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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13일 오전 8시쯤, 홍대입구역 근처 경의선 숲길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죽었다. 고양이는 햇빛이 내리쬐는 테라스 바로 옆 화분에 앉아 쉬고 있었다. 그리고 다가온 남성 정 모씨에게 꼬리를 붙잡힌 채로 바닥에 내팽개쳐지고 짓밟혀 죽었다. 정 씨는 죽은 고양이를 근처 수풀에 버렸다. 

 

고양이의 이름은 ‘자두’였다. 자두를 죽인 정 씨는 처음에 준비해 온 세탁세제를 사료에 타 자두에게 내밀었다고 한다. 그런데 먹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가려고 하자 자두의 꼬리를 잡고 바닥에 수차례 패대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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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자두(출처 : 자두 보호자 SNS 캡쳐)

 

경찰 조사에서 정 씨는 범행 전날 미리 고시원에 있던 세제를 챙겨두었다고 했으나, 법정에서는 아침에 산책을 나가다 고시원 신발장 옆에 놓인 세탁세제를 ‘우연히' 발견해서 챙겨 나갔다고 진술했다. 마찬가지로 경찰 조사에서는 길고양이의 개체수를 조절할 목적으로 한 일이라 했지만, 법정에서는 고양이가 세제를 먹지 않고 가려고 하자 우발적으로 약이 올라 저지른 일이라고 말을 바꾸었다. 

 

검사는 1년 6개월을 구형했고, 재판부는 정 씨에게 징역 6개월을 선고했다. 정 씨는 눈물을 흘리며 진심으로 사죄한다고 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6개월은 너무 길다고 생각했는지 항소했다. 

 

그는 처음부터 범죄 사실을 부인한 적이 없다. 다만, 타인 ‘소유'의 고양이인지 인지하지 못하고 죽였다고 주장했다. 때문에 재물손괴죄 성립 여부가 1심의 쟁점이었다. 자두는 경의선 숲길에 위치한 한 가게에 살았다. 가게 운영자이자 자두의 보호자인 예 모씨는 가게 옆에 독립적인 공간을 마련해 자두를 포함한 고양이 일곱 마리를 반려하고 있었다. 가게의 마스코트인 고양이 삼총사 중 하나는 자두였다. 자두는 친구들과 햇빛을 쬐던 곳에서 죽었다. 

 

정 씨는 자두를 주인이 없는 길고양이라 생각해 죽였다고 했지만, 그가 자두를 살해한 곳 바로 옆에는 가게의 마스코트인 고양이 삼총사의 이름과 그림, 생김새가 적힌 입간판이 놓여 있었다. 자두를 잡고 패대 기치는 과정에서 정 씨는 입간판을 쓰러뜨리고 범행 후 입간판을 바로 세워 두고 갔다. 입간판에 자두에 관한 정보가 있었고 정 씨 스스로 입간판을 인지할 개연성이 있어 1심 재판부는 “주인 없는 길고양이인 줄 알았다”던 정 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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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두가 살던 가게 입구에 세워져 있던 입간판.

정 씨는 입간판 옆에서 자두를 죽였다.

출처: 마포구동네고양이친구들

 

1심 때는 국선 변호사와 함께 했던 정 씨는 2심에 사선 변호사를 고용했다. 본인이 범죄사실을 모두 시인했고, 쟁점에 대한 공판도 모두 끝난 상황에 정 씨 측에서는 무엇을 주장할까. 정 씨에게 남은 건 여전히 재물손괴죄였다. 그 부분을 보완해서 주장하겠거니 생각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3년 전 있었던 한 청년의 이야기로 변론을 시작할까 합니다. 이 청년은 친구들과 싸움 한 번 한 적 없이 평범한 학창 시절을 보냈고…” 

 

정 씨의 변호인은 재물손괴죄가 아닌 정 씨 개인의 이야기를 했다. 3년 전, 정 씨가 취업시켜주겠다는 누군가의 말에 속아 개인정보를 넘겨주었고, 명의를 도용당해 신용불량자가 된 채로 살게 되었다는 것. 그리하여 친구들과 싸움 한 번 한 적 없는 청년이 무럭무럭 자라, 비극을 겪고 마음이 혼란해 고양이를 죽이게 됐다는 과감한 대서사시라니. 벌써 판결문에 들어갈 내용이 들리는 듯하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범행 이후 줄곧 정 씨는 동물학대범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나, 항소심이 열리는 법정의 중심에서 변호인은 정 씨에게도 취업을 꿈꾸던 희망찬 삶이 있었음을 외쳤다. 변호가 너무도 대국적이어서 잠시 정신이 아득해졌으나, 이내 깨달음을 얻었다. 정 씨에게도 인생이 있었(다고 주장하)듯 희생된 고양이 자두에게도 소중한 삶이 있었다는 걸. 

 

 

우리 자두는 햇빛을 좋아했어요

(자두의 삶을 기록하기 위해 자두의 보호자였고, 현재 사건의 피해자인 예 씨와의 인터뷰를 재구성했다)

 

"자두, 하늘이, 돼지는 삼총사였어요"

 

2015년에 골목에서 자두 엄마를 만났어요. 쪼그리고 있는 게 너무 작았어요. 캔을 하나 주니까 물고 안으로 들어가더라고요. 도대체 저 안에는 뭐가 있나 궁금해하다 여러 번 만나게 되면서 안쪽으로 따라 들어가게 됐어요. 빈 상가였는데, 그 지붕에 살더라고. 거기서 자두 엄마가 새끼를 몇 번 낳았는데 새끼들이 클 때까지 살아남질 못하더라고요. 

 

자두는 2017년에 태어났어요. 그때 자두네 가족이 지붕에 살고 있어서 새끼들은 내려오질 못하고 어미들도 내려오기 힘든 높이였어요. 너무 높은 곳이라 밥을 주기 힘들고, 곧 재개발되는 곳이라 위험해서 5마리를 구조했죠. 그중 지인한테 입양을 보내거나, 아픈 아이는 치료해서 안락사 없는 쉼터에 맡기고… 자두 엄마는 살던 곳이 다 헐릴 때까지 잡히지 않았어요. 공사하시는 분들께서 마지막으로 아파트 단지 쪽으로 가는 걸 봤다고 하시더라고요. 다행히 워낙 그 동네를 잘 알던 아이고, 아파트 쪽에 캣맘들이 많이 있어서 충분히 살아갈 수 있어요. 그래서 자두랑 자두 언니인 살구는 제가 거두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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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두의 언니 살구

 

(경의선 숲길) 가게는 2018년 10월에 오픈했어요. 애들이 좋아할 만한 곳을 찾아온 거예요. 집도 만들어줄 수 있고, 테라스에 마당도 있고, 젊은 사람들이 애들 예뻐하고. 오기 전에 건물주랑도 미리 얘길 끝내서 자두까지 일곱 마리가 이곳에 자리 잡고 살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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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씨가 가게 옆 독립된 공간에 마련한 고양이들의 집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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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해서 살면 애들이 도망가버릴 것 같잖아요. 근데 절대 안 그래. 처음에 와서 문 너머로 밖을 구경하다가 문을 살짝 열어주니까 가게 앞에서만 놀다 들어와요. 다른 고양이들이 오면 쫓고… 얘기 안 해도 아는 거야. 여기가 우리 집이야 이제. 참 신기하더라고요. 엄마가 있으니까 그런 것 같아. 

 

자두, 하늘이, 돼지, 살구, 아랑이, 별이, 초롱이… 이렇게 7마리 중에서도 자두, 하늘이, 돼지는 삼총사였어요. 자두가 하늘이를 참 잘 따랐고, 하늘이가 자두를 참 예뻐하기도 했고요. 모든 애들이 하늘이를 좋아하고, 하늘이가 애들을 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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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좌)와 살구(우)

 

"왜 가게에서 키우냐는 말을 듣는 게 나는 참 상처더라고요"

 

1심 때 변호사도 그러고, 기사화가 되면서 댓글에도 왜 집에 데려가지 가게에서 키우냐하는데 집에도 고양이가 있어요. 원래 3마리가 있었는데, 모두 유기묘에요. 샵에서 고양이공장으로 갈 뻔한 아이, 누가 이사가면서 버리고 간 아이, 내가 밥주던 애가 낳은 아픈 새끼 고양이... 다들 사연이 있어요.

 

홍대로 가게를 옮기기 전에 신도림에서 가게를 했었는데, 그때 돌보던 애들 중 잡히질 않아서 못 데려온 애들이 있었어요. 다 손 탄 애들이 아니었거든요. 할 수 없이 지인한테 부탁하고 왔는데, 거기도 환경이 좋지 않아요. 나 대신 애들 챙겨주던 지인이 말하길 애들이 아무 삶이 없이 멍하니 있대요. 뒷마당에서 나만 쳐다보던 애들이. 그리고 겨울 집이나 밥그릇이 내동댕이 쳐져 있고 그랬어요. 연말에는 밤에 밥을 주러 갔는데, 어떤 남자가 몽둥이를 들고 서 있다고 연락이 왔어요. 너무 무섭더라고요. 자두처럼 거기 남은 애들도 해코지당할까 봐. 그래서 고민하다가 다 데려올 각오로 6마리를 잡았어요. 

 

‘그래, 내가 힘들더라도 데리고 오자.’ 생각했죠. 차라리 데려다 놓으니까 마음이 편해요. 10살 먹은 애도 있고 하늘이 엄마도 있어요. 그 애들한테 지금 집 2층을 다 내줬어요. 같이 지내던 애들끼리 한꺼번에 와서 2층에 지들만 있으니까 좋아하더라고요. 추운 날 고생 안 하고. 낯선 곳에 모르는 애들이랑 있으면 적응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고양이를 키울 거면 집으로 데려다 키우지 왜 가게에서 키우냐고 하는 말을 들으면 나는 그런 게 참 상처더라고요. 애들 모두 내 가족이잖아요. 나는 비싼 거 못 먹더라도 얘네들은 좋은 거 해주고 싶고… 구조해서 가게에서 사는 애들은 집에 있는 애들보다 더 마음이 가요. 집에 있는 애들은 더 좋은 환경에서 지내니까…

 

"자두가 건강해진지 고작 4개월이었어요"

 

우리 자두는 너무 얌전하고, 여리고, 착하고, 소심하고 그래요. 크게 울지도 못하는 애였어요. 걔가 참 자주 아팠어요. 허피스(고양이 감기)도 자주 걸리고 무른 변도 많이 봤지. 약을 먹어도 완전히 좋아지진 않아서 사료를 새끼 고양이 사료로 바꾸니까 점점 몸 상태가 좋아지는 거야. 살도 좀 붙고… 그게 한 4개월 되었나 보다. 

 

몸이 좋아지니까 다른 애들하고 어울리고 뛰어다니기도 하고, 친구들이랑 햇빛 쬐는 걸 엄청 좋아하게 됐어요. 자두 입장에서 가게 앞 잔디밭을 뛰면서 본 세상은 그동안 몰랐던 세상이었던 거예요. 거기다 사람들이 자길 예뻐해 주니 안심했나 봐요. 테라스에 자주 나와서 자더라고요. 처음엔 아파서 잘 나오지 않던 애가 건강해지고 변하기 시작한 게 고작 4개월이에요. 그게 참 마음이 아파요. 

 

자두 사고 난 날 CCTV를 보면 자두가 애들이랑 데크에서 놀아요. 그런 모습을 바라고 신도림에서 홍대까지 가게를 옮겼는데, 이 사고가 났죠. 사람들이 자길 다 예뻐하니까 자두는 다 같은 마음인 줄 알았던 거겠죠. 그러니까 안 피하잖아요 바보같이… 그냥 빨리 피했으면 되는데… 그러니까 그게 아프더라고요. 차라리 사람 손에 익숙해지지 않게 할걸… 지금 와서는 별 생각이 다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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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두가 앉아 쉬던 화분

 

"하늘이도, 자두도 안 보이는 것이 좀 이상한 날이었어요"

 

토요일이라 사람이 많았어요. 애들이 데크에 없으면 집에 있는 건데, 손님이 많아서 애들을 확인 못 했어요. 근데 우리 실장님이 밖에 사료가 엄청 떨어져 있대요. 누가 이렇게 뿌리고 가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이상하다 생각했대요. 그 사료를 다 치우고 나니까 하늘이도, 자두도 안 보이는 것이 좀 이상한 날이었어요. 그래서 CCTV를 돌려봤어요. 나는 안 봤어요. 근데 실장님이 “이 자식이네” 그러는 거예요. 그때 나는 자두는 생각도 못하고, 불법 포획업자가 우리 하늘이를 잡아가려고 온 줄 알았어요. 하늘이 덩치가 엄청 크거든요. 근수 많이 나가는 애들만 데리고 가는 거 있잖아요. 

 

놀라서 112에 신고를 한 거예요. 우리 고양이 두 마리가 없어졌는데 찾아 달라고… 그런데 경찰에서 아침에 3층에서 신고를 했었다고 알려주더라고요. 범인이 장갑 끼고 자두를 끌고 갈 때, 3층에 있던 학생들이 그걸 보고 찍어서 신고를 했대요. 자두 목소리도 작은 것이 발악을 했나 봐요. 꼬리가 잡혔으니 어느 고양이가 안 그래. 그래서 아침에 이쪽에 다녀갔는데, 사체를 못 찾았대요. 나는 그때 죽은지도 몰랐거든. 

 

죽었어요? 물었더니 죽었대요. 한 마리만 죽은 걸로 알고 있대. 그래서 사체도 CCTV 보고 우리가 찾았어요. 길 끝에 있는 풀숲에 갖다 버린 거야. 그날 막 울면서 장사를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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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 일어났던 가게 앞 데크

 

"하늘이랑 돼지가 사건을 목격했어요"

 

하늘이하고 돼지가 사건을 목격했어요. CCTV에 보면 사건 현장 옆으로 하늘이가 막 뛰어서 도망가요. 나는 아직도 그 CCTV가 방송에 나오면 잘 못 보는데, 그 사람이 자두를 해치고 나서도 5분 정도 이 근처에 있었대요. 계속 하늘이가 지나간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거예요. 그때 하늘이가 있었으면 하늘이도 똑같이 죽였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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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하늘이는 도망을 가서 살았지만, 친구가 눈 앞에서 죽는 걸 본 게 얼마나 큰 충격이었겠어요. 그날 출근을 했는데, 돼지가 데크 끝에서 잔뜩 웅크리고 있었어요. 불러도 오질 않고, 내가 다가가니까 남의 집 쪽으로 도망가는 거예요.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하늘이도 안 보이고요. 평소 같으면 사람 좋아하는 하늘이가 테라스에 나왔을 텐데, 그날 다 지나고 새벽 2시쯤 되어서야 건너편 길에서 나타나더라고요. 그 후로 한동안 집에만 있었어요. 안 나오고, 혹시 나오더라도 자두가 당하는 걸 목격했던 데크 쪽으로는 절대 안 다녔어요. 나아지고 있지만, 예전 같지는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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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에서 사는 고양이 중 막내인 돼지. 돼지 역시 사건을 목격했다.

 

"평생 잊혀지지 않을 것 같아요 마음이"

 

그 일이 있고 나서 남은 애들을 다 집으로 데려와야 하는 건지 고민이 되었는데, 지금 집에도 고양이들이 있으니까 힘든 문제더라고요. 범인이 불구속 기소되었으니 혹시 남은 아이들한테 해코지할까 봐 애들 집을 보수해서 내가 퇴근하고 나면 아예 못 나오게 해야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었는데, 이제 애들이 알아서 늦은 시간에 안 나와요. 나중에 범인이 실형 살고 나오면 그땐 다시 보수를 하든지, 아니면 집에 다 데리고 가든지 해야죠. 우리 불안해서 못 살아요. 

 

자두 보내고… 저는 헛것이 보이더라고요. 새벽에 차를 운전해서 집에 가는데, 새끼 고양이가 길을 건너는 모습이 보이거나 난데없이 오토바이가 도로에 세워져 있다거나. 그걸 보고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아무것도 없었어요. 새벽이라 차가 없어서 다행이었지 차가 있는 시간이었으면 사고 났을 거예요. 나도 머릿속으로는 이게 없다는 걸 아는데 보이니까 너무 소름 끼치고 무섭더라고… 그래서 치료를 받기 시작했어요. 우울증에 화병이 있는데, 특히 재판이 있으면 화병이 생겨요. 너무 억울하니까… 

 

지금은 환시가 없지만, 의사 선생님이 사건 끝나도 치료는 계속해야 된대요. 심적으로 너무 충격을 받아서 평생 갈 것 같다고. 너무 찾아보려고 하지 말고, 억지로 잊으려고 애쓰지도 말고 자연스럽게 두라고 하네요. 

 

남들은 세월이 가면 잊혀진다고들 하는데, 그게 아닌 거 같아요. 그냥 아파서 죽은 것도 아니고 우리 자두가 길거리 가다가 학대당한 것도 아니고, 가만있는 내 집 화단에서 있는 애를 갖다 그렇게 했으니까 평생 짐이 될 거 같더라고… 평생 잊히지 않을 거 같아요 마음이. 

 

그 사람이 죗값만 치렀어도 나았을 거예요. 짧은 기간이지만 항소하지 않고 반성했으면, 저도 이제 자두를 보내줄 수 있었을 텐데… 항소하고 반성문 써서 기어이 나와보겠다는 걸 보니 안 되겠더라고요. 이번에도 3년 전 청년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너무 기가 막힌 거예요. 취업사기를 당하고, 명의 도용당하면 그 화풀이를 죄 없는 고양이한테 하면 되는 건가요? 사기꾼을 잡아야지. 말도 안 되는 거예요.

 

"내가 그때 지붕에 놔뒀으면, 이거보다는 길게 살지 않았을까" 

 

자두 보내고 7개월이 됐어요. 계절이 세 번 바뀌었어요. 너무 힘드네요. 재판 한번 하고 나면 골병든다는데, 그래도 사람들이 나보고 대단하다고 그래요. 일도 하면서 어떻게 그걸 버티느냐고. 근데 포기하고 싶단 생각은 한 번도 안 해 봤어요. 어떻게 해서든지 더 하려고 하지. 물론 심적으로 말도 못 하게 힘들고 남한테 표현도 못하지만, 그래도 애들 생각을 해서 이겨 낸다고 할까. 너무 억울하게 가서 그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나요. 그 순한 거를… 그 여린 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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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한 마리 죽은 거 가지고 유별나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예요. 사람들마다 다 같은 마음이 아니니까… 사람이다 보니 요즘 이런 생각을 많이 해요. 내가 그때 구조 안 했으면 이거보다는 길게 살지 않았을까? 내가 그때 그냥 지붕에 놔뒀으면… 그래서 길고양이로서 살았으면, 우리 자두가 2년이라는 세월보다는 더 살지 않았을까…

 

 

어떤 고양이에 대한 기억

 

내일(2월 13일)은 자두의 항소심 선고기일이다. 자두 살해사건 재판 방청석은 늘 만석이었다. 일반인 방청객과 취재기자들이 자리를 채워 조금만 늦으면 서서 방청해야 했다.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하고,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이렇게까지 관심을 끈 사건은 없었다. 

 

자두 살해사건을 계기로 동물보호법을 강화해달라는 국민청원은 20만을 넘었다. 그 무렵 SNS와 커뮤니티에는 청원 참여를 독려하는 포스팅이 많았다. 그들은 자두의 보호자가 아니었지만, 이번 한 번만 힘을 합쳐 성공해보자고 서로를 독려했다. 청와대에 올라와 공론화되는 많은 사건들이 그렇듯, 자두 살해사건 역시 입법부(동물보호법 강화)와 사법부(피고인 정 씨에 대한 강력한 처벌)가 할 일이 청와대에 접수되어 사실 청와대에서 어찌할 수 없는 사건이었지만, 길고양이의 동물권도 보장되어야 한다는 다수의 마음이 눈에 보이는 결과를 이끌어낸 의미 있는 일이었다. 

 

시간이 지나 지금을 다시 돌아본다면 자두는 어떻게 기억될까. 동물보호법에는 실형이 선고되지 않는다는 불문율에 첫 균열을 낸 사건의 주인공이 될 수도,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고 고작 6개월 선고를 받았는데도 언론에서 지겹도록 붙이던 ‘이례적’이라는 수식의 마지막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 어쨌든 진보하는 동물권의 상징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런데 이런 기억은 어떨까. ‘햇빛을 좋아했고, 친구들을 좋아했고, 이제 막 사람도 좋아하기 시작했던 어린 고양이. 그래서 새로운 세상에 한 발씩 다가가던 고양이.’ 

 

자두에게도 봄날 꽃봉오리처럼 싹트는 삶이 있었다. 사람이 갖추지 못한 체계 때문에 손가락 사이로 흘려보낸 삶이 못내 아쉬워 상징이 아니라 존재로 기억하고 싶다. 20만 청원을 끌어낸 상징이 되려고 태어나는 생명은 없으니. 자두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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