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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필자가 생각한 바둑의 이상은 허구였는지도 모른다. 예도는 무슨. 예절과 인성과 도리를 아는 사람들이 했다기엔, 개인의 일탈로 덮기엔 그동안 벌어진 일들이 많다.

 

필자는 고민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고심 끝에 나름 답을 찾았다. 바로 바둑에만 올인하는 현 시스템이 문제다. 김성룡을 비롯하여 문제를 일으킨 기사들을 보면 학교도 제대로 안 다니고 바둑에만 올인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도장에서 바둑만 두었다. 경주마처럼 주변을 안 보고 오로지 입단을 향해 달렸던 것이다.

 

일본 바둑은 망했다며 연민의 눈빛을 보내던 한국 바둑의 지금 모습은 어떤가? 바둑책은 최근에 언제 나왔는지 기억도 안 난다. 그 많던 대회는 누가 다 말아먹었는지 GS칼텍스배 빼면 죄다 이벤트 기전이다. KBS는 본격적인 기전이라 부르기도 민망하다. 망했다는 일본은 아직도 7대 기전이 건재하며 노인 밖에 없다고 비아냥거리지만 유료 해설장에는 사람들이 북적인다.

 

이 모든 게 오로지 바둑만 잘 두면 된다는 실력 제일주의에서 비롯되었다. 늦었지만 해결책은 하나라고 생각한다. 바둑만 잘 두는 기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 바둑 좀 못 두면 어떤가. 먼저 사람이 되어야지. 타인과 함께 어울리고 공감하며 같이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제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1. 유창혁 성희롱 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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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8일 유창혁 사무총장이 국가대표 감독 시절에 했던 발언들이 문제가 되었다. 골프와 비교하며 성형수술을 하라는 내용과 대만 기사 위리진은 '예뻐서 국가 대표 상비군에 뽑았고 ooo은 못생겨서 안 되고'라는 말이 문제가 되어 사과했다.

 

 

 

2. 서 모 기사 도장 내 성추행 및 도장 여자화장실 몰카 사건

 

4월 4일 본격적인 바둑계 미투가 시작됐다. 한국기원 프로기사 게시판에 어느 여성 프로기사의 글이 올라왔다. 도장에 있을 당시 선배였던 서 모 기사에게 성추행을 당했고, 그 기사가 미성년인 후배들을 성추행 했다. 또 도장의 여자화장실에 몰카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도장의 원장은 이를 알고도 덮기에 급급했다고 폭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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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추행 가해자 서 모 기사는 사과문을 올렸으나 내용이 참으로 가관이다. 요약하자면,

 

1) 변명의 여지가 없는 성추행에 대해 "어려서 몰랐다"고 했으며,

 

2) 다른 성추행 사건에 대해선 "호감이 있어 남자다움의 표현이었다", "연애 경험이 없어서 몰랐다"

 

3) 글쓴이의 폭로로 "평생 두어온 바둑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다", "나 같은 피해자가 나오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게 사과문인가 눈을 의심할 정도다.

 

이것 말고도 도장의 원장이 여자화장실에 몰카가 설치된 걸 알고도 덮은 문제도 있다. 원장은 범죄를 은닉한 것은 물론, 학생들을 보호해야 할 역할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교육청에서 도장의 영업을 정지시켜야 맞는 것이 아닐까?

 

 

 

3. 김성룡 성폭행 의혹

 

4월 16일 김성룡 성폭행 의혹에 대한 글이 게시판에 올라왔다. 약 9년 전 한국에서 활동하던 외국인 여성 기사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여 술을 먹이고 강간했다는 사건이다.

 

현재 김성룡 측은 이렇다 할 답을 하지 않고 변호사만 입장정리를 하는 대로 답변을 내놓겠다고 말하고 있다. 언론에는 '지인의 말에 따르면 합의였다'라는 얘기가 흘렀다. 본인이 합의였다고 하면 명예훼손으로 걸릴 수 있으니 지인이라고 하는 걸 텐데, 대체 그 지인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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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룡은 한때 'LA 꽁지머리'라는 별명처럼 튀는 스타일과 좋은 성적으로 기대를 받았었다. 미국 영주권자로 군대를 안 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군입대하여 좋은 이미지도 있었다. 1년 선배인 이창호의 벽을 느끼며 보급 기사로 이른 나이에 돌아섰다. 특유의 입담과 언행으로 '반상의 김구라'라는 별명을 얻으며 나름 팬층을 확보하기도 했다.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 세종시 행정수도에 들어가 바둑협회 전무도 하며, 본인 이름의 바둑 교실도 3개나 운영하고 있었다. KB 바둑리그 포스코 팀의 감독을 7년 간 하며 괜찮은 성적을 내었고, 포스코로부터 지원도 받았다. 인간적으로 호불호가 갈리는 사람들은 있지만 바둑 보급에 대한 것은 대부분 인정한다. 그래서일까? 한국기원은 김성룡을 아직도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 사태가 터지고 난 후 한국기원이 어떻게 했는지 살펴보자.

 

 

 

4. 한국기원의 대응

 

한국기원은 사건이 터진 다음 날인 4월 17일 윤리위원회를 열어 진상조사를 하겠다고 했다. 이례적으로 빠른 대응이라 놀랐으나, 알고 보니 4월 4일 서 모 기사의 건으로 이미 열리기로 했던 윤리위원회였다.

 

윤리위원회의 내용을 듣고 기가 찼다. 한국기원 이사인 임무영 대전고검 검사가 윤리위원장을 맡아 실태 파악과 당사자들에 대한 단호하고 엄정한 조치를 한다고 하는데 이게 말이 되는 소린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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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원은 사법권이 없는 조직이다. 할 수 있는 것라곤 '제명' 정도다. 천하의 나쁜 놈이어도 감옥에 보내는 건 국가의 역할인데 왜 자기들이 조사를 해서 피해자를 더 괴롭게 만들려 하는 걸까. 위증해도 아무 처벌도 없고, 비밀보장도 안 되는 곳에서 제대로 된 조사가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걸까? 윤리위원회는 김성룡이 한국기원이라는 단체의 명예를 실추시켰으니 이에 대한 판단만 하면 된다. 개인의 윤리나 범죄 여부를 다툴 필요도 없고, 그럴 권한도 없다. 왜 법원에서 할 일을 한국기원이 하려고 하는가.

 

더불어 기사회 손근기 회장은 “성 관련 교육 시스템 강화 등을 포함한 ‘바둑인 자성 결의 대회’를 빠른 시일 내에 개최하겠다."라고 밝혔다. 얼마 전 삼성증권 임원들이 자필로 반성문 쓰는 퍼포먼스가 떠올랐다. 잘못은 자기들이 해놓고 '바둑인 자성'이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할 거라면 '남자 프로기사 자성 결의 대회'로 이름을 바꿔주기 바란다. 남자 기사들이 억울하다고? 왜 자기까지 끌어들이냐고? 김성룡 성폭행이 언론에 나와도 침묵으로 일관하지 않았는가. 남자 기사 중에 김승준, 진동규 빼고 한 마디도 안 했는데 억울하긴 뭐가 억울한가.

 

윤리위원회는 신속하게 만들어졌으나 진전이 없다. 김성룡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입장을 정리 중이라는데, 잔머리 굴러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세상에 일이 이렇게 되었는데 사과하는 놈이 한 놈도 없다.

 

한국기원 홍석현 총재가 사과해야 하지 않겠는가. 알파고 때는 바둑계를 대표하는 수장으로 언론에 뻔질나게 나오더니 지금은 왜 나 몰라라 하는가. 자기가 한 일도 아닌데 왜 사과하냐고? 리더란 자리가 원래 그런 것이다. 왜 문재인 대통령이 제주 4·3 사건을 공식 사과했겠는가.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다. 국가 폭력에 의해 벌어진 일이고, 그 국가의 현재 수장이니 대신하여 사과하는 것이다. 어서 총재에게 사과하라고 건의하길 바란다.

 

 

 

5. 윤리위원회 첫 회의

 

4월 20일 윤리위원회가 첫 모임을 가졌다. 실무 조사단을 꾸리기로 했다. 한국기원 홍보이사답게 공중파에 나오고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지만 어떤 징계가 없다.

 

아니, 징계도 징계지만 윤리위원회 구성부터가 문제가 많다. 임무영 검사가 윤리위원장을 맡은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유창혁 사무총장이 위원회 멤버라는 말은 어이가 없다. 안 그래도 제 식구 감싸기라고 손가락질 받는데, 이건 뭐 대놓고 감싸겠다는 건가. 사무총장이라는 직책으로 사건을 축소시킬지도 모른다는 의심도 가능하다. 사무총장 당사자가 성희롱 발언을 한 마당에 누가 누구를 조사한다는 말인가. 제대로 하려면 한국기원 그 누구의 지시도 안 받고 독립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것 아닌가.

 

더구나 남녀 프로기사 각 2명으로 구성된 다른 윤리위원이 누군지 알려줄 수 없다고 한다. 세상에 어느 위원회가 위원을 비밀로 하는가. 상식이 없어도 정도가 있다.

 

 

 

6. 여성 기사들의 조속한 해결 성명 발표

 

윤리위원회의 하나마나 한 회의가 끝난 다음날 여성 기사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위원회가 첫 회의를 하니 지켜보자는 신중한 의견이었는데, 아무런 대책도 없이 시간을 끌자 더 이상 참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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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의 내용을 요약하면,

 

제보한 기사의 용기에 감사하며 끝까지 같이 싸우겠다

 

사건이 공개된 지 5일이 지났으나 김성룡과 한국기원의 어떠한 공식 입장도 없다

 

빠른 시일 내 처리가 되지 않으면 여성기사회가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다 할 것이다

 

여기에 대한 한국기원의 공식적인 답변은 아직 없다.

 

 

 

7. 프로기사 대의원회, 김성룡 제명 의결

 

김성룡의 한국기원 홍보이사직은 4월에 만료되지만 한국기원 측에서 해임했다. KB국민은행 바둑리그의 포스코 감독직도 재계약이 불발되었다. 4월 24일 프로기사회는 대의원회를 열어 김성룡 회원 자격 박탈을 안건으로 올렸고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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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달 열리는 기사총회에서 가결되면 한국기원 이사회(의장 홍석현 총재)에서 최종확정된다. 늦은 감이 있지만 잘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 뭔가 이상하지 않는가?

 

이세돌 기사회 탈퇴 때 벌어진 일들을 보자. 2016년 4월에 일어난 이세돌 기사회 탈퇴 건으로 6월 2일 기사총회는 마라톤 회의를 했다. 양건 기사회장은 '기사회는 이세돌의 기사회 탈퇴에 대해 결정을 할 권한이 없다'며 한국기원에 공을 넘겼다. 즉, 한국기원에 물어봐야 한다는 소리다. 한국기원은 '기사회와 이세돌이 대화로 잘 풀어보라'는 하나 마나 한 결론을 내렸다. 2년이 지난 지금까지 처리가 안되고 있다. 이세돌은 현재 기사회에 탈퇴서를 낸 상태로 한국기원 기사직을 유지하고 있다.

 

기사회 입장에서는 모순에 빠졌다. 이세돌 사퇴 때는 기사회가 결정할 수 없는 문제라고 해서 한국기원에 넘겼는데, 김성룡은 자신들이 제명처리를 한다. 논리적으로 이상하다. 탈퇴를 받아주는 것조차 기사회는 할 수 없는데, 나갈 의사가 없는 사람은 제명할 수 있다? 앞뒤가 안 맞는다.

 

'김성룡을 자르지 말라는 거냐?'라는 난독증 환자가 있을까 봐 한마디 덧붙이자면, 필자는 기사회의 정관과 일을 하는 절차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아니라는 말은 말이 안 된다.

 

 

 

 

8. 앞으로 남은 과제

 

김성룡 성폭행 의혹은 장기전이 되리라 본다. 사과할 거면 진작 해야 했다. 지금은 최대한 버티는 중이다. 변호사와 함께 피해자가 실수하기만을 기다리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공소시효가 끝나기만을 바라는지도 모르겠다. 윤창중도 잠수를 타다 공소시효가 끝나니까 억울하다고 나오지 않았는가.

 

사건이 터지자마자 신속하게 처리했으면 문제가 적었을 것이다. 신속하게 대처한 후 한국기원은 김성룡 개인하고만 싸우면 되는 것을 질질 끌다가 일이 커졌다. 한국기원 스타일을 미루어 짐작컨대, 조속히 처리될 일은 아니라 본다. 이제 와서 갑자기 제명시키려 하니 걸리는 게 많을 것이다.

 

김성룡 사건도 크지만 다른 사건들도 중요하다. 도장 내의 사건들은 교육청에서 나와 처리해야 되는 문제인지도 모른다. 특히 사건을 은폐한 원장들도 범죄 은닉으로 징계해야 한다. 문제가 있는 도장 혹은 바둑 교실은 대한바둑협회가 주관하는 대회에 못 나오게 하는 조치 정도는 필요하지 않을까. 도장 원생 빠져나가서 망한다고? 도장 돈 벌려고 원생들이 성추행을 당해도 덮고만 있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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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계에는 오랫동안 쌓인 적폐들이 있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속 시원하게 해명하지 못한 일들도 많다. 승부 조작. 예전부터 말이 많았는데 언제 조사 한 번 제대로 한 적이 있는가. 기사들이 저지른 사건을 덮기만 하지 발표한 적이 있는가. 그러니 잘못을 저지르고도 얼굴에 철판을 깔고 다닌다. 왜 그런 범죄자들을 휴직계 받고 넘어가 주는가.

 

곪으면 언젠가는 터진다. 이참에 그동안의 비리들을 모두 밝혀서 깨끗하게 청산하고 넘어가길 바란다. 그것만이 한국기원이 살 길이다. 이 사건들이 잊혀질 때쯤 다른 사건이 또 터지면 그때도 이런 행동을 반복할 셈인가?

 

 

 

9. 마치며

 

몇 년에 걸친 김곤마의 바둑 시리즈가 끝났다. 처음에는 바둑계 내부의 문제를 공론화하여 바꿔보자는 생각에 글을 썼다. 이명박근혜의 엄혹한 시절을 보내며 쌓인 분노, 세월호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글을 썼다. 정부가 바뀌고 내 마음의 분노도 사그라들었지만, 바둑계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특히 이번 김성룡 성폭행 의혹 사건과 그 처리 과정에서 한 줄기 희망마저 사라졌다. 여기는 망하는 동네다. 끝났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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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마지막 글을 쓰는 이유가 있다. 박근혜 국정 농단 사건 때 독립운동 하듯 진실을 알리는 사람들과, 촛불을 들어 응원한 시민들이 있듯 바둑계에도 비록 목소리는 작지만 옳은 소리를 하는 사람들과 그들을 지지해주는 바둑팬들을 믿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여기까지인 것 같다. 솔직히 많이 지쳤다. 취재원들도 지쳤다. 초반에 열정적으로 정보를 주던 이들도 몸을 사린다.

 

필자의 정체를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으리라 여긴다. 처음에는 주변을 뒤지다가 나중에는 익명으로 하는 이야기에 뭘 신경 쓰냐며 무시한다. 바둑계 특성상 실명으로 이런 기사를 쓰면 취재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 좁은 바둑계에 누가 누구를 만나는지 다 알지 않겠는가. 필자는 필자가 제기한 문제에 집중하길 바랐는데, 이 동네는 탐정 놀이에 빠져있다.

 

끝으로, 바둑계의 앞날을 보면 한국기원은 점점 쇠퇴할 것으로 보인다. 기전이 없어지는 것도 있지만 구성원들의 문제점도 있다. 프로기사들이 아마추어 대회에 나가는 순간 볼 장 다 본 셈이다. 프로랑 아마추어랑 다를 게 무엇인가. 누가 프로를 대우해 주겠는가. 스스로의 격을 떨어트렸으니 회생 불가능으로 보인다. 대한바둑협회는 현재 내홍이 심각하지만, 정부 산하 기관이라 감시와 견제가 가능하다. 일처리가 투명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제대로 된 인사만 오면 대한바둑협회가 한국기원을 역전하리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