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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한 끼 먹고 가라는 말

 

<고령화 가족>이란 영화가 있다. 천명관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다. 윤여정이 엄마로 나오고, 박해일, 윤제문, 공효진이 자식으로 나온다. 영화가 시작하면 박해일의 처량한 신세를 보여준다. 잔뜩 쌓인 컵라면 용기와 공과금 용지, 옥탑방 보증금을 다 까먹고도 석 달째 월세를 밀려 주인아줌마한테 독촉받는 장면, 재떨이에서 꽁초 골라 불붙이는 모습까지. 박해일은 마침내 결심한 듯, 목을 매 자살하려고 한다. 그때 전화벨이 울린다. 엄마다. 

 

“아들, 밥은 잘 먹고 사는 거야? 이따 집에 좀 와. 닭죽 끓여놨으니까 와서 먹고 가. 와라아. 올 거지? 너 닭죽 좋아하잖아.” 

 

박해일은 결국 자살을 포기하고, 닭죽 먹으러 엄마 집에 간다. 영화 완성도를 떠나,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장면이다. 나중에 나오는 얘기지만, 박해일은 데뷔작을 쫄딱 말아먹은 영화감독이다. 그런 데다 아내가 바람 피워 이혼까지 하게 됐다. 목을 매 자살하려고 결심하기까진, 그런 사정이 있었다.

 

그런 사람을 다시 살게 만든 힘은 무엇일까. 닭죽을 좋아하니까? 그저 닭죽을 먹기 위해 자살을 포기했던 걸까? 물론, 우리는 그것 때문이 아니란 걸 안다. 박해일이 다시 살아보자고 결심한 건 아마도, 밥(영화에서는 닭죽으로 표현했지만)이라는 단어에 담긴 따스한 정서 덕분이었을 거다. 밥 한 끼 먹고 가라는 말 너머로 전해지는 연대와 공감과 사랑과 애정의 온도 같은 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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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이렇게 거창하게 시작하려던 건 아니었다. 쉬어가는 페이지 느낌으로, 가볍게 함바집 얘길 좀 해볼 참이었다. 쓰다 보니 거창해졌다. 아니, 쓰다 보니 밥을 나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지 새삼 알게 됐다. 내일은 함바집 아주머니에게 감사 인사를 전해야 할 것 같다. 하루 세끼 중 두 끼나 책임져주시는 분이니 말이다. 새벽 일찍부터 따스한 밥 차리느라 고생이 많으시다고, 감사하다고, 꼭 말씀드려야겠다.

 

자 그럼 이 글의 진짜 주인공, 함바집 얘길 좀 해보련다. 우선 함바라는 단어부터 설명해야겠다. 노가다 용어 대부분이 그렇듯, 이 단어 역시 일본에서 건너왔다. 일본에서는 토목 공사나 광산 등의 현장에 있는 노동자 숙소를 함바(はんば, [한빠])라 한다. 이 단어가 우리나라로 넘어오면서 공사 현장에 있는 식당이란 뜻을 갖게 됐다. 근데 일본에서도 함바를 한자로 쓸 때 ‘밥 반(飯)’에 ‘마당 장(場)’을 합쳐 쓰니까 일본이나 한국이나 비슷한 의미로 쓰는 거 같다. 어쨌거나, ‘우리말 바로 쓰기’ 정책에 따라 표준어는 ‘현장 식당’이다. 편의상 이 글에선 함바집이라 칭하련다.

 

말 나온 김에, 개인적인 소신 좀만 덧붙여야겠다. 난 모든 단어에는 그 단어 고유의 뜻과 함께 정서가 담겨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런 예로 내가 자주 드는 단어가 ‘오뎅’이다. 나는 여전히 어묵탕보단 오뎅탕이 맛있게 느껴진다. 닭볶음탕보단 닭도리탕 떠올릴 때 침이 고인다. 그뿐만 아니라, 쓰레빠와 슬리퍼, 난닝구와 러닝셔츠는 엄연히 다른 단어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몇이나 동의해줄지 모르겠으나, 예로 든 단어들에서 느껴지는 그 미묘한 차이가 난 정서 차이라 생각한다. 그러니까 내 말은, 일본어 투라 해서 무조건 배척하는 게 옳은 태도인지 모르겠다는 거다. 초등학교 때, 학교 앞 분식점에 100원짜리 동전 두 개 꼭 쥐고 가서 사 먹던 오뎅, 주인아줌마 눈치 봐가며 몇 번이고 떠먹던 짭조름한 그 국물……. 그 시절의 그 추억까지 사라지는 것 같아, 난 좀 속상하다구우!!

 

함바집 얘기하자더니 또 딴소리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그래서 난 현장 식당보단 함바집 어감이 더 좋다. 현장 식당이란 단어는 어쩐지 사무적이고 행정적인 느낌이다. 먼지가 풀썩풀썩하고, 진하게 밴 땀 냄새 때문에 코끝이 시큼해지는 그런 느낌적인 느낌이 현장 식당이란 단어에선 안 느껴진다.

 

말 잘 꺼냈다. 함바집은 그런 곳이다. 풀썩풀썩하고, 시끌벅적하고, 시큼시큼한 곳. 말하자면, 그 공간에 있는 누구에게든 ‘수컷’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만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그런 곳.

 

 

오늘 돼지야, 아니야?

 

그러자고 약속한 건 아닌데, 11시 40분 전후로 인부들은 하던 일을 멈춘다(공식적인 점심시간은 12시부터다). 망설일 것도 없이 현장 밖으로 우르르 몰려나간다. 아파트 같은 큰 현장에선 기본이 수백 명이다. 그 많은 인원이 일제히 함바집으로 향한다. 학창 시절 때처럼 뛰는 사람은 없으나, 본인이 낼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로 걷는다. 경보대회 방불케 한다.

 

그도 그럴 게, 딱 5분 차이다. 남들보다 5분 빨리 가면 바로 밥 먹을 수 있다. 우물쭈물하다 5분만 늦어도 10분 이상 줄 서야 한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그 차이가 크다. 후딱 밥 먹고 넉넉히 1시간쯤 쉬느냐, 밥 먹다가 시간 다 보내서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일 시작하느냐를 결정하는 거다. 그러니 걸음이 빨라질 수밖에.

 

합바집에 도착하면 둥글넓적한 접시를 집어 든다. 뷔페 접시랑 같다. 간혹 학교 급식실에서 볼 수 있는 식판을 주는 곳도 있다. 근데, 아무래도 원형 접시가 편하다. 보통 반찬이 6~7가지는 나오다 보니, 많아야 네 칸밖에 없는 식판엔 반찬 담기가 애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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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바집 기본 구성은 백반이다. 한식뷔페 생각하면 된다. 메뉴는 어느 함바집이나 대동소이하다. 배추김치를 기본으로, 김치 카테고리(단무지, 장아찌 등을 포함해)로 구분할 수 있는 반찬 2~3가지에, 각종 나물무침이나 소시지·건어물·버섯 등을 볶아낸, 우리가 흔히 밑반찬이라고 부르는 게 3~4가지 나온다.

 

거기에 돼지고기를 빨갛게 혹은 하얗게 볶거나 굽거나 튀기거나 쪄낸, 어쨌든 돼지고기로 요리한 음식이 메인으로 나온다. 간혹 생선 요리가 추가되기도 하고, 돼지고기 대신 닭고기가 메인으로 나오기도 한다. 아주 드물지만 돼지고기 대신 소고기가 메인으로 나오는 경우도 있다. 어쨌든 “오늘 반찬 뭐야?”라는 질문보단 “오늘 돼지야, 아니야?”라는 질문이 수월할 정도로 일주일에 4~5일은 돼지고기가 나온다.

 

국은 반찬과의 밸런스를 나름대로 고려하는 것 같다. 반찬에서 힘 좀 줬다 싶은 날은 된장국이나 미역국(소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콩나물국처럼 국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한 국이 나온다. 어째 오늘 반찬이 좀 부실하다 싶은 날은 부대찌개나 김치찌개(두툼한 돼지고기가 잔뜩 들어간), 뼈다귀탕, 육개장과 같이 국이라기보단 요리의 성격을 가진 메뉴가 나온다.

 

분위기는 앞서 살짝 언급한 것처럼, ‘수컷 떼가 미쳐 날뛰면 흡사 이런 분위기겠구나~’ 싶은 분위기다. 표현이 지나쳤다면 죄송하지만, 난 그 이상 표현 못 하겠다. 일단, 무척 시끄럽다. 두 가지 상황이 맞물려서인데, 한 번에 많은 사람이 몰리다 보니 채워놓기 무섭게 반찬이 떨어진다. 그리고 성질 급한 거로 둘째 가라면 서러운 노가다꾼들이 그걸 잠시도 못 기다린다. 

 

“아줌마!! 아줌마!!!!!!!!! 고기 떨어졌어!!!!!!! 고기!!

 

“네에!!!! 갑니다! 가요~~~”

 

“김치도 없어!!!! 빨리 가져와~~~~”

 

“네!!! 김치도 나가요~~~”

 

그런 큰소리가 수시로 울려 퍼지는 데다가, 목소리 큰 거로 셋째 가라면 서러운 노가다꾼 200~300명의 수다 소리가 거대한 하모니를 이룬다.

 

냄새로 말할 것 같으면 매콤하고 달콤한 음식 냄새와 땀 냄새가 한 데 어우러진, 형용할 수 없는 잡냄새가 아주 진하게 코를 콕콕 쑤신다. 여름엔 좀 심하다. 이 자릴 빌려 얘기하고 싶다. 겨울엔 나도 작업복 3~4일씩 입는다만, 여름에도 3~4일씩 작업복 안 갈아입는 사람들 있다. 그 찌든 땀 냄새(라기보단 썩은 식초 냄새?)는 진짜……. 여름엔 자주자주 작업복 좀 갈아입자고요.

 

여기서 재밌는 건, 그 아수라장 같은 분위기가 불과 20~30분을 안 넘긴다는 거다. 나도 어디 가면 밥 늦게 먹는단 소리 안 듣는다. 연애할 땐 왕왕 앞에 앉은 사람 민망하게 할 때도 있었다. “벌써 다 먹었어? 왜 이렇게 급하게 먹어?”라는 말, 자주 들었다. 근데 함바집에서 난 좀 느린 축이다. 노가다꾼들은 밥을 먹지 않는다. 엄밀히 말하자면 밥을 마신다고 표현하는 게 맞다. 정말 후루룩후루룩, “꺼~~억~~”이다. 그렇다 보니 그 많은 인원이 밥 먹는데도 순식간이다. 언젠가 밥을 좀 늦게 먹으러 갔다. 12시 15분 정도였던 거 같다. 식당이 어째 고요해서 아줌마한테 물었더니, “벌써 다 먹고 갔지~ 시간이 몇 신데?” 하며 웃는다. 몇 시긴요. 이제 12시 15분밖에 안 됐는데요, 라는 말은 차마 하지 않았다.

 

믹스커피 한잔 타서 함바집 빠져나온 노가다꾼들은 저마다 머리 대고 누울 수 있는 곳으로 간다. 보통은 자기 차로 간다. 현장으로 들어가서 합판 같은 거 하나 깔고 눕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렇게, 30분에서 1시간 가까이 눈을 붙인다. 매일 새벽 4~5시에 일어나 고된 육체노동을 하니까, 그렇게라도 잠시 쉬지 않으면 몸이 버티질 못하는 거다. 어쩌면 버티려고, 버티기 위해, 본능적으로 밥을 마시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함바집 사장이 하청 직원 월급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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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만큼은 머리 아픈 얘기 안 하려고 했는데, 도무지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다. 언젠가 친구에게 함바집 얘길 들었었다. 자기 부모님이 함바집 해서 큰돈 벌었었다는 얘기였다. 그때는 “아~ 그랬었구나.” 하고 말았는데, 문득 생각나기에 친구에게 전화했다. 

 

“야! 너네 부모님이 함바집 했었다고 그랬지? 돈 많이 벌었었다며. 그때 얘기 좀 해줘 봐.”

 

이야기는 거슬러 올라가 25년 전쯤으로 간다. 아버지 남동생, 그러니까 친구 녀석의 작은아버지가 한 분 계시는데, 그분의 아주 친한 친구 A씨가 원청 직원이었다. 서열로 보자면 원청 소장 바로 밑에 정도? 그 소장이 부산에서 지하철 공사를 하나 맡게 됐다. 현장에서 일하는 인부는 대략 200명. 그들 식사를 책임질 사람이 필요했던 거다. 소장은 A씨에게, A씨는 작은아버지에게, 마땅한 사람 좀 알아봐달라고 했을 테고, 운 좋게 친구 녀석 아버지가 당첨됐다. 물론 공짜는 아니었다. 무려, 천만 원을 내고 들어갔다. 25년 전에 천만 원이니까 결코 적은 돈 아니다. 이 시점, 친구 얘길 들어보자. 

 

“야. 불법과 탈법이 난무하던 시대 아니었냐. 나도 아빠한테 들은 얘긴데, 무슨 공개 입찰 같은 게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 천만 원을 공식적인 계약금이라거나, 권리금 명목으로 준 것도 아냐. 그냥 소장 주머니에 넣어주는 일종의 입장료였던 거지.”

 

그렇게 2년 동안 200명의 아침과 점심을 책임진 친구 아버지는 2억 5천만 원을 벌어 나왔다. 다시 말하지만 25년 전이다. 중요한 건, 입장료 천만 원이 끝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다시 친구 얘길 들어보자. 

 

“야. 말도 마라. 수시로 소장이 호출을 했대. 원청 소장이 함바집 사장을 왜 부르겠냐? 용돈 달라는 거지. 그뿐이냐? 설날, 추석 때는 떡값에 양주 세트까지 사다 주고, 틈틈이 접대하고. 심지어 하청이 어렵다고 해서 사무실 직원들 월급도 몇 번인가 대신 줬다더라. 상상이나 되냐? 함바집 사장이 하청 직원들 월급 준다는 게? 푸하하하.”

 

2년 고생 끝에 금의환향한 친구 아버지는 2층 집과 땅을 사고도 돈이 남아 치킨집을 차렸다. 아쉽게도 치킨집은 잘 안 됐다. 절치부심하고 이번에는 철판구이집을 차렸지만, 때마침 터진 IMF로 그마저도 망하고 말았다. 어쨌거나 지금은 대기업에 입사해 승승장구하는 아들과 이 시대 최고 직업이라는 초등학교 교사 며느리 보는 재미로, 행복한 노년을 보내고 계신다. 으응? 또 얘기가 산으로 간다. 아무튼 친구와 난 이런 대화를 나누며 전화를 끝냈다. 

 

“근데 요즘도 소장한테 입장료 내고, 다달이 용돈 갖다 바치고 그럴라나? 우리 현장 함바집 아주머니한테 한 번 물어볼까? 설마 그렇다고 해도, 그런 건 안 알려주겠지?”

 

“에이 설마~ 야! 우리 아빠가 함바집 했던 게 무려 25년이다.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아직도 그렇겠냐? 요즘은 다 법대로, 절차대로 하겄지.”

 

“그치? 설마 그렇진 않겠지?”

 

전화 끊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21세기 대한민국의 지성과 양심과 도덕을 믿지만, 그럼에도 혹시나 싶어, 녹색창에 함바집을 검색해봤다. 결과는 참담했다. 일주일이 멀다고 줄줄이 사탕으로 함바집 관련 각종 사건·사고 기사가 뜨고 있었다. 심지어는 제빵왕도 아니고, 독서왕도 아니고, 기부왕도 아닌 ‘함바왕’이 실존한다는 사실에 두 눈을 의심했다. 녹색창에 ‘함바왕’ 검색하면 재밌는(?) 기사가 잔뜩 나온다. 여기서 그 자세한 얘기까진 못 풀겠다. 어쨌거나, 우리 아버지는 어릴 적 나에게 늘 말씀하셨다. 먹는 거로 장난치지 말라고. 그러지 좀 맙시다, 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