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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10일.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보름이 된 날.


벌써 땅 속에 평안히 묻혔어야 했을 그의 시신은 여전히 병원에 안치되어 있었다. 서울대학교 병원 장례식장 3층에 마련된 그의 조문실. 그곳에서 만난 친구의 얼굴은 많이 지쳐 보였다. 지난 11월 총궐기대회 이후 그녀는 수없이 무너졌을 가슴을 부여 잡고 여전히 그 자리를 지켜 왔더랬다. 그 뜨거웠던 여름, 내려쬐던 햇살 아래에서도 청와대 앞에서 일인 시위를 계속 해왔던 그다. 지난 여름 만났던 친구의 얼굴은 생각보다 굳건해 보였다. 잘 이겨내는 듯 했다. 그래서 오히려 내가 더욱 안심하고 시덥지 않은 우스개소리까지 건낼 수 있었더랬다. 하지만 아버지의 사망 이후 마주친 그녀의 얼굴은 낯설었다. 내 짧은 글로는 아무리 해도 표현해 낼 수 없을 것만 같은 표정.


그의 낯빛은 약간 상기된 반면 두터운 벽으로 가려져 있는 듯 그 무엇으로도 깨트릴 수 없을 것 같은, 슬픔만은 아닌 무언가가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것은 결연한 분노가 아니었을까 한다. 그 모든 것 위에는 피곤함이 물들어 있었지만 친구의 눈빛만은 계속해서 반짝거렸다. 함께 존재할 수 없을 것 같은 것들이 복합적으로 섞여 있는 그녀의 얼굴 앞에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우물쭈물대던 나를 보고 친구는 오히려 손을 잡아 주고선 "와 줘서 고맙다"고 했다.  어쩐지 마음이 놓였다.


위로와 응원을 하겠다며 찾아간 나는 도리어 친구에게 위로를 받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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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3일

고 백남기 어르신이 쓰러진 233일째

청와대 앞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던 친구, 백도라지

(사진 제공 : 전성규)


내가 그곳에 발걸음했던 것은 결국 나의 부채감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한 시도였을 뿐임을 깨닫는다. 일주일 간의 짧은 한국 일정을 마치고 다시 프랑스에 돌아왔다. 고 백남기 아버님 조문 이후 내게는 세월호의 노란 리본 말고도 한국의 비참한 현실을 성토하는 물건이 하나 더 생겼다. '우리가 백남기다'라고 쓰여진 하얀 색 배지. 배지 위에는 벌써 한 달 전에 삶을 마감하고도 저세상으로 가는 의식을 시작도 하지 못한 아버님이 함박웃음을 머금은 채, 살아 계시던 그 모습 그대로 삽을 들고 꽃길 위에 서 있다.


지난번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 대표, 예은이 아버지 유경근 씨가 파리에 오셔서 했던 말씀이 떠오른다. 그는 그저 노란 리본을 차고 길을 가는 사람들만 보아도 힘이 난다 했다. 그만으로도 얼어붙은 한국 사회에서는 쉽지 않은 행동임을 안다 했다. 사실 한국에서 멀리 떨어진 프랑스에서 노란 리본과 고 백남기 아버님의 모습이 담긴 배지를 차고 다니는 것은 한국을 사는 이들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내가 배지를 차고 다닌다고 삿대질을 할 사람도 없을 뿐더러, 나의 모습을 그들이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하기에 이 역시 어쩌면 무기력한 자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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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병원 장례식장에서 얻어 온 배지

'우리가 백남기다'

시민의 생명과 삶을 보호하지 않는, 그래서 존재 가치 제로의 국가를 모국으로 하는

우리는 모두 운이 좋아서 살아 있을 뿐인 백남기다.


프랑스로 돌아온 다음날, 하얀 배지를 가슴에 차고 파리의 중심부, 2구에 있는 한국 슈퍼에 들렀다. 가난한 유학생의 삶에 걸맞는 라면 따위를 고르고 계산대에 올려 놓았다. 물건을 주섬주섬 챙기고 있을 때, 계산을 해 주던 아르바이트 생이 내게 물어 왔다.


"그 배지 어디에서 났어요?"


그 때부터였다. 내가 프랑스에서 친구를 위해, 친구의 아버님을 위해, 그리고 썩어 문드러져 가고 있는 사회를 살고 있는 내 가족과 친구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딴지일보 프랑스 특파원이라며 각종 집회에 취재를 나가고 파리의 소식을 한국으로 전하기는 했지만 나는 단 한 번도 그러한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거나 무언가 일을 만들어 본 적이 없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통해, 혹은 딴지일보 지면을 빌려 나의 생각을 글로 적어본 적은 있지만, 또한 한국어 수업에서 프랑스 학생들에게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발표를 시켜본 적은 있지만 내 가슴 속의 생각들을 적극적으로 행동에 옮긴 적은 없었다. 나는, 비겁했다.


뭔가를 하고 싶었다. 아니, 해야만 했다. 그래서 고민했다.


그리곤 한국에서 얻어온 배지의 이미지 파일을 얻어 프랑스에서 제작해 버렸다.


일은 쳤는데 이제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가 관건이었다.


기막힌 우연으로 ‘파리 한국 영화제’가 바로 코 앞이었다. 영화제 측에 연락해서 행사장 앞에서 집회를 할 것은 아니고 ‘조용히’ 배지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싶다고 했다. 오케이란다. 너무 흔쾌히 오케이를 날려 주셔서 내가 더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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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25일,

제11회 파리한국영화제의 문이 열렸다

(사진 제공 : Cinéma coréen 페이스북)


샹젤리제 대로 133번지. 한국영화제 행사장 앞에 도착했다. 축제에 대한 설레임으로 샹젤리제는 더더욱 술렁이고 있었다. 주섬주섬 챙겨온 배지와 복사물을 내어 놓자 마자, 몇 명의 한국 사람들이 나를 알아 보고 와서 배지를 받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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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호로 배지를 받아 가신 파리 유학생 김다진 씨

"항상 고맙고 죄송합니다. 타지에서 함께할 수는 없지만

끝까지 응원하고 기억하겠습니다.

힘내세요 ! 같이 하겠습니다 !"

그가 한국 시민에 전하는 메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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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백남기 어르신 배지와 함께 나누어 준 세월호의 노란 리본


한국영화제의 줄이 길어지기를 기다리며 아직 제대로 개시도 하기 전, 한 사람이 나를 찾았다. 프랑스 유학생 금 씨는 어머니께서 보내 주셨던 세월호 리본이 남아서 가지고 왔다며 리본 한 봉지를 내밀었다. 작년 파리에서 있었던 <다이빙벨> 상영회에서 나누어 주었던 그 노란 리본이었다. 내 가방에 달려 있는 그 노란 리본 역시 금 씨의 어머니의 손끝에서 만들어져 한국에서 프랑스까지 건너 온 것. 감사했다.


어떤 교민께서는 내게 초콜렛까지 주고 쿨하게 가셨다. 따뜻한 마음이 전해 왔다. 타지에서 내 나라의 사태를 바라보는 마음은 말 그대로 고구마 백만 개. 답답한 마음과 함께 현실 속에서 그다지 무언가 할 수도 없는 무기력감이 온 몸을 휘감는다. 처절한 심정으로 한국 사회를 지켜 보며 가슴을 치던 이들에게 '우리가 백남기다'라고 적힌 배지가 조금이라도 위안을 주었기를.


한국 교민들에만 배지가 간 것은 아니다.  한국영화제는 말 그대로 한국 영화에 관심이 있는 모든 이의 축제다. 프랑스인 관객의 비율이 한국 관객보다 더 높다. 프랑스인들 역시 배지 달기에 동참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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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한국영화제 포토그래퍼 아난다 씨

"이런 소식에 마음이 아픕니다.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Navrée d’apprendre de telles nouvelles. Beaucoup de courage… !)

아난다 씨의 메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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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를 보러 왔다가 흔쾌히 배지를 달고 브이 자까지 해 주신 페살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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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한국에서 일어난 일이야 ? 북한이 아니고?"


프랑스인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질문. 사실 이제는 놀랍지도 않다. 세월호 사건부터 고 백남기 어르신에 대한 경찰의 테러 사건까지 일련의 집회에 취재를 나가며 프랑스인들에게 수없이 들어 왔던 말이다. 처음으로 어쩌면 한국이 북한보다 더 독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주주의’라는 탈을 쓴 ‘사이비’의 목소리에 좌지우지되어 온 ‘사이비’ 정권 하에 있는 현재의 한국. 이러한 혼란스러운 정국 하에서 '우리가 백남기다'라고 외치는 것, 공권력에 의해 목숨을 잃은 고 백남기 씨야 말로 현재를 살아가는 한국 시민의 처절한 삶의 대변자에 다름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살아 있어도 사는 것이 아닌 지금의 한국 사회의 풍경을 전적으로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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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 번역)

진실한 조의를 표합니다. 이 싸움에 힘을 내기를 바랍니다.

우리 사이에는 수 천 킬로미터가 있지만 마음만은 당신들과 함께 합니다.

당신들의 고통과 싸움을 꼭 이겨 내기를 바랍니다. 힘내세요 !

조의를 표합니다. 힘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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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 번역)

진실이 밝혀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유가족을 응원합니다.

가족들이 마땅히 치루어야 할 장례의식을 행할 수 있기를 바라며,

이 비극의 전말이 하루 바삐 밝혀져 한국의 민주주의가 살아 남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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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 번역)

조의를 표하며 여러분의 싸움에 응원을 보냅니다

이러한 소식을 알게 되어 마음이 아픕니다. 응원합니다.


흔쾌히 배지를 가슴에 달고, 오히려 내게 고맙다고 이야기해 준 많은 사람들이 고 백남기 어르신의 유족과, 한국에서 행동하는 시민들에게 보내는 메세지다. 진실이 밝혀지기 바라는 마음, 현장에서 직접 힘을 보태지 못하는 미안함과 고마움이 담긴 사람들의 글 속에서 나는 또 위로를 받는다.


시민은 사회보다 위대하다. 나의 말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주워 들었던 말이다. 당시에는 그냥 그런가 보다 했던 말이 오늘은 가슴을 쳤다. 어떤 이에게 시민은 그저 그 위에 군림하는 타자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슬픔을 함께 느끼고 타인의 불행을 위해 함께 싸울 수 있는 시민은 그 위에 군림하려는 자들보다, 또한 그들의 지배로 이루어진 부조리한 사회보다 훨씬 더 위대하다.


사실은, 무섭다. 장례식장에서 보았던 친구는 슬퍼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10월 26일 자정을 기해 경찰의 부검 영장은 그 효력을 잃었다. 하지만 고 백남기 어르신의 시신은 여전히 병원에 머물러 있다. 그녀는 여전히 자신의 엄청난 슬픔을 표출하지도 못하고 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사건이 종료되었을 그 때, 이 사건이 명명백백 밝혀진다 해도 친구가 그때까지 미루어 두었던 슬픔이 한꺼번에 밀려 올 때, 과연 그녀는 자신의 슬픔을 감당할 수 있을까 두렵다.


한국을 떠나와 제3자까지는 아니더라도 제2.5자 정도밖에 되지 않는 교민의 입장에서 한국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이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와 응원의 마음을 전한다.






아까이 소라

트위터 : @candy4sora


편집: 딴지일보 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