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BRYAN 추천16 비추천-1

 

 

 

20180718090035_1231339_1200_800.jpg

 

추신수 선수의 자녀들이 ‘국적이탈’ 신고를 했다는 소식이 논란인 듯 합니다. 언론에서도 “추신수 자녀들이 국적을 ‘포기’했다”는 등의 제목으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1인 1국적이기 때문에 외국국적을 취득하게 되면 우리나라 국적은 자동 상실됩니다. 다만 예외적으로 '선천적으로 외국 국적을 취득할 경우' 복수국적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한국인이 미국에서 자녀를 출산하면 그 아이는 한국국적과 미국국적을 동시에 가진다는 말입니다. '어디에서 태어났는가?(장소)'를 우선하는 속지주의 국가 미국과 '누구에게서 태어났는가?(사람)'를 우선하는 속인주의 국가 한국이 만나, 한 번에 두 개의 국적이 생긴 것입니다.

 

이전에는 복수국적이 허용되지 않다가 2010년 국적법 개정으로 '선천적으로 국적을 취득하는 경우 허용'키로 했습니다. 태어나보니 국적이 여러 개인 것을 국가가 강권적으로 행정처리를 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취지에서 개정된 것입니다. 

 

추신수 선수의 자녀들은 모두 미국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모가 한국인이기 때문에 한국 국적을 부여받았지만, 속지주의에 따라 태어난 곳인 미국 국적도 함께 부여받았죠. '선천적 복수국적자'입니다. 

 

우리나라는 국방의 의무가 있기 때문에 남성 복수국적자의 경우 병역의 의무가 주어지는 만 18세에 국적을 선택해야 합니다(이듬해의 1월 1일부터 3개월 이내). 군대를 갈 것이냐 말 것이냐를 결정해야 하는 것이죠. 

 

국적.jpg

 

문제는 여기서 시작됩니다. 먼저 국적 선택 기간이 너무 짧고(3개월), 혹여 이 시기에 결정하지 못할 시 국적법상 한국 국적을 임의로 포기할 수도 없습니다. 내가 국적을 포기하고 싶어도 국가가 계속 국적을 유지토록 하는 것이죠.

 

병역의무가 해소되는 만 36세까지 본인이 싫든 좋든 국적을 보유해야 하는데, 이 경우 병역기피자로 간주되어 우리나라를 방문하기 어렵습니다. 신고 기간을 넘겨 국가의 권한으로 국적이 박탈될 경우(국적 이탈 미신고자의 경우 법무부에서 국적을 박탈할 수 있습니다. 잘 사용하진 않지만요)에는 추후에 ‘국적회복’이라든지 ‘재외동포비자’를 받는다든지 등 우리 나라에서 거주하는 일도 불가능해집니다. 

 

해외에서 태어나 한 번도 한국사회를 경험해보지 못한 아이들이 만 18세에 “군대를 갈 것이냐 말 것이냐”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그것도 3개월 안에 말이죠. “미리 결정을 했어야 한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당연히 국방의 의무를 감당해야 옳지 않은가”등의 반론이 있을 수 있겠습니만, 현실적으로 굉장히 어려운 선택입니다. 해외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이 국가관이나 국방의 의무에 대한 뚜렷한 의식을 갖기란 쉽지 않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국적법은 세계 각지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사례들을 어우르기에는 세세하지 못한 면이 있고, 아직까지 ‘병역’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자녀들에게 국방의 의무를 지우지 않게 하려는 일부 부모의 몰상식한 행태를 막고자 마련된 법이니 병역 이외의 다른 경우에 대해선 분명 한계가 있었겠죠. 병역의 의무는 개인의 권리를 제한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가장 중요하게 다뤄져야 하겠지만, 이 때문에 국적법 자체가 ‘병역기피를 막느냐 못 막느냐'를 가늠하는 기준으로 이용된다면 또한 문제가 될 수 있겠습니다. (현재 개정중이라 합니다) 

 

img_20171128092441_19cc4a86.jpg

 

일각에선 추 선수를 '배신자'로 보기도 합니다(가수 유승준 씨와 비교를 하는 분들도 있던데 그 사기 사건과는 결이 매우 다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국적법을 들여다보면 추 선수의 선택이 ‘배신자’로 불릴 만한 행위는 아니란 걸 알 수 있습니다. 추 선수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신고한 것이고, 국가에 자신의 선택을 알린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해외에서 외국 국적 취득을 했음에도 이를 신고하지 않고 불법으로 한국과 타국 국적을 유지하려는 것입니다. 선천적 복수국적자가 아닌 이상 외국 국적을 취득하면 즉시 한국 국적은 소멸되지만, 이를 본인이 법무부에 신고하지 않으면 국가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이 허점을 이용해 많은 외국 국적자가 불법으로 대한민국을 방문해 혜택을 누리고 있습니다. ‘먹튀 의료관광’에 의한 건보료 적자가 작년 한 해만 수백억 원이라고 하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정춘숙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이러한 불법행위를 막고자 지난 7월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습니다. 정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병원진료를 받고난 후 건보료를 내지 않고 출국하는 해외 거주자는 2016년 7만392명, 2017년 5만3780명, 2018년 10만4309명 등 3년간 23만 명이며, 이들이 남긴 건강보험 미납액은 2016년 117억, 2017년 112억, 2018년 190 등 3년간 420억 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심지어 우리 국적이 상실되었음에도, 이를 국가에 신고하지 않고 대선, 총선투표까지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외국 국적 보유한 것을 속이고 불법으로 이중, 삼중 국적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추신수 선수의 사례보다는 이런 사태의 심각성이 더 부각되어야 맞는 것 같습니다. 

 

아직까지 해외에 거주하여 외국국적을 취득하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존재하고, 병역에 대한 민감함이 있는 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남성 선천적 복수국적자가 성인이 되기 전 우리 국적을 포기하는(남성 국적이탈 약 80%) 때 추 선수만 비난을 받는 것이 옳은 것인지는 생각해봐야 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 

 

rangersblog.dallasnews.com_files_2015_03_465802358_42724373.jpg

 

개인적으로 추신수 선수의 팬도 아닐 뿐더러 옹호하려는 마음은 없습니다. 다만 ‘국적이탈’이라는 극단적인 표현도 그렇거니와 제한된 국적법으로 인해 누군가 희생을 당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입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정말 비난 받아야 할 사람들은 마땅히 해야할 신고를 한 사람들이 아닌, 불법으로 외국 국적 보유하고, 우리나라에서는 각종 의료혜택 받고, 외국에서는 잘 갖춰진 복지혜택(아동수당, 급여수당, 주택수당 등등) 받아가며 이득 보는 얌체족들이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