물 안으로 다시 들어갔지만요).

 

놀랐던 것은 스카이트리 앞에 있는 광장에서 여름마다 '비어가든'이라는 옥외 맥주집이었어요. 낮에 영업하는 것도 놀랐지만 거기서 맥주를 마시는 사람이 있더라고요. 햇볕이 내리쬐는 대낮부터 옥외에서 맥주를 마시는 괴짜는 없을 줄 알았지요. 하지만 인간은 자신만의 잣대로 세상을 재기 마련. 있습니다, 햇빛이 쏟아져내리는 옥외에서 낮부터 영업하는 비어가든과 그리고 거기서 맥주를 마시는 미ㅊ… 아니 좀 특이한 사람들이요. 더운 날씨에 마시는 차가운 맥주 맛을 잘 알고 있는 필자이지만, 뜨거운 햇볕을 쬐며 느긋하게 (차가웠던 것도 잠깐, 금방 미지근해진) 맥주를 마시려는 생각은 한 번도 못 해봤어요. 손님이 올 줄 아는 가게도 가게지만 가는 손님도 손님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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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날씨에도 많은 사람들이 오가던 스카이트리 앞 광장(스카이 아레나). 더위 타는 필자에게는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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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트리 앞 광장에 개설된 비어가든. 해가 지고 나면 그나마 괜찮을 테지만 낮에 가기에는 좀… 그런데 잘 보니까 손님이 있기는 있더라고요. 깜짝 놀랐습니다.

 

더위에 머리가 멍하고 어지러워서 그랬는지, 만약 입장료가 그리 비싸지 않으면 스카이트리 전망대까지 올라가볼까 생각을 해버렸습니다. 그러나 가격표를 보는 순간 바로 정신 차렸지요. 입장권은 상상을 훌쩍 넘는 2,060엔(약 2만원). “바보와 연기는 높은 데로 올라간다”는 일본 속담을 상기하며 내 가난함에 대해 자각, 다행히 무마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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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트리 밑부분에 입장권 매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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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은 2060엔에 올라갈 수 있는데 필자에게는 좀 부담이 되는 금액인 것 같습니다. 바로 포기.

 

스카이트리를 포기하고 향한 곳은 '티비방송국 공식 매장'입니다. 딱히 끌렸던 것은 아니지만 스카이트리 바로 뒤쪽에 있으니 가기로 했지요. 그런데 맙소사, 가는 길에 흡연장소가 보이는 겁니다. 딱히 당장 피우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스카이트리를 올려다보면서 휴게 삼아 한 대 피고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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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트 분무식 냉각기(?)가 설치되어 있어요. 쉽게 말해서 아주 미세한 물방울을 뿌리는 건데 카메라 등 정밀기계를 갖고 다니는 분은 주의해야 될 것 같습니다.

 

이 흡연소도 더위를 빼고는 아주 쾌적했지요. 특히 필자가 갔을 때에는 날씨가 아주 좋아서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한 스카이트리가 굉장히 아름다웠습니다. 때때로 멀리 보던 스카이트리인데 가까이서 보니 또 다른 인상을 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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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트리 밑부분에 있는 흡연장소. 이 곳도 주변 건물들과 비교하면 높은 자리에 있으므로 전망이 나쁘지 않아요. 자판기도 설치돼 있고 옥외에 있으니 담배 안 피는 분들도 여기서 같이 쉴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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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쪽으로 돌아보면 이렇습니다. 스카이트리 밑이라는 걸 실감할 수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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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위를 올려보면 이렇습니다. 이 모습을 본 순간만큼은 더위도 잠깐 잊은 것 같았어요.

 

 

5. 알뜰함을 어기게 만들어

 

스카이트리의 아름다움에 더위를 잊어버린 것도 잠시. 더운 것은 더운 겁니다. 빨리 다음 목적지인 '티비방송국 공식 매장'으로 갑시다. 흡연장소를 나가서 오른쪽으로 가면 되는데, 가는 길에 스미다수족관을 발견. 가족이나 애인들끼리 오기에 딱 좋지요. 물론 '알뜰하게' 방침을 취하는 필자는 입장료를 내야 되는 시설은 '사진만 찍고 그냥 지나가기' 원칙으로 대응하고 원래 목적지로 향했지요. 그런데 '티비방송국 공식 매장'이 무엇인지… 일단 '트리 빌리지'란 별명이 붙어 있는데 알맹이를 가늠하기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되고… 일단 안에 들어가면 정체를 알 것 같고, 무엇보다 너무 덥습니다. 일단 냉방이 켜져 있는 곳으로 들어가는 것이 먼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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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비방송국 공식 매장에 가다가 마주친 수족관. 가족이나 애인끼리 나들이 오기에는 딱 알맞을 것 같아요. 알뜰하게 방침에는 어긋나니 필자는 일단 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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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비방송국 공식 매장에 도착. '트리 빌리지'라고 하는데 정체를 알 수가 없네요.

 

티비방송국 공식 매장에 들어가면 냉방과 떼를 이룬 도라에몽이 반겨줍니다. 얼핏 보기에는 티비 애니메이션 굿즈를 파는 매장인 것 같은데 좀 더 안에 들어가 보니 민영 방송국들의 간판도 있더라고요. 추측컨대 각 방송국이 자사 드라마나 애니, 연예・오락 프로 등에 관한 굿즈를 판매하는 매장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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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에 들어갔더니 시원한 냉방과 도라에몽이 반겨줬습니다.

 

매장은 꽤 넓었고 파는 상품도 매우 다양했지요. 필자는 아예 티비를 안 봐서, 솔직히 티비 프로에 관한 굿즈를 봐도 딱히 땡기지 않고, 무슨 굿즈를 살까 고민할 일도 없을 줄 알았었어요. 그런데 매장에 필자도 아는 프로그램에 관한 굿즈가 좀 있는 겁니다. 재미있거나 살까 말까 고민해버린 것도 몇 개 있었습니다.

 

다 들지는 못하지만 뭣보다 마음이 흔들렸던 게 “笑点(쇼텐)”과 콜라보한 '카미나리오코시(雷おこし)'입니다. 카미나리오코시는 한과와 비슷한 일본 과자이자 아사쿠사(浅草) 명물이지요. 쇼텐은 1966년부터 계속 방영하는 일본 대표 장수 프로 중 하나로, 30분이라는 방영시간 중 전반에는 라쿠고(落語. 1인 만담)나 만자이(漫才. 2인 만담) 등 예능을 하고 후반은 오오기리(大喜利)로 구성됩니다. 전반 코너에는 회마다 다른 출연자가 나오고, 후반 코너에는 매주 똑같은 멤버들이 나와요. 오오기리는 진행자가 내주는 문제에 대해 재미있는 대답을 하는 것으로, 진행자가 재미있다고 생각한 대답을 한 출연자에게는 방석이 주어지고, 재미없다 생각하면 방석을 빼앗습니다. 일부러 방석을 빼앗기는 경우도 있고 되게 재미있어요. 물론 대본이 있는 건데 출연자들이 일류의 라쿠고카(落語家 ; 라쿠고를 하는 연예인)인 만큼 자연스레 잘 웃겨 주지요. 참고로 도쿄 관광으로 아사쿠사에 갈 기회가 있으면 아사쿠사 연예홀(浅草演芸ホール)에 가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일본어를 알아듣지 못해도 저렴한 입장료로 라쿠고나 만자이를 직접 보고 분위기만 맛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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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쿠사 명물 '카미나리오코시'와 일본 대표 장수 프로 “쇼텐”의 콜라보 상품. 살까 말까 한참 고민하다 겨우 참았습니다.

 

후지테레비 구내식당 메뉴를 즉석식품으로 만든 것도 있었어요. 다른 데에서는 구하기 어려울 것 같아 마음이 흔들렸네요. 또 얼마 전에 한국출장 갔다온 고로상(五郎さん)의 “고독한 미식가"의 만년달력도 끌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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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텔레비 구내식당에서 먹을 수 있는 메뉴를 즉석식품으로. 방송국은 입맛이 까다로운 연예인들도 드나드는 곳이니 맛도 괜찮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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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미식가 만년달력. 고로상이 서울에서 먹었던 돼지갈비 생각이 나서 침이 나네요.

 

필자의 눈길을 강력하게 끈 상품으로 드라마 “아이보우(相棒)”에서 주인공 카타야마 우쿄(片山右京) 형사가 늘 사용하던 티컵이 있었습니다. 우쿄가 쓰는 티컵은 시즌마다 달라지는 것 같은데 매장에서 팔았던 것은 시즌13에서 쓰던 거랑 같은 컵이랍니다. 가격이 무려 8,435엔(약 85,000원). 고작 티비드라마를 위한 소품인데 왜? 싶었는데 나중에 알아봤더니 이 티컵은 일본에서 맨처음 본차이나(bone china)를 생산한 나루미제도사(鳴海製陶社)가 만든 나름 본격적인 티컵이라네요. 고급 티컵이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만 제대로 된 티컵이 맞기는 맞는 것 같지요. 어쩌다 사건을 수사하게 돼도 이 티컵이 있으면 아늑히 홍차나 마시면서 깔끔하게 해결할 수 있을... 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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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아이보우”의 주인공・카타야마 우쿄 형사가 쓰던 티컵. 가격이 비싸서 그런지 박스 안에 진열돼 있습니다.

 

그 밖에도 실히 다양한 프로에 관한 다양한 상품이 있어서 일본 애니나 일드에 관심이 있는 분은 하루 종일 여기 있어도 (이건 좀 극단적인가?) 시간이 모자랄 겁니다. 티비 프로에 관심이 없는 필자마저 여러 굿즈들의 유혹을 겨우 뿌리치고 나왔던 것이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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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든 등장하는 새끼냥이 여기에도. 한 해의 모든 날짜에 상응한 날짜가 나온 열쇠고리인 것 같아요. 티비 방송국이랑 무슨 상관인데 싶기도 한데 아무 상관없어도 나오는 게 얘 특기이기도 하지요.

 

티비방송국 공식 매장을 뒤로 한 필자는 한 층 더 올라가서 5층에 있는 "산업 관광 프라자~스미다 마치도코로~"에 가기로 했습니다. 이름을 보니 소라마치가 있는 스미다구(墨田区)의 특산품 등을 파는 게 아닐까 싶어서요. 5층 이스트 야드에 올라가서 스미다 마치도코로에 도착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스미다구에서 제조된 특산품을 판매하는 매장이라는 인상. 모처럼 스카이트리까지 온 김에 동네 공예품도 구경하고 가시라고 호소하는 것 같지요. 좋네요. 글로벌 시대를 맞이한 이래 국산품, 게다가 소라마치가 있는 바로 그 동네의 특산품을 보고 가라는 마음이 반갑지요. 그런데 마음을 먹고 스미다 올스타즈를 구경하려고 했던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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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다 마치도코로. 개방적인 분위기의 매장에서 스미다구 특산품들이 진열・판매되고 있지요. 어떤 것이 있을까 기대감이 높아지네요.

 

옛날에는 자주 봤었는데 어느새 안 보이기 시작한 낡은 냉장고가 눈에 들어온 겁니다. 다가가서 보니까 옛날 거 그대로. 놀라서 가까이에 있던 종업원 분한테 물어봤더니 그 냉장고는 옛날 것을 복원한 것이 아니고 바로 옛날 거 맞답니다. 그립네요. 들여다보니까 병우유, 후르츠우유, 커피우유의 황금 트리오가 필자를 기다리고 있던 모양. 외면할 수가 없지요. 다행히 계산대 뒷쪽에 마치도코로에서 파는 과자나 음료수를 먹을 수 있는 자리가 넉넉히 마련돼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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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황금 트리오 중 어느 것을 고를지 잠깐 고민하긴 했으나 우유랑 커피우유는 마트나 슈퍼에서도 자주 파는 편이어서 비교적 보기 드문(반드시 그렇지는 않나?) 후르츠우유를 선택. 냉장고에서 꺼내려던 그 때, 뭔가 경고문이 달려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들여다보니 “올바른 우유 마시는 법”이 있는 듯. “仁王立ちで 腰に手を当て 一気に飲む” 이렇게 적혀 있네요. “인왕(仁王 ; 불법(佛法)을 수호하는 금강신)처럼 서서, 한 손을 허리에 얹고, 단숨에 마시”랍니다. 맞습니다. 원래 후르츠우유는 이렇게 마시는 것이 맞아요. 다만 이왕 올바르게 '인왕샷'을 할 거라면 마시기 전에 목욕탕에서 씻어야 합니다. 일본에서는 집에 들어갈 때에 신발을 벗는 것과 비슷할 정도로 꼭 지켜야 하는 규칙인데 말이지요. 그러나 목욕탕이 없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지요, 아까 본 경고문은 일본을 찾아온 관광객을 대상으로 기본적인 일본문화를 가르쳐 주는 차원에서 달았던 것으로 이해하고, 필자는 자리에 앉아서 한 손은 테이블 위에 놓고 천천히 마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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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를 올바르게 마시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경고문. 마신 후 빈 병은 꼭 반납해 달라는 부탁문도 있습니다. 궁금해서 물어봤더니 지금 병우유가 많이 유통이 안 돼서 최대한 병을 많이 회수하려는 의도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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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 후 올바르게 우유를 마시는 일본인의 참고 이미지(마시고 있는 것은 커피우유인 듯). 본문에 있는 필자의 지적이 사실임을 방증하는 것 같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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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하지 못한 상태라 올바른 자세로 마시기가 꺼려져 아예 온 규칙을 어겨 버렸어요.

 

규칙을 어겼다는 아쉬움이 남긴 했지만 아주 오랜만에 맛있는 후르츠우유를 마셨습니다. 빈 병을 반납대에 놓고서 이제 스미다 마치도코로를 구경하는 시간. 스미다구의 특산품을 구경해 봅시다.

 

 

(이하 (하)편으로 이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