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0. 대공황의 미국 어딘가에서

 

1. 이슈, 볼륨, 코믹스

 

2. 빅뱅과 골든 에이지 : 2차대전

 

3. 냉전과 실버 에이지 : 냉전, SF, 민권 운동, 베트남전

 

4. 중간기 혹은 브론즈 에이지 : 오리엔탈리즘, 탄압에서의 탈출, 안티 히어로

 

5. 모던 에이지 혹은 현재 : 영상화, 시빌 워, 9.11테러, 애국법, 소수자

 

6. 누구보다 빠른

 

 

 

 

 

3. 냉전과 실버 에이지 (1)

 

 

슈퍼히어로 망했어요

 

미국 슈퍼히어로 만화에 1950년은 암흑기다. 캡틴 마블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 포셋 코믹스는 자사의 잡지들을 폐간해가고 있었다. DC와 제리 시걸-조 슈스터의 저작권 소송이 끝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시장에서 승승장구하는 장르의 색은 어두워졌다. 범죄와 공포 장르가 유머와 로맨스 장르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팔렸다. 슈퍼히어로는 저 뒤로 물러났다. 2차대전 특수가 끝난 후 시작된 시장 질서 재편의 결과였다. 캡틴 마블 코믹스가 사라진 것을 기점으로 점차 많은 회사들이 장르를 갈아탔다.

 

타임리 코믹스도 마찬가지였다. 마틴 굿맨은 캡틴 아메리카를 비롯한 모든 슈퍼히어로 만화를 캔슬하고 시장에서 잘 팔리는 범죄, 공포, 유머, 로맨스 등에 집중했다. 1950년대 초반에 잡지가 나오고 있던 슈퍼히어로는 DC의 트리니티뿐이었다. 만화 시장에서 골든 에이지의 거품이 걷히는 과정이었다.

 

범죄/공포 장르의 신흥 강자는 이전에 설명했듯, EC였다. 맥스 게인즈가 죽은 후 회사를 계승한 아들 윌리엄 게인즈의 경영 성과였다. 아버지가 원했던 교육용 만화 따위는 돈이 안 벌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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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게인즈의 주도 하에 탄생한 EC 코믹스의 범죄/호러 라인업.

범죄물 표지는 잘린 머리, 신체 해체, 자살 현장 등을 묘사한 섬뜩한 것이 많다.

 

 

 

암흑기, 프레드릭 워댐

 

1953년, EC 코믹스를 환장케 하는 공격이 들어왔다. 정신과 의사인 프레드릭 워댐(Fredric Wertham) 박사가 순수의 유혹’(Seduction of the Innocent)이라는 책을 펴냈다.

 

만화계에서 워댐 박사가 악마가 되었지만, 사회 전체적인 시점에서 보면 상당한 위인이기도 하다. 그는 흑인 빈민들의 정신 건강에 큰 관심이 있었고, 이를 돌보면 하층민들이 저지르는 엽기적인 강력 범죄의 숫자와 수위를 줄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의 최고 업적은, 할렘에 흑인 청소년을 주로 치료하는 라파르그 클리닉(Lafargue Clinic)을 개설한 것이다. 그리고 라파르그에서 워댐 박사는 황폐화된 도시 흑인 빈민 청소년들의 정신세계와 그들이 벌이는 각종 반사회적 범죄 행태를 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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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르그 정신의학 클리닉이 위치해있던 뉴욕 할렘의 성필립 교회 터.

1946년에 개원해 흑백 학생의 분리가 불법이라는 판결이 나온 후인 1958년에 폐원했다.

 

역사적으로, 사회는 신매체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해왔다. 소설, TV가 그랬고, 만화와 영화 또한 그런 탄압을 받았으며, 가장 막내인 게임은 이제야 매체 억압에 대한 대화가 시작될까말까 하는 중이다. 소설의 선배 장르들은 처음 등장한 이후로 꽤 오랫동안 하층민의 허무맹랑한 읽을거리 취급을 받았다. ‘소설 같은 소리라는 관용어에 아직도 그런 정서가 묻어 있다.

 

TV 또한 어느 어린이가 TV에 나온 걸 따라하다가 죽었다는 식의 괴담이 있었다. ‘바보 상자라는 단어는 아직 생명력이 다 없어지지 않았다. 영화가 처음 나왔을 때도 이런 생생한 경험을 일반 민중들은 받아들이지 못하고 현실과 혼동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영화를 영화로 받아들이지 못하고라는 문구를 떠올려 보라.

 

이런 신매체 억압의 맥락은 역사적이다. 워댐 박사도 역사의 흐름을 거부하지 못했나 보다. 그는 청소년 강력 범죄의 원인으로 만화를 꼽았다. 라파르그에서 인터뷰한 청소년 범죄자들의 얘기를 종합해보니, 모두들 만화에서 범죄의 영감을 받았다는 것이 논리였다.

 

순수의 유혹은 이 주장을 통합해 제시하는 책이다. 당연히 이 책은 만화 반대 진영에게 성서가 되었고, 만화 반대 정서에 전국적인 불을 붙였다. 그리하여 1990년대 한국에서도 볼 수 있었던 장면이 나왔다. 도시 한복판에서 만화책 무더기에 불을 붙이는 학부모들의 만화 화형식.

 

워댐 박사는 기막힌 용어를 만들어냈다. “Crime Comics”라는 용어였다. 범죄 만화로 번역할 수 있으니 범죄 장르의 만화가 아닌가 싶지만, 이 용어에 담긴 의미는 만화 자체가 범죄나 다름없는 만화라는 의미였다. 크라임 코믹스는 그걸 읽는 청소년들에게 범죄를 부추기고 있으니 범죄나 다름없다는 것이 워댐 박사의 주장이었다. 그리고 이 크라임 코믹스에는 범죄, 호러, 탐정, 판타지 장르만이 아니라 허무맹랑한슈퍼히어로도 포함되었다. 한편 워댐이 만든 용어가 아니고 세간에 떠돌던 용어를 워댐이 정착시킨 것이라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순수의 유혹

 

그 주장의 논리 구조를 확인하기 위해 순수의 유혹을 직접 읽어보면, 굉장히 독창적이라서 감탄이 절로 나오는 해석들이 있다. 비꼬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정신과 전문의의 통찰이 들어간 해석도 있다. 그 해석들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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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드릭 워댐의 필생의 역작.

 

1. 슈퍼맨은 반미국적 파시스트다 : 4장에서 제기되는 해석이다. 강한 힘으로 무엇이든 해내는 스토리의 슈퍼맨, 그 슈퍼맨에 깔린 이데올로기가 억압적인 약육강식이라는 해석이다. 초월적 인간이 있고 그가 모든 것을 해준다는 세계관이 반미국적인 파시즘이라는 분석이다. 분석이 없이 요약만 해놓으면 헛소리지만, 분석의 논리 구조를 보면 슈퍼히어로 장르에 대한 진지한 비판점이다. 9장에서 이 분석을 요약한 문장이 나온다. “만화의 진짜 메시지는 이거다: 물리적 힘은 선이다.”

 

2. 원더우먼은 동성애를 조장한다 : 7장과 9장의 해석이다. 당시는 동성애를 정신질환의 일종으로 보던 시대라는 점을 감안하자. 원더우먼은 주체적인 여전사이며, 에타 캔디를 비롯한 그룹 추종자들이 있는데, 레즈비언을 긍정적으로 그리는 시도이니 반여성적이라는 해석이다. 이건 분석 과정을 봐도 결론부터 글러먹었기에 무가치하다.

 

3. 배트맨과 로빈은 게이 커플이다 : 역시 결론부터 글러먹은 종류의 해석이지만 분석 과정은 설득력이 있다. 다이나믹 듀오의 작중 인간관계에 건전한 이성애의 측면에서 연관된 여성 캐릭터가 없다는 것이 7장에 나온 분석이다. 이 분석은 그럴 듯한 해석이라서, DC의 편집부는 배트우먼이라는 급조한 캐릭터를 배트맨의 상대역으로 만들어 넣어야 했다.

 

4. 만화에는 잘못된 과학적 지식이 등장한다 : 2장의 주장이며, 5장에서도 빈민 아동의 비문해율이 높은 이유 중 하나가 만화라는 주장이 있다. 이는 미국식 교육 구조에서는 당연히 나올 법한 주장인데, 빈민가의 경우엔 교육 시스템이 아예 작동하지 않는 곳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특수성을 아무리 감안해줘도, 사회 시스템이 해결해야 할 문제를 만화에 돌리는 주장이다.

 

5. 만화책 속의 광고가 부적절하다 : 부적절하다는 단어는 워댐의 요약이 아닌 내 요약이다. 이는 업계 문제를 지적하는 부분인데, 만화책에 실린 광고가 여성 가슴 성형, 다이어트, 총기 광고라는 점이다. 특히 성적 매력에 관련한 광고는 청소년의 성별 고정관념(진보적이다!)과 성적 방종(보수적이다!)을 불러온다고 8장에서 경고한다. 총기 광고는 비록 BB탄 총(장난감이잖아!) 광고라 해도 폭력성을 부추긴다고 보고 있다. (이 부분은 2번 주장과 묶어서 보면 다소 헷갈리는 결론이 나온다. 워댐 박사는 성상품화와 외모 지상주의의 맥락에서 사용되는 창녀 유형의 여성 캐릭터를 부정적으로 본다. 그리고 원더우먼 류의 전사 유형 또한 동성애를 조장하니 부정적이다. 그럼 남는 여성 캐릭터 유형은 성녀 유형이다. 그리고 성녀 유형은 시대가 많이 흐른 현재에도 가부장적 질서의 맥락에서 주로 사용된다. 워댐 박사가 가부장적이고 차별적인 여성관을 도덕적이고 진보적인 테제로 가리고 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6. 그림이 너무 많고 작가의 페이가 적다 : 업계의 방어 논리를 소개하고 이를 논파하는 10장의 주장 중 하나다. ‘그림이 너무 많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의 예술적 상상력을 제한한다는 주장이다. 워댐 박사가 실제로는 만화를 혐오한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작가 페이 문제는 표현의 자유 방어 논리를 논파하는 용도다. 수입이 적으니 편집자와 회사의 눈치를 보게 되고, 예술적/직업적 작품 활동이 아닌 상업적 작품 활동만 하게 된다는 논리다. 이 논리는 꽤 설득력 있다. 게다가 만화 비평이 없으니 도덕을 무시한 성장을 한다는 매우 가치 있는 지적도 10장에 있다.

 

이외에도 상당한 설득력이 있는 해석과 주장이 있다. 이를 뒷받침할 근거로는 범죄 청소년들의 라파르그 인터뷰 기록들을 갖고 나왔는데, 그 양과 질이 굉장히 좋다. 심각한 수준의 병리적 정신 상태를 갖고 있는 청소년들이, 그들의 범죄 행위에 대한 힌트를 어디서 얻었을까? 인터뷰를 해보니, 만화였다! 이런 크라임 코믹스! 이런 식의 사례 활용이다.

 

그리고 사례 연구의 측면에서 이 책은 양질 양쪽에서 훌륭하다. 정확히는, 훌륭해 보인다.

 

2012년에 캐롤 틸리는 순수의 유혹의 근거 자료와 해석을 분석하는 메타 연구를 해 논문을 냈다. 틸리의 논문에 따르면, 사용된 사례들에 문제가 많이 있었다. 상당수가 과장되었을 뿐 아니라 조작된 경우도 발견됐다. 여러 건의 사례를 하나로 병합해서 사례의 심각성을 높이거나, 하나의 사례를 여럿으로 쪼개 양을 늘이거나 한 경우가 많았다. 어떤 인용문은 출처가 불분명했다. 블루 비틀과 캡틴 마블을 언급하는 사례의 경우에서는 이 두 캐릭터를 완전히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블루 비틀이 벌레로 변신하는 줄 알고 카프카에 비유하고 있었다) 게다가 무엇보다, 워댐 박사가 사례를 수집한 라파르그 클리닉은 범죄를 저질렀거나 그에 준하는 상태의 청소년을 치료하는 시설이다. 당연히 사례가 심각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연구 집단과 함께 반드시 있어야 할 비교 집단이 없었고, 표본의 신뢰도 또한 낮다.

 

사소한 부분이지만, 워댐 박사는 순수의 유혹을 쓰면서 스스로를 십자군처럼 여기고 있었던 것 같다. 10장에 나오는 문장이다. “난 천국문 앞에 선 나를 상상한다. 베드로께서 내가 지상에서 무엇을 했냐고 묻는 순간을.” 그러면 자신은 베드로 사도에게 크라임 코믹스와 싸웠다고 말하겠단다.

 

하지만 이 메타 분석은 2012년의 것이다. 이런 분석을 당대에 할 수 있었던 사람은 극히 적었고 그들의 스피커 또한 거의 없었다. 그래서 워댐의 주장은 쉽게 퍼져나갔다. 근거는 불충분하고 해석의 일부는 터무니없었지만, 그동안 없었던 만화 비평의 역할은 해낼 수 있을 정도의 형식은 갖추었다. 게다가 주장 중 일부는 가치 있다. 그래서, 이런 가치 있는주장에 정치권이 반응했다. 각지의 도시들에서 만화 화형식이 열리는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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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에 웨스트 버지니아의 한 시민이 만화책 수백 권을 공개화형한 이후, 이런 장면은 여러 도시에서 재현되었다.

사진은 뉴욕 빙햄튼의 화형식을 타임에서 보도한 사진이다.

 

 

만화 업계의 심판의 날

 

1954, 에스테스 키포버(Estes Kefauver)라는 민주당 소속의 상원의원이 있었다. 근거지는 테네시 주였고, 정치적 자산은 주로 조직범죄 대응에서 얻어냈다. 정치적 성장을 원하지 않는 정치인이 어디 있을까. 키포버는 자신의 지지율 상승의 기회를 워댐 박사에서 찾았다.

 

키포버의 소속 위원회 중에는 청소년 범죄 소위원회도 있었다. 설립된 지 1년 밖에 안 된 임시 소위원회였고, 키포버 의원은 오픈 멤버였다. 그리고 이 소위에서 워댐 박사의 순수의 유혹을 근거로 삼아 만화 업계에 대한 청문회를 진행했다. 키포버 의원 개인은, 본인의 전문 분야인 조직범죄와 만화가 연결된 것이 있지 않나 하는 의심을 제기했다.

 

청문회는 621일과 22일에 열렸다. 이날은 만화 업계에서는 심판의 날”(Judgment Day)로 부른다. 워댐 박사는 모두발언 삼아서 청문회 시작 연설을 하여 만화의 해악을 설파했다. 청문회에 끌려나온 사람 중 가장 거물은 EC의 사장 윌리엄 게인즈였다. 그리고 윌리엄 게인즈 린치 한마당이 펼쳐졌다. 온갖 질의가 윌리엄 게인즈에게 쏟아졌고, 그는 아버지 말을 듣지 않은 대가를 이자까지 쳐서 너무 과하게 돌려받았다. 증거물로 나온 만화가 EC의 크라임 서스펜스토리(Crime SuspenStory)#52 이슈였을 정도다.

 

이 청문회에서 벌어진 허버트 비저(Herbert Beaser) 의장과 윌리엄 게인즈의 문답은 바로 다음날 뉴욕 타임즈 1면에 실렸다. 청문회 자체는 TV 방송으로도 나갔다. 당시 미국 사회가 이 청문회와 만화 반대 운동에 얼마만큼의 관심을 갖고 있었는지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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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청문회 방송 화면.

 

정작 이 모든 일을 추진한 키포버 의원은 청문회가 끝난 후, 민주당의 대선 경선 레이스에 참여하면서 만화에 대한 관심을 끊었다. 청문회 보고서 또한 워댐 박사의 논조를 따르지 않았다. ‘만화와 청소년 범죄의 연관성이 의심되지만, 확실한 근거는 찾기 어렵다정도였다. 하지만 업계는 이미 엄청난 피해를 보고 있었다. 만화 분서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고, 불매 운동이나 강력한 비난 또한 속출했다.

 

회사들은 납작 엎드리기로 했다. 이미 사회적 지탄 때문에 수그리고 있었으니 쉬운 동작이었다. 회사들은 청문회가 끝난 직후부터 범죄/공포 만화들을 앞다투어 캔슬해갔다. EC의 경우엔 매드(Mad) 하나만 남았고, 이후 EC는 폐업하고 스토리 판권을 관리하는 소기업의 길로 들어선다. 윌리엄 게인즈가 만화계 표현의 자유 수호 투사처럼 변해간 기점도 이 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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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권 관리 회사로 전락하여 버틴 EC 코믹스는 요즘 홈페이지 대문에 이런 문구를 넣었다.

"빌 게인즈가 옳았다." (빌은 윌리엄의 애칭이다.)

배경의 그림은 여성 살인 피해자의 목이 도끼로 잘린, 크라임 서스펜스토리 #22의 일러스트 표지다.

 

 

우리는 검열을 존중합니다

 

그리고 만화 회사들은 납작 엎드린 김에 검열 시스템도 추가하기로 했다. 행정부 규제는 없었다. 키포버 의원의 경우처럼, 정치권은 청문회 이후 관심의 대부분을 잃었기 때문이다. 대신 회사들은 미국만화잡지협회의 예산을 내어 독립 조직을 만들고, 이 조직에서 출판 만화를 검열하게 했다. 자체 검열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제3자 검열 시스템이었다. 이 시스템에서 예외인 회사는 델 코믹스와 같은 극소수의 대형 고급 만화 회사뿐이었다.

 

이 검열 단체는 Comics Code Authority라는 이름이었고, 약칭은 CCA였다. 요즘 CCA를 검색하면 캘리포니아 미술대학, 정준상관분석, 회로 카드 보드, 아시아기독교협의회, 담관암, 중국국제항공의 식별부호 같은 것이 나온다.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진 단체다. 하지만 당시에는 미국 사회 전체가 만화라는 신매체에게 부리는 히스테리에 대한 반성(?)의 의미로 만들었기 때문에, 업계 내의 독립 권한을 갖고 회사들 위에 군림하는 단체였다. 법적 효력 같은 것은 없음에도 불구하고. 워댐 박사는 법적 권한이 없어서인지 반쪽 대책이라고 비난했다.

 

CCA는 검열을 통과한 이슈와 볼륨에 검열 인증 씰(Seal)을 발급했다. 업계는 이 씰을 이슈와 볼륨마다 붙여서 출판했다.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건전만화. 검열을 통과한 건전만화가 되기 위해 준수해야 하는 강령은 195410월에 첫 버전이 나왔다. 편집 강령은 A, B, C의 세 파트로 나뉘어 있었고 별도로 광고 강령도 정해져 있었다. 54년의 최초 버전을 보면 당시 미국 사회가 어떤 히스테리를 출판 만화에 쏟았는지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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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A의 씰 마크.

2018년 애니메이션의 명작으로 남은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의 인트로에는 제작사들의 로고 후에 이 마크가 나온다.

검열의 역사를 기억하는 한편 조롱하는 의도로 보인다.

실제로 해당 영화는 코믹스 코드를 완벽히 준수했기 때문이다.

 

편집 강령 A 파트는 만화의 스토리를 창작하고 편집할 때의 전제를 총 12항목으로 규정했다. 그 내용 요약은 이렇다.

1. 범죄는 반드시 잔혹하고 본받아서는 안 된다는 논조로 묘사해야 한다. , 범죄자의 인간적인 면모나 범죄의 불가피한 동기 같은 건 나와선 안 된다. 권선징악 플롯만이 허용된다. : 1, 4, 5, 6항에서 반복적으로 나온다.ㅇ

2. 사법 권력 기관이 무능하게 보여서는 안 된다. : 1, 3, 9, 10항에서 반복적으로 나온다.

3. 모방 범죄를 막기 위해 세세한 묘사는 금지된다. 너무 잔인한 내용의 범죄 또한 마찬가지다. : 1번 요약과 연관된 내용이다. 2, 10항에서 직접적으로 언급한다.

4. 제목과 부제에 ‘crime’을 써선 안 된다. 표지 홍보문구에 쓰일 수는 있지만 다른 단어들보다 커서는 안 된다. : 11, 12항의 내용이다.

 

편집 강령 B 파트는 만화에서 소재를 다루는 방법에 대한 전제를 총 5항목으로 규정했다. 그 내용 요약을 보면 A 파트와 다른 게 무언가 싶은데, A 파트가 주로 범죄/탐정 장르를 목표로 했다면 B 파트는 공포/판타지 장르를 목표로 하는 것으로 보인다.

1. 제목에 horrorterror가 들어가선 안 된다. : 1항의 내용이다.

2. 공포 혹은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묘사와 그림은 안 된다. : 2, 3, 4, 5항의 내용이다. 대상에는 성욕 묘사, SM 행위, 좀비, 뱀파이어, 늑대인간, 식인과 같은 소재가 해당된다. 4항의 경우엔 A 파트 3번 요약 내용과 연결된다.

 

편집 강령 C 파트는 대사, 종교, 복장, 결혼과 성적 표현 등을 다루는 세부 강령이라서 가장 방대하다. 따라서 대충 요약하면 방향성은 이렇다.

1. 욕설, 성적 단어, 속어, 혹은 바람직하지 않은 의미의 단어와 기호는 금지한다. : 대화 항목의 1항을 그대로 번역했다. 3항의 내용 또한 거의 유사하다.

2. 누드는 어떤 형태로도 금지한다. 여성 신체는 과장된 표현 없이 현실 그대로 그려야 한다. : 복장 항목의 1항과 4항을 그대로 번역했다. 2항에서는 암시적 표현도 금지하고 있다.

3. 성적 표현은 사회에서 정상이라고 받아들이는 것과 합법적 성관계로만 한정한다. 이혼을 희화화해서는 안 된다. : 결혼과 성 항목의 경향이다. 금지 되는 성관계 소재는 강간 등의 불법행위 외에도, ‘비정상 취향도 포함된다. 이 비정상 취향 중에는 성관계로의 유혹 같은 것도 있다. 즉 보수적 시각의 보편 도덕을 철저하게 지킬 것을 주문하고 있다.

 

광고 강령 파트는 워댐 박사의 영향을 많이 찾아볼 수 있는 총 9개의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 만화책에 실리는 광고 또한 검열의 대상이었다. 강령 내용 자체는 편집 강령과는 달리, 사회적으로 괜찮아 보이는 측면이 있다.

1. , 담배, 무기류(장난감이라도), 도박 도구 광고는 금지된다. : 1, 4, 5, 6항의 내용이다.

2. 성에 관한 책 광고나 섹슈얼한 이미지를 이용한 광고, 혹은 섹시한 이미지 자체를 파는 광고는 금지된다. : 2, 3, 7항의 내용이다.

3. 허위, 과장 광고는 금지된다. : 8항의 내용이다.

4. 건강, 약품, 세면용품 등의 광고는 금지된다. 의료협회나 치과의료협회 등에서 내는 광고는 가능하다. : 9항의 내용으로, 3번 내용과도 연결된다.

 

범죄, 탐정, 공포 장르에는 치명타인 조항들이다. 전쟁과 모험 장르에도 타격이다. 로맨스의 경우엔 성적 표현 부분에서 장애물이 생긴다. 유머 장르 정도를 빼면, 당시 만화 시장의 주류 장르들이 모조리 타격을 입는 것이다.

 

물론 잘 살펴보면 출구 전략을 찾을 수 있다. 청문회에서 린치 당한 회사는 EC이고, EC는 슈퍼히어로를 출판하지 않는다. 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한 청문회는 초점을 워댐 박사와 달리 범죄/공포 장르에만 맞췄다. 따라서 슈퍼히어로 장르를 다시 세운다면 현재의 정서를 피해갈 수 있다. 그리고 슈퍼히어로는 저 강령들을 다 피해가면서도 높은 완성도를 만들 수 있었다. 슈퍼히어로 장르 자체의 기본 문법이 권선징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슈퍼히어로가 돌아오게 되었다. 두 번째 부흥기, 실버 에이지의 시작은 DC 코믹스가 열었다. 하지만 이 시기의 진짜 의의는 마블 코믹스의 주력 상품 대부분이 시작되었다는 점에 있다.

 

 

 

참고 문헌)

 

미합중국 상원 의회 청소년 위원회 청소년 범죄 소위원회, “Juvenile delinquency (comic books) : hearings before the Subcommittee to Investigate Juvenile Delinquency of the Committee on the Judiciary, United States Senate, Eighty-third Congress, second session, pursuant to S. 190 Investigation of juvenile delinquency in the United States. April 21, 22, and June 4, 1954.”, 미합중국 정부 인쇄국, 1954

백란이, “그래픽 노블”, 커뮤니케이션 북스, 2018

Amy Nyberg, “Seal of Approval: The History of the Comics Code”, University Press of Mississippi, 1998

Bart Beaty, “Fredric Wertham and the Critique of Mass Culture”, University Press of Mississippi, 2005

Carol L. Tilley, ‘Seducing the Innocent: Fredric Wertham and the Falsifications that Helped Condemn Comics’, “Information & Culture: A Jounal of History” #47, 2012

David Hajdu, “The Ten-Cent Plague: The Great Comic-Book Scare and How It Changed America”, Farrar, Straus and Giroux, 2008

Fredric Wertham, “Seduction of the Innocent”, Rinehart and Co., 1954

John Lent, ed., “Pulp Demons: International Dimensions of the Postwar Anti-Comics Campaign”, Fairleigh Dickinson Press, 1999

Matthew J. Costello, “Secret Identity Crisis: Comic Books and the Unmasking of Cold War America”, Continuum, 2009

Margaret Tompson, ‘Crack in the Code’, “Newfangles” #44, 1971

Richard J Arndt, ‘From Dell to Gold Key to King’, “Alter Ego” #141, TwoMorrows,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