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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4월 16일은 딸아이의 첫 출근일이었다. 인천공항 근처의 호텔이다. 딸아이는 1차 면접을 보고 와서 후기를 재잘거렸다. 면접관이 토익 점수가 낮다고 말해서 그건 예전 거고 이번에 새로 본 건 좀 잘 나왔다고, 뽑아주면 다음엔 훨씬 좋은 성적표를 가지고 오겠다고 했단다. 학교 다닐 적에 묻지 않아도 항상 시험을 잘 봤다며 함박웃음을 짓곤 했다. 의기양양한 얼굴로 70점이 넘은 시험 결과를 가지고 오곤 했다. 그러니까 딸아이 기준으로 잘 본 시험 성적이다.

 

그 당당하고 자신이 받아 마땅한 칭찬을 요구하는 표정을 보면 인정하게 된다. 어떤 부분에서 인생은 스스로가 적당히 만족해야 하는 점도 있다. 가끔 너무 기준점이 낮다는 느낌도 없지는 않지만,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다 치열하게 살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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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면접은 임원 면접이었고 면접비도 나온다고 딸아이는 신이 나있었다. 잘하고 오라고 말은 했지만 잘 안되더라도 상관없었다. 혹시 떨어지면 호텔 근무의 안 좋은 점을 수십 가지 이야기해 줄 생각이었다. 물론 호텔을 이용하거나 근무한 경험은 없다.

 

딸아이가 임원 면접을 다녀온 이야기를 한다. 토익 점수가 제 기준에서 잘 본 점수였지만 임원들 눈에는 부족했는지, 지적을 받았단다. 회사가 요구하는 커트라인을 넘겼으니 임원 면접에 올렸을 텐데, 낮은 점수에도 불구하고 뻔뻔함으로 보이는 당당함이 맘에 안 드는 면접관이 있었던 듯하다. 한 면접관에게 계속 지적을 받으면서 속으로 '글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기왕 이렇게 된 거 "그럼 제가 입사하고 영어 공부하게 학원 다닌다면 학원비 주실 건가요?"라고 질문을 해버렸단다. 혹시 합격하면 학원비는 아니고 교제비까지는 지원을 해 주겠다는 대답을 들었단다.

 

반쯤 마음을 내려놓고 있는데 조용히 이력서를 보던 나이 많은 면접관이 질문을 하더란다.

 

"여기 단원고가 그 단원고인가요?"

 

질문은 듣는 순간 갑자기 눈물이 쏟아질 것처럼 차오르는 것을 억지로 참았단다. 생각하지 못한 곳에서 갑작스런 질문에 왈칵 올라오는 감정이었던 것 같다. 왠지 모를 억울함에 그 단원고가 맞다고 하니 혹시 배에 탔던 학생인지 물어오더란다. 학년이 달라 그건 아니라고 하니 한가지 질문을 더 하더란다.

 

그 대답을 잘 했단다. 얼굴에 감정이 잘 드러나는 아이다. 면접관들은 감정선의 흐름을 읽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것이 면접관에게 영향을 미친 것 같기도 하다. 단원고라는 이름에 아이의 감정이 격렬하게 움직인 것이 면접관에게 상호 작용을 했을 수도 있다. 사람은 합리적으로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어쨌거나 연년생 동생을 잃은 한 아이의 엄마가 언니의 졸업식에서 말한 대로 단원고라는 꼬리표는 평생을 따라다닐 듯하다.

 

아이에게 그 점을 이야기하면서 너를 믿어주는 사람들에게 실망을 주지 않기를 당부했다. 누군가를 믿는다는 건, 월등하게 잘 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고, 당연히 하지 말아야 할 나쁜 짓을 하지 않을 거라는 걸 기대하는 것이다.

 

합격 연락이 오기 전날 아이에게 가깝게 지내던 교수님이 좋은 소식이 있을 거란 문자 연락을 보내왔다. 출퇴근을 걱정하던 아이는 회사로 연락했다. 기숙사를 원하는 직원에게는 2인 1실의 오피스텔을 제공하고 전세금 대출도 가능하다는 대답을 들었다. 첫 출근을 하기 전날 배정받은 오피스텔에 아이를 데려다주었다. 아내는 아이를 대견해하고 행복해했다. 그러다가 금세 불안해하기도 했다. 아이가 적응을 못하고 힘들어하면 어떻게 하냐고 물어온다. 뭘 어떻게 해. 얼른 집에 오라고 해야지. 그제서야 조금 안심하는 눈치다. 아이들이 짐이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지만 아내에게는 혹시나 하는 마음이 늘 한켠에 있는 것 같다.

 

 

 

2.

 

딸아이의 첫 출근. 딸아이에 대한 생각과 어른이 되지 못한 다른 아이들의 생각이 교차했다. 세월호 납골당을 '결사반대'한다는 주변 주민들의 현수막과, 그들을 부추기는 정치 세력과, 추모 공간을 납골당으로 둔갑시킨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래, 추모 공원 조성 사업에서도 이익을 챙기는 사람이 있긴 있을 거다. 건축 업자와 시설 관리자, 재단의 임직원들은 경제적 수혜를 받긴 할 거다. 그게 그리 큰 잘못은 아닐 텐데, 만만한 곳에서만 엄격해지고 잔인해지는 경향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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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죽음을 돈으로 환산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가족에게도 그럴 것이다. 입으로는 부정하지만 정말로 부러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자녀 중 하나를 희생시켜 언론이 보도한 대로 팔억의 보상금을 받을 경우 기쁜 마음을 최대한 숨기고 받아들일 사람들이다. 보험금을 노리고 가족을 살해하는 사람도 적지 않게 있다. 사고로 죽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야 그보다는 더 많을 테고, 타인의 가족 일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사람은 더더욱 많을 것이 분명하다. 그들과 더불어 사회를 구성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중이다. 세상이 윤리와 도덕으로만 돌아가지 않고 법이 필요한 이유다.

 

전쟁터에서 적군을 죽인 트라우마로 심약해지는 사람도 있고, 사람을 죽이고도 밥 잘 먹고 잠 잘 자는 사람도 있다. 모든 사람이 같은 현상에 같은 감정을 갖는 것은 아니다. 생명의 진화는 모든 상황에서 생존 가능성을 목적으로 최대한 다양성을 추구한다. 인간이 자연의 법칙에서 벗어나지 않는 이상, 개인에게 주어지는 공감 능력의 범위는 지적 능력의 크기만큼이나 다양하기 마련이다.

 

위선자가 위악자보다 많은 현실은 그나마 긍정적인 현상이고 인류 사회가 발전하는 방향성이다. 태생적으로 나쁜 놈에 가까운 사람들도 살아남기 위해서 선으로 위장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다. 위선이 벗겨졌을 때는 보통 사회적 죽음을 선고받는다. 지나치게 당당한 태도로 세월호와 천안함을 대립시키고 죽음을 돈으로 엮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의 무지가 그들을 침몰시키리란 생각을 한다. 어쩌면 일부분은 이미 절망으로 침몰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도 자신과 같이 구렁텅이에 빠지길 원하는 사회의 구조적 문제인 경우일 수도 있다.

 

사다리를 걷어차는 이기심은 자신보다 조금 앞선 이의 다리를 잡아당겨 거꾸러뜨리려는 질시와 짝이 되어 평형을 이룬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교묘한 반칙은 성공한 이들의 몰락을 축제로 즐기는 대중들의 저열한 욕망으로 견제되기도 한다. 사회적 구조의 문제는 답을 찾으려는 운동의 시발점이 되기도 한다.

 

 

 

3.

 

아이들은 아직 뿌리를 내리지 못했지만 어미와 떨어져 자리를 잡아간다. 이제 그들의 인생을 살아갈 것이다. 단조로운 일상에서도 고양감을 느끼는 순간들이 있다. 단순하던 일들이 특별한 감정으로 다가오는 순간들이 우연치않게 찾아와 삶의 방향을 조금씩 결정짓기도 한다. 저녁 바람에서도 한기가 크게 느껴지지 않을 무렵 다른 날처럼 아내와 산책을 나섰다. 아내는 길고양이들에게 줄 사료를 챙기고 나는 그녀의 믿음직스럽지 않은 보디가드로 이제는 활달함이 줄어든 개에게 목줄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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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들에게도 유독 고양되는 순간이 존재하는 듯하다. 아내를 지켜보며 벤치에 앉아있는 나에게까지 다른 날보다 친밀감을 표현한다. 개에게 코끝을 붙이고 인사를 하기도 하고, 눈치를 보며 허겁지겁 밥을 먹는 다른 날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봄의 기운을 몸으로 느끼는 어린 암고양이는 주위를 돌며 장난을 건다. 유독 수줍음이 많던 회색 고양이까지도 다가와 머리를 부비고는 바닥을 구르며 친밀감과 만족감을 표현한다. 개와 고양이와 아내는 순간 행복해 보였다. 아내가 느끼는 행복감을 가능한 한 유지시켜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고양이에게 사료를 주는 일이 모든 이들에게 환영받는 일은 아니다. 누군가가 고양이 울음소리는 징그럽고, 쓰레기 봉투를 찢어놓는 혐오 동물이라고 말했다. 막상 고양이가 사라지면 쥐들이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고, 쥐를 잡아먹는 뱀들이 더 많아질 거라고 대답했다. 사람보다 짐승을 위하는 사람들이 이해가 안된다는 말을 들었다.

 

짐승에게 모질지 못한 사람은 사람에게도 모질지 못하다고 답을 해 주었다. 짐승보다 더 불쌍한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말도 들었다. 삶에서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문근영 양에게 불순한 의도가 담긴 기부 행위를 한다고 지적하면서, 자신은 사회적 약자를 위한 기부금을 만 원도 안 하던 사람과 같은 심리상태로 보였다. 아내가 길고양이에게 한 달에 지불하는 사료값 정도를 자선 단체에 기부하고 있다고 말해 주고 싶었다.

 

 

 

4.

 

아내에게 어느 순간 명확해진 계획을 설명했다. 아내의 국민연금 수령액을 적어도 국가 대표 김보름 선수가 평창 올림픽 은메달로 받는 연금만큼은 되게 만들어야겠다. 혹여 안 좋은 일이 있더라도 사치하지 않은 아내가 박스를 줍지 않고도 고양이들 밥을 주며 노후를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혹여 주워야 한다 하더라도 조금 덜 절박하게 주울 것 같다. 아내의 노년이 아이들에게 짐이 되는 것도 좋지 않고, 나보다 아내가 먼저 죽는다는 법도 없으니 말이다. 아내는 "혹시 국민연금 못 받게 되면..."이라고 다른 서민들과 같은 막연한 불안을 이야기한다.

 

그럴지도 모른다. 막상 국민연금을 수령할 때 지급받지 못하거나 액수가 줄어들 수도 있다. 그 정도면 다른 사보험이나 재산 가치는 폭락해서 나라가 이미 망한 수준이 되었을 것이다. 더하고 덜하고의 차이가 없이 다들 비참한 지경이라 어찌할 수 없는 경우가 된다.

 

요즘 나라가 돌아가는 걸 보면 그래도 쉽게 망하지는 않을 것 같다. 문재인 정권 일 년을 지켜보며 내린 결론이다. 여전히 조마조마하지만 쉽게 무너지진 않을 거란 기대감이 조금 생겼다.

 

공의로운 삶을 사는 사람들을 보면 사사로운 개인의 삶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가 여실하게 느껴진다. 그녀를 위한 마음이 이타와 이기 어느 곳에 더 가까울지 생각해봤다. 적어도 나의 마음이 움직인 동인은 그녀의 이타적 심성에서 기인한다. 웃기게도 지난 정권과 그전 정권에서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을 보면서는 지적, 도덕적 우월감을 느꼈다.

 

내가 해도 그것보다는 잘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나라를 걱정했다. 참혹한 지경에 이르러도 나라를 벗어나지 못할 처지의 아는 사람들을 핑계로 자신의 삶을 걱정했는지도 모른다. 다행히 이번 정권에서는 뛰어난 사람들이 많구나 하는 안도감이 사사로운 삶에 조금 더 치중할 수 있게 해준다.

 

국민연금공단에 찾아갔다. 상담사는 자신의 이익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으니 열정적으로 일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실적이 수익으로 직결되는 사보험 종사자들이 계약 체결을 위해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과 달라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다. 현재 가치로 미납된 연금을 불입하고 보험료를 더 받는 방법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 금액이 크다면 분할로 납부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한다.

 

아직 십 년의 여유가 있다. 아주 운이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가능하리라 본다. 일 년에 분담해야 할 금액은 미비된 서류를 지참하고 다시 방문하기로 했다. 비루한 노동으로 영위하는 삶에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그녀에게 반지 대신 준비하는 혼인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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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추천하고 싶다는 책이 생겼다고 주소를 가르쳐달라는 문자를 받았다. 저 혼자 초조하던 딸아이가 호주 워킹홀리데이 이야기를 꺼낼 무렵 장강명의 "한국이 싫어서"를 추천했던 분이다. 먼저 읽어보고 아이에게 권했다. 출판 관련 일을 했던 경력이 있으니 어디서 책이 들어왔거나 새로 책을 냈나 보다 하는 추측을 했다. 문자로 주소를 찍어서 보냈다. 국민학교를 다닐 때 받은 "스위스 산골 마을의 용감한 사람들"이란 소설 이후로 오랜만의 책 선물이다. 책을 선물로 주고받는 사람들이 드문 시대이고, 내 주변의 사람들은 없다.

 

약간 기대가 되었다. 책을 보내겠다는 분의 평소 글 취향을 보면 "힐빌리의 노래" 같은 류의 책일 거라는 추측을 했다. 읽고 최대한 공을 들여 독후감을 올리는 것은 선물에 대한 답례고, 읽은 책은 도서관에 기증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마다 각자가 감당할 만한 무게의 짐이 있는 것 같다. 아내는 생각이 다르지만 지금 가진 걸로 충분하고 더 이상 소유물을 늘리고 싶지 않다. 이런 생각 또한 신 포도를 타박하는 여우처럼 자신을 속이는 허영일 수도 있다.

 

택배가 왔다. 생각보다 묵직한 상자를 뜯었다. 기대했던 책이 아니고 A4용지 500매 두 묶음이 들어 있었다.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프린트된 내용물은 그동안 내가 썼던 글과 주고받은 댓글들이었다. 마음이 묵직해졌다. 내용물이 뭔지 궁금해하던 아내에게 설명을 해야 했다. 아내는 자신의 방식으로 이해했다. 회사가 안 좋아져 문 닫기 전에 기념품으로 보내줬나 보다. 얼토당토않지만 설득력은 있었다. 그래도 다시 설명해야 했다. 책을 보내준다고 해서 주소를 보냈는데 내가 썼던 글들을 교정하고 교열해서 프린트해 보내줬다.

 

묵직한 프린트물을 들고 장을 넘겼다. 비문과 오탈자가 사라지고 사이사이 문장의 굵기를 달리해서 시각적 선명함을 주었다. 문외한이 보기에도 품이 많이 들었겠다고 느꼈다. 많이 겸연쩍고 고마웠다. 손에 들린 묵직함이 다시 마음으로 왔다. 나는 과연 그럴 가치가 있는 사람인가 하는 자문이 던져진다. 때론 한숨처럼 때론 감정의 배설처럼 썼던 글들에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가 하는 질문이 주어졌다.

 

일 년 전 출판을 권유받았을 때 여러 가지를 생각한 후 인터넷에 머무는 글이 낫겠다는 결정을 했다. 눈앞에 보이는 타인의 노고 앞에 같은 말을 할 수 없었다. 프린트로 현실화된 결과물에서는 그의 지분이 더 커 보였다. 따로 생업에 종사하면서 진행한 작업이 더욱 묵직하게 다가왔다.

 

비 오는 5월 12일 용산에서 만남을 가졌다. 부산에 사는 분이 표지 디자인을 맡아 주시기로 했단다. 김창규 기자가 작은 출판사를 연결해 주기로 했다. 여러 번 책을 만들었지만 특이한 경우라는 말을 들었다. 갈수록 피폐해지는 출판 시장과 한번 망한 경험이 있는 회사가 망하기 전에 서둘러 진행하기를 종용했다. 뭔가 막막하지만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좋은 마음을 가지고 도와주시는 분들이 최소한 경제적 손실을 입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홍석동씨 납치 살해 사건에 관한 기사에서 느낀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기댈 곳 없이 막막하던 피해자 아버님의 심정에 공명하는 부분이 있어서 절실하게 고마웠었다. 그 후에 종편과 공중파에서 진행되는 일들에서 신속한 문제 해결을 위해 개인적 공명을 포기한 태도에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드렸다. 자신이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그에게 나쁜 놈을 나쁜 놈이라고 지적하는 것만큼 마땅한 감사를 표하는 것도 세상을 움직이게 하는 중요한 일이라는 개인적인 생각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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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우리 사회는 칭찬받아 마땅한 사람들에게 참 인색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존심은 강한데 자존감이 약해서 그럴 수도 있다. 사전적 표현은 다른데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자존심을 충족시키려는 사람들은 타인에게 좋은 평가를 주기에 야박해진다. 어찌 보면 경쟁 사회의 폐해 중 하나다. 타인의 고귀함과 자신의 존엄함은 비교의 대상이 아니다.

 

손익 분기점을 묻는 내게 어림잡아 돌아온 대답이 500부였다. 나중에 출판사 분과 연결이 되면 다시 물어볼 일이다. 어쩌면 개인사와 토로한 본심이 불편함으로 다가올 주변인들을 위해 상업적 영향이 적다면 딴지에서 사용하는 필명을 사용하고 싶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 진행하다 보면 엎어질 수도 있는 노릇이다. 개의치 않는다. 이미 과분한 선물을 받았다. 늦게 마신 커피와 간만에 핀 담배가 새벽잠을 깨웠다. 투아웃님과 숲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