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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골목길

2013-03-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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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딴지 추천7 비추천0

2013. 03. 19. 화요일

독투불패 이즈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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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을 걷고 있었다. 집을 나와 골목길을 걷고 있었다. 배고픈 시간에 습관적으로 저녁 밥을 먹고 나오니 세상은 벌써 밤이다. 하루 전 밤 시원하던 가을 바람이 오늘, 그날은 싸늘하다. 싸늘했다. 아직은 주위에 아무도 없지만 혼자 때 맞지않게 반팔을 입고 나온 것 같아  짜증스럽다. 그래도 가을은 참 좋다. 입술은 하루 종일 트고, 손도 말라 자주 갈라지고 이를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는 당시엔 다 큰 줄 알았던, 아직 10대인 내가 집을 나와 골목길을 걷고 있었다.



 이제 이 골목을 나가면 사람들이 많을텐데. 내 반팔이 싸늘한 가을 바람보다 더 신경쓰인다.

 

“얘”


 요즘은 이런 호칭을 잘 쓰지 않는데 아무튼 얼굴도 이름도 모를 동네 누나는 걸어가는 나를 불렀다.

 

“우리집 담 좀 넘어줄래?”

 “네. 어디에요?”


 어두운 골목길에 세워둔 등이 드문해서 형체만 겨우 보이지만 싸늘한 가을 바람만으로도 가슴이 뛰는 어린 나에게 그 어스름한 형체는 일단 이뻐보였다. 옆길에 나있는 또 다른 좁은 골목길로 누나를 따라 들어갔다.

 

“넘어줄 수 있겠어? 열쇠를 깜빡하고 안 가지고 와서. 미안해.”

“네. 넘을 수 있어요. 근데 저 강아지만 어떻게 좀 해주세요.”


 툭 튀어나온 배에 힘을 주고 벽에 손을 올렸지만 쉽지 않다. 날렵하고 간단하게 우아한 동작으로 다리를 올려야 하는데 이거 원 난감한 자세로 엉거주춤 두, 세번 시도한 다음에야 겨우 찬 시멘트 벽에 올라 앉을 수 있었다.


 “얘. 그만좀 짖어. 일루와. 착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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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처음 불러세웠던 호칭으로 개를 부르고 있다. 바닥은 암흑이다. 좁은 골목길에 겨우 들어가 있는 집이라 빛도 없다. 바닥이 어느정도에 있는지 가늠도 되지 않는다. 개가 미친개 마냥 엄청 짖어댈 뿐이다.

 

“누나. 개가 어디있는지 안보여요. 뛰어내리다 개 밟는 거 아닌가 모르겠어요.”


 실은 내 다리가 성하게 바닥에 닿을지 모르겠어요. 순간 모든걸 포기하고 그냥 엉거주춤한 자세로 되돌아 내려오고 싶다. 누나는 얇은 철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이름모를 미친개마냥 짖어대는 그 개를 문 앞으로 불러오고 있었다. 시간이 좀 지났다. 초조하고 난감하다. 시간이 지나도 바닥은 눈에 익지 않는다.

 

“너무 어두워서 안 되겠지? 너 다치겠다. 그냥 내려와.”


쿵.


바로 그냥 난 쿵하고 보이지도 않는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얼얼하다. 무릎이 접히면서 그 무릎에 턱도 턱 하니 부딪혔다. 온몸이 순간 멍하다. 문을 열고 나오니 누나가 내게 가방을 건낸다.


 “정말 고마워. 어디 다친 데 없니?”

 “네. 괜찮아요. 안녕히 계세요.”

 “응. 정말 고마워. 조심히 잘 가.”



그렇게 어두운 골목길에서 넓은 골목길로 나왔다. 내가 가려던 길을 걸어간다. 좀 더 멋지게 올라갔어야 했는데. 좀 더 멋지게 뛰어내렸어야 했는데. 그 누나 참 이뻐보였는데. 찬바람 부는 가을 밤 바람에 이마가 서늘하다. 땀방울. 스윽 닦아 손을 내리니 오른손, 왼손 모두 많이 까였다. 안그래도 거친 손인데 식은 시멘트 벽에 수 차례 비벼댔으니 성할 리가 있나. 양손이 후끈하다. 이게 문제가 아니다. 양손 온 바닥에 연한 피가 맺혀오는 것이나 내 무릎에 빗맞은 얼얼한 턱이나 뭉툭한 아픔이 은근한 엉덩이가 문제가 아니라 벽을 넘고 뛰어내리는 나의 못난 자세가 문제였다.



담 넘어 문 열어주기는 실로 엄청난 사건이었다. 이를 망친 것 같아 스스로를 나무랬다. 내 엉덩이가 좀 날씬했으면 좋았을것을. 나는 큰 길가에 육교를 건너고 있다. 따뜻해 보이는 긴팔 옷과 얇은 스웨터를 입고 나를 지나치는 모든 사람들. 그들이 신경 쓰이진 않았다. 퉁퉁하고 때 맞지 않게 너무 얇은 반팔옷을 입은 나를 지나치는데 별로 신경쓰이지 않았다. 시작될 뻔 했던 상상속의 첫사랑은 나의 난감한 자세와 불안하고 교양없는 착지로 날아가 버렸으니까. 아. 가을인데. 내가 좋아하는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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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날 좋아하는 게 왜 그리도 중요했을까. 그냥 어려서이기만 했을까. 지금 나는 어떤가. 한번의 눈 맞춤과 내 옆자리에 앉은 인연으로 궁극의 사랑을 꿈꾸던 그 아이는 지금 길거리에서 날씬하고 긴 다리와 잘록한 허리 이쁜 모양의 가슴 라인만 보인다. 최대한의 경우의 수에서 쥐어짜낸 극한의, 그리고 최대의 결과를 꿈꾸던 아이는 이제 인연이라는 거미줄은 아무리 쳐 봐야 걸리는 것 따위 없다는 걸 경험적으로 파악했다. 물론 언제라도 생길 수 있다는 건 알지만 그 또한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것도 안다. 이 만큼 큰 건지. 이 만큼 늙은 건지.



아무튼 그 집을 넘어주고 20년하고 몇년이 더 흐른 것 같다. 요즘 같은 때에 담을 넘어 달라는 요구를 받는 다면 나는 어찌할까? 담 넘어 줄 집도 드물거니와 휴대전화로 식구들에게 귀가 시간을 확인하고 그들이 돌아올 동안 따뜻하고 편안하게 앉아있을 카페와 피씨방은 수도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담을 넘어 달라는 부탁을 했다? 이거 의심할 만하다. 좁은 골목길로 들어갔다가 대기중인 어떤 그놈 또는 그놈들에 의해서 나의 모든 이야기는 끝날수도 있고, 운이 좋아 보유한 현금만 털릴수도 있다. 담을 안전하게 넘어 문을 열어주고 안녕히 계세요 하고난 다음날 아침 어떤 이유로든 경찰이 내 앞에 등장 할 수도 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지나가는 남자에게 자기 집 담을 넘어 달라니? 의심할 게 너무도 많다.



아무튼 크고 싶었는데 그냥 늙어버렸다. 사회도 그만 늙어버렸다. 얇은 철문은 어린 내가 열어주었지만 이제 그 날 밤의 이쁜 누나는 누구에게 문을 열어달라고 할까.



나는 나름 사회가 내준 숙제를 잘 풀어 나갔다. 지금은 초등학교인 국민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 12년을 지각한번 없이 개근했고, 재수 없이 대학을 수능점수에 적당한 곳에 어렵지 않게 들어갔다. 대학 1년 다니며 그 당시 사회 통념에 어긋나지 않게 학고를 맞고 군대를 다녀왔으며 그 동안 집은 IMF 시대의 고통(나는 몰랐던. 군에서 집 번호가 3,4번 바뀌었다. 그래도 난 몰랐다.)을 겪고 있었다. 군 제대 후 모두들 그랬던 것처럼 무척 어려웠고 집안 분위기 또한 아슬아슬했다. 복학까지 남은 10여 개월동안 많은 아르바이트를 거치고 여자친구도 생겼다. 복학 후 복학생이 그러듯이 성적 장학금 세, 네번이나 받아보고 졸업하고. 지금보다는 못하지만 당시도 만만치 않았던 취업난에 1년간 백수 생활을 지내다 회사에 9년동안 꼬박꼬박 다니고 있다. 나름 숙제를 잘 풀어낸 학생이지만 실체 없는 평균적인 삶일 뿐이다. 도대체 나는 어디에 있는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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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들 고유한 삶을 살아가지만 결국엔 평균에 수렴하는 삶을 살아가고 만다. 나는 아니라고 하지만 결코 피해갈 수 없는 삶의 함정에 빠져버린다. 그 순간은 모호하다. 사는 게 삶의 이유가 되어버린 순간 평온하고 단순하던 직선성의 삶은 삼차원의 미로가 되어버린다. 순간 당황하지만 이 미로에서 빠져나가야만 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 미로 안에서 평온하게 살면 되는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나는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 꼭 어디로 가야하는 건가?



나는 다시 사랑을 하지 못할 것 같다. 하지만 어느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는 결혼을 했을 것 같다. 이것도 사회가 내게 준 숙제이니까. 나는 평범한 학생이고 그 숙제를 풀어가겠지. 12년의 개근이 내게 남겨준 것은 없다. 보상은 없고 기록만 남았다. 의미없는 시간은 불과 수 줄로 압축되고 그만큼 빠르게 늙어간다. 의미있는 순간은 그보다 많은 시간으로 재생된다. 5분의 경험도 내게 의미가 있다면 무한히 늘어나고 그만큼 성장하게 된다.

 

내가 왜 이렇게 불확정적인 걸 확정적으로 쓰는지 모르겠다. 재수없어.



숙제장에 적힌 목록들을 보고 하나 하나 체크하며 늙어 사라지는 일만 남는다. 인생이 허무해진다. 이제 숙제장을 치우고 새 노트하나 꺼내서 내 이야기를 써 보자. 내 삶을 걸고 내 삶을 사는거다. 잃으면 어쩔 수 없다. 잃어도 잃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딸 것도 없다. 어차피 1회용 아닌가. 나무젓가락 잘 쪼개 써 봐야 1회용이다. 그걸로 뭘 먹느냐 혹은 그걸 버리고 쇠를 녹여 튼튼한 젓가락을 만들 것이냐는 나의 선택이다. 어떤 자세로 먹느냐도 중요하려나.


내가 주식에서 돈을 왕창 따고 옵션에서 왕창 잃었을 때. 이런식의 문장으로 나를 위로 했다. 셀프 자기계발서.  ‘날개를 쭉 펴고 바람을 타자. 한 쪽 방향성에 매몰되지 말고 양쪽 모두 생각을 열어두자. 힘내자. 다시 날 수 있다!’ 결론은 한 쪽 방향으로 잃던 거 양방으로 털려서 기존보다 두 배 빠른 속도로 계좌는 깡통에 수렴했다.



아무튼 요즘 골목길이 없어지고 있다. 불이 나면 소방차가 다니지 못하니 위험한 것이라고 불만 나면 뉴스에서 난리다. 그러니 얼른 다 밀고 큰 길, 안전한 길 만들자고들 난리다.(소화전 많이 만들어라. 그런 골목마다 소화전 많이 만들라. 그럼 되잖아!) 이제 그만 할 법한데 내가 로또 사듯 그들의 허황된 욕망에도 리밋은 없나보다. 될 때까지 하려나보다. 하고나면 뭐 할까를 이미 해 본 놈들이 보여주고 있어서 겁나 짜증나기도 하고.



골목길이 없으면 잘게 질러가기나, 잘게 돌아가기가 불가능하다. 강남에서 길 한번 잘못 들면(물론 잘못 들기 힘들지만) 그 막히는 길을 크게 크게 돌아가야 한다. 강북에서 길 잘못 들면(물론 아닌 경우도 있겠으나) 대충 방향보고 작게 작게 몇 번 틀면 제 길 나온다. 갈 수록 사람들은 스스로.... 아... 씨.. 토요일 밤이다. 그만해야지. 같은 얘기 또 하고 또 하고. 술 마셨나. 커피 마시고 있음.  난 이번 주 로또를 사 놓았다. 이걸 맞춰보기 전까지 난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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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투불패 이즈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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