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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 특급작전! 똥꼬프리를 납품하라!

1999.7. 26. 월요일
딴지 논설위원 겸 전 인도네시아 특파원 Don S. Bay


새로운 제품을 개발한다는 것은, 필요에 의해 머리를 짜낸 끝에 각고의 노력을 통해 얻어지기도 하지만 때로는 아주 우연한 기회에 발생하는 사건 이기도 하다. 똥꼬프리의 경우가 그랬다. 이미 엄연히 실존하던 제품이었으니 개발이라기보다는 제품 포착이라는 것이 더 가까운 표현이 되겠지만.


 상품 개발


똥꼬푸리를 생산하는 공장은 자카르타의 동부지경을 벗어나 고속도로를 타고 15분 정도 달리면 나타나는 찌비뚱(Cibitung) 이라는 위성도시 입구의 MM2100 이라는 좀 이상한 이름의 공단에 위치하고 있다. 딴지일보를 통해 알게 된 어떤 사람의 사업상 필요로 방문하게 된 이 공장은 원래 운동안전용구 전문이라고 했으므로 나는 운동용 헬멧이나 보호대 같은 것을 생산하는 소규모 공장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일본회사가 세운 현지 투자법인으로 아대류의 안전용구에 있어서는70% 정도의 일본시장 점유율을 자랑하는 작지 않은 회사였다.


아대를 생산하는 회사의 카타로그에 양말사진이 끼어 있는 것까지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지만 (양말도 발목아대와 마찬가지로 꽉 죄어주는 성질이 있으니까) 거기에 똥꼬푸리가 수록된 페이지에 이르러서는 황당함에 웃음이 먼저 터져 나오려 했다. 마침 그 전날밤 업데이트된 딴지일보의 기사들 중 안동헌 논설우원의 기사 [외침] 목침이여 영원하라 말미에 나온 똥꼬푸리 빤쑤 사진이 카타로그의 제품사진과 같은 판으로 찍어낸 듯 전혀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와 상담을 하던 젊은 인도네시아 여자 야니(Yani)는 자기가 쌤플을 가지고 나왔을 때 내가 왜 그렇게 배꼽을 잡고 웃었는지 죽어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이건 정말 한국에 좀 팔릴 거 같은데요."


이렇게 얘기한 것은 순전히 샘풀이라도 몇 개 얻어 보겠다는 생각에서였지만 너무 진지하게 반응하는 야니의 태도에 좀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해서 몇몇 아대 쌤플들과 함게 똥꼬푸리 쌤플도 한 장 얻을 수 있었다. 물론 야니는 뒤에 한 마디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쌤플들이 더 필요하면 언제라도 말씀하세요. 미리 준비해 둘께요."


처음 보는 순간부터 이번 귀국 때 총수에게 진상할 선물로 이보다 더 좋은 게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던 터였다. 야니에겐 좀 미안했지만 정말 될 것 같은 쌤플들과 함께 똥꼬푸리도 몇 장 더 받을 수 있었고 지난번 이드냐 기자가 착용체험기를 쓴 그 똥고푸리는 당근 그 때 받은 쌤플들 중 하나다.


뒤쪽으로 연결된 두 줄의 일레스틱 밴드를 뺀다면 일본의 훈토시를 연상케 하는 똥꼬푸리의 정식 제품명은 Supporter 로 되어 있다. 다른 제품들은 Elbow band, Knee pad 하는 식으로 그 용도가 이름에 분명하게 나타나 있지만 뭔가 적당히 뭉뚱그린 느낌을 강하게 풍기는 Supporter라는 제품명에 부득이 야니에게 쑥스러운 질문을 하나 던질 수 밖에 없었다. 사실 여성용 Supporter가 없다는 점과 훈토시같은 앞부분의 각진 공간에서 어느 정도 용도를 파악하기는 했지만 일반 팬티와는 달리 허리 부분의 일레스틱 밴드 폭이 5cm에서 10cm 사이로 마치 코르셋처럼 허리와 아랫배를 단단하게 받쳐주게 되어 있어 혹시 허리아대나 복부용(?) 아대가 아닌가하는 생각에서 였다.



"근데... 이 써포터는 뭘 써포트 해주는 건감요...?"


한국 같으면 성희롱으로 곧장 달려 들어갈 질문 이었는지도 모르지만 야니의 금방 새침해지는 표정과 사장에게 정확히 물어보고 연락주겠다는 말에서 충분한 대답을 들은 셈이 되었다.


이번에는 착용감 시험.


원래 팬티를 입고 그 위에 입는 것이라는 야니의 설명을 들었지만 카타로그 사진도 맨살에 바로 입은 모습이었고 (마네킹이었음) 회사생활 초기 제품검사 방식을 배울 당시 꼭 한두번은 제품을 직접 입어 보아야 한다고 교육받았던 바도 있고 이런 거 한번 직접 안걸쳐보면 자랑찬 딴지일보 기자 자격도 없다는 생각에...침실 문 걸어 잠가놓고 착용시험을 실시했다.


전문가적인 착용감 시험결과를 보고할 다른 방법도 많지만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이 이상의 해방감은 없다... 라는 똥꼬푸리의 광고카피 그대로였다. 센세이셔널 그 자체. 애써 침대 위에 올라가 거울에 비쳐본 후면도는 신선감, 청량감, 상쾌함, 뭐 이런 말로 표현될만한, 보기에도 시원한 느낌이었다. 물론 평소 어디에서 날아들지 모르는 똥침을 두려워 하는 분들에게는 올여름 피서에 버금갈 납량특집도 되겠다.


총수용 진상품으로는 손색이 없을 뿐 아니라 얼마전 고급옷 로비사건이 터졌을 때 고관부인들에게 전달해 달라며 어떤 사람이 보내온 몸빼바지에 담긴 심오한 의미에 못지 않은, 고관부인 남편용으로 몸빼바지와 한 세트로 보내주면 될만한 제품이다. 총수님이 똥꼬푸리를 창립 일주년 사은품으로 결정했을 때 이 점을 이미 염두에 두었으리라 생각하자 그 혜안에 마음이 절로 숙연해 오지 않을 수 없었다.


 생산 과정


전에 모시던 팀장은 주문을 받는 것은 한 순간의 즐거움이고 그 직후부터 납품하기 까지는 고난과 시련의 연속일 뿐이다 라는 말을 즐겨 하곤 했다. 기계로 단번에 찍어내는 제품이라면 좀 다른 얘기가 되지만 원단 뿐 아니라 라벨이며 단추며 실이며 포장재까지 수십가지 자재들을 각각 구매해서 사람의 숙련된 기술을 요하는 생산공정을 거쳐 일정수준의 품질에 도달해야 하는 의류의 경우에는 정말 진리처럼 느껴지던 말이었다. 이런 면에서 의류는 어쩌면 자동차와 비슷하다고 하면 좀 무릴까? 똥꼬푸리는 그렇게까지 힘들일 필요는 없는 간단한 제품이지만 역시 좀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지난 5월 귀국환영회 때 진상한 똥꼬푸리를 총수가 딴지일보 창립 1주년 사은품으로 결정했다는 딴지 수뇌부 구라기자의 전화를 받은 것은 그로부터 몇 주 후. 납품조건으로 수뇌부와 계약한 내역은...묻지 마시라. 너무 자세히 알려들면 다친다.


똥고푸리를 의류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옷을 잘 모르는 사람이나 회사로부터 주문을 받을 경우에는 당장 고민이 생긴다. 의류를 모르는 사람은 부득이 대충 발주를 할 수 밖에 없을 것이고 그래서 주문을 받는 쪽에서는 주문받은 대로 대충 만드느냐 아니면 그럴수록 더더욱 신경을 써서 쌈빡하게 제대로 만들어 주느냐 하는 고민이다.



"요번에 똥꼬푸리, 그걸로 하기로 했으니까 좀 만들어 주세요."


의류사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라면 다들 잘 아는 사실이지만 조그만 단추 하나, 라벨 하나 붙이는 위치도 밀리미터 단위까지 자세히 표시가 되고 포장방법이나 재질은 물론 인치당 바느질 땀수까지 지정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부위별 치수, 싸이즈별 수량, 납기같이 아주 기본적인 내용까지 다 빼버리고 달랑 위와 같은 말 한마디가 발주내역의 전부였다. 그렇다. 어쩔수 없이 대충 받은 요청을 성의껏 이행해 주는 것, 그렇게 대충 얘기할 수밖에 없는 답답한 남의 맘을 내 맘처럼 이해해 주는 것, 그런 것이 딴지일보가 오늘도 졸라 향해 가는 명랑사회의 한 단편일지도 모른다.


사은품의 관건은 시간을 맞추는 것이다. 사은품은 납기가 촉박한 것이 보통이고 그래서 특히 해외에서 생산하는 경우에는 필요한 자재나 제품이 오가는 것을 부득이 항공편을 사용할 수 밖에 없다.


긴 준비시간 때문에 문제시 되었던 포장상자의 로고인쇄는 결국 한국에서 상자를 준비해서 나중에 인도네시아에서 포장되지 않은 상태로 제품을 수입한 다음 한국에서 재포장하기로 했다. 하지만 정작 문제가 된 건 역시 한국에서 준비하지만 생산공정 중간과정에 들어가기 때문에 미리 인도네시아에 보내주어야 하는 딴지일보 로고 라벨이었다.


회사생활을 처음 시작 하면서부터 라벨 인쇄사고가 자주 났었다. 그 이유는 내가 일본수출 담당이었고 그래서 거의 모든 인쇄물을 일어로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깨알같은 글자가 많이 들어가는 케어라벨(Care label)의 경우에는 항상 오타가 발견되곤 했다. 케어라벨에 비해 가격이 수십배 비싼 포장박스의 오타가 교정과정을 거치지 않고 곧장 인쇄가 될 경우에 입는 피해액은 가끔은 천문학적인 숫자가 되기도 했는데 그렇지만 그건 벌써 십년도 넘은 오래 전의 이야기다.


그런 연조깊은 사고를 딴지일보 로고라벨을 만들며 두번씩이나 겪어야만 했다. 급한 납기 때문에 하루나 이틀을 까먹는 교정과정을 거칠 수 없었기 때문인데 그래서 라벨업체에 준 작업지시 내역은 간단했다.



1. 건네 준 딴지일보 아날로그판의 표지 내용과 글자체를 그대로 사용할 것.



2. 바탕은 딴지일보가 지정한 파랑, 글자는 흰색으로 할 것.


물론 라벨의 크기나 가장자리 마감방법 같은 것은 특기사항을 붙였다.


하지만 첫 사고는 황당하기 그지 없었다. 글자체가 전혀 다르고 글자간격이 중구난방인 것은 차치하더라도 신문 이름이나 다름없는 DDANJI 가 DDANGI 라고 되어 있어서야 곤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제작한 두 번째 것은 앞서의 오류들을 모두 수정했지만 글자를 지정한 흰색 위에 요청하지도 않은 검정색 실을 사용해서 명암을 넣어 주었다. 납품업체 측에서는 더 잘 해주겠다는 생각으로 입체감이 나게 한 것이었는데, 짙은 파랑 바탕의 검정색 글씨가 눈에 잘 띄지도 않았고 그나마 입체감마저 제대로 살지 못해 1-2미터만 떨어져서 봐도 마치 "딴기일보" 처럼 읽히게 된 것이다. 그런 어처구니 없는 인쇄사고로 또다시 전량을 재작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 배의 비용을 들이면서 나름대로 성의를 다해 결국 제대로 된 라벨을 납품해 준 납품업체를 비난할 마음은 없다. 하지만 만의 하나 실수로 잘못된 라벨이 옷에 달리게 되면 그 수선작업에 훨씬 큰 비용이 들게 되고 때로는 제품자체가 불량이 되어 버린다. 항공잠바 손목에 들어가는 니트원단을 물이 빠지는 원단으로 공급한 업체가 그 실수로 인해 항공잠바 가격을 다 물어주어야 했던 사례, 이가 쉽게 빠지는 알루미늄 지퍼를 공급했다가 그 몇배인 옷 가격으로 배상했던 지퍼회사의 사례들이 그래서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은 영어고 일어를 떠나서 10년 전에 발생하던 똑같은 사고들이 어째서 오늘도 변함없이 발생하는 것일까 하는 점이다. 고도성장을 거듭했다는 우리나라는 지난 10년간 도대체 구체적으로 무슨 발전을 어떻게 해온 것일까. 그 라벨들을 바라보며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납  품


7월 14일 자카르타에서 비행기에 실린 똥꼬푸리가 우리 사무실까지 도착한 건 16일 아침이었다. 이제 남은 건 포장뿐. 포장박스는 이미 며칠 전에 사무실에 도착해 있었다.


제품상태나 포장상태가 양호한 것이 저으기 안심이 되었다. 특히 가장 우려했던 라벨부착 방향이 제대로 되어 있는 것이 다행이었다. 외국어, 그것도 로마문자를 사용하는 언어를 제외한 제 3국어의 라벨은 거꾸로 달리는 비율이 간혹 2-3%를 넘어서곤 했는데 이번 똥꼬푸리에서는 딴지일보 라벨이 거꾸로 달린 것이 딱 한 장 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 제품상태가 가장 딴지일보 다운 것이라는 생각도 들어 사무실에 보관하기로 하긴 했지만)


무엇보다 만족스러웠던 것은 그 모든 수량이 포장박스에 바로 집어 넣을 수 있도록 알맞게 접어진 상태로 12개씩 포장되어 왔다는 점이다. 그렇게 요청한 것도 아니었고 그동안 재포장을 요하는 제품을 알아서 개서 포장하라는 식으로 보내오는 한국업체들을 많이 보아온 탓에 그렇게 기대하지도 않았었다.


하지만 그렇게 깔끔하게 되어 있는 포장을 보는 순간, 역시 일본회사는...이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단정하게 개어진 제품들을 보면서 다음 공정, 바이어를 존중하는 마음을 읽는 듯 했다. 만약 그렇게 되어 있지 않았다면 이틀쯤은 족히 걸렸을 그 재포장작업이 불과 네 시간 만에 끝날 수 있었다.


함께 포장작업을 돕던 우리 직원들은 딴지일보 사람들이나 독자들은 정말 이런 걸 버젓이 입고 다닐 만큼 엽기적인 사람들이냐는 질문을 해오곤 했는데 뭐, 옷 안에 입는 거니까 못입고 다닐 것도 없다. 하지만 역시 똥꼬푸리 사은품의 가장 큰 의의는 포장상자를 열고 제품을 꺼냈을 때의 그 황당함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 다음주 월요일 납품을 마지막으로 길었던 똥꼬푸리 납품작전을 끝을 맺게 되었다.


 납품 후기


제품하나 납품하고 후기까지 이렇게 써보는 건 처음이지만 나름대로 즐거운 경험이 되기도 했다. 또한 딴지일보에 사은품을 공급했다는 것은 총수가 늘 쓰는 표현처럼 가문의 영광으로 느낀다.


딴지일보에 마지막으로 글을 올린 것이 한참이나 오래 전의 일인 것만 같이 느껴진다. 19호에 글을 올린 것이 지난 5월 중순의 일이었으니 실제로 2개월이 좀 넘은 셈이다.


스스로 독투출신이라 자부하며 자카르타 시절 거의 매일 올리던, 그래서 초발심을 잃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아마도 한동안은 그런 주기로 올리게 되리라고 생각했던 독자투고란의 글도 자카르타를 떠나면서부터 거의 올리지 못했다.


혼자 하릴없이 지새울 바에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이 나았던 타국에서의 밤시간이 없어진 탓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일을 통해 오랜만에 글을 올리게 되지만 같은 상황에서 생업에 종사하는 와중에 매호 빠뜨리지 않고 기사를 송고하는 국내파 딴지일보 기자들에게는 경외감마저 느끼게 된다.


똥꼬푸리에 대해 한가지 공지할 점은 똥꼬푸리를 받으시는 분들은 입기 전에 반드시 한번 세탁하고 입으시라는 거다. 간혹 와이셔츠나 내의를 포장에서 뜯어 바로 입는 분들이 있지만 사실 깔끔함과 청결함을 따지는 분들은 포장된 제품에 생산공장의 먼지가 그대로 앉아 있고 그 제품의 재단에서부터 봉제, 포장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손때가 묻어 있다는 점을 간과하는 셈이다.


우주복 같은 작업복을 입고 일하는 반도체 공장이 아닌 한, 공장이라면 어디에든 만만찮은 양의 먼지들이 떠돈다. 특히 두꺼운 실로 짠 원단을 사용한 제품은 실이 두꺼운 만큼 그 사이의 골도 커서 먼지가 더 많이 쌓이니 참고하시기 바란다.



- 전 인도네시아 특파원 겸 딴지 논설위원
Don S. Bay ( donsbay@thrunet.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