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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 경 기사를 쓰고나서, 솔직히 원유에 대한 관심을 거의 끊었다. 이미 OPEC의 원유감산안 타결이란 대형 호재가 발표되어 텍사스산 WTI 원유 가격이 55불 언저리에 닿은 데다가, 여기서 가격이 더 올라갔다간 미국 셰일가스 뿐만 아니라, 오일샌드, 딥워터 같이 생산 단가가 비싼 곳에서도 석유가 쏟아질 우려가 있었다.


원유가격이 거기서 더 크게 오를 것 같지가 않았다. 그래서 들고 있던 원유포지션을 다 정리했다. 실제로, 원유 가격은 12월 전후로 고점을 찍고, 그 이후론 거의 50불에서 55불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호재가 터져 나오면, 값이 고점 근처에 갔다가 다시 악재가 나오면 50불까지 떨어지는 패턴의 반복이었다. 왜 그랬는지는, 후술하겠다.


그러다가 지난 6월 중순 국제유가가 이 패턴을 깨고 42불까지 떨어졌다. 재미 있는 건, 이 국제유가 하락이 OPEC 감산 연장뉴스 직후에 이루어졌다는점이다. 작년 11월 30일 합의에서 OPEC과 러시아는 6개월간 한시적으로 감산을 하기로 결의 했는데, 국제유가가 횡보를 거듭하자, OPEC이 올해 5월에 모여서 감산을 9개월간 연장하기로 결의한 것이다. OPEC이 떨어지는 유가를 떠받치기 위해 감산을 연장한 건데, 가격은 정반대로 움직였다.


시바 왜?


일단, OPEC의 감산 연장 조치를 많은 투자자들이 이미 예상했다라는 점이다. 작년 내내 감산합의를 하겠다고 서로 그렇게  지지고 볶았는데, 그 결의안을 꼴랑 6개월만에 쫑내기엔 많이 아쉬웠던 거다. 결정적으로, 국제유가가 작년 11월 이후 약세를 면치 못했는데, 여기서 감산을 중단했을 경우 국제유가는 폭락할 것이 명확했다. 일부 투자은행에서는 감산 연장이 처리되지 않으면, 국제유가가 2-30불 대까지 다시 떨어질 수 있다는 협박성 리서치도 내놓았다. 정말 유가가 폭락하면, 산유국 모두가 잣 되는 셈이니, 앵간하면 서로 잘 합의하겠지라고 투자자들은 예상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이번 감산안은 작년 11월 “깜짝” 합의처럼 뭔가 놀랄 만한 게 전혀 없는 발표였다.


오히려, 국제유가가 이렇게 떨어지니 OPEC이 좀 더 과감한 조치를 취했어야 하는데, 면피용으로 기존 감산을 유지한 게 아니냐란 시각도 존재했던 것 같다. 더 나아가서, 산유국들이 국가재정을 희생해 가며 감산에 동참해 줬더니, 유가는 오히려 떨어지는 등 효과가 전혀없자, 빡친 OPEC 멤버들이 서로 대판 싸운 거 아니냐란 루머도 돌았다. 즉, 추가적인 합의가 전혀 불가능해진 상태에서, 마지막으로 겨우 짜낸 게 기존 합의를 연장한 게 아니냐란 좀 삐딱한 시각이다. 이 말을 바꿔 말하면, OPEC은 국제유가시장에서 가격 통제력을 상실했단 말이 된다.


음. 어쩌다 이 지경이 된 것인가?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공급과잉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OPEC이 힘들게 줄인 공급을, 미국 셰일가스 기업들이 고스란히 메꾸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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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그래프는 OPEC의 원유 생산량과, 동기간 미국에서 원유를 생산하는 유전 숫자를 비교한 것이다. OPEC이 감산을 하고, 국제유가 가격을 떠받쳐 주자, 미국 셰일게스 기업들은 이때다 하고 유전숫자를 급격하게 늘렸다.


두 번째 그래프는 미국 내 유전 수(rig count)와 미국 원유생산량을 비교한 것인데, 2016년 상반기 유가가 저점을 찍을 때 같이 하락했다가, OPEC이 감산에 나서면서 유가가 회복세를 보이자 미국내 유전과 원유생산량이 함께 미친듯이 올라간 것을 볼 수 있다.


가격이 올라가니 생산량이 늘어난다 라는 건 당연한 것처럼 들리지만, 실제론 그렇게 간단치가 않다. 원유가 무슨 바에 맡겨둔 양주도 아니고 필요 없을 때 킵 해놨다가, 필요할 때 맘대로 뽑을 수 없기 때문이다. 원유를 생산하려면 지속적으로 유전탐사를 해야하고, 유전이 발견되어도 이걸 개발을 해야 원유가 나온다. 게다가, 한 번 개발이 되면 유가가 아무리 똥값이라도 계속 생산을 할 수밖에 없다.


근데 미국 셰일가스는 이걸 해냈다. 그것도 초 단기간 안에, 국제유가 회복을 능가하는 속도로 원유를 생산한 것이다. 일단 미국 셰일 기업들은 유가 침체기 동안 살아남기 위해 처절하게 몸집을 줄였다. 그 대신 한층 업그레이드 된 유전개발 기술을 적극 현장에 도입해서, 생산단가를 40불 초반으로 낮추는 데 성공했다. 지난 몇 년간의 유가하락이 오히려 이들 기업의 생명력을 더 강하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국제유가가 오를 때마다 선물계약(지금 돈을 땡겨 받고, 미래에 고정된 가격으로 원유를 넘기는 계약)을 적극 맺음으로써 바로 이익을 실현해 버렸다. 이때 발생된 수익은 추가 유전개발에 투입시킴으로써, 원유생산량 증가를 더욱 촉진시켰다.


오로지, 생산, 생산 그리고 생산.


이 쯤 되면, OPEC 입장에서는 이들 셰일기업들이 강한 생명력과 번식력을 모두 갖춘 바퀴벌레처럼 느껴질 것 같다.


근데 문제가 하나 더 있다. 이 셰일 기업들은 국영, 혹은 공기업이 생산을 전담하는 대부분의 OPEC과는 다른, 일반 사기업이다. 국영 기업들은 정부의 정책에 따라 움직이지만, 이들 셰일 기업들은 철저히 오늘의 이익만을 쫒는 무서븐 놈들이다. 그러니, OPEC 입장에서는 일일이 기업들을 찾아가면서 카르텔에 동참하도록 매수할 수도 없고, 같이 장기적으로 유가를 조작하자고 설득할 수도 없다.


오죽하면, 올해 초 셰일가스의 대부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나서서 "아... 니네들 이렇게 원유 뽑아내면 우리 다 디지는 수가 있어!" 라고 경고하기까지 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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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링크)

물론, 돈 독이 오른 셰일 기업들이 이 경고를 들었을 리 만무하지만


이런 셰일가스 생산 증가에 더해, 산유국인 나이지리아와 리비아에서는 원유생산량이 급격하게 늘었다. 나이지리아와 리비아, 양국 모두 내전 등으로 인해 원유생산 능력이 감소했는데, 이 상황을 OPEC이 받아들여 작년 11월 감산협정에서 면제를 받았다. 문제는, 얘덜도 올 한 해 동안 원유생산 능력을 많이 회복해서, 원유공급을 마구 늘렸다는 점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감산에 나선 OPEC 국가들은 슬슬 짜증이 날 수밖에 없다. 기껏 과잉공급 해소를 위해 생산량을 낮춰 놨더니, 미국 셰일 기업이 생산량을 늘렸고, 나이지리아와 리비아까지 숟가락을 얹고 있다.


그러자, 산유국 중에서 무존재감을 담당하고있는 에콰도르가 “못살겠다, 시바!”를 시전했다. 국가경제 상황이 안 좋고, 유가도 낮아서 힘드니, 감산협의안에 더 이상 따를 수 없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해 버린 것이다. 어차피 원유생산량이 미미해서, 시장에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스스로 주장했지만, 어쨋뜬 감산협의 후 최초의 공개 탈퇴라는 나쁜 선례를 남겼다. 마지막으로, OPEC 넘버 2인 이라크도 아직까지 약속한 감산을 안 지킴으로써 은근슬쩍 개기고 있는 중이다.


상황이 이렇게 안 좋으니, 유가 트레이더와 헤지펀드들은 OPEC이 더 이상 추가적인 조치를 취할 여력이 없다고 보았고, 이는 국제 유가가 6월에 42불까지 떨어지는 원인이 되었다.


음... 나는 이 가격 하락의 우려가 좀 과장 되었다고 보고, 최근에 다시 국제 유가에 투자를 하고 있다(이미 한 달이나 지난 얘기이니, 절대 이 말을 듣고 투자하진 마시라).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내가 원유를 사고 팔 때, 지키는 딱 한 가지 원칙이 있는데, 그것은 “사우디한테 개기지 마라”이다. 사우디는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원유를 가장 싼값에 찍어낼 수 있는, 예비능력을 갖춘 나라다. 그리고 이를 무기로, 오일쇼크 혹은 덤핑으로 국제유가를 쥐고 흔든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사우디가 2014년에 증산을 선언하자, 유가는 폭락했고, 작년에 감산에 동의하자, 국제유가는 다시 급등했다.


사우디가 이빨이 많이 빠졌다고는 하지만, 어쨌거나 나는 비전문적인 지식만을 가지고 투자를 하고 있기 때문에, 절대로 사우디의 의중과 반대되는 투자는 하지 않는다. 이는 사실 이성보다는 본능, 혹은 믿음에 가깝다. 그리고 내가 정확히 이해했다면, 사우디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원유가격을 원할 것 같다.


당장 국제유가 하락으로 외환보유고가 줄고, 재정적자가 치솟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영석유기업인 아람코를 내년에 IPO(:Initial Public Offering, 비상장기업이 유가증권시장이나 코스닥시장에 상장하기 위해 그 주식을 법적인 절차와 방법에 따라 주식을 불특정 다수의 투자자들에게 팔고 재무내용을 공시하는 것)를 통해 상장시킬 계획을 갖고 있다. 작년부터 유가회복을 위해 감산에 전향적으로 돌아선 것만 봐도, 사우디는 지금보다 높은 유가를 원할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이쪽에 베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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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사우디 혹은 OPEC의 목표는 애초에 셰일가스가 아니었다고 본다. 100불을 웃돌던 국제유가가, 작년에 20불대까지 떨어졌던 것은, 사우디를 위시한 OPEC 및 러시아가 미친듯이 원유생산량을 늘렸기 때문이다. 원유생산으로 먹고 사는 이들이 왜 스스로 밥그릇을 깨가면서 국제유가를 바닥까지 떨어뜨린 것일까?


만약, 늘어나는 셰일가스 생산량을 꺾기위해서 였다면, OPEC은 완벽하게 패배한 게 된다. 생각보다 끈질기게 셰일기업들은 버텼고, 파산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게다가, 국제유가가 50불을 회복하자마자 이들은 생산량을 유가 폭락 이전시점까지 거의 복구했다.


여기서부터는 순전히 나의 추측인데, 나는 사우디와 OPEC이 셰일가스 기업들이 잘 버틸 걸 알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셰일기업이 이렇게까지 빠르게 생산량을 회복할지에 대한 시점은 몰랐을 수 있지만, 유가가 회복되면 생산량을 곧 복구시킬 능력이 있다는 건 알았다고본다. 어쨌거나 셰일가스 기술이 개발되고, 미국에서 적극적으로 상용화된 시점에서, 세일가스는 OPEC도 거스를 수 없는 조류였다.


그럼 왜, OPEC은 제 살을 깎아 먹으면서 유가를 떨어뜨렸는데?


난 애당초 산유국들의 타겟이 비셰일 에너지기업들이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일시적인 유가하락이 셰일기업들을 망하게 할 순 없지만, 셰일보다 훨씬 높은 비용으로 원유를 생산하는 다른 에너지기업은 사정이 좀 다르다. 특히, 해양플랜트의 경우 천문학적인 탐사와 개발비용이 투입된다. 북극 및 심해 깊은 곳까지 탐사선을 보내야 하는 데다가, 원유를 발견해도 이를 개발하기 위해선 높은 비용을 들여 플랜트를 건조해야 한다. 이를 이동시키고, 또한 가동하는 데까지 막대한 비용이 들 수밖에 없다.


이런 단점에도, 유가가 100불을 찍을 당시 거대 에너지 기업은 앞다퉈 이 시장에 진출했는데, 가장 큰 이유는 보다 많은 원유를 장기간에 걸쳐 안정적으로 생산해 낼 수 있기때문이다(셰일 유전은 최근 horizontal 면적이 넓어지는 등, 규모가 점점 커지곤 있지만, 상대적으로 작고, 고갈 속도역시 빠른 편이다). 셰일이 단기간 동안 수익을 최대화하는 단기투자라면, 해양플랜트는 장기간 동안 안정적으로 원유를 뽑아냄으로써 높은 초기 비용을 상쇄하는 장기투자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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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그래프는, 유전개발 프로젝트별 생산량대비 예상 손익분기점이다.  

 

예를 들어, 앙골라 딥워터의 경우 하루에 무려 12만 배럴을 뽑아낼 수 있지만, 유가가 75불 이상이 유지되어야만 수익을 낼 수 있다. 지금처럼 유가가 50불 언저리에서 왔다 갔다 하는 상황에서는? 당연히 생산 할수록 손해인 미친짓이다. 이미 높은 비용 속에서 무리하게 진행된 해양 플랜트 사업들은 막대한 손해를 보고 있다(적극적이었던 브라질과 국영기업 페트로브라더스가 고통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것도, 이미 많은 비용이 플랜트 건조 및 가동에 투입된 상태라, 쉽게 되돌릴 수도 없다. 유가가 60불 이상 오르지 않는 이상, 된통 물린 셈이다.


공교롭게도, 올해 하반기부터 유가가 높은 시절에 발행되었던 회사채(대표적으로 Sea Drill이 있다)들의 만기일이 돌아오고 있다. 해양 개발의 열을 올렸던 많은 기업들이 파산하거나, 훨씬 높은 이자비용을 내야 될 가능성이 지금으로선 매우 높다. 설사 유가가 다시 100불로 회복된다 하더라도, 이런 대형 유전은 앞으로 개발될 가능성이 별로 없다. 이미 사우디가 맘만 먹으면, 증산을 해서 유가를 다시 50불 대로 낮출 수 있다는 걸 입증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에너지기업들은 유전 탐사비용을 거의 반의 반토막 내놓은 상태이고, 향후 10년간 거대 유전 개발계획들은 대부분 취소된 걸로 알고 있다. 결과론적으로, OPEC은 셰일가스 기업들을 제거하진 못했지만, 해양개발이라는 잠재적인 위협을 제거하는 데는 성공했다. 셰일보다 높은 초기비용과 긴 투자기간을 요구하는 해양플랜트들은, 유가가 회복되더라도 생산량을 회복하는데 훨씬 긴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 구도가 만약 의도된 거라면, OPEC은 이제 전략적인 목표를 달성했으니, 공급문제를 해소시켜 유가를 서서히 끌어올린 뒤 그 시장을 셰일가스와 양분하면 된다. 물론, 그 시점이 정확히 언제가 될 지 나 같은 개미가 알 방법은 없긴 하다. 그래도, 최소한 OPEC이 가까운시일 내에 2014년 때처럼 인위적으로 생산량을 늘려서, 국제유가를 고의적으로 떨어뜨릴 이유는 없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원유공급엔 언제나 지정학적, 정치적인 위협이 존재한다. 당장 작년만 해도, 나이지리아에선 반군이 원유시설을 공격했고, 캐나다에선 산불이 나서 오일샌드 시설이 일시 정지한 바 있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 즉 갑자기 우리집 뒷마당에서 원유가 콸콸 쏟아지는 경우는 훨씬 드물다고 본다. 특히 지금처럼 새로운 탐사에 대한 투자가 줄어드는 상황에선. (좀 더 디테일하게 들어가면, 셰일 신규 유전들의 면적당 생산량은 계속 감소추세인 걸로 파악하고 있다. 국제유가가 좀 회복된 시점에서 가장 생산성이 좋은 넘들을 우선 개발했다고 가정하면, 앞으로 뚤릴 신규 유전의 생산성은 과거만 못할거라고 본다. 셰일의 단위 면적이 늘어나는 건 꽤 우려스럽긴한데, 이거 생각보다 리스크가 꽤 있다. 즉, OPEC의 감산량을 셰일가스가 메꾸는 데도 올 하반기 및 내년 상반기에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을 것으로 나는 예상한다)


모 그래서 나는 확률적으로 유가가 42불보다는 높지 않아야겠냐란 단순한 생각으로 지난달부터 유가에 재투자를 시작했다. 돈을 걸었으니 관련뉴스도 좀 더 자주 읽을 터, 흥미 있는 얘기가 있음 또 돌아오기로 하겠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냥 재미로 읽어주셨음 한다. 투자를 별로 권하진 않는다.






씻퐈


편집 : 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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