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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자유 한국당

 

6개월 전 한국 언론에서는 한반도 전쟁 위기설을 말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남북한 정상회담을 막 끝낸 상황이다. 급전직하(急轉直下)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천우신조(天佑神助)라고 해야 할까? 이도 저도 아니라면, 자유한국당의 말처럼 북한의 시간 끌기였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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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유한국당의 논리를 이해하고, 인정한다. 하나의 ‘사실’을 보고, ‘의견’을 개진하는 건 자유다. 게다가 자유한국당은 대한민국의 제1 야당이며, 지난 반세기 대한민국의 권력을 좌지우지한 정치결사체이다. 당연히 의견이 있어야 하고, 이를 표명해야 한다.

 

(그들의 주장이 지방 선거를 앞두고, 무조건적인 문재인 정부 흠집 내기란 사실, 아니, 의심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까지 그들의 의도를 곡해하고 싶지는 않다. 일단 그들이 말하는 걸 그대로 믿어주겠다)

 

“그들의 핵을 고도화하고 경량화하기 위한 시간 끌기용 협상이다.”

 

“핵 폐기가 아니라 핵 동결 협상은 인정할 수 없다.”

 

“제재 국면을 피하려는 꼼수다.”

 

그들의 주장에는 그들의 논리가 있었고, 그 논리에는 인정할 만한 것도 있다. 북한이 이제까지 보여준 행태를 보면 자유한국당의 논리는 이해의 범주 안이다. 결정적으로 6.25 남침과 휴전 이후 이제까지 보여준 북한의 도발을 본다면, 그들을 믿을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북핵 협상에 있어서 우리가 그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미국 역시 마찬가지다. 가장 상처가 깊었던 건 제네바 합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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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바 합의에 따르면 1차 경수로 건설은 2003년 완공이 목표였으나, 이건 어떻게 됐을까? 또한, 매년 50만 톤씩 중유를 제공하겠다는 합의는 또 어떻게 됐는가? 북한은 미국이 자신들을 압살하려는 것도 모자라 경제적으로도 압박하고 있다고 받아들였다.

 

“미국의 약속 파기로 북한의 에너지난이 가중됐다.”

 

북한의 주장이다. 이게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미국은 약속을 파기했고, 그 결과 북한만 손해를 봤다. ‘아들’ 부시 행정부 당시 미국은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규정했다(이란, 이라크 등 중동에 편중돼 있는 ‘악’에 하나 더 얹은 느낌이지만). 정치적인 레토릭이란 걸 알지만, 북한 입장에서는 예민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자신의 핵 프로그램을 가지고 미국과 협상을 하고 싶어 했다는 점이다. 이 당시 김정일 정권에서 미국 측에 요구한 최소한의 조건은,

 

“미국이 북한을 선제 공격하지 않고, 김정일 체제를 인정해 주는 것. 이것만 관철되면, 핵 프로그램을 파기하겠다.”

 

(이 요구 조건이 북한의 핵심 과제인 건 맞지만, 이걸 문서로 보장받고 북미수교가 이루어진다고 북한이 핵을 포기할 수 있는가는 별개의 문제였다. 만약, 부시 행정부 1기 시절이었다면 리비아, 우크라이나 문제가 원만히 수습되었고 이후 ‘별 탈 없이’ 지나간 시절이었기에 핵 프로그램 폐기가 정말로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부시 행정부 1, 2기 때 미국은 북한의 요구에 반응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뒤통수는 계속 이어졌다. 부시 행정부 시절 최고의 뒤통수였던, 9.19 공동성명과 뒤이은 방코델타아시아(BDA) 북한 계좌 동결 사건이다.

 

2005년 9월 19일. 제4차 6자 회담 도중, 중국이 회담에 드라이브를 걸어 버렸다. 북한과 미국을 몰아붙여 최종 타결로 몰고 간 건데,

 

“모든 핵무기를 파기하고, NPT, IAEA로 복귀하겠다.”

 

라는 북한의 약속을 이때 받아냈다(이 때문에 당시 통일부 장관이었던 정동영은 자기 임기 최대의 업적이라고 자랑 질을...). 이때 한국 측이 인센티브로 제공하겠다고 나선 게 매년 200만 킬로와트의 대북송전이었다(경수로 제공은 별도로 규정했다).

 

문제는 이다음이었다. 9.19 공동선언 다음날 북한의 불법 자금을 세탁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방코델타아시아 은행에 예치되어 있던 북한 계좌(2,500만 불)를 동결해 버린 거였다. 이에 북한은 분노하고 이를 금융 제재로 간주, 항의를 하게 된다.

 

(미국이 방코델타아시아에 대한 북한 계좌 동결은 9월 15일부터 예정돼 있었던 일이었다. 2005년 9월 15일 ‘애국법’ 311조에 근거해 방코델타아시아를 북한 불법 자금 세탁의 주요 우려 대상으로 지정했는데, 9월 20일 관보에 게재하며 시행이 된 것이다. 한 가지 의문인 점은 이미 9.19 합의가 이루어졌다면, 정치적으로 충분히 유예를 할 수 있었던 시점이란 거였다. 단순한 행정적 착오가 아니란 건 이후 있었던 일련의 핵 협상을 보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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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1월 5차 1단계 6자 회담에서,

 

“방코델타아시아에 대한 해결이 선결 조건이다!”

 

라고 말했다. 북한으로서는 뒤통수를 제대로 맞은 셈이었다. 방코델타아시아의 계좌 동결은 단순히 은행 하나의 계좌 동결이 아니었다. 그래봤자 겨우 2,500만 불이었지만(북한에게는 큰 돈일 수도 있겠지만, 솔직히 아무리 막장 국가래도 2,500만 불에 움직이는 건 아니다), 북한은 분노했다. 본격적인 금융 제재로 받아들인 거였다.

 

실제로 방코델타아시아 계좌 동결 직후 북한의 해외 자금 거래에 후폭풍이 몰아닥쳤다. 마카오 지역은 물론 싱가포르, 스위스 등등 다른 지역의 은행들도 미국을 의식해 북한과의 금융 거래를 중단했다(이게 핵심이었다).

 

이런 여파를 고려한 것인지 아닌지, 미국은 2006년에 들어서도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를 계속 확대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방코델타아시아 계좌 동결 직후 미국은 신속하게 북한의 자금줄, 해외 거래 기업들에 대한 압박을 가했다. 2006년 3월 30일에는 스위스의 공업 물자 도매회사인 ‘코하스 AG’의 야콥 스타이거 사장의 미국 내 모든 자산을 동결해 버렸고, 5월에 들어서는 미국 기업들의 화물선이나 유조선, 어선 등을 북한 선적으로 등록하지 못하도록 하는 대북 선박 제재를 단행했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몰리자 북한은 특유의 화전양면 전술을 다시 들고 나왔다.

 

남북 대화나 남측 기업인들과의 만남에서는,

 

“우리가 대북 경제 제재로 힘들다.”

 

라며 앓는 소리를 하면서, 누그러진 모습을 보였다. 이와 동시에 미국과의 양자 접촉 및 대화를 제의했다.

 

“우리끼리 툭 까놓고 대화해 봅시다.”

 

라면서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하다가도,

 

“계속 이런 식으로 나오면 초강경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

 

라며 협박을 병행했다. 결국 이 방코델타아시아 문제는 2007년이 돼서야 합의에 이르게 된다(이때도 북한은 계좌에 묶여있는 돈을 찾는데 수개월간 지체됐다). 당시 북한은 문서상의 합의가 언제든 뒤집어질 수 있다는 걸 재확인하게 된다.

 

이후 2.13 합의, 10.3 합의가 이어지게 된다.

 

(이 모든 게 9.19 공동 성명의 이행에 관계된 거였다. 만약, 9.19 공동 성명 다음날 있었던 BDA 사태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개인적으론 이때가 가장 아쉽다. 그나마 10.3 합의를 통해서 한 가지 성과를 얻은 게 있다면, 6자 회담보다는 미국과 북한 둘이서 양자 회담을 하는 게 효과적이란 걸 확인했다는 거다. 미국과 북한 둘이 양자 회담을 하고, 이후 6자 회담이 추인하는 형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게 효율적이란...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이걸 이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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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1일 미국의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가 방북을 하게 된다. 이때 가장 큰 쟁점은 북한은,

 

“우리 테러 지원국 지정 해제해줘. 왕따로 사는 거 힘들다.”

 

였다. 미국 입장은,

 

“너네 핵 시설 불능화 조치는 인정하겠는데, 시료 채취나 검증은 빡세게 해야 한다! 겉으로는 핵무기 안 만든다 하고, 뒷구멍으로 핵무기 만들 수도 있잖아.”

 

였다. 문제는 이때부터인데,

 

“씨바, 사람 말을 그렇게 못 믿어? 속고만 살아왔냐?”

 

“어, 맨날 사람 속이잖아?”

 

“하, 씨바 누굴 사기꾼 취급을 하는 거야? 아, 더러워서 안 해! 못해!”

 

...이렇게 된 거다.

 

북한이 리비아나 남아프리카 공화국처럼 팬티까지 벗고 다 보여줘야 하는데, 그걸 안 한 거다. 이미 이때 북한은 빈정이 상했거나(아니면, 핵을 버리는 순간 박살 나는 게 아닌가란 불안감이 있거나), 애초에 핵을 포기할 의사가 없었던 건지도 모른다.

 

분명 ‘합의’에 도달할 수는 있다. 이제까지 ‘합의’는 많이 해왔다.

 

핵 불능, 핵무기 포기에 대한 수많은 선언은 있었지만, 정작 실행 단계에 들어가 ‘이행’과 ‘검증’ 단계 문턱에서 좌절됐다. 이건 북한의 문제일 수도 있고, 미국의 문제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이 둘 모두 서로를 믿지 않았다는 거다.

 

자유한국당(그리고 이들을 지지하는 국민)의 논리는 분명 일리가 있다. 이제까지 북한은 벼랑 끝 전술로, 살라미 전술로 시간을 끌었고, 그 시간 동안 핵무기를 개발했다. 근원적인 의문을 하나 던져 보자.

 

“북한은 어째서 핵무기 개발을 선택했던 걸까?”

 

“북한은 어째서 핵무기를 놓지 못하는 걸까?”

 

문제 속에 답이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 다 알고 있다.

 

“북한은 핵 말고 가진 게 없다.”

 

이다. 이 핵으로 자기보다 경제력이 60배나 큰 나라와 상대해야 하고, 세계 최강국의 공격을 방어해야 한다. 또한 여기에 자신들의 체제가 있다. 정확히 말해, 김정은 체제(왕조국가)를 지켜내야 한다. 이 체제 유지에는 외부의 압력뿐만 아니라, 북한 내부의 압력도 포함돼 있다. 이 정도면 고차방정식을 넘어간다.

 

우리는 북한의 ‘필요’를 어디까지 채워 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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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의 시작은 거기서 부터다. 북한은 가진 게 핵밖에 없고, 이 핵 하나로 자신의 체제, 생존, 경제 발전, 내부적 압력, 외부적 압력을 모두 극복해 내야 했다. 여기서 근본적인 질문이 두 가지가 나온다.

 

첫째, 우리가 왜 북한과 ‘굴욕적인’ 협상을 해야 하지?

 

둘째, 북한을 어떻게 안심시키지?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자유 한국당과 이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이 던지는 질문이다. 이해의 범주 안이다. 북한과 이제껏 싸워온 ‘역사’가 있다. 한때 체제 경쟁을 위해 말도 안 되는 짓을 했던 적도 있고 서로를 이용해 먹었던 적도, 이들을 활용해 손쉽게 정치적 이득을 얻은 적도 있다(자괴감 느끼지 말자, 동서고금의 모든 정치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야기다).

 

체제 경쟁에서는 한국이 승리했다. 북한은 최후의 한 방으로 우리를 위협할 수 있는 핵이 있고, 핵이 아니더라도 대한민국 인구의 50%, 경제력의 70%를 가지고 있는 수도권을 ‘위협’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 공멸에서 벗어나는 길은 타협 밖에 없다. 내가 북한을 말할 때 꼭 언급하는 전쟁이 하나 있다. 바로 3차 포에니 전쟁이다.

 

로마는 카르타고에 새로운 배상금과 무기 몰수 등의 압박을 가했다. 카르타고는 이를 받아들였다. 그러자 수도를 파괴하고 모든 주민들을 해안에서 15km 밖으로 이주시키란 요구를 내놓았다. 그 결과 카르타고는 수도로 들어가 성벽을 베개 삼아 3년을 버텼다.

 

노파심에서 말하지만, 카르타고가 북한이란 소리는 아니다. 가혹한 조건을 내걸지도 않았고, 우리가 북한을 정복할 생각이 없다는 것도 맞다(물론, 일부의 사람들은 흡수 통일을 아직도 생각하겠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북한이 ‘핵’을 내놓는 순간 또 다른 조건이 그들에게 강제될지에 대한 두려움. 그 두려움을 북한은 가지고 있다는 거다.

 

협상이 없다면, 대결 밖에 없다. 가혹한 협상으로는 대화가 어렵다. 그렇다면, 조건을 맞춰 나가야 한다. 이건 항복도, 굴욕도 아니다. 대결을 피하기 위한 비겁함도 아니다. 대결을 할 경우 남는 건 공멸뿐이다(북한 지도부 역시 대결은 피하고 싶을 것이다. 대결은 자신이 일궈놓은 권력을 위협에 빠뜨리기 때문이다).

 

이건 자유한국당과 그 지지 세력들도 알고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우리는 협상 조건을 가지고 대화를 했고 목표를 세웠으며 결과를 위해 일을 진행하려는 거다. 여기에 가혹한 조건들을 다는 순간 협상은 사라지고, 이제까지 무한 반복됐던 합의와 파기가 다시 시작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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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결국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앞으로의 북한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에 대한 통치 철학과 로드맵에 따라 달라진다.

 

중국식의 개혁 개방 모델을 생각한다면, 지난 평창 올림픽 때부터 보여준 북한의 행보는 수긍할 수 있는 모습이다. 만약 이게 이제까지 북한이 사용해 왔던 화전양면 전략이라면 이야기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북한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