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2015. 04. 20. 월요일

cocoa






*극심한 수전증과 폰카의 한계로 인해 직접 찍은 사진 중 일부 혹은 대부분이 매우 조악합니다.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2014418

 

[오후 445]

 

세월호 참사 1년 범국민대회 및 인간 띠잇기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시청 광장에 도착했다. 행사는 3시에 시작했으니 이미 늦은 시간이었지만 끝 부분이나마 볼 수 있을 줄 알았다. 도착하고 보니 광장은 텅 비어 있었다. 행사 부스를 정리하고 계신 분께 여쭤보니, 광화문 쪽 상황이 많이 좋지 않아 행사를 중단하고 광화문으로 이동하였다고 한다. 광화문에선 유민 아빠 김영오 씨를 비롯한 유가족들이 경찰에 연행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광화문 방향으로 조금 걷자, 차벽이 보였다. 4161주기 행사 때도 똑같은 자리에서 막았었다.

 

1.jpg

 

청계 광장 앞엔 길을 잃은 시민들이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유가족 및 집행부는 광화문으로 가는 우회로를 찾아 떠났다고 했다. 남은 시민들은 광화문이 잘 보이는 높은 곳에 까치발을 하고 서서, 차벽 뒤로 보이는 광화문의 상황을 지켜봤다. 멀리서 살수차의 물줄기가 보일 때마다 여기저기서 한숨이 쏟아졌다.

 

2.jpg

 


어휴저 물대포저거 쏘는 거 봐봐



 

[오후 504]

 

3.jpg

 

흩어져 있던 시민들이 모여 연좌농성을 시작했다. 구호를 외치고 함성을 지르자 기다렸다는 듯이 경찰의 1차 해산명령이 떨어졌다. 시민들이 외친 세월호를 인양하라는 구호가 해산명령을 덮었다.

 

아래 쪽으로 가보니 청계천을 따라 차벽이 쭉 이어졌다. 광화문 방향으로 가려던 시민들이 경찰에게 길을 묻자 돌아서 가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다 막혔는데 어디로 가냐고 다시 물으니 묵묵부답.

 

화가 난 아주머니 한 분이 강행돌파를 시도하자 경찰이 방패를 이용해 막아섰다.

 

4.jpg

 

버스 사이에 끼어 계신 아주머니를 보고 시민들이 모였다. 안간힘을 쓰는 아주머니와 꿈쩍 않는 경찰. 시민들이 아주머니 한 분만 보내 달라 해도 경찰은 답이 없다. 시민들이 모여서 버스를 손바닥으로 두드리기 시작한다. 소리를 듣고 5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였다. 앞뒤 버스 두 대를 시민들이 가득 메우고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그렇게 20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여전히 아주머니는 안간힘을 썼고, 시민들은 버스를 두드렸지만, 경찰은 답이 없었다.

 

 

[오후 531]

 

다시 청계광장 방향으로 올라왔다. 2차 해산 명령이 들린다. 공연을 보기 위해 세종문화회관으로 가려다 차벽에 막혀 화가 난 시민들이 경찰에게 소리를 지른다. 공연 비용을 너네가 물어 줄 수 있냐고 하자 채증 카메라가 다가왔다.  


또 다른 전경 버스 쪽에 사람들이 몰려있어 가보았다. 이곳에서도 아주머니 한 분이 버스 사이를 지나가려다 막혀있다.

 

5.jpg

 

경찰은 기어서 넘어가려는 아주머니를 막고 채증한다. 뒤에서 시민 열댓 명이 경찰에게 소리치고 아주머니를 보내 주라며 고함을 쳤다. 그렇게 10분이 흘렸고, 경찰은 끝내 방패를 거두지 않았다. 지친 시민들이 경찰을 욕하며 하나 둘 떠났다. 나는 경찰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서 상황을 지켜봤다. 모두 떠나고 땅바닥에 엎드린 아주머니 한 분만 남게 되자, 그제야 경찰이 방패를 치웠다. 아주머니는 고통에 신음하며 겨우겨우 일어나 걸어 나갔다.


버스 곳곳엔 이런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ㅍㅅ.jpg

 

 

[오후 635]

 


광화문 쪽이 많이 어렵다고 합니다! 지하철을 이용해 광화문 9번 출구로 갑시다!”

 


누군가가 외친 소리를 듣고 연좌농성을 하던 시민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광화문으로 향했다. 이때 광화문에선 여전히 유가족들을 향해 가던 시민들에게 물대포를 쏘고 있었다. 올해 첫 번째 물대포라 한다.

 

노란 리본을 달고 지하철을 탄 무리가 제법 되었다. 지나가던 할아버지께서는 잔뜩 화가 나서 소리친다.

 


저 새끼들 돈을 얼마나 더 받아 처먹으려고 저 지랄이야!

 


 

[오후 702]

 

5분이면 걸어 갈 수 있는 곳을 지하철을 타고 환승까지 하며 돌고 돌아 도착했다. 광화문 9번 출구로 나왔다.

 

잇.JPG

출처 - 이상호 기자 트위터


시청 앞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모여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이때 5만 명 정도의 시민들이 광화문 광장에 모여 있었다고 한다. 광화문 방향으로 걸어갔다. 시민들이 밀도 있게 서있던 것이 아니어서 생각보다 쉽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오후 720]

 

시위대의 맨 앞까지 왔다. 코가 매웠다. 시민들은 광화문으로 들어가는 길을 만들기 위해 경찰 버스를 흔들고 있었다. 정신없이 주변을 둘러보고 분위기를 익히려는 찰나, 누군가 소리쳤다.

 


뚫렸다!!”

 


주변을 살펴보니 옆에 있던 경찰 버스와 버스 사이에 작은 틈이 나 있었고, 그 작은 틈을 헤집고 사람들이 1차 저지선을 돌파하고 있었다. 순간 심장이 뛰고 손이 저렸다. 나는 그 순간에 고민을 했다.



'들어 갈까, 가만히 있을까. 만약 들어가게 되면 무사할 수 있을까?'



그 많은 사람들이 밀고 당기며 연행되고, 캡사이신을 맞아가며 만들어낸 작은 틈 앞에서 나는 그따위 고민이나 하고 있었다. 반대편에서 빨리 넘어오라며 손짓하고 계신 아주머니와 눈을 마주치고 나서야 정신이 들었다.

 


어이구, 학생 잘 넘어 오네

 


아주머니의 칭찬을 받고 1차 저지선을 뚫었다.

 

경.JPG

광화문 앞 2중 차벽

출처 - 경향신문

 

1차 저지선 안쪽은 시민들의 환호와 다급한 경찰의 지휘 방송으로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코가 따끔거렸다. 주변을 보니 어려보이는 경찰 한명이 씩씩거리며 팔을 휘두르고 있었고, 시민 여럿이 둘러 안아 경찰을 말렸다.

 


새끼야, 그만해! 너 그러다가 맞아 죽어 임마.”

 


어느 시민이 그 경찰을 적극적으로 붙잡고 말려 경찰 무리로 밀어냈다.

 

좌우에선 경찰들이 정신없이 몰려왔고, 시민들은 남녀 가릴 것 없이 앞으로 나가 몸으로 막아섰다. 그 틈에 뒤에선 1차 저지선을 통과해서 들어오는 사람이 점차 늘어났다.

 

그때 2차 저지선도 뚫렸다. 1차 저지선보다 더 작은 틈으로 사람들이 들어가고 있었다. 아니, 거의 버스 위를 넘어가는 수준이었다. 버스 위에선 사람들이 빨리 넘어오라며 손짓을 했다. 이번엔 망설이지 않고 경찰 버스를 넘어 유가족들이 있는 광화문 앞까지 들어갔다. 이렇게 넘어온 시민이 3백 명 정도 되었다. 이번 정권 들어 처음, 2008년 이후 역사상 두 번째로 경찰 차벽을 넘은 것이라 한다.

 

 

[오후 725]

 

경찰은 최후 방어선까지 뚫리자, 광화문 좌측으로 병력을 배치했다. 경찰들이 다가오자 시민들은 바리케이트를 쳤고, 유가족 분들이 일어나 제일 앞으로 달려 나갔다.

 

6.jpg

뛰어오는 경찰들의 모습. 경찰의 서치라이트 덕분에 주변이 잠깐이나마 밝아졌다.

 

밀고 들어오려는 경찰과 막는 시민, 유가족 사이에 작은 몸싸움이 있었다. 자리를 잡고 경찰과 대치하게 되자, 유경근 집행위원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경찰과 폭력을 사용하지 않기로 하였다고 합의했다며 시민들을 진정시키고 경찰과 더불어 시민들도 자제해 줄 것을 부탁했다.


7.jpg

 

2차 저지선 안쪽으로 시민들이 계속 조금씩 들어오고 있었으나 확실히 방금 전보다는 그 수가 줄었다. 광장 쪽에서 밀리고 있는 듯 했다.

 

곧 광화문 좌측까지 진출했던 경찰들이 먼 곳으로 돌아갔다. 1차 저지선이 다시 막힌 듯하다.


8.jpg

광화문 안쪽에서 광장 방향으로 바라본 모습


광화문 앞까지 진출한 시민들은 서로의 안전을 확인하고 다시 전열을 가다듬었다. 대학생 무리가 여럿 보인다. 선배들은 후배들을 불러 모아 연행되었을 때의 대처법을 차근차근 설명한다


어느 분께서 마스크가 없으면 안 된다며 꼭 끼고 다니라고 일회용 마스크를 챙겨 주셨다. 마스크를 꼈다.

 

 

[오후 736]

 

유가족들이 광화문 우측 돌담 길을 따라 청와대로 향했다. 오늘 집회의 목적이었던 청와대 인간 띠잇기를 완수하기 위해서였다. 시민들도 뒤따라 정렬하여 이동한다. 유가족 중 일부는 경찰들이 후미에서 치고 올 것을 대비해 광화문에 남았다.

 

9.jpg

유가족이 청와대로 향하자 경찰이 서치라이트를 켰다.


5분 정도 걸었을까. 효자로에 도달하기 직전, 경찰들이 뛰어 들어왔다. 유가족의 앞길을 막고 뒤를 잘랐다. 유가족과 시민들이 분리되었다. 겨우 만난 유가족과 시민들이 그렇게 또 갈라졌다유가족들이 반발하자 점점 경찰 병력이 늘어난다. 시민들도 대오를 짜고 방어를 준비한다.


 

[오후 756]

 

그렇게 대치하기를 몇 분. 정청래 의원이 나타났다. 시민 대오의 맨 앞으로 간 정청래 의원은 경찰 간부와 이야기를 주고받더니, 유가족과 시민들을 가로 막고 있던 병력을 물러나게 했다. 유가족과 시민들이 다시 만났다.

 

청와대로 가는 효자로와 대열 좌측엔 경찰들이 길게 늘어서 배치되어 있었다. 유가족들이 경찰의 공격에 대비해 시민들을 애워싸고 앞쪽으로 자리 잡았다.



대학생들 연행되지 않게유가족분들 바깥으로 나와 주세요.”


 

1414.jpg

대치하고 있는 경찰 바로 앞에서 시민들을 막아주고 계신 유가족분들


 

[오후 815]

 

청와대로 가는 길에서 여전히 대치중. 광화문에 남아 있던 유가족들이 커피와 배즙을 가지고 왔다. 목마르니 한 모금씩 하라며 시민들에게 나누어 줬다. 자리를 잡고 앉아 휴식을 취했다.

 

그때 롯데리아 오토바이 한 대가 시민들과 전경 사이로 지나갔다. 사방이 막혀있는데 어떻게 들어왔는지 알 수 없었다. 시민들이 웃고, 환호하고 박수를 쳤다. 경찰이 쩔쩔매다 오토바이를 보내줬다.

 

쉬는 동안 몇몇 시민들이 맛있게 담배를 폈다. 연기가 피어오르자 대치하고 있던 경찰들이 입맛을 다셨다.

 

 

[오후 833]

 

청와대로 가는 길이 막힌 상황에서 약식으로 집회가 열렸다.

 


세월호를 인양하라!”

 

진상규명 실시하라!”


대통령령 폐기하라!”

 


구호가 울려 퍼졌다. 청와대에 그분이 계셨다면, 이 외침이 들렸을까.

 

성공회대 학생들이 나와 <우리 하나 되어>에 맞춰 문선을 하고, 발언을 했다.

 

 

[오후 853]

 

다시 광화문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결국 집주인 없이 비어 있던 청와대에도 닿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리게 되었다. 대열의 후미와 전경들이 배치된 방향엔 이번에도 유가족들이 자리를 잡았다.

 

천천히 광화문으로 이동하던 중 뒤를 보니 유가족들보다 더 뒤에 검정색 옷을 입은 청년이 터벅터벅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대열의 맨 뒤에서 한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걷고 있었다. 사복 경찰인가 싶어 얼굴을 익혀두려 가까이 가서 보았더니 주진우 기자였다.

 

 

[오후 914]

 

시민들은 계속해서 저지선을 뚫으려 노력했다. 광장 쪽 상황이 여의치 않자, 광화문 앞까지 진출한 시민들이 안에서 길을 만들어보려 했다. 경찰 버스를 흔들고 균열을 만들어내려 하자, 물대포가 쏟아졌다. 광화문 방향으로 쏜 첫 물대포다. 코가 매웠다그냥 물이 아닌 듯 했다.

 

ww.JPG

출처 - 좌린 트위터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이때 경찰이 쏜 물대포는 소화전의 물을 불법으로 탈취하여 쏜 것이라 한다. 살수차의 물이 바닥날 만큼 물을 뿌려댄 결과다. 이상호 기자의 취재 결과, 종로소방서에서는 소방수 사용 허가를 내준 적이 없다고 한다. 이상호 기자는 이에 대해 항의하다 연행되었다. 


만약 주변에서 화재가 났으면 어떻게 책임지려 했을까. 그들은 1년 전의 참사에서 단 하나도 배운 것이 없다.

 

 

[오후 925]

 

광장 쪽 상황을 볼 요량으로 버스 위로 올라갔다. 경찰 병력이 더 많아진 것 같다.


11.jpg


광화문에선 유가족과 시민들이 자리를 갖춰 앉았다. 경찰이 뿌린 물대포 덕에 바닥에 물이 흥건했다. 광장에 있는 시민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구호를 외치고 함성을 질렀다. 광장에서 연행된 사람이 80명을 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안쪽에선 미안한 마음에 더 크게 구호를 외쳤다.


 12.jpg

자리를 갖춰 앉아 구호를 외치고 있는 시민들과

경찰 버스 위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본지 사진기자 좌린


545.JPG

광화문 앞 유가족과 시민들의 모습

출처 - 좌린 트위터



[오후 1017]

 

시민들이 광화문으로 들어오지 못해, 유가족들이 시민이 있는 광장에 나가기로 결정했다. 몇 시간째 광장에서 싸우고 있는 시민들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 농성을 해제하기로 한 것이다. 시간이 늦어질수록 충돌이 불가피했지만 경찰은 불법 시위를 중단하고 해산하라는 말과 물대포, 캡사이신을 이용한 진압에만 열을 올리고 있으니. 유가족이 나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경찰은 광화문에 있던 유가족과 시민 300여명에게 광화문 광장으로 나가려면 2열로 나가야 한다고 했다. 시민들이 헛웃음을 터트리며 두 줄로 맞춰 섰다. 유가족들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대학생들이 연행 안 되도록 유가족이 앞뒤로 적당하게 서 있으세요.”

 

맨 마지막엔 유가족들이 나와야 돼요. 그래야 학생들 못 잡아가지.”

 


광장으로 나가는 길이 터졌고, 경찰이 좌우로 길게 늘어섰다. 성인 3명 정도가 통과할 수 있을 만한 공간이 경찰 사이로 생겨났다. 연행을 방지하기 위해 경찰 사이로 유가족이 길게 인간띠를 만들었다. 광화문에 있던 시민들은 2열로 서서 광장으로 나갔다. 유가족들과 시민들의 인사가 오갔다. 고맙다며 손을 잡기도 하고 허리 숙여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빠져 나가는 시민들의 눈시울이 붉어지자

 


울면 지는 겁니다. 울지 마세요.”

 


라고 유가족이 말했다. 정작 시민들을 위로하는 그 목소리도 떨리고 있었다.

 

광장으로 나오자 시민들이 좌우로 길게 늘어서서 박수갈채를 보내줬다. 고생하셨다는 인사가 오가고 곳곳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출처 - 미디어오늘

 


[오후 1035]

 

광화문 광장에서 유가족과 시민들이 만나 집회를 열었다. 진명선 운영위원장은 목이 메어 말했다.



"감사합니다. 미안하고 죄송스럽습니다. 저 안에서 여러분이 싸우는 모습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 두드리면, 우리가 계속 요구하면 답이 나올 겁니다. 국민과 함께 안전한 사회, 인간 존엄의 사회를 위해 행동을 강행해 나갈 것입니다."


 

유경근 위원장과 박래근 위원장, 정청래 의원 등도 짧은 인삿말로 시민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광화문 광장에 모인 시민들과 유가족들이 노래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를 함께 부르는 것을 끝으로 집회는 마무리 되었다. 남은 시민들과 광장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고 해산했다.



2014년 4월 20일


언론에선 경찰의 과도한 차벽 설치, 과잉진압, 집회의 목적과 유가족, 시민들의 요구는 생략한 채 '불법, 폭행, 교통 정체, 과격, 태극기 방화'에 포커스를 맞추었다. 경찰이 막지 않았으면 시민들이 청와대에 불이라도 지르러 가려 했던 것처럼. 


DsZwab2.jpg

오늘자 조선일보 1면



자칭 주류 언론들이 제대로 언급해주지 않은 이번 집회의 목적은 유가족과 시민들이 모여 세월호 인양을 요구하고, 시행령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청와대에서 인간 띠잇기를 하는 것이었다.









딴지일보 cocoa

Profil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