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일당에 근거한 미묘한 위계

 

traffic-14934_960_720.jpg

 

큰 현장에선 원청 주관으로 아침마다 모든 인부가 모여 체조를 한다. 이때, 원청 간부가 그날의 작업 일정과 안전 관련 유의사항 등을 얘기해준다. 노가다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다. 한번은 원청 간부가 이런 말을 했다.      

 

"오늘은 공정 간 간섭할 일이 많습니다. 조금씩만 양보하면서 작업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재밌는 표현이라 생각했다. 공정 간 ‘간섭’이라. 어떤 뜻인지는 알겠는데, 그 문장에 간섭이라는 단어가 있으니 뭔가 어색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고 그랬다.

 

보통 그럴 때 공정이 겹친다거나 공정끼리 방해하게 된다거나, 같은 작업장에서 함께 작업하게 된다거나 하는 식으로 표현할 것 같은데 말이다. 어쨌거나, 노가다판에서는 그런 상황을 ‘간섭’한다고 한다.

 

그럼 어떨 때 공정 간 간섭이 생기느냐. 실은 일상이 간섭이긴 하다. 말로는 늘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작업하라고 하는데, 실제 일정은 굉장히 빡빡하다. 하나의 공정이 끝나고 다음 공정이 들어오는 상황이어야 숨이라고 쉬면서 일할 텐데, 보통은 꼬리를 물면서 다음 공정이 따라온다.

 

현장에서는 바닥을 슬라브(평판, 판을 뜻하는 영어 slab에서 파생)라고 하는데, 이 슬라브 공사할 때 보면 진짜 도떼기시장이 따로 없다. 참고로 슬라브 공사 순서는 형틀-철근-전기와 설비-타설 순이다. 

 

101동 4층 슬라브 공사를 한다 치자. 우선, 목수들이 바닥을 깔아야 한다. 근데 보통은 바닥을 다 깔기도 전에 철근공들이 우르르 몰려온다. 반쯤은 바닥이 뻥 뚫린 4층에서, 목수들을 따라가며 철근을 깔기 시작하는 거다. 철근공들이 402호까지 작업하고 403호로 넘어갈까 싶으면 벌써 전기공과 설비공들이 401호에 연장을 푼다. 거기에 직영 잡부들까지 섞여 있으면 1개 층에 다섯 공정팀, 50~60명이 뒤엉켜 작업하는 거다. 도로에만 꼬리 물기 있는 게 아니다. 이렇듯 노가다판에도 꼬리 물기가 빈번하다. 그럴 때면 진짜 정신도 없거니와, 서로가 서로를 간섭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사소한 거로도 왕왕 싸움이 나곤 한다.

 

간섭 때문에 벌어진 싸움 하면 떠오르는 사건이 있다. 군대에서 대대가 다르면 병장이든 이등병이든 서로 존대하면서 아저씨라고 하듯, 현장에서도 공정이 다르면 수직관계가 성립 안 된다. 예를 들어, 경력 3년의 철근공과 경력 30년의 전기팀 반장이 마주한대도 서로 그냥 아저씨다. 나이에 따라 예우는 해줄 수 있겠지만, 철근공이 전기팀 반장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거나, 굽실거릴 필요는 없단 얘기다. 그럼에도 공정을 뛰어넘는 미묘한 위계는 있으니, 그건 바로 일당에서 근거한다. 이 사건도 그 미묘한 위계 때문에 벌어진 사건이었다.

 

직영 잡부로 일할 때다. 철근팀 반장과 정리팀(타워 크레인이나 지게차가 자재를 떠갈 수 있게 종류별, 사이즈별로 자재를 정리해주는 팀) 반장, 하청 소장이 삼각편대로 마주 서 있었다. 싸움을 막 시작하려는 참인 것 같았다. 잽싸게 쫓아갔다. 이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게 싸움 구경 아니던가. 

 

참고로 철근공 일당이 20~24만 원, 정리꾼 일당이 13~14만 원 정도다. 일당 차이가 그만큼이니 철근팀과 정리팀의 미묘한 위계는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을 거 같다.

 

construction-1510561_960_720.jpg

 

얘기를 들어보니 철근팀은 지하 1층 바닥에 철근을 깔아야 하는 상황이었고, 정리팀은 지하 2층 자재를 지하 1층으로 받아치기해서 정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철근을 먼저 깔고 타설까지 한 이후에 자재를 빼내든, 자재를 다 빼낸 후 철근을 깔든 크게 문제 될 건 없었다. 문제는 철근팀 반장의 권위적인 태도였다. 

 

“아닌 말로 자재야 내일 빼든, 일주일 뒤에 빼든 상관없잖아. 자재 정리하는 게 뭐 별거라고 철근 까는 걸 방해하냐고. 철근을 깔아야 다음 공정을 이어갈 거 아녀. 노가다 하루 이틀 해봐? 맨날 지하에서 자재만 정리만 하니까 그런 것도 잘 모르나?”

 

“참나~ 기막혀서 말도 안 나오네. 철근쟁이(현장에서 철근공을 얕잡아 표현할 때 철근쟁이라 부른다. 같은 맥락으로 목수한테는 목수새끼라고 표현한다.)가 무슨 벼슬이라도 되는 줄 아네. 정리한다고 무시하는 거여?”

 

“뭐? 철근쟁이? 정리꾼 주제에 말하는 싸가지 보소. 됐고, 우리는 철근 깔 거니까, 철근 위에 자재를 쌓든가 말든가 맘대로 해.”

 

“소장님, 이 양반 하는 말 들었죠? 이런 대우 받으면서 일 못 합니다. 얘들아!! 짐 싸!! 오늘 더럽고 치사해서 일 못하겄다. 빨리 짐 싸.”     

 

말다툼이 끝나고, 정리팀 인부들이 정말로 짐을 싸서 가버렸다. 일종의 보이콧이었다.       

 

 

전기팀 반장과 절친이 된 사연

 

adult-daylight-gardener-162564.jpg

 

나도 직영 잡부로 일할 때, 다른 공정에 간섭할 일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앵발이(제초기처럼 생겼다. 모터를 돌려 바람을 부는 기계다. 시동을 켜면 앵~앵~ 하는 소리가 나서 앵발이 또는 앵앵이라고 부른다. 영어로는 Air blower다) 불 때 여러모로 힘들었다.

 

앵발이는 타설하기 전 슬라브나 내벽 거푸집 짜기 전 벽체를 불 때 쓴다. 쓰레기야 손으로 주워 버리면 되는데, 콘크리트 부스러기, 모래, 먼지 같은 건 답이 없다. 앵발이로 불어 날리는 수밖에.

 

문제는 말 그대로 불어 날린다는 점이었다. 앵발이 부는 사람은 물론, 그 주변 모든 사람이 먼지를 옴팡 뒤집어쓸 수밖에 없는 작업이 바로 앵발이 작업이다. 특히나 사방이 막혀있는 벽체를 앵발이로 불 때는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뿌옇게 되곤 했다.          

앵발이 작업의 타이밍으로 보자면 철근 다음, 전기와 설비 이전이다. 근데 얘기한 것처럼 공정이 꼬리를 물다 보니 앵발이 불러 가면 꼭 전기와 설비팀이 작업하고 있었다. 그러면 어김없이 전기팀 반장이 쫓아오곤 했다.      

 

“어이어이~ 잠깐잠깐!!!! 우리 30분이면 작업 끝나니까 조금만 있다가 해요. 지금 꼭 해야 하는 거 아니잖아요.”

 

“원청에서 지금 검침 나온다고 해서 어쩔 수 없어요. 죄송해요.”

 

“물론 알지~ 시켜서 하는 일이니까 어쩔 수 없다는 건 이해하는데, 한두 번도 아니고, 우리 오늘만 보고 말 거 아니잖아요. 20층 올라갈 때까지 앞으로 계속 봐야 하는데, 매번 이렇게 무작정 불어제치면 우리는 어떻게 작업하라고. 내 말은~ 좀 조심하자는 거지~ 저쪽에서 작업하고 있으면 방향을 좀 틀어서 분다든가, 아님 미리 말이라도 해줘서 잠깐 비켜달라고 한다든가. 매일 먼지 뒤집어쓰니까 죽겠어서 그래~ 이해하죠?(웃음)”

 

그렇게 한 번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눈 뒤로 전기팀 반장과 난 거짓말처럼 절친이 됐다.

 

“어~ 앵발이 불러오셨구나. 애들아~ 여기 앵발이 불러오셨으니까 담배 하나 피고 하자. 형씨도 담배 하나 피고 해요. 급한 것도 없는데. 근데 직영은 일당 얼마나 받나? 보니까 나이도 젊은 거 같은데 전기 배워, 전기. 직영 계속해봐야 비전도 없고, 남는 거도 없잖아. 기술을 배워야지. 아니~ 진짜로 생각 있으면 우리 팀 들어와요. 요즘이야 전기도 그냥 그렇지만, 옛날에는 전기가 일등 신랑감이었다고. 나 봐봐. 깔~끔하잖아.(웃음) 노가다꾼처럼 안 보이잖아.”           

 

 

내 삶이 누군가에 짐이 될 수 있다는 자각

 

‘간섭’은 내 삶에서도 중요한 키워드였다. 어릴 때, 아버지한테 제일 많이 들은 얘기가 남한테 피해 주지 말라는 거였다. 그 얘기를 워낙 많이 듣고 자라서 그런가, 나이 먹고도 강박 비슷한 게 있었다. 남한테 도움은 못 되더라도 피해는 주지 말자, 하면서.

 

근데 그 강박 비슷한 무엇이 어느샌가 내 주변에 울타리를 만들었던 거 같다. 말하자면, 나도 네 영역에 안 넘어갈 테니까, 너도 내 영역에 넘어오지 마, 하고 선 긋기 하는 사람처럼 말이다. 

 

그 울타리 때문에 가까운 사람들에게 상처 주는 일이 잦아졌고, 그런 게 쌓이고 쌓여 어느 순간 ‘펑’ 터졌다. 돌아보니 혼자였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혼자 있고 싶어졌다. 폐 끼치지 않고 살겠다는 강박 때문에 도리어 가까운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고 있었구나, 싶었다. 내 삶이 온통 짐처럼 느껴졌다. 누구에게든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택한 방법은, 멍청하게도 울타리를 더 단단하게 둘러치는 거였다. 하던 일, 맺었던 관계를 모두 정리했다. 노가다판에 온 것도 그즈음이었다. 그러면서 맘고생을 많이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외로워서. 

 

그런 시기였다. 스스로 문을 걸어 잠가놓고는 문 열어달라고 징징거리던 시기. 인터넷을 뒤지다 우연히, 도시빈민운동가였던 제정구 선생의 생전 말씀을 읽게 됐다.

 

“우리들의 삶은 서로에게 짐이 되면서 사는 삶이다. 가난한 자와 함께 사는 것이 무엇인가. 가난한 자라면 구름 낀 볕뉘마저도 쬐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함께 산다는 것은 선하고 훌륭하고 위대한 사람으로 그들 위에 군림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또한 자선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삶과 생명을 같이 나누면서 섞여 사는 것을 뜻한다. 같이 의논하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짐이 되면서 사는 삶이다. 서로서로가 착한 이웃인 동시에 귀찮은 이웃이 되는 것이며 서로의 삶에 짐으로 사는 삶이다.”

 

뭐랄까. 단단하게 둘러쳤던 울타리가 산산조각 나는 기분이었다. 우리네 삶이라는 게 결국 부대끼면서 살 수밖에 없는 거고, 그냥 그렇게 부대끼면서 살아가면 된다는 제정구 선생 말씀이, 그 어떤 말보다도 따뜻한 위로로 느껴졌다. 나는 내 삶만이 짐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거다. 비로소 강박 비슷한 걸 내려놓을 수 있었다.

 

tied-up-1792237_960_720.jpg

 

그래, 평범하게 일하고 평범하게 먹고 싸고 잠만 잔대도 누군가에겐 짐일 수 있다. 그걸 자각하면서 살아가면 될 일이었다. 내 삶이 누군가에게 짐이 될 수 있다는 자각은, 남의 짐을 흔쾌히 나눠 들 수 있다고 하는 용기의 다른 말이기도 할 테니까. 그러면 되는 거였다. 전기팀 반장이 나의 간섭을 이해해주고, 기꺼이 절친이 되어주었던 것처럼, 실은 별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요즘은 마음이 한결 편하다. 현장에서 누가 간섭하든 허허 웃고 만다. 간섭한다고 뭐라 하면 머리를 긁적긁적하면서 헤헤 웃고 만다. “반장님 죄송합니다~”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