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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유럽이 아니다. 우린 영국이다.”

 

1월 31일 밤 11시를 기점으로 영국이 유럽연합(EU, European Union)을 공식 탈퇴했습니다. 2016년 6월 24일에 있었던 국민투표를 시작으로 세 명의 총리와 두 번의 선거를 거쳐 3년여 만에 결정된 일입니다. 영국의 유럽과 동고동락은 1973년 영국이 유럽경제공동체(ECC, European Economic Community)에 가입한 지 47년 만에 이별로 끝이 났습니다. 

 

처음 ECC가 출범할 때 영국은 동참하지 않았고, ECC가 출범으로부터 16년이 지난 1973년에 가입합니다. 

 

16년 동안 가입을 하지 못했던 것엔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의 반대가 있었습니다. 런던으로 망명해 독일과 투쟁했던 군인 드골은 프랑스의 독립을 위해 대규모의 병력과 물자를 지원했던 영국의 ECC 가입을 끝까지 반대했습니다. 영국인들의 유럽에 대한 ‘태도’ 때문이었죠. 영국은 유럽 문제에 대해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영예로운 고립’이라는 대유럽 외교 정책을 펼쳤고, 이는 언제든 미련없이 유럽을 떠날 것처럼 보이게 했습니다. 그리고 정말 떠났습니다. 

 

ECC에 가입할 당시만 하더라도 영국은 유럽을 ‘공동 시장’(Common Market) 정도로 이해했습니다. ‘공동체’라는 의식 보다는 '협력'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죠. 외교, 안보, 사법 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 연합을 추구하는 EU를 못마땅해 할 수밖에요.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유럽연합이 강점은 분명이 있지만, 지난 약 50년 동안 영국은 영국 답지 못했다"고 발언한 것도 이러한 부분과 연관이 있습니다. 영국은 '유럽 공동체 의식' 같은 건 애초부터 없었던 거죠. 지난 3년 간 강력하게 브렉시트를 외쳤던 보리스 존슨에게 역대급 의회수를 선사한 국민 투표 결과를 보면, 영국 시민들의 입장도 알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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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영국은?

 

당장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몇 가지 질문을 하고자 정부관계자를 만나고 왔는데요, '밀레니엄 같다'고 하더군요. 1999년엔 '2000년이 오면 모든 컴퓨터가 마비되고 세상은 아비규환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죠. 2000년 1월 1일은 그저 어느 날처럼 왔습니다.

 

브렉시트도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유럽연합에서 가졌던 회원국으로서의 권한(EU의회의 72석과 의견개진 등)을 행사할 수 없다는 것 말고는 별다른 게 없습니다. 대부분의 정책들은 그대로 유지될 예정입니다. 

 

한창 문제가 되었던 이민자 정책도 그렇습니다. 인적자원을 이동하는데 제한이 없기 때문에 여전히 자유롭게 영국과 유럽연합에 속한 국가들을 왕래할 수 있습니다. 항공, 여객, 기차 등 운송수단도 그대로 운행됩니다. 영국이 그토록 고집해 왔던 '공동 마켓'도 그대로 유지되죠. 때문에 아직까지는 EU의 법과 규제를 따르고, 분담금도 지불해야 합니다. 

 

물론 계속 이렇게 불안정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한은 2020년 말까지로, 그 사이 영국은 유럽연합과의 협상을 통해 여러 가지 정책을 결정해야 합니다.

 

예상컨데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겁니다. FTA를 통해 영국과 유럽연합 간의 공동마켓은 유지될 것이고, 이민자 정책도 크게 달라지지 않겠죠. 유럽연합과 했던 협력체제 모두 별개의 협상, 조약을 통해 이행할 겁니다.

 

다만 세세한 부분은 지금과 차이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해 말, 유럽연합에서의 후쿠시마산 식품 수입규제가 완화되어, '후쿠시마 식품에 대한 공급원 표기를 별도로 하지 않겠다'고 했었는데요. 영국은 안전성을 문제로 극구 반대했었습니다. 아마도 조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이런 세세한 것은 바뀔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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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야, 이젠 안녕

 

1970년대 '자본의 세계화(globalization of capital)'라는 흐름에 기반하여 시작된 신자유주의는 세계경제의 기틀이 되었습니다. 자유주의의 결함을 인정하면서도 기업의 자유를 지켜준다는 달콤한 속삭임에 지구가 열광했죠. 

 

영국이 그 속삭임에 넘어간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잘 나가다가 두 번의 전쟁으로 위기를 맞게 된 영국엔 국가차원의 시장 개입이 필요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케인지 주의는 현대 복지국가의 틀을 제공했지만, ‘영국병’, 즉 “어차피 국가가 책임질 거 놀자”는 분위기를 형성하기도 했습니다.

 

때마침 등장한 신자유주의는 국가개입의 철폐를 주장하면서도 정부를 배후로 시장경쟁의 질서를 권력적으로 확정하기에 좋은 도구였습니다. 마가렛 대처가 ‘작지만 강한 정부’라는 슬로건으로 영국병을 치료하기 위해 신자유주의를 사용했죠. 

 

고용우선주의를 고수해왔던 영국은 세계에서 국영기업이 가장 많은 나라 중 하나였습니다. 경쟁보다는 안정을 추구하다보니 아무래도 경쟁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었겠죠. 대처는 이러한 병든 시장 경제구조를 개혁할 필요가 있다 여겼고, 대부분의 공기업을 ‘민영화’시킵니다. 자동차의 나라였던 영국의 자동차는 물론, 가스, 전기, 통신, 수도, 석탄 등 정부 소유 기업을 대부분 민영화했습니다.

 

거기에 1980년대부터 유럽이 본격적으로 팔을 걷어 붙입니다. 그런 탓에 영국의 자동차는 독일에, 전기와 가스 등은 프랑스나 네덜란드에, 철강이나 석탄 등은 인도로 운영권이 넘어갔습니다. 

 

민영화로 인한 폐해는 현재 영국의 국민들이 감당하고 있습니다. 특히 철도의 경우 짧은 거리를 오가는데 수만 혹은 수십 만 원의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오롯이 국민들 몫이지요.

 

영국 국민들이 이를 반길 턱이 없습니다. 하루 빨리 이 고통에서 벗어나 예전처럼 안정적으로 살고 싶었고, 이러한 시류는 브렉시트로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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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자국우선주의를 외치는 브렉시트는 시작되었습니다.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둘 다 놓쳐버린 노동당

 

영국 노동당 대표인 제레미 코빈은 처음 브렉시트를 지지했던 인물입니다. '민영화 절대 반대'를 외치며 철도를 비롯해 과거 민영화되었던 국영기업들의 국유화를 외쳤습니다. 경제적으론 보호무역주의에 가까웠기 때문에 유럽으로부터 강한 압력을 받고 있는 것에 불만이 많았습니다.

 

그런 그가 자국민이 아닌 인간의 권리를 가장 우선시 여긴다는 노동당의 대표로 선출이 되면서 '다같이 가자'로 노선을 바꿉니다. 당이 정한 정책에 따라 반브렉시터가 된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브렉시트를 찬성하지만 당대표로서 인류애적 사명을 감당하려 했던 그는 결국 패하고 말았죠. 

 

 

두 번의 결별, 새로운 도약?

 

브렉시트가 좋을지 나쁠지, 영국에게 또 세계적으로 이로울지 해로울지를 묻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를 판단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변수도 많고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모르는 재난재해부터 러시아 및 중동의 군사문제, 여기서 비롯된 난민문제, 유럽연합에 속한 몇몇 국가들의 경제위기론까지. 이를 따지다보면 정확하게 예측하기란 불가능합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브렉시트가 '영국과 유럽은 뼛속까지 물과 기름이다'를 또 한 번 증명시켜주었다는 것입니다. 후대의 역사책에 브렉시트는 헨리 8세의 ‘수장령(首長令, Acts of Supremacy, 로마 교황청과 단절하고 영국교회의 권한이 국왕에서 있음을 선포한 법령)' 이후, 유럽과 결별한 두 번째 사건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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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장령 이후 유럽과의 결별은 대영제국이 세계를 호령하는 발판이 되었죠. 과연 브렉시트는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