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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08. 13. 월요일

화성


 


 


속칭 '짱구방'이라는 게 있다. 한게임 포커 같은 인터넷 도박판에서 2~3명이 같은 방에 접속해 서로의 패를 보며 짜고 치기 때문에, 이를 모르고 같은 방에 접속해 게임을 한 사람들은 큰돈을 잃고 멘붕 상태의 '짱구'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짱구방이라고 부른다. 어렵게 모은 수백억의 게임머니를 단 몇 분 만에 잃게 된 일반인들은 잃은 돈을 만회하기 위해 짱구방 일당이 운영하는 불법환전상을 통해 게임머니를 사서 다시 게임에 참여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게임중독자가 되어 재산 피해는 물론이고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없는 '폐인'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그저 심심풀이 게임으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건 아주 일부의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얘기'라며 가볍게 넘길지 모르겠으나 상황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 얼마 전 김제의 마늘밭에서 발견된 110억 원도 바로 이런 인터넷 도박판을 통해서 벌어들인 돈이었고, 불법 거래의 특성상 정확한 통계를 알 수는 없지만 한 해 동안 게임 머니를 통해서 거래되는 규모가 조 단위가 넘는다고 하니 그 엄청난 규모에 그저 놀라울 뿐이다.


 


 



이 짱구가 아니다


 


 


그런데 이런 짱구방은 어떻게 운영되는 걸까? 고스톱의 경우야 세 명이 치기 때문에 두 명이 짜고 친다면 당연히 잃을 수밖에 없지만, 보통 5명이 치는 포커의 특성상 아무리 두 세 명이 서로의 패를 보면서 친다고 해도 항상 이길 수는 없다. 그들 실력이 아무리 좋아도 당일 '운빨'이 좋은 사람의 높은 패를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이 흔히 쓰는 속임수가 바로 거액의 돈질(베팅)을 통해서 판을 키우는 수법인데,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가정을 들어 설명해 보자.


 


A와 C가 한편인 짱구방에 '호구'(그들이 일반인을 지칭하는 말) B, D, E의 세 명이 접속했고, 편의상 게임의 순서는 A-B-C-D-E라고 치자. A와 C는 호구들이 눈치를 못 채도록 처음엔 정상적으로 운영한다. 요즘엔 짱구방 피해자들이 하도 많아서 그들도 나름 잔대가리를 굴리는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호구 중 한 명인 B에게 좋은 패가 들어왔다. 7원 페어로 시작했던 그에게 5구째에 7이 한 장 더 들어와서 일명 '봉'이라고 하는 트리플이 된 것이다. 봉은 그 자체로도 꽤 높지만, 만약 6구나 히든에 7이 한 장 더 뜬다면 거의 무적이라고 할 수 있는 포커가 되는 것이고, 7 외의 다른 숫자가 나오더라도 '풀하우스'가 될 가능성이 있는 '찬스'의 패다.


 


그런데 이때, 선(先)인 A가 고맙게도 하프 베팅(한 번에 베팅할 수 있는 최대치)을 한다. B는 '옳거니' 하면서 잠시 주춤하다가 자신도 하프 베팅을 한다. 다음 순서의 사람들이 다 죽어버릴지도 모르니 그냥 '콜'만 할까, 라는 생각을 아주 잠깐 하긴 했지만, 얼마 만에 온 기횐데, 죽을 놈은 죽더라도 한 판 크게 먹어보자는 '도박심리'가 작용한 탓이다. 짱구방의 선수들은 이때가 바로 '작전'에 돌입할 순간임을 본능적으로 깨닫고 곧바로 작업에 들어간다. 액면에 나온 카드를 통해 B의 패를 대충 감지한 이들은 판을 더 키워버린다. 다음 차례인 C도 역시 하프 베팅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다음 차례인 D와 E는 대부분 죽어버리게 되고 결국 A, B, C 세 사람만 남게 된다.


 


다음 패를 보기 위해 콜을 한 세 사람, 아니 B 혼자만 이때부터 치열한 눈치 싸움을 하게 된다. '아니 이놈들은 대체 뭘 들었기에...' 라는 약간의 두려움을 느끼며 6구를 맞이하게 된다. 6구에 다행히 포커나 풀하우스로 '메이드'가 되면 좋겠지만 그럴 확률은 지극히 낮은 법, B는 6구째에도 아직 봉에 머물러 있다. 그런데 이때 A가 다시 하프 베팅을 한다. 액면을 보니 '그림'(플러시)인 것 같다. 그림은 자신이 든 봉보다는 높지만 히든에서 자신이 역전할 가능성이 있으니 그냥 따라만 가기로 하고 콜을 외친다. 제발 히든에서 '하나만' 뜨기를 바라면서...


 


하지만 아쉽게도 B는 그렇게도 간절히 기다리던 히든 패를 확인조차 하지 못하게 된다. 왜 그럴까? B가 잔뜩 긴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음 주자인 C가 다시 하프를 치길래 그 앞에 놓인 액면 카드를 봤더니 9가 두 장이 놓여있다. 갑자기 B의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A가 그림일 가능성이 큰데도 불구하고 이 정도 베팅하는 걸 보면 이미 풀하우스로 메이드가 되었거나, 다른 사람 패에서도 9가 안 보였는데 혹시 9 포커?' B가 또라이가 아닌 정상적인 판단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상황에서 쫄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한방에 몇백억의 게임머니를 따거나 잃을 수도 있는 세븐 포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다. 다시 A가 하프를 쳤기 때문이다. B는 이제 결단을 내려야 한다. 판은 이미 커질 대로 커져서 히든을 확인하려면 오링을 각오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여기서 죽어야 한다. B의 머릿속 신경세포는 한층 더 빠르게 돌아간다. A는 그림일 가능성이 100%라는 확신이 든다. 만약 운이 좋아 히든에서 메이드가 된다면 그림은 이길 수 있지만, 문제는 C다. 이미 풀하우스 상태일 수도 있고, 포커일 수도 있다. 그것도 아니면 최소한 9봉이라는 얘긴데, 그래도 7봉인 나보다는 높다.


 


도박은 가능성에 베팅하는 게임이다. 내가 지금은 지고 있더라도 나중에 이길 수 있는 확률이 있다면 그 가능성이 다소 낮더라도 베팅을 하지만, 그 가능성이 아예 없다면 자신이 이기고 있고, 이미 많은 판돈을 걸었더라도 과감히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히든을 확인하고 싶은 심정이야 굴뚝같지만... 이런 때일수록 침착해져야 한다는 '이성'이라는 놈이 고개를 들게 마련, B는 '다음 기회'를 노리며 어쩔 수 없이 '다이' 버튼을 누르게 된다.


 


자, 그러면 남은 A와 C의 진짜 패는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과연 누가 이 판의 승자가 될까? 하지만 B에게는 이것 역시 볼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A와 C, 둘 중 하나가 죽어버려서 둘의 패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원래부터 그들의 목적은 게임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나머지를 죽이는 것이었으니까. 이 과정에서 A와 C의 패는 중요하지 않지만 사실 C는 개패일 가능성이 높다. A는 플러시일 가능성이 높지만(그래서 B가 히든까지 보지 못하도록 판을 키운 것이다) C는 기껏해야 9원 페어나 투페어 정도? 만약 C가 6구에서 메이드가 된 것이라면 그렇게 판을 키워서 B를 죽이지 않고, 히든까지 가서 B를 오링시켜버렸을 테니까. 결국, 아무리 운빨이 좋고, 실력이 좋아도 돈을 잃을 수밖에 없는 것이 이 짱구방인 것이다.


 


뜬금없이 서두부터 포커 얘기를 꺼낸 것은 최근 가카의 독도 방문을 보면서 갑자기 이 짱구방이 떠올랐고, 이와 관련된 소설의 윤곽이 그려졌기 때문이다. 자 그럼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소설을 한번 써보자. 거듭 밝히지만 이건 필자의 상상력을 기초로 한 소설일 뿐이다. 현실과 조금 비슷한 점이 있다고 괜히 오해하지 말자. 참, 지면 관계상 소설은 대강의 줄거리만 적은 요약본이니 구성이니 문장력이니 하는 디테일한 부분은 그냥 넘어가기 바라고... 시점은 전지적 가카 시점이다.


 


 


1. 궁지에 몰린 쥐 신세


죽을 맛이다. 18! 지지율이 고작 18%라니. 임기 초반 잘 나갈 때는 70%를 넘었고, 민간인 사찰과 내곡동 사저 문제가 터졌을 때도 최소한 30%대는 유지를 했었다. 그런데 상득이 형이 저축은행 비리로 구속되고 '녹조라떼' 사태까지 겹치면서 바닥을 기게 된 것이다. 어차피 재선에 나가지도 못하는 거, 지지율이야 0%가 되더라도 별 상관없지만, 문제는 앞으로 해야 할 비즈니스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인천공항에 KTX에... 거기에 걸린 돈이 얼만데, 그만큼 해 처먹었으면 됐지 않았냐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건 니덜 생각이고 난 아직도 배가 고프다,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나 지금... 떨고 있냐?


 


 


그뿐만이 아니다. 차기로 밀었던 세훈이와 경원이는 병신같이 '나꼼수' 꼼수에 걸려들어 대선 판에 붙어보지도 못하고 뒈져버렸고, 문수와 재오는 박그네 들러리나 서고 있으니 정말로 앞이 깜깜한 지경이다. 지금이야 앞에 닥친 선거 때문에 잠잠하고 있지만 박그네가 되면 절대 그냥 나를 내버려둘 리가 없다. 5년 전 경선 때도 BBK로 물고 늘어진 걸 생각하면, 에휴... 그렇다고 야권 후보를 응원할 수도 없다. 문재인이나 안철수나 다들 벼르고 있는 마당이니 자칫하다간 형님과 함께 콩밥을 먹게 될지도 모른다. 내가 두려운 건 별 하나 더 다는 게 아니라(전과 14범이나 15범이나 그게 그거지 뭐) 그렇게 되면 그동안 내가 모아놓은 재산을 토해내야 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그걸 내가 어떻게 모은 건데.


 


문제는 또 있다. 그렇게 빨아대던 아랫것들까지 하나 둘 등을 돌리면서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될 중요 내부 정보들이 줄줄 새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그동안 내가 집어먹은 것이 한 둘이던가. 그동안 싸놓은 똥들은 또 어떻고, 거기에 믿을 놈들은 죄다 빵에 들어가 있고, 요즘엔 떡찰들까지 아예 드러내고 박그네 쪽으로 줄을 대고 있으니 그야말로 첩첩산중에 사면초가다. 아, 대통령이란 자리가 이래서 그렇게 고독하고 힘든 자리라고 하는 거였구나.


 


하지만 침착하자. 내가 누군가.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그 많은 고난과 역경을 헤치며 이 자리에 올랐고, 한번 찍은 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먹고야 마는, 그 유명한 나꼼수 애들도 인정하는 꼼수의 달인이 아니던가. 서울 시장을 할 때도 청계천 사업 하나로 판을 뒤집어 버렸듯이 뭔가 좋은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헌금도 많이 내고, 서울시를 통째로 봉헌한 나를 하나님이 절대 버리시지 않을 거다. 오, 주여! 이 어린 쥐를 구원해주소서!


 


 


2. 대한해협을 넘은 끈끈한 우정


그때 갑자기 비서실장이 들어온다.


 



 


"가카, 일본의 노다 총리로부터 외교 핫라인 전화가 왔습니다."


 


"더워 죽겠는데 핫라인은 써글... 그래 무슨 일 때문인 것 같은가?"


 


"글쎄요, 정확하진 않지만 아마도 이달 중순에 있을 독도 방어훈련 때문에, 아마도 훈련을 중지해 달라는 협조 요청인 것 같습니다."


 


"그거 형식적으로 매년 두 번씩 해오던 건데 왜 갑자기 그러는 거야. 지난번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취소한 것 때문에 삐친 건가? 하, 그놈들 쫌만 기다려달라니까 그새를 못 참고."


 


"그게 아니라, 사실 일본 정부도 요즘 최악입니다. 장기 불황에다 최악의 경기 침체, 거기에 국가부채까지 200%가 넘는 상황까지 몰려있어서, 아마 그런 상황에서 우리 쪽에서 대규모 훈련을 하면 분위기가 험악해질 것 같으니까."


 


"그래? 우리도 상황이 만만치 않은데. 설마 공짜로 해달라는 건 아니겠지. 하여튼 연결해봐."


 




 


가카: 모시모시, 졸라 오 히사시부리데쓰(졸라 오래간만입니다.)


 


노다: 하이, 가카! 오 겡끼데스까?


 


가카: 그건 그렇고 무슨 일로 총리께서 직접 전화를 다 주신 겁니까?


 


노다: 조또 쓰미마셍한 부탁이지만, 이번 달에 있을 다케시마 방어훈련을 좀 취소해주시면 안 되겠스므니까? 가카께서도 알다시피 현재 우리 니뽄의 꼬라지가 상당히 안 좋스므니다. 경제도 최악인데다가 최근 중국, 러시아 와의 영토 분쟁에서도 밀리고 있고, 그리고... 가카 임기도 다 되어가는데 예전에 약속하신 '지곤조기'(지금은 곤란하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가 안 지켜지고 있어서 최근 국민들이 우리 위대한 니뽄이 가카의 구라에 놀아난 게 아니냐는 비판도 있어서...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4년 전 미 외교문서


 


 


가카: 아 그거야 제가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지 뭘 어떻게 해준다고 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알 수 있는 거라... 하여튼 상황은 잘 알겠지만 여기 상황도 그리 좋지가 못합니다. 일본 교과서 문제랑 방위백서 문제 때문에 현재 국민들 야마가 이빠이 돌고 있습니다. 게다가 얼마 전 총리님과 은밀히 추진하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도 뽀록 나는 바람에, 지금 독도 문제를 잘못 건드렸다간 남은 임기도 보장받을 수 없는 상황이에요. 한마디로 제 코가 석 자라는 말입니다.


 


노다: 하이, 가카의 코가 석 자나 되시므니까? 근데 가카 코가 큰 거랑 다케시마랑 무슨 상관이 있으므니까? 사실, 우리 사이니까 까놓고 말씀드리는 거지만 저희 경제 사정이 아주 안 좋아서 8월 10일에 소비세 인상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려 하고 있는데, 우리 니뽄 국민들 반발이 만만치 않습니다. 그게 통과 안 되면 국가부도사태까지 이어질 수 있으므니다. 게다가 그날 새벽에 축구 일한전까지 있어서 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므니다. 다시 한번 부탁이노 드리지만, 취소가 안 되면 어떻게 연기라도 해주셨으면 하므니다.


 


가카: 아, 소우데스까? (그렇습니까?) 이거 저만 힘든 줄 알았더니 총리님도 죽을똥을 싸고 계시는구먼요. - 말로는 위로하는 척하지만 사실 가카의 입 주위가 슬며시 올라가며 얼굴엔 환한 미소가 번진다. (거봐 시바, 나만 잘못하는 게 아니라니까. 경제 1위 대국도 저렇게 힘들다는데 그래도 우리는 내가 잘해서 아직까진 살만한데 무식한 국민 나부랭이들이 그것도 모르고) 그리고 한일전 축구는 어차피 친선 경기니까 그렇게 신경을 안 쓰셔도...


 


바로 그때였다. 어떤 꼼수 하나가 섬광처럼 가카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 것이다. 순간 예의 그 작은 눈이 더 찢어지며 독사의 눈빛으로 변했고, 잠시 침묵이 흐른 후 가카가 외쳤다. "아멘!"


 


노다: 가카께서도 많이 힘드신가 보므니다. 갑자기 아멘을 외치시는 걸 보니.


 


가카: 마, 그게 아니고... 노다 총리, 우리 둘 다 목을 걸어야 할만큼 큰 위기를 겪고 있는데, 잘하면 이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소비세 인상법안이 10일 날이고, 그날 밤에 축구 경기가 열리는 게 맞지요?


 


노다: 예, 그렇긴 하므니다만... 기회가 될 수 있다니 당최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요즘 한국이노 졸라리 덥다고 하던데 혹시 더위를 잡수신 건 아닌지.


 


가카: 노다 총리, 잠깐 그놈의 아가리노 셔터 마우스 하시고 제 말 좀 들어보시지요.


 


 


(중략)


 


 


노다: 역시 가카는 대단이노 하시므니다. 가카 사이코~ 데쓰네! (가카 최곱니다!)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가카: 싸이코?(이게 디질라고 어따 대고?) 흠, 흠. 그럼 끈끈한 우리 우정을 살려서 좋은 작품 한번 만들어봅시다.


 


 


3. 꼼수, 그리고 밥숟가락 얹기-


"가카, 그건 너무 위험한 생각이 아닐까요?"


 


한일전을 이틀 앞둔 2012년 8월 8일, 최첨단 시스템 에어컨이 빵빵하게 돌아가는 청와대 집무실, 가카 앞에 서 있는 비서실장이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가카에게 따지듯 묻는다.


 


그동안 역대 대통령들이 단 한 번도 독도를 방문하지 않은 건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였습니다. 50년 동안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마당에 괜히 문제를 키워서 '분쟁 지역'처럼 보이게 만들어서 우리에게 이로울 게 없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일본이 아무리 국제법에 호소를 해도 우리가 응해주지 않으면 그만이긴 합니다만, 우리가 실효지배를 하고 있기만 하면 아무 문제 없는 노릇이라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겠다는 막말까지 했던 김영삼 대통령도 그것만은 하지 않았던 겁니다. 근데 하필이면 왜 지금.. 가카, 아무래도 이번 건 너무 위험한 도박인 것 같습니다."


 


 



우리 땅인데 무슨 기념촬영, 하며 손사래를 쳤지만... 청와대 제공


 


 


조용히 비서실장의 말을 듣고 있던 가카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비웃는 웃음을 지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자네 마... 지금 도박이라고 했나?"


 


자신의 말실수를 깨닫고 잔뜩 긴장한 비서실장이 굳은 얼굴로 대답한다.


 


"가카, 죄송합니다. 제가 흥분해서 그만 큰 실수를 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아니, 지금 자네 말을 탓하자는 게 아니니까 괜히 쫄지 말고... 도박 좀 해 봤느냐고? 가령 포커 같은 거 말이야."


 


"아, 예... 젊었을 때 친구들이랑... 그저 심심풀이로 조금 해봤을 뿐입니다."


 


"고~뢔? 하하하, 어때 개콘의 그 뚱뚱한 개그맨이랑 좀 비슷하나?


 


"아, 예...가카, 정말 똑같습니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유머가 부족한데 역시 가카는 다르시네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가카. 딸랑~딸랑"


 


"음, 그건 그렇고... 내가 예전에 포커를 좀 해봐서 아는데 말이야, 마, 자네는 포커에서 이기는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나?


 


"그거야... 음... 제가 잘은 모르지만, 자금도 넉넉해야 하고, 운도 따라줘야 하고... 무엇보다 남의 패를 꿰뚫어볼 수 있는 실력 아닐까요?"


 


"실력? 물론 중요하지. 어느 정도 운도 필요하고... 그런데 만약 자네가 지금 가진 돈도 넉넉지 않고, 들고 있는 실력도 별로 없는데 그 판에서 꼭 이겨야 한다면...마, 그럴 때 자네라면 어떻게 하겠나?


 


"글쎄요. 음...그렇다면 좋은 패가 들어올 때까지 무리하지 않고 기다리면 되지 않을까요?"


 


"물론, 기다리면 좋은 패가 들어올 때도 있겠지. 하지만 자네도 포커를 쳐봤으니 알겠지만 내 패가 좋으면 대부분의 사람은 그냥 죽어버리지. 액면만 보고도 어느 정도는 패가 읽히니까. 다른 사람들 패도 좋고 내가 가진 패도 좋으면서 내 패가 상대방보다 조금 높아야 한 판에 돈을 많이 딸 수 있는 건데, 그렇게 '아다리'가 딱딱 맞는다는 게 쉽지가 않지. 더군다나 자본금이 얼마 없으면 좋은 패 오기 전에 오링이 될 수도 있고..."


 


"네, 가카 말씀이 맞습니다. 내 패가 높으면 귀신같이 알고 죽어버리더라고요. 근데... 그러면 어떻게 해야 그런 판에서 이길 수 있는 건가요?"


 


"도박은 어차피 제로섬 게임이야. 남이 잃어야 내가 딸 수 있거든. 그러니까 포커 같은 도박판에서 이기려면 내가 이기려고 하기보단 남을 죽게 해야 승률이 높아지는 거야. 특히나 내 패가 안 좋을 땐 더 그렇고...그러니까 높은 패를 기다려서 상대방을 이기려 하기보다는 자기 앞에 있는 액면 카드를 역이용하여 판돈을 확 키워서 레이스 중반에 높은 패를 가진 사람을 죽이는 거지."


 


"물론 그렇지만 나 혼자서 판돈을 키우는 건 어렵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렇게 뻥카치다가 괜히 높은 패를 가진 사람이 죽지 않고 계속 따라오면 거덜 날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그렇지. 마, 아무리 실력 좋은 타짜라 캐도 혼자선 어렵지. 근데 만약 혼자가 아니고 두 명이라면 어떻겠나? 둘이서 합심해서 앞뒤에서 막 공격해 뿌리는 거지."


 


"예? 두 명이 함께 말입니까? 음... 물론 그러면 이길 확률이 훨씬 높아지겠지만, 그건 부정한 방법 아닙니..... 아..."


 


그제야 뭔가 알아차렸다는 듯 비서실장은 자신의 무릎을 치며 말을 잇는다.


 


"그러니까 가카 말씀은 일본 측과 짝짜꿍을 해서 큰 판을 한 번 벌려보자는 거군요. 그 판에 양국 국민들 관심을 집중되게 해서 눈엣가시 같은 반대 측 사람들의 입도 막아버리고 추락한 지지율도 올리고....그렇게 이 난국을 돌파해보자는... 역시 가카의 꼼수, 아니 아이디어는 대단하십니다. 정말 존경합니다. 가카!"


 


"흠, 흠, 그걸 이제 알았나?... 그건 그렇고 한일전 축구가 11일 새벽이고 15일이 광복절이니까... 디데이는 마 10일로 하지."


 


"가카, 근데 한일전에서 이기면 좋겠지만, 만약 우리 팀이 진다면 괜히 가카 탓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안전빵으로다가 축구 끝나고 하는 게 어떨까요?"


 


 



잘 차려진 밥상에 슬며시...


 


 


"하, 그 사람 참... 비서실장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머리가 안 돌아가서야. 이 사람아 머리가 있으면 생각을 좀 해보게나. 자네 말대로 축구에서 이기면 당연히 밥숟가락 하나 얹은 셈이 되는 거고, 하지만 진다고 해도 내가 손해 볼 게 뭐가 있겠나? 내가 독도에 가는 그 순간부터 나는 지지율 18%의 대통령이 아니라 국토수호의 의지를 전 세계에 알린 대한민국 애국자 반열에 오르게 되는 건데. 국민들이 축구에서 졌다고 그런 애국자한테 손가락질을하겠나? 아니면 안 그래도 미운 일본과 당당히 맞선 대통령에게 박수를 쳐주겠나?


 


" 하, 그렇게 깊은 뜻이 있는 줄도 모르고... 결국 축구 결과와는 상관없이 무조건 우리에겐 유리하게 돌아가는 거군요. 저 같은 하수는 정말 가카 따라가려면 멀었나 봅니다. 그럼 가카 뜻대로 차질없이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언론 쪽은 어떻게 할까요? 이거 분명히 대박 특종감인데 오늘부터 대대적으로 홍보부터 할까요?"


 


"아니지, 오늘부터 떠벌리면 이벤트의 효과가 반감될 수 있으니까 최대한 늦게 터뜨리자고. 기자들한텐 엠바고 확실히 때리고, 보안에도 특별히 신경 쓰고... 근데 일본 쪽은 10일 날 국회에서 소비세 인상법안 통과문제가 있어서 그 전에 하고 싶다니까, 우리보다 조금 먼저 발표하도록 해주고... 그리고 참, 박 후보 측에는 은밀하게 사람 보내서 대충 상황 설명해주라고. 요즘 그쪽도 뇌물공천 문제로 시끄러우니 아마 굉장히 좋아할 거야. 돈 드는 것도 아닌데 기왕이면 이참에 점수 좀 따 놔야지. 나중에 이 자리에 오르면 잘 좀 봐달라는 부탁도 잊지 말고..."


 


"와, 그렇게 꼼꼼하시기까지...


 


"하 사람 참... 내가 이 장사 하루 이틀 하나? 그 정도는 마 기본 중의 기본 아닌가?"


 


 


4. 레이스, 레이스, 고, 고-


10일 새벽, 가카의 독도 방문이 일본 언론의 대서특필로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고 한국과 일본은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거의 모든 매체가 이 뉴스를 속보성 톱으로 다루며 후속 기사들을 쏟아냈고, 인터넷 포털 사이트 역시 다른 뉴스 - 심지어 축구 한일전 예상 기사까지 - 를 빼고 독도 기사로 도배했다. 그리고 당일 오후 일본 국회에서는 소비세율 10% 인상 법안이 압도적 찬성으로(하지만 독도 기사에 묻혀 비교적 조용하게)가결되었고, 다음날 새벽 벌어진 한일전 축구는 한국의 일방적 승리로 끝이 났다.


 



 


현재 가카의 독도방문에 대한 여론은 찬반 양측이 있지만, 현재로선 찬성 측 의견이 우세하다. 그동안 일본의 독도 침탈 야욕에 조용한 외교로만 일관해왔던 정부의 소극적 대응에 짜증이 날 대로 나 있던 국민들이 이번 가카의 독도 방문을 통해, 그리고 '뒤통수를 얻어맞았다는' 일본 쪽의 당황하는 반응에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중에는 그동안 가카의 정책에 앞장서 반대하던 진보 측 사람들까지도 '정치적인 노림수가 있다 하더라도 잘한 건 잘했다고 해야 한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으니, 가카의 이번 이벤트는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고 할 수밖에.


 


축구 경기가 끝난 11일 아침 청와대 집무실,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 가카의 얼굴엔 자신감과 흐뭇한 미소가 연신 흐르고 있고, 그 앞에 선 비서실장 역시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역시 대단하신 가카십니다. 이건 예상보다 훨씬 반응이 좋은데요. 게다가 축구까지 이겼으니... 독도 이벤트 하나로 국면 전환해서 녹조라떼 난국 돌파하고, 그동안 까먹은 지지율 만회하고, 그 지지율 토대로 남은 사업 예정대로 추진하고, 거기에 차기 권력에 보험까지 들어놓았으니 이건 '일타사피'인 셈인데요. 감축드립니다 가카!"


 


"그거야 뭐 이미 예상한 일이니까 너무 호들갑 떨 필요는 없고, 그나저나 내 지지율은 조사해 봤나?"


 


"오늘이 토요일이라 여론 조사를 못 해서 정확하진 않지만, 비공식적인 루트로 확인해본 결과 최소 10% 이상의 상승이 예상되고 있습니다."


 


"그래? 음... 그래도 아직 인천공항매각같이 중요한 국정비즈니스를 깔끔하게 마무리하기엔 부족하군. 하지만 이번 이벤트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니까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는 거 잊지 말고 계속 밀어붙이자고."


 


"그럼요, 그렇지않아도 어제부터 모든 비서관 다 소집해서 다음 전술을 구상하고 있으니 걱정 붙들어 매셔도 될 것 같습니다. 근데 한가지 가카께 여쭤볼 것이 있습니다. 가카 말씀대로 판을 키워서 레이스를 이어가자면 한일 양국 관계를 더 악화시켜야 하는데, 어제 왜 갑자기 독도방어 합동훈련을 연기하라고 지시하신 건가요?"


 


 



 


 


"자네 역시 하수가 맞구먼. 포커 게임 하는데 한판 쳐서 좀 먹었다고 바로 시마이하고 일어설 텐가? 아직 대선까진 4개월이나 남았고, 간만에 아다리 기똥차게 맞는 파트너 만나서 끗발이 붙고 있는데, 최대한 빼먹을 수 있을 때까지 빼먹고 접어야 할 거 아닌가. 바로 다음 주에 광복절이라는 좋은 카드가 기다리고 있는데, 뭐하러 군사훈련이라는 카드까지 동시에 다 까발리겠나. 하나씩 천천히 패를 보여주면서 레이스를 이어나가야 국민들이 괜히 쓸데없는 곳에 정신 안 팔고 이 문제에만 집중할 거 아닌가. 광복절엔 기념식 때 조금 센 걸로 한 번 지르면 저쪽에선 거기에다 조금 더 판돈을 얹을 거고, 그러다 잠잠해지면 9월쯤에 다시 군사훈련으로 지르고... 레이스는 그렇게 하는 거라고."


 


"그렇군요. 역시 가카는 지존이십니다. 가카의 그 탁월하신 식견에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죄송하지만 가카, 한 가지 더 여쭐 게 있습니다. 지난번 일본 측과 협의한 대로 아마 내일쯤 일본 측에서 이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소송을 걸겠다는 발표를 하고, 우리는 거기에 맞서 거절의 카드를 내미는 순서로 가기로 되어있는데, 일각에서는 이러다가 혹시 경제적 마찰이나 군사적 행동으로까지 번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고, 이러다간 차기 정권에 큰 짐이 될 거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가카 생각은 어떠신지요?


 


"걱정? 지들 살 걱정이나 하라고 해. 만날 경제가 어렵니, 살기가 힘드니 하는 불평만 하면서 뭔 오지랖이 그리도 넓은지 원... 자네도 알다시피 이번 판은 서로 큰소리나 치고 기껏해야 멱살잡이나 하다가 끝날 수밖에 없는 판이라고. 다들 자기 발등에 떨어진 불도 끄기 어려운 판에 누가 주먹질을 하겠나? 그러니까 당신들은 괜한 걱정하지 말고 그냥 각본대로만 움직이라고.


그리고 뭐 차기 정권? 아니 지금 내가 당장 죽게 생겼는데 차기까지 신경 써야 해? 나중에 누가 대통령이 되든, 그 사람이 나무를 지든 똥지게를 지든 그게 대체 나랑 무슨 상관인데, 막말로 독도가 어떻게 된다고 나나 당신한테 무슨 피해 주는 거 있어?"


 


"아, 예... 제가 많이 부족해서 죄송합니다. 그럼 저희는 가카만 믿고 계속 고, 고 하겠습니다. 가카!"


 


 




 


 


소설은 일단 여기까지다. 후략(後略)하는 게 아니라, 아직 미완성이기 때문이다. 남은 임기 동안 가카가 또 어떤 꼼수를 들고 나올지, 한,일 양국의 관계는 어떻게 될지, 또 독도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될지 그 결말은 아무도 모른다. 다만, 지금처럼 양국 국민들이 가카와 노다가 짜고 치는 짱구방에 앉아서 그들의 호구 노릇을 계속한다면 머지않아 개털이 되고 짱구가 될 것은 분명하다.


 


런던 올림픽은 끝났지만 가카의 베팅은 계속될 것이다. 일본과의 긴장 관계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카드를 다 꺼내들 것이고, 그 분위기를 틈타 그동안 국민의 저항에 부딪혀 보류했던 일들을 조용히 쓱싹쓱싹 해치우실 것이다. 남은 임기 5개월은 그야말로 신아람의 1초처럼 길어서 5개월이 지난 후에도 다시 3번의 5개월을 더 기다려야 하는 뭣 같은 상황이 연출될지도 모른다. 독도 방문이라는 희대의 이벤트로 레임덕 대신 자신감을 회복한 가카를 누가 막을 수 있을지, 그리고 그동안 죽어나갈 우리 국민들은 과연 누가 책임질 수 있을지.


 


이번 올림픽 기간에 우리 축구팀은 숙적 일본과 싸워 귀중한 동메달을 땄고, 그 와중에 가카는 독도를 방문해서 (아무도 모르게)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우리는 밤새워 그 경기를 보면서 한없이 기뻐했고, 다 같이 열광했지만, 우리가 손에 쥘 거라곤 엄청나게 나올 전기세 고지서뿐이고, 그 전기세마저도 앞으로는 대폭 인상된다는 냉정한 현실뿐이다.


 


물론 우리 가카는 이 소설에 나온 그 가카처럼 절대 그럴 분이 아니시니, 이런 국민들의 고충까지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해 주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지만, 이상하게도 우리 가카를 생각하면 누가 목이라도 조르는 것 같은 기분에 숨이 막혀온다. 분명히 도덕적으로 완벽한 가카 때문일 리는 없을 테고, 아마 무더위 때문인가, 아니면 낮과 밤이 뒤바뀐 올림픽 후유증 때문인가. 근데, 독자 여러분의 목은 아직 안녕하신가?


 



 


 


화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