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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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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하게도 첫 냄새의 기억은 할아버지 손에 이끌려 나간 약수동 집 앞 골목에서 쓰레기차가 쓰레기를 수거했을 때다. 첫 기억이기도 하다. 6살. 두 번째 냄새 역시 할아버지와 함께 가서 관람했던 장충체육관 여자 배구 경기의 땀냄새였다. 끝나고 나서 태극당에서 먹던 곰보빵 기억도 난다. 초봄, 대청마루에 걸린 대구가 꾸득꾸득 굳으면 화톳불에 구워 옆에 쿡 박혀있던 정종과 함께 드시던 향기도 기억난다.

 

할머니는 9살까지 학교에서 돌아오면 발을 씻겨 주셨다. ‘내가 할 수 있는 건데 왜 힘들게 해주시냐’고 묻자 ‘예수님도 그러셨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교회를 다녔으나 중학생 이후 무교다. 할머니를 쫓아 종교를 가지지는 못했지만 그 때의 다이얼 비누향은 외로울 때마다 생각난다.

 

눈으로 보는 것은 조작되고 과장된다. 9살 때 관악산 초입에서 내 키만한 나비를 보았고, 삼송리에서 군생활을 했던 부대에서는 통일로 선상 방벽 근무 때 후임과 함께 귀신을 봤다. 아무도 믿지 않는다. 나도 봤지만 믿을 수 없다.

 

냄새는 정황과 당시의 감정까지도 세트로 몰고 온다. 첫 여자친구와 왕십리에서 마장동 넘어가는 길목에서 했던 키스 덕분에 존슨즈 베이비 로션을 군대 제대할 때까지 발랐고 헤어진 이후부터 더이상 사거나 바르지 않는다. 후배가 화장품 냄새를 가리는 숯불돼지갈비 조향제를 개발했을 때 ‘돈퓸’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물론 뿌린 적은 없다. 충분히 먹고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그 냄새에 맞는 장소여야 비로소 향긋하기 때문이다.

 

가장 충격적인 냄새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여자 핸드볼 결승 경기가 열리던 밤의 왕십리다. 정확하게 말하면 무학예식장 뒷편에 있던 충남여인숙이다. 친구 준호는 만취해 여인숙에서 술을 먹다 마당에 나와 똥을 싸고 주저 앉았다. 내가 싸지 않은 똥은 그 뒤 10년 뒤에 첫 아이를 가지고 나서야 치우게 된다. 준호와는 아직도 연락하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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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에게 없는 것은 경계(선)다. 냄새가 불러오는 추억은 불쑥 나타난다. 출근길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다가 약수동 살았던 할아버지 기억이 난다. 동네 아저씨들과 수퍼에서 맥주에 쥐포 구워 먹다가도 할아버지의 대구가 생각난다. ‘세계의 비누’였던 다이얼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아 할머니가 그리울 때면 가끔 쇼핑몰을 찾아 들어가보기도 했다. 손세정제는 있지만 그 때 냄새가 아니다.

 

방치탕 먹으러 문래동 기계상가를 가면 쇠기름 냄새에 군시절 장간 조립교(공병은 전쟁시 폭파된 다리나 함몰된 지반을 극복하기 위해 2시간 안에 탱크가 지나다닐 수 있는 최소 30m 이상의 다리를 조립해야 한다. 존나 무겁다. 2차 세계대전 때 만들어졌다) 훈련하던 생각이 난다. 불쑥. 입맛 떨어지지만 고기 냄새 이길 수 없다.

 

아이 엉덩이에 베이비 파우더를 바르던 그날, 괜히 죄스러웠다. 아이를 낳아준 아내 앞에서 첫 여자친구의 기억을 떠올리는 건 불편하다. 아내는 첫 아이의 똥냄새가 향긋하다며 기저귀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았지만 나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여자 핸드볼 결승전이 열리던 그 때 준호의 엉덩이를 닦아주고 있었기에 그 행동에 동참하지 못했다. 준호는 아직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 중 하나다.

 

 

계획

 

냄새가 선을 넘을 때 계획이 있을 수 없다. 계획적인 삶이란 결국 계획대로 되지않았을 때 자신을 위로하는 변명이다. 마미손이 증명했다. 할아버지와의 첫 기억이 내 인생 계획에 있을 리 없다. 새우깡도, 맛동산도, 쭈쭈바도, 박카스도, 활명수도, 이인제도 아직 살아있는 시대에 할머니가 그리워 ‘세계의 비누’ 다이얼을 사재기 할 계획을 놓쳤다고 후회하지 않는다. 최순실이 그린 계획은 지금이 아니었을 것이다. 다행이다. 박정희는 유신헌법의 계획대로 죽을 때까지 대통령을 했다. 계획이 이루어진다고 희극 아니고 계획이 없다고 비극 아니다. 준호는 대입에 실패하고 일본에 갔다. 지금은 중국에 있는데 아내와 어쩔 수 없이 떨어져 산다. 계획적일 리 없다.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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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아이를 낳고 10년, 계획에 없던 둘째가 생겼다. 고등학생이 된 큰 놈은 아빠 컴퓨터의 직박구리 폴더에 관심을 갖는다. 둘째는 오줌이 마려울 때마다 꼬추가 커져서 변기에 조준이 어렵다고 난리다. 성난 꼬추를 내보이면서.

 

자기 방 있는데도 침대 가운데서 자는 건 첫 아이부터 겪었다. 서로의 냄새를 맡고 잔다. 서로의 선을 넘어 상대의 허리나 머리에 다리를 얹는다. 가족은 그렇게 흐릿한 경계를 가지고 간다. 그래서 싸움에는 날이 선다. 가족은 대수롭지 않게 선을 넘고 타인이라면 이해해줄 수 없는 이해를 강요한다. 오해가 증오가 되고 증오가 쌓여 큰 상처를 남긴다. 적당한 거리, 불편할 수도 있는 냄새, 계획에는 없었던 아이까지 뒤엉켜 산다.

 

가족은 날선 검이다. 폐부 가장 깊은 곳을 찌를 수도 있고 잊을 수 없는 바램의 원천이기도 하다. 친구지만 나는 준호를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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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수동 첫 집은 이병철 회장 맞은편 골목에 있었다.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의사 6분 중 한 분이었던 할머니는 마흔에 낳은 아버지에게 재산을 의탁하셨고 우리집은 ‘계획’대로 단계별로 망해갔다. 약수동에서 신림동, 신길동을 거쳐 응봉동으로 이사갔을 때 가장 놀라웠던 것은 성동구 아이들에게 아파트 사는 아이는 부자로 여겨진다는 사실이었다.

 

개천에서 용도 났다. 계층간에 간극은 촘촘했다. 샐러리맨들은 열심히 10년만 일하면 아파트 값은 갚을 수 있는 나라였다. 동아전과와 표준 수련장만 있으면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수업을 따라가는 데 문제 없었다. 대입을 위해서 돈을 좀 쓴다면 노량진, 용산 학원 정도였고 고액과외라는 게 분명히 있었지만 한정적인 부류에 국한됐다.

 

대학 들어가서 팔도 친구들을 만났다. 부산대 입학 커트라인은 연대와 비슷했다. 과외 두 달 정도하면 대학 등록금은 벌었다. 대학원을 가지 왜 대기업에서 샐러리맨을 하냐고 의아해했다.

 

제대를 하고 IMF가 터졌다. 더이상 데모를 할 여유가 없었다. 취업은 막히고 안정적인 고용은 사라졌다. 여유가 없으니 이웃에게 눈 돌릴 수 없었다. 미래가 불투명해지며 돈에 집착했다. 아이들이 커서 살아야 할 땅을 담보로 기성세대가 배를 불리며 미래를 의탁했다.

 

이제는 직장인이 강남의 아파트를 살 수 없다. 반포동 아파트 한 채면 매물로 나온 영국의 성을 몇 채 살 수 있다. 거뜬하게도. 준호는 얼마전 세곡동 LH 아파트에 당첨됐다. 

 

 

봉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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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홍진, 이준익, 곽경택, 이명세, 허진호, 변영주, 장준환, 이창동, 류승완, 김지운, 그리고 박찬욱과 변별되는 지점을 나는 이렇게 설명하고 싶다. 어느 감독보다도 쉽게 관객 자신과의 경험을 대입할 수 있게 한다고.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다’라며 마틴 스콜세지의 말을 인용했을 때 확신했다. 봉준호의 서사가 나의 인생을 대입하면서 볼 수 있는 드문 영화였다는 사실을.

 

지금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도 아래 기생충의 인상적인 장면들을 곱씹으며 냄새의 기억이 어떻게 선을 넘으며 가족을 대했는지, 그리고 그 간극의 계단을 넘으며 얼만큼의 계획대로 인생을 대했는지 곱씹어 보길 바란다. 내 인생 계획에 없던 준호(실존인물이며 1992년 장충고를 같이 졸업한 진짜 제 친구입니다)는 대입해보면 봉준호의 송강호다.

 

 

(여기서부터는 각자의 판단에 따라 스포일러일 수도 있다. 이 기사를 읽는 분들은 이미 다 보셨을 확률 높으나 혹시나 미리 말해둔다. 영화의 내용을 알 수는 없다.)

 

 

기생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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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장은 ‘냄새가 선을 넘지’라고 말하면서도 선 넘은 기택에게 선을 넘었다. 기택은 기우에게 ‘너는 계획이 있구나’라고 말했지만 ‘가장 완벽한 계획은 무계획이야’라고 말하며 박사장의 선을 넘는다. 제시카(기정)는 아빠와 엄마, 오빠에게 모두 무례하다. 하지만 가족에게서 나는 냄새가 무슨 냄새인지 안다. 가정부와 연교, 그리고 다송에게 정확하게 선을 그으며 자신의 위치를 구축한다. 

 

기우가 오르던 박사장의 계단은 벽이다. 지금 사회에는 오를 수 없는. 그래서 기우는 다혜를 통해 선을 넘는 꿈을 꾼다. 민혁의 당부는 애저녁에 잊었다. 연교는 박사장이 발견한 팬티를 1회용 비닐장갑을 끼면서 잡지만 장갑을 낀채로 입을 가리고 제시카가 내려오자 맨손으로 팬티를 쥔다. 위생에 대한 지켜야할 선을 무시한다. 

 

다혜와 다송은 커서 자기집을 사려면 얼마가 필요한지 모른다. 충숙은 벽너머 해머를 날려 유리창 깨지는 소리에도 상관없다. 어디에 던질 계획도 없었고 그 해머가 선을 넘어가는 것도 신경쓰지 않았다. 유리창 배상에 관한 이야기는 영화에 나오지 않는다. 

 

문광은 선에 대한 개념이 없다. 사모님 깨울 때 치는 박수. 기우와 기정의 대사 속에서 그녀는 실질적 안주인이다. 계단 가장 깊은 곳에 기거하며 근세를 양육한다. 남편이 아니라 양육하는 아이가 되었다. 피가 섞이지 않은 혈연. 근세는 머리를 박으며 리스빽뜨 한다. 유일하게 선을 넘지 않았다.

 

이 이야기 중에 무조건 내 이야기 하나는 있다. 괜히 봉테일이 아니다.

 

개인적인 것(을 관객이 대입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창의적인 것이다. (마틴 (봉준호) 스콜세지)

 

봉준호의 오스카 4개부분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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