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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공화국 때 어음 사기 사건으로 유명한 장영자 씨는 재판정에서 “경제는 유통이다”라는 말을 했다. 이익을 지속적으로 얻기 위해서는 그 이익이 자연스럽게 흘러들어오도록 만드는 유통 구조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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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영자 >


어떻게 하면 될까?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이 열심히 뛰도록 만드는 구조를 만들면 된다.

누군가 자신을 위해 열심히 일할 때, 그 사람에게 이익이 돌아가도록 만들어주면 자신을 위해 열심히 일을 해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많아져 거대한 이익공동체가 형성되면 설사 어떤 사람이 자신을 해치려고 해도 알아서 나서서 막아준다. 악은 이렇게 탄생한다.

이게 왜 악이냐고? 이런 구조가 한 번 형성되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손해를 끼치는 걸 당연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약한 정의, 강한 악

우리나라에서 제일 부자라는 이재용이 상속세 덜 내보겠다고 서민들의 노후를 지켜줄 거의 유일한 수단인 국민연금에 손해를 입히는 범죄를 서슴없이 저지르고, 언론들이 앞다퉈 그것은 잘못한 일이 아니라며 목소리 높이는 게 악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을 악이라 부를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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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 링크 >


99마리 양을 가진 사람이 100마리 양을 갖고 싶다고 한 마리를 가진 사람의 양을 불법적으로 털어가는 행위가 악이 아니라면, 세상에 악이라는 게 존재할 수 있을까?

자신의 욕망을 위해 이익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은 ‘악의 유통구조’를 만드는 데 관심이 많지만 옳은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런 유통 구조에 별 관심이 없다. 그래선 안 된다.

나쁜 일은 작더라도 확실한 이익을 준다. 옳은 일이 눈앞에 보이는 형태로 이익을 주는 일은 거의 없다. 오히려 손해를 강요한다.

정의는 연약하다고 말한다. 정의가 정의를 지키려는 사람을 지켜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악은 강할 수밖에 없다. 악의 편에 선 사람을 지켜주기 때문이다. 옳은 일을 하려던 사람이 나쁜 일을 조금이라도 하면 같은 편에 서 있던 사람부터 난리를 치며 용서할 수 없다 죽여야 한다고 말한다.

반면에, 욕망에 충실한 인간들이 저지른 범죄는 같은 부류의 인간들끼리 어떻게든 지켜주려고 노력한다. 그게 자신에게 이롭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노무현이 추구하던 가치는 노무현을 죽음으로 내몰았지만, 이명박이 추구한 돈은 여전히 이명박을 지켜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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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위에서 아래로 흘러가는 게 자연스런 일인 것처럼 인센티브가 생기는 쪽으로 사람들이 움직이는 건 당연한 일이다. 정말로 옳은 일을 하고 싶다면, 옳은 일을 할 때 이익을 보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친일을 하는 게 이득이어서 나라를 팔아먹은 이완용과 송병준에게 어떻게 나라를 팔아먹을 수 있냐고 말해봤자 개풀 뜯어먹는 소리에 불과하다.

독립투사는 서로 돌 던지기 바쁘지만, 친일파들은 서로 지켜주려고 노력한다. 독립투사가 되는 편보다 친일파를 하는 게 훨씬 안전하고 풍요로울 수밖에 없다. 이 구조를 바꿔야 한다.

나라를 팔아먹는 것이 자신에게 손해가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독립운동하는 것이 우리에게만 이득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이득이 되도록 구조를 짜야 한다.

‘정의는 이긴다’ 말만 할 게 아니라 정의가 이길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악의 인센티브가 유통되는 구조를 깨부수고 나쁜 짓을 저지르면 벌을 받고 옳은 일을 하면 상을 받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가장 필요한 일이다.



악의 유통구조

요새 언론을 통해서 날마다 ‘악의 유통구조’에서 벌어지는 일이 생중계되고 있다.

이재용이 이건희의 재산을 물려받는 과정에서 수많은 불법적 행위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이 나서서 이재용을 변호해 주느라 바쁘다. 그들이 전부 이재용에게 뭔가를 받아서 그렇게 열심히 떠들까? 

걔 중에는 이재용의 측근도 있을 테고 이재용에게 뭔가를 약속받은 사람도 있겠지만, 대다수는 이재용과 평생 별 관계 없이 살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기 일이라도 된 듯이 나서서 열을 올린다. 왜일까?

인센티브를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뛴다. 이재용을 위해 뛰면 뭘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기대감이 그들을 그렇게 행동하도록 만든다.

이재용의 가방을 받아든 한겨레 기자 출신 박효상 씨가 화제가 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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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을 가열차게 비판하던 기자가 삼성에 스카웃되어 이재용의 가방모찌(가방모찌 외에 다른 표현이 생각나지 않는다)를 하고 있다는 현실을 비감하다고 느낀 사람이 많다.

삼성에는 기자 출신 임원들이 제법 있다. 박효상 씨 외에도 MBC 출신의 이인용 씨나 SBS 출신의 백수현 씨 등이 언론사에서 일하다 삼성으로 간 대표적인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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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용 (좌) / 백수현 (우)>

 

이들이 삼성에 들어갔을 때 기자들 사이에선 10억을 받았다더라 20억을 받았다더라 하는 식으로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언론인의 양심 타령하더니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저 사람들을 욕하는 건 간단하고 쉽다. 하지만 그래 봐야 세상을 바꾸는 데 아무 도움도 안된다.

자연인으로서 박효상 씨의 선택은 당연한 거다. 기자로 평생 일하며 좋은 기사 쓰고 권력 비판해봐야 늘어나는 건 나이와 뱃살뿐이다.

그에 비해 삼성에 스카웃되어 들어가면 확실하게 자신의 삶이 나아지도록 만들 수 있다. 자신이야 그렇게 살 수 있다 쳐도 가족 특히, 자식들의 미래를 생각하면 그런 선택을 하는 건 자연스런 일이다.

저런 제안을 받는다면 거절할 거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진짜 생각해봐야 할 문제는 박효상 씨나 이인용 씨, 백수현 씨의 생각이나 선택이 아니다. 저 사람들을 본 동료, 선후배 기자들의 생각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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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저들의 동료였다고 가정해보자. 같은 일을 하던 혹은 근처에 있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팔자를 고쳤단다. 받던 월급의 열 배 스무 배 씩 받고 스카웃되어 갔단다. 나는 어떤 생각이 들까?

제일 처음엔 배 아프거나 부러울 거다. 아니. 저건 뭔데 저렇게 팔자를 고쳤지? 내가 쟤보다 뭐가 못하지. 자신도 저렇게 스카웃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할 거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스카웃 될 수 있을지 고민을 할 거다.

그 후엔 상대에게 잘 보이기 위한 노력을 할 거다. 기자가 할 수 있는 노력이란 게 뭘까? 좋은 기사 열심히 쓰고 나쁜 기사는 뺀다. 자기가 아는 정보가 이재용이나 삼성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면 필사적으로 알려줄 테고 누군가 나쁜 기사를 쓰려고 하면 막으려고 할 거다.

내가 하는 일로 내 인생을 확실하게 바꿀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수많은 기자들이 스카웃 되기 위한 노력, 이재용과 삼성에게 잘 보이기 위한 노력을 할 수밖에 없다.

삼성은 큰돈 들이지 않고 기자들을 부릴 수 있는 유통구조를 만들었다.



삼성의 방식, 악의 유통구조

우리는 이 유통구조의 단면을 장충기 문자라는 형태로 확인했다.
 

장충기 문자2.JPG


거기에 나온 언론사 간부들은 전부 어디 가면 목에 힘 좀 주고, 침 좀 뱉는 사람들이다. 아무에게나 굽실대지 않는다. 그들이 그렇게 굽실대는 이유는 이 관계를 통해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유통구조를 만드는데 삼성이 들인 돈은 그렇게 많지도 않다. 기자 출신 몇 명 스카웃해서 10-20억 쥐어주면 그걸 보고 눈이 돌아간 수많은 기자가 불나방처럼 덤벼든다.

기자 두세 명 스카웃하면서 몇십억 써서 대한민국 기자들 대부분을 손에 넣을 수 있다. 삼성 입장에선 껌값도 안 되는 돈이다. 몇십억 써서 기자들의 충성심을 살 수 있다면 남아도 한참 남는 장사다.

삼성이 언론 부리는 방식을 얘기하면서 광고로 언론사를 컨트롤한다는 얘길 많이 한다. 맞다. 삼성은 광고로 언론사를 컨트롤 하기도 한다.

 

삼성광고집행건수 2017년.png

<2017년도에 해당하는 그래프이다>

출처 - <미디어오늘>

 

하지만 광고로 언론사를 움직이는 건 돈도 많이 들고 한계가 있다. 또 기자 개개인을 컨트롤하기는 어렵다.

기자들은 회사의 지시대로 움직이는 동시에 자신의 언어로 기사를 쓰는 사람들이다. 자발적인 충성심을 발휘시켜야 얻을 게 더 많다. 충성심을 만드는데 인센티브만큼 좋은 게 없다.

인센티브를 실제로 제공하지 않아도 된다.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다는 기대만으로 기자들은 이재용과 삼성에게 충성을 바친다.

언론뿐만 아니다. 검사든 판사든 정치인이든 필요한 사람을 이런 방식으로 손에 넣을 수 있다. 인센티브를 받는 적당한 본보기를 만들면 나머지가 줄줄이 따라온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아무것도 주지 않아도 알아서 충성을 바치는 자들이 생긴다. 부스러기 던져주고 몇몇 요직에 있는 사람들을 손에 넣고 나면 그 사람들의 영향을 받아 자연스레 따라간다.

언론사 보도국장은 취재를 시킬 수도 있고 중단시킬 수도 있다. 검찰총장은 수사를 지휘할 수 있다. 대법원장? 양승태가 어떤 일까지 할 수 있는지 이미 확인된 바다.

힘센 자들이 악당을 위해 일하면 그 밑에 있는 자들도 그렇게 된다. 이런 식으로 대한민국에 범죄자를 지켜주는 거대한 유통구조가 자연스레 형성되었다.
 
이재용이 감옥에 가도 삼성이 망하지 않는다는 건 이미 확인됐다. 이재용이 감옥에 있을 때 삼성전자 실적은 사상 최대를 기록했고, 주가도 상승했다.

그런데도 이재용이 감옥에 가면 나라 망한다고 기사를 쓰는 기자들이 있고 그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의연의 회계 실수는 절대 있어선 안 될 범죄처럼 취급하는 사람들이 삼성 바이오 로직스의 회계 사기는 구국의 결단이라고 포장한다.

 

조선일보 구국의 결단.JPG

<기사 링크>

 

 

자발적 충성을 이끌어내는 인센티브

옳은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의 부족함은 범죄로 치부하면서, 지 욕망에만 충실한 인간들의 범죄는 관행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 의해 그런 여론이 확대되어 악당과 범죄자들은 이득을 본다.

인센티브 때문이다. 뭔가를 얻을 수 있다고 기대하면 나쁜 짓도 부끄럼 없이 저지를 수 있는 인간은 많다. 국정원 직원이 왜 포털에 댓글을 달고 검사들이 왜 간첩을 조작했겠는가? 왜 이명박 주변의 사람들은 이명박에게 충성했을까?

인센티브에 대한 기대감이 자발적인 충성을 이끌어낸다.
 
가치에 대한 판단을 포기하고 권력자들에게 잘 보이면 눈에 보이는 형태로 확실한 이익이 생긴다. 또한 권력자들이 방패가 되어주기 때문에 처벌도 없다.

집 안에서 문을 잠그고 안 나왔지만 감금당했다고 주장하던 국정원 직원 김하영은 국정원에 그대로 근무하며 얼마 전에 승진했다고 한다.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안 할 이유가 없다. 완전히 남는 장사다.

계속 악당들이 남는 장사를 하게 놔두면 안 된다. 어떻게 해야 할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