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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한 가지, 재미있고 신비로운 이야기를 해보겠다.

 

시각장애인의 독서 방법엔 몇 가지가 있다.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 것으로는 ‘점자 도서’와 ‘오디오북’이 있고, 가장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방식으로 ‘텍스트 데이지 도서’ 라는 게 있다. 각각의 방식마다 장단점이 있어 꼭 무엇이 왕도라 할 수는 없다.

 

그 중, 텍스트 데이지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하면, 시각장애인들은 보통 TTS 기반의 화면낭독기라는 프로그램으로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이용하고, 역시 TTS 기반의 독서 전용 프로그램으로 독서한다. 원래는 시각장애인용으로 많은 복지단체에서 텍스트 도서라는 것을 제작해 배포해 왔었드랬다.

 

텍스트 도서라는 것은 실제 책을 한 자, 한 자 눈으로 보고 컴퓨터로 받아 적은 텍스트 파일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텍스트 도서는 문자열을 검색하여 원하는 부분을 찾아가거나 할 수 있고, 용량이 가볍다는 특장점을 가지고 있어서 취미로 독서를 하는 이용자 뿐만 아니라 공부를 하는 학생들에게도 다른 포맷으로는 대신할 수 없는 강점이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봉사자들이 시각장애인의 독서를 위해 오디오북을 녹음하는 한편, 컴퓨터 옆에 책을 펴놓고 받아 적고 있다. 한마디로 보통 일이 아닌 거다.

 

사실 이 텍스트 도서라는 것은 엄연한 불법이다. 이러쿵저러쿵, 이러저러 해서 여러가지 이야기 끝에, ‘텍스트 데이지 도서’라는 합법적인 모양새를 갖춘 포맷으로 모양을 갖추게 되었다. 현재는 많은 출판사들과 서점들이 노력하고 있다.

 

(이러쿵저러쿵 이러저러한 이야기가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다음의 링크를 참고. -> 출판사 생사를 위한 고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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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지금부터 놀랍고 신비로운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해보자. (앞서 말한 '텍스트 데이지 도서'는 간단히 ‘전자도서’라고 하겠다)

 

시각장애인의 독서를 위해 오디오북과 전자도서를 제작하여 배포하는 복지단체 등은 내가 알고 있는 것만 약 50여 곳 정도가 된다. 그래서 시각장애인용으로 제작된 도서들을 모두 이용하기 위해선 약 50여 번의 회원가입이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내가 세상에서 제일 구찮아하는 일이 바로 사이트 회원가입이기 때문에 이 사실을 알고 엄청난 불합리함을 느꼈드랬다.

 

예를 들어 아주 희귀한 책을 찾아보기 위해 50여 번의 회원가입과 50여 번의 검색을 해야 하는 일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이용자들이 제발 어디에 무슨 책이 있는지 만이라도 한 번에 검색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난리를 쳤고, 결국 정부 사업으로 시각장애인 도서관을 통합시켜 하나의 어플에서 검색하고 이용할 수 있는 어플리케이션이 개발되었다.

 

그러나 이것도 완벽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는데... 

 

우선 그 ‘국가대체자료공유시스템 드림’이라는 어플에 등록된 단체의 도서들만을 검색할 수 있었고, 어찌나 시각장애인들의 요구를 정확히 들어주었는지, 검색만이라도 통합시켜 달라고 했더니 정말 검색만 통합시켜 주어서 여전히 저 어플에 등록된 모든 도서를 다 이용하기 위해서는 49번의 회원가입과 로그인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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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실망하지 마라. 신비로운 이야기는 지금부터니까 말이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저 어플에 등록되지 않은 단체까지 합쳐 내가 아는 곳들만 대충 따져 보았을 때, 약 50여 곳이 시각장애인 전자도서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저 50여 곳이 모두 각자 전자도서를 제작하고 있다.

 

무슨 이야기이냐 하면...

 

'텍스트 데이지 도서' 라는 것은 이름만 보아도 알 수 있듯 텍스트를 기반으로 만든 컴퓨터 파일이다. 같은 책이라고 해도 녹음 상태나 여러가지 요소로 듣는 사람들의 취향에 따라 다를 수 있는 오디오북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라는 것이다. 이용자들이 TTS 독서 프로그램으로 들으면서 '오호~ A도서관 봉사자 김군의 타이핑보다 C도서관 봉사자 최양의 타이핑이 좀 더 내 취향에 맞는 것 같군.' 할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도서관이라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하는 고전이나 베스트 셀러나 인기도서의 경우가 많이 겹치게 된다. 예를 들어 15권 완결의 소설을 A라는 단체에서 봉사자 김모 씨가, B라는 도서관에서 봉사자 최모 씨가, C라는 도서관에서 봉사자 장모 씨가... 열심히 한 자, 한 자 보고 컴퓨터로 타이핑해서 제작하고 있다고 하자.

 

그런데 각 도서관들 간 ‘어른들의 사정’ 때문인지, 15권 완결의 소설 시리즈를 다섯 곳의 도서관에서 5명의 좋은 마음으로 봉사하려고 자원한 대학생 봉사자들에게 한 자, 한 자 타이핑하게 해서 (봉사자 이름과 제작기관이 적혀 있는 부분만 빼고) 완전히 똑같은 텍스트 파일 5개를 만들고 있다. 같은 시간과 인력으로 A도서관에서 1권, B도서관에서 2권, C도서관에서 3권 하는 식으로 제작한다면 5배의 결과물을 낼 수 있는 것인데도 말이다.

 

물론, 예를 들자고 이렇게 말하는 거지만, 이는 시각장애인들이 빠르게 최신도서를 읽을 수 있도록 하거나, 더 많은 도서에 접근 할 수 있도록 하느냐의 문제 이전에, 좋은 마음으로 시간과 노력을 기부한 봉사자들에게도 할 짓이 아니게 돼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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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도서관에 가서 드래곤 브라자 1권을 타이핑 한 대학생 봉사자가,

 

‘아~ 팔아파 ㅠㅠ 하지만 눈이 불편한 분들의 독서를 위해 도움이 되는 일을 했으니 보람차~’

 

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정작 드래곤 브라자 1권은 이미 텍스트로 20개가 만들어졌고 지금 타이핑을 한 이유는 시각장애인들이 드래곤 브라자 1권을 못 봐서가 아니라, F재단에서 새로이 F도서관을 만들어 정부에 좋은 일 한다고 보조금을 좀 받으려고 하는데, 이게 처음 도서관을 만들려면 어느 정도 구색은 갖춰야겠고, 다른 도서관에서 만든 것을 그냥 복사해서 쓰면 안 되기 때문에 그랬던 거라면 어떨까.

 

그 중에는 비양심적으로(?!) 다른 곳에 올라온 파일을 그대로 복사해다가 봉사자 이름만 바꾸어서 올린 곳도 있지 않을까 생각은 한다. 어차피 텍스트 파일이니 가능하지 않을까 싶고. 아니면 그런 경우를 대비해 각 텍스트 데이지마다 어떤 고유의 식별 방식을 만들었을 수도 있겠고.

 

아무튼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성의 없는 선의’

 

지금까지 얘기한 일들을 간단히 줄이면, ‘장애인을 위한 좋은 일’이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좋은 나라라서 장애인들을 돕는 좋은 일 한다고 하면 돈을 잘 준다. 그리고 장애인 단체의 대표를 뽑는 일이나 운영 등도 모두 장애인들이 알아서 잘 하라고 그 권리를 보장해 주면서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정치권에서는 선거 때마다 이번엔 어디, 이번엔 어디 하는 식으로 장애인 단체 대표에게 비례대표를 주고, 장애인도 생각하는 훌륭한 착한 정당이 된다. 그렇게 ‘성의 없는 선의’가 남발되는 동안 장애인 단체 대표 자리는 국회의원 한 번 해 볼 수 있는 예비티켓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장애인 단체 선거 때마다 고소・고발은 기본, 폭력 사태, 모함, 협박 등 별의별 난리난리로 아사리판이 되는데 이렇게 신비롭고 믿을 수 없는 이야기는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고, 아무도 몰라도 그것이 그냥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어버린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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