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2. 05. 금요일
옥상땐스
“화장대 좀 불편하다고 화장이 안 먹니? 어? 침대 불편해 봐라. 화장 다 뜬다? 너!”
텔레비전에서 가끔 볼 수 있는 모회사 제품 광고 대사이다. 이 광고를 볼 때 마다 개운하다.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자사 제품을 사야하는 이유를 분명한 메시지로 전달하기 때문이다. 선택과 결과의 분명한 인과관계로 인한 책임이 너의 몫이라는 여배우의 직선적인 위트는 다소 위악적이지만 뒷맛을 남기지 않는다. 광고 속은 화장이 뜬 사람들도 결코 실망할 필요가 없는 세상이다. 원인을 알고 있지 않은가?
보통 내 나이 기준으로 위아래 차이 많지 않은 어금지금한 친구들과 갖는 허름한 술자리에 부쳐지는 단골 주제 가운데 하나가 ‘세대’에 관한 것이다. 술자리 친구들의 세월이라는 것이 아직 두 세대 달력을 넘기기에는 한참 모자라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고 제법 나이 차가 난다 한들 그 시대의 엄한 시련이 모두 내 친구들에게만 덮친 듯 비슷한 처지이기에 견해가 크게 갈리지도 않는다. 유유상종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기껏해야 조금 젊은 흔히 말하는 ‘88만원세대’ 정도 되는 젊은이들의 한탄에 ‘우리도 힘들게 여기까지 왔다’는 소극적인 반항을 할뿐이다. 결국 바뀌지 않는 세상을 함께 원망하는 정도의 주정으로 끝나는 것이 수순이라 할 것이다.
물론 세상 살기가 왜 이리 힘들고 왜 이렇게 억울한 일들이 벌어지는가에 대한 각자의 음주 자문자답을 쏟아내기 시작하면 조금 사정이 달라진다. 곧잘 서로에게 덤터기를 씌우기도 한다. 내 나이 또래들의 ‘꼰대질’도 벌써 종종 볼 수 있는데 보통 이 꼰대질은 ‘우리는 그래도 돌멩이도 던져봤고 나름 사회 참여에도 고민했는데 요즘 어린 것들은 아니다’라는 내용으로 구성되는 듯싶다. 조금 어린 사람들의 반격도 결코 만만치 않다. ‘그래도 니들 살던 시기는 스펙 걱정, 취업 걱정 없던 시기니 돌멩이라도 던진 것 아니냐?’라는 질문이다. 사실 지금 88만원 세대보다 조금 윗세대는 어쩌면 마지막으로 개천에서 난 용이 있었을 지도 모를 세대이기는 하다. 그 용은 아마 ‘부동산’이나 ‘경제호황’이라는 날개를 달았을 것이다. 그 용이 지금에는 자신의 날개가 밀랍으로 붙었다는 걸 깨달았을까? 여하튼 아무리 술자리라도 이런 논쟁은 참 의미 없다.
그러면 이 질문은 어떤가? 술자리에서 좀 취한 젊은 친구가 ‘니가 돌멩이도 던지고 해서 만들어 놓은 세상이 이따위인데 우리보고 같은 짓을 해서 뭘 만들라는 것이냐? 그걸 또 하란 말이냐?’라는 울분을 내뱉었을 때 나는 무엇을 어떻게 대답해야할까? 그래도 바뀌었다고 말하기가 옹색하게 세상은 여전히 채 그대로다. 내 세대는 무엇을 했고 내 윗세대는 무엇을 했단 말인가?
어떤 결과가 내 행동과 특별한 인과 없이 부정적으로 나타났을 때 그리고 그 결과를 자신의 책임이라고 할 수 없을 때 보통 불운하다고 한다. 이 ‘불운’이라는 말이 내게 주는 연상은 의사의 진단에 어김없이 들어있는 ‘스트레스’와 같다. 내가 느끼는 어지러움 혹은 심한 몸살 또는 도저히 내려가지 않는 체증까지 이 스트레스라는 놈은 염치없이 끼어있으나 이 놈을 찾으려는 시도는 병원 문 밖으로 한 발자국 나서는 순간 말짱 꽝이다. 어지럼증을 치료하자고 사무실 김과장, 거래처 김대리, 잔소리꾼 와이프, 가끔 전화해서 속을 뒤집은 엄마, 하다못해 좌회전하다가 갑자기 사거리에서 멈춰서버리는 이름 모를 ‘김여사’까지 이 모두와 드잡이를 칠 수는 없지 않은가? 세상 모두와 싸우라는 얘기는 하나마다다. 광고처럼 화장이 안 먹는 이유는 침대가 안 좋아서라는 소박한 인과율이라도 확정해 주면 좋으련만 세상은 광고보다 복잡하고 그 만큼 친절하지도 않다.
내가 속한 세대 구성원 전원이 지난 세월을 모두 돌아볼 필요도 없이 올해만 잠시 뒤돌아봐도 세상에는 무엇이 어떻게 잘못됐는지 모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 천지이다.
한 아파트 입주민의 모욕적인 언사를 참지 못하고 분신한 경비원의 죽음은 콘크리트더미의 모욕이 되었고 그 모욕은 동료 경비원들의 해고로 이어졌다. 전임 대통령의 특보가 자신이 재직하던 언론사 사장으로 임명되는 사태에 항의 했던 언론인 3명은 해고되었고 그 해고는 정당하다고 한다. 무려 ‘언론인’ 씩이나 되는 이들이 자신의 사익을 위하여 싸운 게 아니라 공정한 언론의 전제인 정치적 중립을 위하여 항의 했어도 해고는 정당한 세상이다. 그 언론인들은 울고 있다.
자동차 회사에 근무하던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과실도 아닌 회사의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로 인하여 해고를 당했다. 지난한 법정 다툼에서 드러난 미심쩍은 회계상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의 해고는 정당하다고 한다. 어디 이런 대기업 사업장만 해고가 일어나고 있겠는가? 언론에 보도도 되지 않는 수많은 중소사업장 노동자들이 타의에 의하여 직장을 떠나고 있다. 이 땅에서 벌어지는 파업은 별 예외 없이 불법이다. 그러나 해고는 어지간하면 적법하다. 투쟁의 끝은 한쪽의 억울한 일방적인 눈물이다.
수백 명의 학생이 희생되었다. 아직 물속에는 9명의 실종자가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왜 구조를 할 수 없었는지 가족들은 무릎 꿇고 눈물로 규명을 요청해도 돌아오는 것은 너희들의 불운을 국가가 어떻게 책임지란 것인가라는 소리 없는 비아낭만 돌아올 뿐이다. 자식 잃은 아비의 수십일 단식도 정치적 쇼라고 손가락질 한다.
정말로 이 모두 단지 불운할 뿐인가? 이들이 겪고 있는 좌절은 순전히 이들의 책임인가? 수십 조의 세금을 허공에 날려버렸다는 비난에 대하여 전임 대통령은 나라 경제가 어려운데, 자원외교를 정쟁으로 삼아 안타깝다는 말과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으름장으로 답하고 있다. 자신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하여 파업을 한 노동자는 그 대가로 수억 원의 손해배상금에 허덕이다 목숨을 버리는 세상인데 수십조라는 엄청난 세금을 강바닥에 혹은 출처가 어딘지도 모를 곳에 허비한 전 대통령은 여전히 웃고 있다.
문제는 이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의 원인이 무엇인지 속 시원히 말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때로는 원인을 알아도 고칠 방법이 내 손에는 없다는 것일 수도 있다. 도처에 화는 차고 넘치는 데 여전히 울음은 예나 지금이나 줄어들지 않는다. 이대로 한 세대가 또 흐른다면 젊은 세대는 우리에게 어떤 날선 질문을 던질지 두렵기까지 하다.
지난 일 년 동안 세월호 사태에 대하여 사진을 찍은 친구 좌린은 덜 아프고 싶었고 나아가고 싶어서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사진 한 장 찍는다고 나아질 세상이 아님을 그도 알고 있을 것이다. 거기다 나하나 이런 시시한 글 하나 보탠다고 세상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 역시 잘 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모르는 이해하지 못하는 이 사회에 대하여 ‘왜?’ ‘누구잘못인가?’라고 계속해서 묻는 것 이것뿐인 것 같다.
‘왜?’라고 물을 때 세상은 변화의 가능성을 품기 시작한다. 왕정 시대의 전복은 백성들이 ‘왜 우리는 왕이나 귀족들과 다른 삶은 살아야 하는 것일까?’를 묻는 것에서 시작됐다. 왕권신수설이니 뭐니 하는, 지금에서야 다들 개소리인 것을 알고 있는 그 허무맹랑한 잡설이 진실인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세상이었다. 그러나 백성들이 ‘왜’라는 의문을 갖기 시작한 순간 그들은 한 걸음을 더 나아갈 수 있었다. 의문이 곧 ‘왕이나 귀족이나 우리나 똑같은 인간일 뿐이다’라는 결론을 도출시키자 그들은 목숨을 걸고 세상을 뒤집었다.
‘왜’라는 의문을 갖기 전까지는 내가 겪어야 하는 불합리한 처우와 고난이 그저 ‘불운’의 산물일 뿐이다. 그러나 그 의문을 갖는 순간 그건 단순히 ‘운’의 문제가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따라서 작금의 현실에 만족하는 무리에게 이러한 의문은 ‘불온’한 사상 혹은 행동이 된다.
‘왜’라고 묻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불운’을 극복하는 계기가 되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자신들의 안위를 위협하는 ‘불온’한 것이 된다. 세월호 사고에서부터 온갖 의혹에 이르기까지, ‘왜’라고 묻는 것 자체를 무시하고 막아서려했던 자들의 모습을 상기해보자.
운이 없는 사람의 대명사 격인 마른하늘에 벼락 맞았던 수세기 전 김씨도 지금의 낙뢰주의보가 있었다면 억울하게 생을 마감하지 않았을 것이다. 혹시 아는가? ‘왜’라고 계속 묻다보면 누군가가 낙뢰주의보 같은 불운을 막아줄 무엇인가를 찾을지.
옥상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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