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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류는 문자가 존재하는 시절부터 지금까지 약 8천 건의 평화조약을 체결했다. 이 효력이 지속된 시기는 평균 2년이다. ‘힘’이 전제하지 않는 평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2.

 

남북 정상회담에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 체제로 바꾸는 것이 논의됐다. 이는 상징적인 ‘종전선언’으로 여론을 환기시키고, 주변국의 지지를 얻어내고, 이 에너지를 모아 북미협상으로 끌고 가겠다는 의지다. 문재인 정부 스스로가 북미 회담의 중계자를 자처하는 상황에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다. 다만, 여기에 딴지를 걸자면 한국은 정전선언을 할 수 있는 법적 위치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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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에 사인을 하지 않았다. 이는 어디까지나 ‘정치적’ 제스처일 뿐이다. 이 정치적 제스처를 취하기 위해 중국과 미국의 ‘허락’ 혹은 사전 협의가 있었음을 유추해 볼 수 있다(하다못해 사전 교감). 남북한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는 미국과 북한이 이 ‘종전체제’에 지지를 보내고 있는 상황. 이 방향이 올바른 길인지에 대해서는 역사가 평가하겠지만, 지금 이 순간 다수의 지지를 받는 유일한 길이란 건 모두 다 알고 있다.

 

 

 

3.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 체제 로드맵을 보면,

 

① 남북 정상회담에서 ‘종전 선언’

 

② 북미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합의 도출’

 

③ 남북미 3국 정상회담에서 ‘평화협정 체결’

 

이라는 수순으로 나아간다고 발표했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이를 바라본다면, 이 3단계 로드맵은 지켜질 수 있고, 충분히 실천 가능한 계획이다. 1단계 종전선언은 어차피 ‘정치적 선언’이고, 한반도에 가장 큰 지분을 가지고 있는 미국과 중국도 지지하고 있다. 2단계 비핵화 합의 도출은 우리가 밟아 봤던 ‘고지’다. 문제는 이다음부터이다. 합의 도출은 했지만, 이의 ‘실행’과 ‘검증’은 별개의 문제다. 2단계까지도 ‘정치적 선언’이다. 그리고 3단계. ‘평화협정 체결’은 북한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단계이다. 2단계만 넘어간다면, 3단계는 당연히 주어져야 할 보상이다. 조금의 난관만 극복한다면 충분히 실현 가능한 그림이다.

 

그렇다면, 부정적으로 본다면? 역시 마찬가지다. 1~2단계는 이제까지 해왔던 정치적 제스처를 배우와 대본만 살짝 고쳐서 내놓는 ‘예고편’일 뿐이다. 종전선언이라고 말은 하지만, 이게 새로운 건 아니다. 한반도의 정치 상황이 그래왔고, 당사국인 한국은 종전선언을 할 권리도 없고, 이를 보장받을 법적 지위도 없다. 비핵화 합의 도출은 언제든 할 수 있다. 다만, 이걸 누가 검증하냐는 부분이다. 평화협정 체결은 예고편만으로 끝이 나고 제작이 무산될 수도 있다.

 

너무 비관적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나라와 북한은 이미 평화협정을 맺고 있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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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12월 13일에 합의를 남북한 기본 합의서를 보면, ‘평화협정’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남과 북은 상대방의 내부 문제에 간섭하지 않는다.”

 

“남과 북은 상대방을 파괴, 전복하려는 일체 행위를 하지 않는다.”

 

“남과 북은 현 정전 상태를 남북 사이의 공고한 평화 상태로 전환시키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하며 이러한 평화 상태가 이룩될 때까지 현 군사정전협정을 준수한다.”

 

“남과 북은 상대방에 대하여 무력을 사용하지 않으며 상대방을 무력으로 침략하지 아니한다.”

 

...이미 우리는 평화협정을 맺은 상태다. 그럼에도 평화협정을 맺은 걸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세월 북한의 도발과 수많은 ‘말폭탄’들을 떠올려 보라.

 

문재인 정부가 북미회담의 중계자 역할을 자처하는 것에 대해서 나는 수긍할 수밖에 없다. 노무현 정부 시절의 학습 효과라고 해야 할까? 이종석 前 통일부 장관과 콘디 사이의 갈등, 작계 5029를 사이에 두고 벌인 아슬아슬한 설전을 보자. 한반도 안에서 남과 북이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우리 민족끼리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에는 이해 당사자가 너무 많다.

 

독일 통일은 솔직히 말하자면, 동독을 소련으로부터 사들인 통일이었다. 일반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1990년 전후로 서독은 생필품이 극도로 부족한 소련에게 쇠고기, 돼지고기, 버터, 우유, 치즈 등 약 2억 2000만 마르크 상당의 생필품을 지원했다. 경제 상황이 더 심각해지자 고르바초프는 서독에게 경제 지원을 요청했는데, 서독은 소련 측 요구보다 더 많은 50억 마르크를 당장 입금시켜줬다. 대신 조건이 독일 통일과 관련된 미해결 문제를 2+4회담을 통해 마무리 지어달라는 ‘딜’을 걸었다(여기서도 6자회담이 들어선다).

 

이후의 문제는 더 극적이다.

 

서독에 주둔 중인 NATO 연합군을 유지하면서, 동독에 주둔 중인 소련군을 단계적으로 철수하는 방안이 나왔을 때 고르바초프는 다시 손을 벌린다.

 

“소련군 철수 비용을 대라!”

 

“소련군 철수 후에 주택 제공을 해야 하는데, 주택 건설 비용도 대라.”

 

양측은 흥정을 했고 헬무트 콜 총리는 소련군 철수 비용으로 120억 마르크, 무이자 차관으로 30억 마르크를 제공하는 걸로 낙찰을 봤다.

 

(이 당시 콜 수상의 외교 보좌관이었던 호르스트 텔칙은 당시를 회상하며, “고르바초프가 1000억 마르크를 요구했어도 우리는 제공했을 거다. 서독은 소련의 독일 통일 승인을 경제력으로 샀다"라고 말했다)

 

독일식 흡수통일을 말하는 것도, 북한을 경제력으로 사들이자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독일의 통일 과정에서 보여준 정치인들의 ‘신념’과 ‘정치력’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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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통일의 시작은 아데나워 총리 시절부터 시작됐다. 당시 아데나워 총리는 경제발전과 함께 서방정책에 들어갔다. 당장 독일을 살리는 게 급선무였다. 이때 스탈린이 아데나워 총리에게 제안 하나를 던진다.

 

“독일 너희들 통일해라.”

 

“아! 진짜?”

 

“그래. 대신 조건이 있는데, 통일 독일은 중립국이어야 해. 알았지?”

 

“... 나 안 할래.”

 

였다. 당시 독일은 미국에 붙어서 힘을 기르고, 칼을 갈았다. 그 뒤에 독일 통일의 설계자라 할 수 있는 에곤 바르(Egon Karl-Heinz Bahr)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루어낸다. 그때까지의 독일 정치인들이 ‘국가’개념으로 통일을 바라봤는데(에곤 바르는 아데나워를 비롯해 그 당시의 보수, 진보 정치인들을 모두 ‘독일 분리주의자’로 봤다), 그는 생각이 달랐다.

 

“독일 통일 문제는 독일 민족주의 프레임 안에서 생각해야 한다.”

 

“독일 통일은 소련과 함께 가야 한다. 소련의 허락 없이 통일이 가능할까? 불가능하다. 소련과 손을 잡아야 한다. 아울러 동독을 ‘대결’의 대상으로 바라봐선 안 된다. 서독은 동독을 안정시키고, 교역을 통해 동독 주민의 삶을 개선하고, 동서독 간의 정치, 경제, 문화적 유대를 점진적으로 늘려서 민족적 동질성을 확보해야 한다. 그 토대 위에서 통일을 생각할 수 있다.”

 

그 유명한 『접근을 통한 변화(Wandel durch Annaehrung)』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바르가 설계한 통일 계획을 빌리 브란트 총리가 그대로 실천한 게 그 유명한 ‘동방정책’이다. 놀라운 건 이걸 실천한 건 헬무크 콜 총리였다. 그는 보수 정치인이었다.

 

2차 대전 직후부터 독일 통일까지의 과정을 보면, 보수와 진보 정치인들이 번갈아 가면서 자신들의 정치적 신념을 기반으로 나라를 안정시키고, 계획을 만들고, 외교적 거래를 했다. 바르와 브란트가 통일이라는 꿈을 구체화시켰다면, 이 토대를 기반으로 콜이 ‘거래’를 했던 거다.

 

물론, ‘운’도 작용했다. 소련이 휘청이던 그때 고르바초프라는 전혀 이질적인 지도자가 소련에 등장했다. 그 운을 독일은 놓치지 않고 잡았다.

 

아마도 지금은 우리에게 ‘운’이 들어온 시기인지도 모른다. 트럼프라는 새로운 리더십과 김정은이라는 미지의 리더십이 만난다. 여기에 대한민국은 문재인이다.

 

너무도 다행인 게 이 3명 다 북핵을 추상적인 ‘평화’나 ‘정의’의 개념으로 보지 않는다는 거다(물론, 정치적 구호는 그렇게 외쳤다). 이들은 지금 ‘평화’를 사고팔려고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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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

 

이 얼마나 듣기 좋은 소리인가? 국제정치에서 평화는 사고팔 수 있는 물건이다. 지금 대한민국, 미국, 북한은 이 ‘평화’를 가지고 거래에 들어간 상황이다.

 

동독을 소련에게서 돈을 주고 사온 서독처럼, 우리도 북한의 핵무기를 사 오려 하고 있다(분명한 건 미국 혼자의 단독 분담은 아닐 거다. 경수로 때처럼 상당 부분은 우리 부담일 거다).

 

북미회담을 통해서 미국 측은 자신의 거래 조건을 내놓을 것이다. 트럼프와 김정은은 둘 다 탑다운(top down) 방식에 익숙한 지도자들이다. 즉, 이들만 움직이면 그 나머지의 자질구레한 의제들을 다 뭉갤 수도 있다는 의미다. 문제는 결국 ‘김정은의 의지’다. 김정은이 이제까지 보여준 행동들이 그의 실제 ‘의지’와 일치한다면, 이번 북미회담은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거다.

 

트럼프? 개인적으로 트럼프의 의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

 

그는 북한의 핵무기를 사고 싶어 하고, 꼭 사야만 한다(그가 처한 국내외적 문제들을 생각해 보라 러시아 스캔들, 포르노 스캔들, 중간 선거 등등 결정적으로 오바마에 대한 콤플렉스는?). 그의 의지에 대해서 별 의심은 없다. 아울러 그가 회담 안에서 돌출 행동을 할 수도, 특유의 ‘미친놈 전략’을 펼칠 수 있음도 예상한다. 결국 그의 욕망이 그를 움직일 거다.

 

김정은 역시 만약 지금까지 보여준 행보가 그의 ‘의지’와 연관돼 있다면 그의 욕망은 북한을 중국식의 개혁 개방 경제로 끌고 간다는 게 된다. 개인적으로 김정은을 보면서,

 

“북한판 심시티(SimCity)를 하고 있는 거 같은데?”

 

라고 반문했던 기억이 난다. 여명거리를 보면서 ‘색감’이 참 촌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어쨌든 건물을 올리긴 한다. 그는 북한을 바꾸고 싶은 욕망이 있는 듯하다(조심스러운 추정이다).

 

이 욕망들 사이에 중계자로 나선 문재인 대통령의 경우 목숨을 걸고 이 둘을 이어줘야 하는 당위를 가지고 있다. 이 둘의 관계가 틀어지면, 대한민국은 말 그대로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지 않은가?

 

서로의 욕망과 당위는 확인했다(한 명은 그 진정성이 의심되지만, 여하튼 ‘신뢰 회복’을 위해 노력 중이니 의심의 눈초리로 믿어보자). 남은 건 ‘흥정’이다.

 

한쪽은 비싼 값을 부르고, 다른 한쪽은 값을 깎으려 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서 거래 후의 AS와 판매자 보호까지 얽히고설켰다.

 

개인적인 예상이지만, 아마도 핵협상의 최종 결과물은 ‘핵동결’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내 예상이 틀리길 바라지만, 생각해 볼 수 있는 최선의 선택지다.

 

(내 예상이 틀리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핵동결에서 협의가 멈추면... 이건 북핵 위기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가는 거겠지만...)

 

리비아식 해법이든, 우크라이나식 해법이든 상관이 없다. 어차피 정치적 구호인 ‘핵포기 합의’는 나올 수 있다. 다만, 합의와 선언. 이후 이어지는 이행과 검증. 특히나 검증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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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북한의 의지가 없다면, 북한의 핵시설을 100% 다 사찰할 수는 없다. 플루토늄탄의 경우는 어떻게든 찾아낸다 하지만, 농축 우라늄 방식은 어떻게 해야 할까? 원심분리기를 어디에 어떻게 숨겼는지 확인할 수 있을까? 이제까지 북한의 모습이라면, 샘플 채취를 거부할 수도 있다. 샘플 채취를 못한다면 검증을 할 수 없다.

 

자료상 다르지만, 북한은 최소 20개에서 최대 60개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걸로 파악하고 있다. 이들이 어디 있는지는 북한 내에서도 최고 기밀이다.

 

결정적으로 북한이 사찰을 ‘방문’으로 바라볼지 ‘검증’으로 받아들일지가 문제다. 이들의 과거 행태를 보면, 분명 샘플 채취에 대해서 반대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은 북한의 의지다. 북한이 이 모든 걸 감내하고 100% 검증에 동의해야지만 가능한 문제다.

 

그러기 위해선 김정은의 마음을 돌릴 수 있는 카드를 건네줘야 한다.

 

그게 뭐가 될지는 대충 눈에 들어온다. 테러지원국 해제를 통해 북미국교 정상화. 이 하나만으로도 북한은 정상국가로 돌아갈 수 있는 토대를 얻게 된다. 아울러 6자회담 당사자들의 경제 지원과 다자 안보 보장이 이루어질 거다. 이게 큰 틀에서 주어지는 것들이다.

 

북한에게 있어선 북미수교만 하더라도 미래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꿈꿀 수 있다. 그 자체로 베트남식의 개혁개방을 할 수 있게 되는 거다. 문제는 체제보장이다.

 

까놓고 말해서 지금 동북아 정세 속에서 북한을 우크라이나 식으로 침공할 국가가 있을까? 결국은 김정은 체제의 보장이다. 이 보장을 위해서 뭘 할 수 있냐는 거다. 미국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폐기”

 

즉 CVID(Complete, Verifiable and Irreversible Dismantlement)를 말하지만, 북한은 핵을 내놓는 순간 가역적인 ‘성과’만을 얻게 된다.

 

누가 봐도 북한의 체제는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역사를 살펴보면, 이런 협정 이후에 벌어질 ‘후과’는 너무도 많다. 리비아와 우크라이나는 북한의 미래 모델이 될 수도 있다.

 

여기에 대한 해법은... 솔직히 난 모르겠다.

 

미래의 핵과 과거의 핵을 건네고, ‘핵동결’ 형태로 지금 상황을 수습한 뒤 다시 한 번 협상에 들어가야 할까? 핵동결 사태는 앞에서도 말했지만, 북핵 위기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일 뿐이다.

 

분명한 사실은 그럼에도 계속 협상은 해야 하는 것이고, 북한의 신뢰를 계속 얻어야 한다는 거다.

 

너무 비관적이라 미안하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내 수준에서는 핵동결 이상의 해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트럼프 대통령의 건투를 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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