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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란 무엇인가? 스피노자는 국가가 추구해야 할 가치는 조화, 균형, 관용이라고 정리한다. 이는 국가의 가치일 뿐만 아니라 국가 자체다.

 

내가 행인을 강도질하는 게 가능한 정글 같은 사회에서는 나 역시 살해당할 수 있다. 살인강도가 가능한 사회보다는 법적으로 금지된 사회에 사는 편이 결과적으로 행복할 것이다. 스피노자는 권리와 책임, 의무의 균형 상태를 추구했다.

 

한 시민이 어떤 옷을 입을지 결정할 자유는 누릴 수 있어도, 공공장소에서 옷을 벗을 자유까지는 좀 과할 것이다. 그는 노출증을 참는 대가로 타인에게 위해를 받지 않아도 되는 권리를 얻는다. 국가란 모든 개인이 평화롭게 최대한 나름의 행복을 추구하며 살 수 있도록 배려하고 필요할 때만 간섭하는 조정자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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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로 똘레랑스라 불리는 관용의 개념은 스피노자의 철학에서 최초로 등장한다.

 

“너의 신체와 삶에 직접적이고 심대한 피해가 없다면 남이 뭘 하든 참아라."

 

“정부의 진정한 목적은 시민의 자유다.”

 

에티카는 인간이 선하게 살아야만 한다는 객관적이고 보편적 근거로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에티카의 결론은 ‘시민 사회’다. 개인들이 되도록 좀 더 자유롭고 보다 덜 불편하기 위해 사회계약을 맺은 상태가 그가 생각하는 국가다. 특정 국가가 아닌 시민 사회다. 이기적인 개인들이 적당히 타협한 상태다.

 

스피노자에게 충성을 강요하는 국가는 국가가 아니다.

 

“자유가 억압되어 사람들이 울타리 안에 갇히고 권력의 허락 없이 움직일 수 없는 사회에 이르르면 ... (중략) ... 국가에 대한 충성과 믿음은 파괴될 것이다.”

 

여기서 스피노자는 공전불후의 명언을 일갈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교과서는 이 말을 아리스토텔레스의 작품으로 기술한다. 그가 말한 사회적 동물은 사실 정치적 동물이다. 그리스 시민 계층에게 사회생활이란 곧 정치활동이었다. 현대의 우리가 '사회적 동물'이란 표현을 이해하는 방식은 스피노자의 철학에서 태동했다.

 

인간은 일정한 룰이 있는 사회에서 보다 행복해질 가능성이 높다. 인간은 자유롭고 행복해야 하므로, 사회성을 적절히 활용해 국가를 꾸리는 편이 좋다. 여기서 국가는 철저한 도구다.

 

개인들이 자유롭게 행복을 추구하기만 하면 헐벗고 굶어죽는 사람은 어쩌란 말인가. 빈곤으로부터의 자유도 자유다. 스피노자는 복지국가를 꿈꾸었다. 그러나 <복지론>은 집필을 마치지 못하고 사망해 미완성 유고로 남았다. 스피노자는 마르크스의 선조이다. 그의 별명 중 하나는 '유물론자들의 모세'다.

 

스피노자 철학에서 권력은 시민이 권력자들에게 임대한 시민의 재산이다. 권력자는 본질적으로 세입자다.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이 투명해야 시민 사회가 감시하고 조정할 수 있다. 스피노자는 최초로 언론의 자유를 주장했다.

 

우주를 관통하는 보편적 선이 사라진 자리에는 공공선과 공익이 남는다. 악 대신 부정과 기회주의가 남는다. 국가도 사회도 윤리도 모두 거래일 뿐이다. 개인적 범죄도 공적인 부정부패도 모두 부당 거래의 차원에서 제지당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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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회적 동물이다. 그러므로 타인의 욕망에 왈가왈부할 권리가 없다. 외려 타인의 욕망을 존중함으로써 자신의 그것도 인정받는 거래가 필요하다.

 

거래는 역사적으로도 이루어질 수 있다. 우리는 이순신 장군을 존경하는 염치를 챙겨야 한다. 선(보눔)은 상대적이므로, 이순신은 우리에게 위인이고 일본에게는 악마적 존재다. 우리는 충무공이 지킨 국가의 후예다. 한국인이라면 사회적 동물로서 충무공을 존경해 마땅하다.

 

스피노자의 철학으로 보면 충무공도 자기만족을 위해 나라를 지킨 게 아닌가? 맞다.

 

충무공은 무인의 의무를 다하고 자신이 지킨 백성에게 존경받으려는 욕구를 위해 구국의 영웅이 되었다. 다만 그것은 나라를 팔아 부귀영화를 누리려는 이의 쿠피디타스와 비교할 수 없는 드높은 차원의 쿠피디타스다. 이것이 스피노자가 말하는 '공공선'이다. 그는 우주적 진리가 아닌 선조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켰다. 이것이 스피노자의 유물론이다.

 

스피노자 하면 생각나는 하나의 문장이 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오늘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스피노자는 이 말을 한 적이 없다. 이것이 스피노자의 명언이라는 것은 한국에서만 통용되는 잘못된 전설이다. 전설은 1966년 경향신문의 단평란에 사과나무 명언이 스피노자의 것이라는 내용이 실리면서 시작되었다. 5년 후 1971년 중앙일보의 사설에서 스피노자의 명언이라며 같은 문장을 소개함으로 한국에서만 기정사실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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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에서 이 문장은 종교 개혁의 선구자 마틴 루터가 남긴 것으로 통한다. 실제로 마틴 루터가 살았던 장소 두 곳에 이 문구가 기념으로 새겨져 있지만 이쪽도 전설이다. 루터가 청소년기에 쓴 일기장에 이 멋진 문장을 썼다는 게 전설의 내용이다. 그런 일기장은 발견된 적이 없다.

 

사과나무 격언은 2차대전 시기 나치즘에 항거하던 독일의 목회자들이 '비록 내일 탄압받아 죽을지라도 오늘은 신의 뜻에 따라 살자'라는 뜻으로 사용했다. 그들 역시 별다른 근거는 없었다. 그저 무작정 마틴 루터가 남긴 격언으로 알고 있었다. 암담한 현실과 루터에 대한 존경심이 결합해 탄생한 전설이다.

 

인간은 하루하루 행복을 추구해야 하건만, 자아실현에 실패할 수도 있다. 실패하면 불행하다. 성공과 실패는 대부분의 경우 개인이 어찌할 수가 없는 문제다. 스피노자는 이때 인간에게 한 줄기 빛이 되는 것이 지식과 진리라고 했다.

 

스피노자는 인간이 꼭 진리를 추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삶도 존중받아야 하는 삶의 형태다. 다만 진리를 추구하면 행복에 도움이 된다는 취지였다. 스피노자는 인간의 삶은 한 번 뿐이며, 죽으면 영혼이 갈 곳이 정해져 있지 않고 그걸로 끝이라고 보았다.

 

스피노자는 삶 자체를 향유하라고 한다. 지금 즐겁다면 만족하고, 불편하면 다른 걸 하면 된다. 철학을 하는 목적도 어디까지나 삶을 위해서다.

 

“철학을 한다는 것은 사는 법을 연습하는 것이다.”

 

만약 세상이 우리의 행복을 방해하고, 그 과정이 불공정하다면 우리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정치를 해야 한다. 길거리에 나서고 투표를 하고 권력에 삿대질을 해야 한다. 국가란 곧 국민이다.

 

스피노자의 개인은 고독한 개인, 이기적 개인을 거쳐 마침내 윤리적 개인으로 완성된다. 윤리적 개인은 시민이다. 윤리적 개인은 선량하고 숭고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이기적이고 추악하면서도 얼마든지 '에티카'를 발휘할 수 있다. 동료 시민에 대한 최소한의 염치가 있으면 된다. 근대적 시민 사회란 동정심 대신 존중, 사랑 대신 예의로 이루어지는 사회다.

 

스피노자 자신이 쓴 <에티카>가 윤리학의 최종 보스임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는 자만하거나 과시적인 인물이 아니었던 만큼이나 특별히 겸손할 필요도 못 느꼈다. <에티카>는 이렇게 끝난다.

 

“내가 인도한 이 길은 발견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나 발견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매우 어렵고 보기 드물게 발견되는 길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큰 힘을 들이지 않고 발견할 수 있고 어렵지도 희소하지도 않은 길이라면 누가 일부러 힘을 들여 이 일을 하려고 하겠는가?”

 

이 말을 한 줄 요약하면 이렇다.

 

"얘들아, 내가 다 끝내 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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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

 

그의 생애는 1677년 네덜란드 헤이그의 허름한 하숙방에서 끝났다. 그는 윤리학도 끝장을 내놨으니, 우리가 누리는 근대 시민윤리가 그의 삶으로부터 펼쳐졌다. 우리는 스피노자의 후손이다.

 

압도적인 지성이란 말은 스피노자와 같은 인물을 두고서나 쓸 수 있다. 인류는 운 좋게도 그처럼 빛나는 지성을 만날 수 있었다. 스피노자는 사상은 물론 시신마저도 능욕 받았으나, 그의 철학은 진리의 성전이 되었다. 성전 안에는 신도 로고스도 없다.

 

대신 보잘 것 없고 지저분한 개인, 바로 우리 자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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