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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6. 27. 수요일

아홉친구


 


부화 : 운전면허 취득


: 참 편하고 좋다, 운전면허 따기


 


운전면허, 이번에 땄다. 남들은 고등학교 졸업 하자마자 따는 그 운전면허. 평생 차 몰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건 마찬가지지만, 어쨌든 땄다. 나이 먹고 보니 나중엔 진짜 따기 힘들겠구나… 괜시리 불안한 마음에 불현듯 면허증을 받고야 말았다.


 



옆나라의 흔한 운전면허증.


 


요즘 운전면허 취득 절차에 문제가 있다는 소리 들은 적 있을 것이다. 그래도 뭐가 얼마나 엉망인지 알기는 쉽지 않다. 딴지 주 독자층은 20대보다는 나이가 많은 편이니까, 대개들 운전면허쯤 벌써 따놓았을 것이다. 또 운전학원이란 게 군대처럼 한 번 갔다 오고 나면 다시 뒤돌아보고 싶지 않은 곳인지라, 말도 마 우리 땐 더했다고 하긴 쉬워도 지금 무슨 문제가 있는지 체감하긴 어렵다. 그러니 한 번 들어보라.


 


옛날, 한 15년 전쯤에 운전면허를 따볼까 했던 적이 있다. 그때 강서운전면허시험장에 갔었다. 아줌마들이 손에 손에 크라운출판사 학과시험 문제집을 들고 호객하던 기억이 난다. 면허시험장에서 접수하고 쾅쾅 스탬프 도장을 받고 나니 지하에 있는 신체검사실로 가란다. 얼굴에 신경질이 잔뜩 박혀 있는 여직원이 찍찍 수입인지를 잘라 주었다. 쪼그려 앉았다 일어섰다. 숟가락으로 눈 바꿔 가렸다. 쾅쾅 합격. 인제 가란다. 돈 벌기 참 쉽다는 생각 그때 했다. 필자는 선천성 난청이 있지만 그 따위 건 검사도 하지 않고 정상판정 받았다.


 



"저기 혹시 난청..." "안녕히 가세요. 다음 분."


 


학과시험 문제집엔 꽤 전문적인 내용도 있었다. 기술인지 공업인지 아무튼 학교에서 배웠던 가솔린 엔진과 디젤 엔진의 4행정-2행정 차이가 기억난다. 별의별 희한한 표지판들과, 남자라면 왠지 알아야 할 듯한 자동차 구조의 세부 명칭들. 오토가 없던 시대의 기어 변속 장치. 안전 운행 위반시 부과되는 각종 벌금들의 차이. 그래도 많이 어렵진 않으니까 과락만 안 하면 된다고, 한 며칠만 문제집 풀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시험 당일 닥친 설사만 아니었다면 지금쯤 10년 넘은 드라이버가 됐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과거의 설사에 가정은 무의미하다. 그날만큼 푸짐한 설사는 지금까지 겪은 적이 없다. ‘아 이것은 자동차를 몰지 말라는 하늘의 계시인가.’ 까치산역 화장실 안에서 필자는 4대강만큼이나 거룩하게 촉촉해진 둔부를 보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촉촉했다. 그렇게 운전면허 도전은 끝이 났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12년. 이제는 하늘의 명을 알 만한 나이라고 생각했다.


 


운전학원(정확히는 운전전문학원이다)에 가니 학과 5시간을 들어야 되는데, 학과 시험은 면허시험장 가서 따로 보라고 한다. 기술과 공업은 잊어먹은 지 오래다. 강의 듣고서 시험을 보기로 마음먹었다. 마그네틱 카드를 주면서, 수업 시간 시작과 종료 때마다 한 번씩 긁어야 한다고 한다. 매우 귀찮은 시스템이었다. 암튼 받았다.


 


청명한 4월의 봄날이 무릇 만물을 푸르게 물들이던 즈음, 70년대에 지었을 법한 회색 건물 2층에서 강의를 듣는 일은 고역이었다. 예비군도, 민방위도 이것보다는 낫다. 할아버지뻘 되는 강사는 고풍스럽게 ‘安全運轉의 必要性’이라고 칠판에 적고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역시 30년은 돼 보이는 강의실 책상마다 낡은 교재가 한 권씩 줄에 묶여 있었는데, 그 지루한 책이 너무나 고마웠다. 차라리 설사라도 싸는 게 보람있을 듯한 그런 시간이었다. 운전 중엔 빗길과 아이들과 졸음을 주의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몇십만 원 내고 듣다니. 예비군은 밥값이라도 주는데.


 


어쨌든 5교시 연속 강의를 견뎠다. 역시 하늘의 명을 알 만한 나이가 되니 인내심과 괄약근이 말을 듣기 시작했다.


 


학원 사무실에서 500원짜리 얇은 학과시험 기출문제집을 하나 받았다. 공짜라서 냉큼. 그리곤 집에 가서 전날 숙연한 마음으로 1만2천 원에 사온 교학사 학과시험 문제집을 환불했다. 500원짜리에 모든 게 다 있었다. 엔진 유형, 자동차 세부구조 따위 이젠 문제에 없다. 오랜 세월이 지나니, 학과 시험은 그림 놓고서 이게 맞냐 저게 맞냐 고르는 문제들로 바뀌어 있었다. 모르는 걸 다 틀려도 60점은 훨씬 넘게 맞을 수 있다. 자신감이 넘쳤다.


 


다음날 서부운전면허시험장에 갔다. 예나 지금이나 시험장 주위에는 문제집을 파는 아줌마들이 있다. 500원짜리 문제집으로 무장한 필자에겐 그 모습이 마치 사기꾼 같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내게만 필요치 않았을 뿐이다.


 


학과시험은 이제 컴퓨터로 푼다. 화면에 제시된 답을 커서로 가리켜 버튼 눌러주면 된다. 어쩐지 컴퓨터용 사인펜을 안 팔더라니. 시험 시간은 60분이지만 2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채점도 즉시 된다. 93점. 뭣 때문에 7점이 나갔는지 고민하면서 학과시험장을 나서니, 복도 의자에 앉은 한 아주머니가 웃으며 통화를 하고 있었다. ‘아이 그럼, 붙었지. 67점 나왔어. 호호.’ 그때 누군가에겐 1만2천 원짜리 문제집이 필요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면허시험장을 나오자 여전히 문제집을 파는 아줌마들이 보였다.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갑자기 황지우의 시구가 생각났다. 무슨 연관인진 모른다.


 




 


다음은 기능시험이다. 운전학원 마당에는 삐뚤삐뚤한 여러 가지 코스들이 있고, 신호등과 오르막도 마련돼 있다. 예전에도 들은 적 있다. S자와 T자 코스. 공식만 외우면 통과하지만 많이들 버벅거린다는 초보들의 무덤. 근데 학원 등록에는 2시간 연습으로 돼 있다. 겨우 이걸로 되는 걸까?


 



2시간에 다...하지는 않고 그냥 안 하더라.


 


기우였다. 2종 보통에서는 S자, T자, 신호등, 오르막 모두가 기능 시험에서 제외돼 있다. 평행 주차만 주행시험 쪽으로 편입됐을 뿐이다. 그럼 대체 뭘 하는가?


 


옆자리에 탄 할아버지 강사는 한자를 섞어 쓴 매뉴얼을 코팅해 보여주었다. 기능시험에서는 감독관도 타지 않는다. 네비게이션 위치에 붙어 있는 패널의 지시에 따라 동작만 하면 된다. 강사는 차근차근 패널 지시 순서를 가르쳐주었다.


 


“먼저 브레이크 밟고, 시동 켜.”


부르릉.


“브레이크 밟은 채로 주차브레이크 내리고, 기어는 P에서 D로. 기어 버튼 눌러야 돼. 발 떼지 마.”


철컹, 기리릭.


“깜빡이 좌측. 옳지. 우측도 해봐. 그래. 시험에선 랜덤이야. 지시 나오기 전에 먼저 조작하면 안 돼.”


“네.”


“다음에 조명 켜. 밀면 상향 조명등. 그래. 끄라고 할 때 꺼. 오케이.”


“네네.”


“와이퍼 동작. 아니 약하게 해도 돼. 켜기만 하면 된다고. 그래. 인제 꺼.”


“네엡.”


“자 인제…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 오토는 그냥 간다. 핸들 안 꺾어도, 악셀 안 밟아도 돼. 가다가 ‘돌발’ 소리 나오면 브레이크 밟는다.”


돌발, 뒤뚱.


“비상등 켜. 그리고 잠깐 놔둬. 다시 가라고 하면 비상등 끄고 브레이크만 떼. 50미터 전진 하면 된다.”


스르륵…


"수고하셨습니다."


“됐어, 파킹 해. 이러면 합격이야.”


 


1시간 동안 4번 반복했다. 지겨웠다. 왜 연습 시간이 2시간뿐인지 이해가 되고도 남았다. 나머지 1시간은 강사 허락 하에 괜히 S자 돌고 T자 해보고 때웠다. 강사도 가르칠 게 없고도 없어 지겨운 표정이었다. 노을이 찬란히 물든 강의장에서 불꽃같은 드라이브 강습은 그렇게 끝났다.


 



하얗게 불태우고 싶었건만.


 


시험 일자가 잡히고, 약 20명의 응시자가 함께 시험을 보았다. 전문학원은 그냥 학원에서 시험을 볼 수 있다. 1종은 코스가 조금 더 복잡해 보이긴 하지만, 어차피 쉬워지긴 마찬가지. 하지만 감독관은 주의를 잊지 않았다.


 


“솔직히 시험이 쉬워지긴 했지만, 시험은 시험입니다. 탈락자가 한두 명씩은 꼭 나옵니다. 그러니까 긴장 풀지 마시고, 성실하게 임해 주십시오.”


 


2종 보통을 응시하는 남자는 필자 하나였다. 나머지는 전부 여자. 감독관의 주의가 있은 후 얼굴도 모르는 응시자들은 괜한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어쩌지? 시험은 진짜 오랜만인데… 괜히 떨리네.”


“어머 저두 그래요. 아 괜히 실수할 거 같애.”


 


번호가 불리자 하나 둘씩 옆자리 응시자에게 손을 흔들며 대기차량으로 떠났다. 필자는 하필이면 제일 마지막이었다. 지루한 ‘수고하셨습니다’가 이어지며 합격자가 탄생하고 있을 즈음, 쿠웅 하는 소리가 났다. 구석에서 담배 피우고 있던 감독관이 화들짝 일어났다. 차량 하나가 경계석을 밟고 잔디 위로 올라서 있었던 것이다. 운전자가 나오자 감독관은 입맛을 다셨다.


 


“뭐야, 핸들을 꺾을 필요도 없는데 왜… 경계석 밟았으면 실격이야, 실격. 대체 왜 악셀을 밟은 거야?”


 


검은 색 원피스 스커트를 입은 운전자는 입을 굳게 다문 채로 사무실로 향했다. 누구든지 실수할 수 있다. 아무리 쉬운 시험이라고 해도. 하지만 저것도 못하냐는 시선을 홀로 받으며 시험장을 가로질러 가는 아줌마 운전자에겐 그런 위안이 소용없었을 것이다. 운전 분야에서 여성은 준비된 실패자다. 그럴 줄 알았다는 경멸의 시선이, 마음 속 저 깊은 곳에 잠복해 있다가 환한 햇살을 즐기듯이 현실에 부웅 떠오른다. 남녀 가릴 것도 없다. 여자 망신은 저 아줌마가 혼자 다 시킨다는 소리가 여성 응시자들의 입에서 맴돌고 있었을 테니까.


 



"What the F..."


 


기능시험에 합격하고 나면 바로 사무실로 가서 도로주행 연습을 등록해야 한다. 총 6시간이다. 현행 운전면허시험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이 여기다. 강사들은 끊임없이 이 주행연습 시간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대체 6시간 갖고 연습이 되느냐는 것이다. 한 번도 연습해보지 않은 마당에서도 이 불만은 나름 이해가 됐다.


 


도로주행 시험은 연습한 두 코스 중 하나를 랜덤으로 골라 치른다. 100점 만점에 70점인데, 주행시 조작과 속도, 법규위반은 물론이고 운전 자세까지 채점 대상이 된다. 6시간이라고 하면 한 시간에 두 번 왕복할 수 있으니까 총 12회인데, 평행주차 연습시간을 고려하면 10회 정도가 된다. 그러니까 열 번 타보고서 시험 보는 것이다. 당연히 수많은 사람들이 탈락한다. 강사 말로는 70% 정도는 떨어진다고 했다. 탈락도 문제겠지만, 과연 이 정도 연습으로 실생활에서 도로 주행이 잘 되겠느냐는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강사들은 예전에 15시간, 더 예전에는 스물 몇 시간 연습하고 시험봤는데 요샌 6시간이라 문제가 많다고 투덜댔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탈락하고 다시 주행연습을 등록하는 탓에, 기능시험을 마친 후 도로주행 연습 차례가 돌아오기까지는 근 한 달을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도로주행 연습시간이 짧아져서 어떤 문제가 있는지는 짐작이 간다. 그렇다면 애초에 왜 연습시간을 줄였던 것일까? 덕분에 운전학원 비용은 많이 떨어졌다. 한 번에 다 붙는다고 가정하면, 지금은 검정료까지 합쳐도 40만 원 정도에 면허증을 취득할 수 있다. 모르긴 몰라도 100만 원을 호가하던 시절이 있었다고도 했다. 이런 비용을 줄이는 게 일차 목적이었을까?


 


도로주행 연습에 나서면서 나름대로의 생각은 들었다. 그건 학원에서 배우는 내용이 너무 없다는 것이다. 도로주행에 나선 첫날, 40대 정도로 보이는 강사는 기본적인 주행법 말고 가타부타 말이 별로 없었다. 핸들을 틀 때 팔목이 어떻게 교차해야 하는지는, 필자가 5교시 강의를 들었을 때 보았던 책에 나와 있었다. 강의에서는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도로주행 차량 옆자리에 앉은 강사도 그걸 말해주지 않는다면 대체 어디서 그걸 알겠는가? 더군다나 시험에서는 팔목 교차가 잘못됐다는 이유로 감점까지 하는데 말이다.


 


2시간 주행을 마치고 다음날 다시 2시간 주행을 하게 됐을 때 만난 강사는 더 심했다. 30대 정도로 보이는 젊은 강사는 운전 내내 ‘그건 5점 감점’이라며 잔소리를 했는데, 어떤 게 감점사항인지 미리 가르쳐주지도 않으면 어떻게 고치냔 말이다. 신호등에 황색 불이 들어왔을 때, 급브레이크를 밟아서라도 서야 하는지 아니면 통과해야 하는지 초보들이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브레이크 거리에 대한 감이 없는 탓이다. 거리가 짧다 싶어 통과를 했는데, 옆에서 ‘신호 위반 실격’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물었다. 황색 불이면 좀 무리해서라도 서는 게 낫냐고. 그랬더니 퉁명스럽게 ‘아 그럼 신호 어겼으면 실격이지 어디 일반차들처럼 운전하려고 그러냐’며 무안을 주는 것이었다. 글로 쓰면 그 느낌이 덜해지는데, 강사의 말투에선 배려 따위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중요한 과실은 미리 대비하는 게 나으니까, 그리고 배울 때 욕 먹는 게 사고내는 것보단 낫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참긴 했다. 하지만 이날 강사의 무례한 태도는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다.


 



감점, 감점, 감점... 근데 난 안 배웠...


 


마지막 2시간을 담당한 강사는 나이 지긋한 분이었다. 기능시험 연습할 때 코팅된 매뉴얼을 가져왔던 분처럼, 이 강사도 그런 매뉴얼을 보여주었다. 어디 어디가 보통은 어려워하니까 그때 이렇게 하면 된다고 말이다. 첫날 이분을 만났다면 훨씬 나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강사는 응시자가 선택할 수 없다. 어차피 누가 누군지도 모르고, 학원에서 순번제로 강사들을 배치하기 때문이다. 평행주차도 이때 배웠다.


 


확실히 시간이 부족하다는 느낌은 들었다. 코스 시험은 어떻게든 보겠지만, 일반 도로에서의 운전은 여전히 겁나는 게 사실이다. 그러니 주행 연습시간을 더 늘여야 한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하지만 연습을 하고 나서 다른 생각도 들었다. 과연 주행 연습시간을 늘인다고 해서, 일반 도로에서 어느 정도 운전이 가능할 정도의 훈련을 받을 수 있을까? 결국은 같은 자리 뱅뱅 돌면서 10시간을 더 허비하게 되는 건 아닐까? 강사에 따라서는 정말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하는 시간에 돈을 허비하는 느낌도 들 수 있다. 도로주행 연습시간을 줄인 데에는 이런 지적이 있었을 것이란 추측이 든다. 무의미하고 성의 없는 교육을 10시간 이상 예약하느니, 모자라면 더 내고 교육받는 시스템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어쨌든 도로주행 시험은 한 번에 통과했다. 별의별 감점을 다 당해 73점이었다. 그러니까 겨우 운전은 하는 수준이었던 건데, 어차피 여기서 100점 맞아도 실제 운전과는 거리가 멀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문턱에서 다시 연습을 하고 시험을 치를 것이다. 하반기에는 이 시스템에도 수정이 가해져서 좀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하는데, 면허증 따고 난 다음엔 내 사정 아니니 몰라도 상관 없다. 정말 군대처럼, 뒤돌아보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가카 치하 초기인 2008년에 나온 얘기다.


 


그 후론 다시 운전대를 잡아본 적이 없다. 괜히 지갑 속에 주민등록증 대신 면허증을 갖고 다니긴 하지만.


 




 


성장 : 시선에 의한 호명


: 참 편하고 좋다, 딱지 붙이기


 


소위 ‘김여사’가 화제다. 블랙박스로 찍힌 동영상을 보면 소름이 끼친다. 여성 운전자들이 운전이 미숙하다는 얘기야 예전부터 있었다. 그런데 블랙박스가 보급되면서 그 극단적인 모습이 모두에게 보여지고, 때문에 ‘김여사’들은 여론의 뭇매를 더 강하게 맞는 형국이 됐다. 그리고 운전 못하는 사람이 양산되는 문제를 거론하면서 현재의 운전면허 체계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위에서 보면 알겠지만, 운전면허 체계는 수정될 필요가 있다. 하지만 한편으론 그렇게 바뀔 만한 이유도 있었다고 생각이 든다. 그러니 좀 더 세심한 연구가 필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시스템의 문제가 ‘여성 운전자’에게만 유독 불거질 이유는 애초에 없다.


 



여성운전자만의 문제가 아닌 거다.


 


사실 ‘김여사’는 실제가 아니다. 여성보다 남성 운전자의 사고 통계가 더 많고 사망에 이르는 중대사고의 수치도 높다는 보고서도 이미 제시됐다. 그러나 그에 앞서서, ‘김여사’는 마치 ‘빨갱이’처럼 이름 붙이기 놀이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몇 가지의 정보만 놓고 어떤 사람이나 단체를 빨갱이로 취급하는 짓은 여전하다. 당신이 실제로 좌파인지 또는 종북인지, 혹은 그냥 딴지스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단지 ‘빨갱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쪽이 권력을 잡고 있고, 그 이름 붙이기를 통해 ‘나는(우리는) 그렇지 않다’고 위안하며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짓거리가 핵심인 것이다. 이미 미셸 푸코가 정신병원의 비유를 통해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에 권력이 작동한다고 설명했으니 떠올리시면 이해가 쉽겠다.


 


‘김여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현상의 핵심은 남성 권력이며 또한 인터넷 상에서 그 위력이 뚜렷하다는 데 있다. 예전엔 솥뚜껑 운전자로 불린 여성 드라이버의 뻘짓은 운전자들에게 그리 낯설지 않다. 여성에게 공간지각력이 부족하다는 연구 결과도 오래 전에 나왔다. 심지어 여자들도 여자들을 욕하니. 그래서 ‘김여사’의 출현은 명백한 현실에 기반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김여사’ 현상은 그 오래된 일상의 자각이 아니라, 자신이 정상임을 확인하려는 심리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개똥녀’ 등등의 이름 붙이기나 이주노동자에 대한 공격성은 그들과 다른 나를 확인하고 안심하고자 유발된다.


 



'덮어놓고' 운전하는 솥뚜껑 운전자라고 욕하기는 쉽다. 그리고 편하다.


 


그 근본 원인에는 물론, 당신이 남성 권력이어서가 아니라, 그렇게라도 안심하지 않으면 자신이 약자임을 느끼게 만드는 사회 압력이 거대하게 자리잡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는 1%의 부유층을 제외한 나머지를 약자로 만든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도 VVIP니 최상류층이니 하는 이름 붙이기로 나름의 약자를 제외시킨다. 그 심리는 세밀하다. 서울과 수도권, 다시 강남과 강북, 강남에서도 강남구와 송파구, 강남구에서도 대치동과 청담동, 그 중에서도 무슨 아파트와 나머지… 약자의 배제는 끝이 없다.


 


‘김여사’에는 이 자본주의적 약자 배제에 반항하는 심리가 숨어 있다. 돈이 있고 자가용을 몰아도 당신은 ‘김여사’일 뿐이라는, 남성 권력에 기반한 반자본주의 성향이다. 때문에 어떤 사람들에게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도 만든다. 그런데 그 통쾌한 카타르시스는, 예컨대 대구 지역의 어떤 저소득자가 새누리당을 지지하며 누군가를 빨갱이로 몰 때에도 느끼는, 본질적으로 허망함의 변주곡이다.


 


당신이 남자든 여자든, 여성 운전자를 ‘준비된 실패자’로 보는 심리는 떨쳐내기 어렵다. 실제로 사고를 당한 경우가 있다면 더욱 힘들 것이다. 다만 그렇다고 ‘김여사’ 현상의 확산에 동참할 이유는 없다. 공산당에게 일가족이 학살당했다고 하여 현재의 ‘빨갱이’ 지적질에 무조건 동의하는 일이, 개인적으론 납득이 가지만 공공의 설득력을 얻을 순 없듯이 말이다.


 



"근데 저거 여자가 한 짓, 맞아? ...무슨 근거로?" - 본지 필진 메리메리


 


눈 앞에서 3차선을 가로질러 유턴하는 ‘김여사’를 보고 분노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게 ‘김사장’이라도 우리의 태도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그러니 관념적인 ‘김여사’와 현실은 구분돼야 한다. 운전면허 시스템이나 여자의 무능력 때문이 아니라,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스스로를 약자로 대하게 만든 그 원인이 ‘김여사’란 괴물을 낳은 것이다.


 


 


아홉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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