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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03. 25. 월요일

너클볼러

 

 



편집부 주



 기사 곳곳에 스포일러가

매복해 있으니

주의를 요합니다.



스포일러에 대한 모든 책임은

무조건 필자에게 있습니다.


 




 

 

취업준비생에겐 일단 '직장'에 들어가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고, 목표다. 유일할 것만 같은 목표를 성취한 뒤 월급통장에 매달 따박따박 입금됨이 어색하지 않게 될 즈음, 그러니까 일반적으로 말하는 레알 직장인(월급통장에 찍힌 액수보다 불만의 크기가 더욱 커지는)이 된 후에는 자연스레 꿈꾸게 되는 몇 가지가 있다.



(내가 다니는)회사가 졸라 성장하거나, (그게 아니면) 졸라 좋은 회사로 이직을 하거나, (그게 여의치 않으면) 자신에 대한 대접이 마구 융숭해지거나, (그것도 아니면) 자신이 속해있는 조직이나 부서가 상식적이거나 합리적으로 바뀌는 것이다. 하지만 네 가지 모두 여의치 않음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 꿈들이 부서져 떨어져나간 틈을 메우는 데에는 '로또'만큼 간편하면서 허망한 것도 없다. 간편한 만큼 확률은 졸라리졸라 떨어지는 법이니깐.



그렇다고 마냥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얼마 전 뜨문뜨문 연락하고 지내던 직장선배는 10여년 동안의 중소기업생활을 정리하고 이름만대면 모르는 게 이상할 정도의 (거)대기업으로의 이직에 성공했다. 7년 차 과장이라는 자신의 처지를 고려해 팀원들의 피를 '쪽쪽' 빨아 드시는 것 대신 스스로 묵묵히 자신을 일을 해나가는, 이름만대면 알만한 대형상사의 팀장인 오과장이란 분도 있다. 게다가 오과장이란 양반은 계약직인 말단 직원을 세심히 배려하고, 그가 하는 작은 말에도 귀를 기울이신단다. 그야말로 '드림컴츄르'. 그래 우리라고 안되기만 하라는 법만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직장선배의 이직을 내게 알린 제3자에게 나는 '원하던 것이었겠지만 적응하기 쉽지 않을 거예요'라 비관적인 답을 전했다. 그리고 일개 팀원시절, 누구든 꿈꿨을 팀장 '오과장' 이야기는 윤태호작가의 '미생'에서 등장하는 상상의 캐릭이다. 문득 선배가 이직을 해도, 내가 속해 있는 팀의 팀장이 오과장이었어도 뭐 그렇게 달라질까 싶었다. '너 나하고 일 하나 같이 하자'는 싸구려 멘트로 이자성(이정재)을 꼬득여 국내 최대 범죄조직인 골드문에 잠입시킨 수사기획과 강과장(최식민)이 '이제 그만하자'는 이자성의 요구에 '아무것도 달라지는 건 없다'고 대답했던 것처럼 말이다.


생각해보니 그렇기도 하다. '아무 것도 달라지는 건 없다' 영화 '신세계' 얘기면서 우리가 사는 '세계'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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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 수사 기획과 강과장은 신입경찰 이자성을 국내최대범죄조직인 '골드문'에 조직원으로 잠입시킨다. 이자성은 성실하게 조직의 4인자로 우뚝 서지만, 뿌락치에 대한 조직 내부의 의심과 감시는 서서히 이자성의 목을 조여오고, 당연 이자성은 그런 생활을 하루빨리 청산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강과장은 '이번이 끝'이라는 구라로 이자성과의 약속을 번번히 어긴다. 골드문의 회장이 뜬금없이 세상을 뜨자 강과장은 이자성을 통해 후계자 결정에 개입하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강과장은 경찰 후배인 이자성을 끊임없이 감시하며 조종하려 들지만, 골드문의 2인자 정청(황정민)은 이자성을 자신의 혈육처럼 믿고 아낀다. 그렇게 상황은 서서히 조때간다.



영화 '신세계'는 경찰은 조직에 정보원을 심고, 조직 역시 경찰에 조직원을 심어 서로 한판 도장깨기를 벌인다는 무간도의 역지사지 쌈마이 스토리에서 '경찰에 잠입하는 조직원'의 이야기를 도려낸 뒤 '졸라 날고 기어 봐야 세상에 바뀌는 없다'는 현실을 구겨 넣었다.



강과장은 거대범죄조직이 지덜리끼 칼부림하다 결국 권력이 컨트롤 가능한 허접한 조직으로 전락하는 평온한 세상을, 이자성은 하루빨리 조직에서 빠져나가 임신한 아내와 조용히 사는 평범한 세상을, 장청을 비롯한 쌈마이 패거리덜의 수뇌부덜은 대장의 부재를 틈타 한몫 챙길 수 있는 알흠다운 세상을 꿈꾼다. 이렇게 모두 지덜만의 신세계를 꿈꾸지만 그 누구도 신세계를 마주하진 못한다. 진영의 논리, 선과 악의 이분법 영화 안에서는 모두 무의미해 진다. 쌈마이(폭력)는 나쁜 넘이고, 짜바리(공권력)는 더 나쁜 넘이다. 그들이 거창하고 폼 나게 칼부림의 해도, 지랄 염병 작전을 벌여도 강과장이 씨부린 것 처럼 '아무 것도 달라지는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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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짜바리

 

 

그게 어디 쌈마이, 짜바리들의 얘기 뿐일까 싶은 거다. 뜬금없이 선배와 오과장을 들먹거렸던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우선 대기업 이직이라는 꿈을 이룬 선배의 눈앞에 신세계가 펼쳐질지 의문이다. 나이 마흔에 새로운 조직 문화에 서슴없이 익숙해 질지, 10여 년간 중소기업에서 몸담으며 경험한 대기업 횡포의 피해의식이 가지고 가해의 일분에 가담할 수 있을지, 그런 것들이 대기업의 호봉과 복지와 혜택으로 아무렇지 않게 치환이 될지 모르겠다. 아니 치환이 되고도 남을 남는 장사일지 모르겠다. 선배 앞에 놓인 신세계에 느낌표가 아닌 의문부호를 붙일 수 밖에 없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미생'의 오과장도 마찬가지. 힘들게 취업에 성공해 들어간 직장의 한 상사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진급을 해 팀장이 되고 책상을 팀원들이 모두 보이게끔 배치하는 이유는 자신이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이유를 잊지 말라는 뜻이다'라고...



하지만 그 상사 역시 팀원들을 보고 앉아 늘 지 안위만 챙기기 일수였다. 직장인들이 미생의 오과장에 열광하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일 게다. 바라는 캐릭이지만 현실에는 없는... 하지만 그런 캐릭이 있었어도 뭐가 달라질까 싶은 거다. 이자성과 자신이 심은 후배들의 위험에 일말의 후회를 맛본 강과장이 사표를 내도 윗대가리 고국장이 '네가 없으면 내가 그걸(쁘락치 컨트롤) 어떻게 하냐'며 반려하면 그만이다. 그렇게 강과장은 늘 썩은 실내낚시터(접선장소)를 전전하는 동안 고국장은 대형세단 뒷자리에 앉아 맛난 점심이나 처묵으러 댕긴다. 역시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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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혈 오과장. 일명 사기캐릭

 

 


로또 당첨은 더욱 그렇다. 오죽하면 '10대 복권 비극'이라는 것도 있다. 그 중 1위는 바로 그 유명한 3330억에 당첨된 잭 휘태커. 돈을 쓰고, 고소를 당하고, 도둑을 맞고, 가족들이 죽고, 사기를 당하고... 결국 4년 만에 거지신세가 됐다. 2년 전 영국 최대 복권당첨금인 2750억을 받은 부부를 많은 사람들이 걱정스런 눈초리로 바라보았다는 것은 결코 웃자고 하는 소리만은 아닐 테다. 그러니 복권에 당첨된다고 해서 신세계가 무한 내 앞에 펼쳐져 있을 거란 기대를 아싸리 접는 게 좋을 수도 있다.



영화 신세계는 쌈마이에게나, 우리에게나 신세계는 없다는 건 매한가지란 사실을 친절히 알켜준다. 장청(황정민)의 캐릭을 제외하고는 다들 밋밋하고, 이야기 역시 시종일관 숨막히거나 졸라 새롭지는 않지만 '아무것도 변하는 것은 없다'는 비참한 화두를 제법 근사하게 던져준다는 점에서 우울하지만 나쁘지만은 않다.



잠시 생각해보자. 정권이 바뀌고 뭐가 그리 바뀌었는지 말이다. 그건 박근혜, 이명박 뿐만 아니라 노무현, 김대중이란 이름에도 함 던져봐야 하는 질문이다. 이자성에게 좋은 넘은 같은 경찰인 강과장이 아닌 조직의 2인자 정청이었듯 말이다. 세상은 이렇게 졸라 빡시게 버티고 서있는데 우리들은 누군가에게 너무나 쉽게 우리들의 기대를 위탁하는 건 아닐지 지금 이 시점에서 한번쯤은 찬찬히 고민해 볼 일이겠다 싶다.

 

 

 



PS1. 이번 역시 한동원횽이 적정관람료를 매겨주지 않아 시작된 것임.


PS2. 마침 이 영화를 봤기 때문이기도 하고.


PS3. 그나저나 미생 6편은 언제 나오는 거냐. 기다리다 죽겠다. 

 


 

 

 

 

 

너클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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