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쥴리아 하트

2005-05-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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쥴리아 하트






 
  - ARTIST: Julia hart
- TITLE: 영원의 단면
- GENRE: Pop
- 주목할 넘:잔뼈가 굵은 멤버들, ‘BMX bandits’의 Francis McDonald, ‘라이너스의 담요’의 왕연진, Champions 등

 

 

 




 




 
 사랑했던 혹은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사운드 트랙  
 

얼마 전 KBS의 의학 프로그램 생로병사의 비밀에서 100회 특집으로 감성과학다큐멘터리-사랑이라는 3부작 시리즈를 방영했었다. 대략 흥미로운 시리즈였는데 그 중 1편 900일간의 폭풍-사랑하면 예뻐진다에선 사랑에 한참 몸을 달이고 있는 젊은 커플들을 선정하여 연애의 시작부터 그 불꽃이 수그러드는 약 900일까지의 여정을 과학의 잣대를 들이대어 분석하고 관찰하였드랬다. 왜 갑자기 이런 얘길 하냐구? 그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자신들의 사랑을 수줍고도 당당하게 때로는 조금 걱정스럽게 표현했던 커플들의 모습, 그 모습을 줄리아 하트Julia hart의 본 앨범에서 음악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때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이거 완죤 우리 얘기네라며 공감했거나 쓰바, 난 언제쯤 저래보나라며 미래의 달콤함을 꿈꾸었던 청춘이라면, 본 앨범이 확실하게 그 뒷마무리를 해줄 것이다.

 

대략의 흐름을 본다면 원래 걔네들이 그렇잖아. 그런 음악 쭉 해왔었잖아. 한국 인디 모던락의 감수성이 다 그런 거잖아라고 말할 수도 있다. 리더 바비정(본명은 정대욱)이 언니네이발관을 거쳤다는 것을 필두로 기타리스트 김경탁이 은희의 노을을 거쳤으며 베이시스트 이원열이 은희의 노을과 코스모스를 거쳤다는 것을 그 첫 번째 이유로 들고, 본 앨범의 [안아줘]에 등장하는 안아달라는 말이 안고 싶단 뜻이니까가 전작 <가벼운 숨결>의 [답장]에 등장하는 안기고 싶다면 나를 먼저 안아를 고대로 따온 것이라는 걸 두 번째 이유로 들고, 가녀린 감수성을 표현하는 전형적 방법인 포근한 노이즈가 어김없이 앨범을 지배하고 있다는 뻔한 사실을 세 번째 이유로 들먹이면서.

 

그러나 다행히도 본 앨범은 이런 대략적인 판단의 그물을 충분히 빠져나갈 만한 능력을 갖추었다. 그 능력이란 다름아닌 귀에 꽂히는 멜로디와 보다 더 섬세해진 가사다. 바비정이 제공하고 있는 곡은 확실하게 더 팝에 근접하고 있고 그의 가사는 뭇 청춘들의 가슴을 요동치게끔 한다. 전자의 증거로는 대표적으로 [가장 최근의 꿈]과 [마지막 담배]와 [너의 손글씨]를 들 수 있겠고, 후자의 증거로는..뭐 아주 많다. 이 아득함이 손가락 사이로 흘러 새나가지 않도록 내 손을 꼭 잡아 주겠니([영원의 단면]), 바람도 거의 없고 너무 덥지도 않는... (중략) ...배드민턴치긴 딱 좋은 날씨에 난 지금 우리 처음 만난 곳으로 가네([배드민턴]),서로를 쫓아 빙글빙글 돌며 사랑 받는 어지러움에 난 두 눈을 감았네([회전목마의 밤]), 꿈결같던 사람들은 결국 함께 머물질 못해 그렇게 오래 좋아했기에([마지막 담배]). 네가 써 준 편지, 몇 번을 읽었지...(중략)... 어떤 책에서도 본 적이 없는 글씨 너의 손글씨([너의 손글씨]) 등등등. 가사에 맞추어 삽입된 교회 종소리와 전화벨 소리와 빗소리도 그렇고, 부클릿을 장식하고 있는 탁상 시계와 파란 하늘과 풍선과 회전목마도 그렇고, 아! 그리고 1집의 이반 부닌Ivan Alekseyevich Bunin에 이어 등장한 카렐 차펙Karel Capek 소설의 한 구절까지, 아무튼 연애질할 때의 알싸한 느낌, 그 순간의 희로애락을 포착하는데 있어 본 앨범은 탁월한 뭔가를 발휘한다. 그래서 아마 제목을 <영원의 단면>으로 지었으리라.

 

몰아치는 드럼 프로그래밍+바닥에 깔리는 기타 노이즈+딜레이 먹은 기타, 요 3박자가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드림팝 넘버 [여름과 꿈과 밤의 모든 매력]이 본 앨범의 베스트 트랙 중 하나이며, 1집과는 달리 앨범 전체적으로 기타 노이즈에서 쟁글쟁글한 맛이 자취를 감춘 듯 들린다는 사실 또한 중요한 포인트라 할 수 있다. 허나 역시, 그래도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지금 바비정이 지니고 있는 감수성인 것 같다. 그의 곡들이 곧 본 앨범의 간판인 것이다. 전작의 찌뿌둥했던 느낌과 달리 본 작의 기타 노이즈가 알싸한 제 맛을 내고 있는 것도 다 이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본 앨범이 앞서 언급했던 대략적 판단의 그물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이들의 음악은 언니네의 계보에서 자유롭지 못하며(작년 가을 발매한 싱글 <Miss chocolate> 수록곡 [가벼운 숨결]은 정말 너무 티나게 언니네스러웠었다), 본 앨범의 초반 3곡에서 드러나듯 단순하게 들떠있다는 느낌만을 줄 뿐인 사운드 운용은 줄리아 하트의 정체성에 관해 끊임없이 의문을 갖게 만든다. 그러므로 리듬의 짜임새가 유독 감지되는 [가장 최근의 꿈]과 [배드민턴]과 [마지막 담배]가 앨범의 신선한 활력소라는 사실, 그리고 기타 노이즈와 드럼과 보컬이 마냥 흐물흐물 흐트러져있지 않고 야무지게 모여있는 [눈사람들이 떠나고 나면]이 앨범 내에서 가장 뿌듯한 트랙이라는 사실을 지적해야 할 것 같다. 당연히 베스트 트랙들이고.

 

하긴...결론은 줄리아 하트의 <영원의 단면>이 사랑스런 팝이라는 거다. 편곡을 들먹이며 필자가 가른 베스트 트랙과 안 베스트 트랙의 차이라는 것이 결국 근본적으로 곡 자체의 문제라면, 사실상 안 베스트 트랙이라 하더라도 본 앨범의 모든 곡들은 기본적으로 다 괜찮은 팝송이다. [2110]과 [88년의 여름]의 멜로디가 아동틱하다고 한들, 뭐 무슨 상관이랴. 원래 팝송이란 게 그런 걸. 핵심은 음악의 아동스러움이 아니라 줄리아 하트를 통해서 경험하게 되는, 과거로 포장된 또는 당연히 현재이기도 한 자신의 아동스러움이다. 우리들 중 일부는 88 올림픽과 27층 아파트가 상계동에 세워질 무렵 사랑을 시작했으며, 또 일부는 지금 이 시간에 에버랜드의 회전목마 위에서 사랑을 속삭이고 있다. <영원의 단면>은 그렇게 사랑했고 혹은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사운드 트랙이다.

 

줄리아 하트 홈페이지 www.juliahart.com




 
 

List

 

01. 안아줘
02. 영원의 단면
03. 2110
04. 가장 최근의 꿈
05. 여름과 꿈과 밤의 모든 매력
06. 눈사람들이 떠나고 나면
07. 배드민턴
08. 88년의 여름
09. 회전목마의 밤
10. 마지막 담배
11. 빗방울보
12. 너의 손글씨

 

Grade 1.5
호떡 (yhjpy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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