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8.3.월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왔더니 아기가 무척 놀란듯한 얼굴로 울고 있다. 엄마가 불어주던 풍선을 보고 깔깔대며 재미있어 했을텐데 이것이 그만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터져 버렸으니 황당과 당황과 놀람, 그리고 심한 배신감이 한번에 몰려왔던 모양이다. 아내는 아기를 달래려고 번쩍 안는데 그 폼이 자연스러우면서 너무도 당당했다. 하긴... 아내가 무엇인가를 들을 때 한번도 힘들어 하는 것을 본적이 없으니까. " 요즘 풍선이 질이 안좋은가봐요? " 아내는 불쑥 내게 말을 건넨다. " 그럴 수도 있지. 아니면 단순한 불량품일 수도 있겠고... "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몰라 별로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지만 아내는 뭐가 그리 불만인지 계속 풍선을 원망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아내는 혼자말하듯 조심스레 말했다. 세번 ? 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요즘 아기 때문에 풍선을 가끔 불어주게 되는데 그것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세번만 불어서 터트리다니... 이 일은 내게 있어 힘이라는 것의 평가를 위한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주는 또 하나의 계기가 된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어느 정도 흘러 중학생이 되었을 때 힘의 개념이라는 것은 누가 더 싸움을 잘하는가로 바뀌게 되었으며, 조금 더 커서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는 누가 더 많은 경험과 흥미진진한 무용담을 가지고 있느냐는 것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공부잘하는 사람이 힘이 세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고 이것은 성인이 되면 될수록 점점 더 확신되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힘에 대한 개념의 변화는 거의 없었다. 운전을 하기 시작하면서 목소리가 큰 사람이 힘이 더 세다는 사실을 잠시 알았을 뿐이었지만 이것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하였다. 그러다가 나의 힘에 대한 개념은 결혼을 하면서 다양하게 변하는 동시에 이에 따른 엄청난 혼돈 또한 함께 겪게 된다.
하루는 방청소를 하다가 하기 싫은 걸레질을 하게 된 적이 있다. 난 원래 방바닥을 걸레로 닦을 때는 바닥에 물기만 조금 보일 정도로 슬쩍쓸쩍 대충 지나쳐 버린다. 구석구석까지 닦을만한 꼼꼼함은 가지고 있지 않음은 물론이고 오히려 불결은 불결로 이긴다는 남다른 위생적 개념을 미덕으로 여기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날도 예외없이 대충 걸레질을 하는데 아내가 한곳을 가리키며 그곳에 얼룩이 있다며 빡빡 문지르라는 것이다. 하지만 방바닥의 얼룩이라는 게 물걸레질을 한다고 지워지는가? 내 상식으로는 휘발성이 있고 물질을 분해할 수 있는 성질의 다른 액체를 이용해야 지워지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방바닥의 얼룩은 걸레질로는 도저히 지워지지 않았다. 무언가 다른 것이 필요하겠다고 아내에게 말하는 순간 아내는 빠른 동작으로 내 걸레를 뺐더니 방바닥을 빡빡 문지르기 시작했다. 나는 그 순간 내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걸레로는 도저히 지워지지 않을 것 같던 방바닥의 얼룩이 거짓말처럼 지워지는 것이 아닌가? 나는 또 한번의 혼돈에 빠지게 되었다. 도대체 어떤 개념으로 힘이라는것을 규정해야 하는가? 한편으로는 방바닥 장판의 재질과 걸레로 쓰여진 그 섬유의 성분과의 마찰 관계를 조사하여 이 운동력을 마찰력으로 전환한 다음, 여기에 들어간 힘의 정도를 수직운동으로 바꾸어 역기를 드는 것으로 환산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렇듯 힘에 대한 개념은 결혼 생활중에 수시로 바뀌게 되었고, 그것은 새로운 개념이 생길 때마다 많은 혼란을 동반하곤 했었다. 하지만 정말로 잊혀지지 않는 커다란 힘이 하나 있다.
그때 아내는 하고 싶은 일을 하지 않으면 결국은 병이 된다는 특유의 논리로 흔쾌히 내 해답을 찾아 주었다. 결국 나는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되었고 아마도 그것은 살면서 내가 아내에게서 느낀 가장 커다란 힘이 되었던 것이다.
이 다음에 나와 같은 힘에 대한 개념을 갖게 된다면 말이다.
- to be continued - 본지 맘대로 기자 bennet 김은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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