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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노동자를 이길 수 없다

 

‘응보의 원칙’이라는 게 있다. 스스로 획득하거나 유발하지 않은 일에 관해 칭찬하거나 비난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다. 쉽게 말해, 여자와 남자, 백인과 흑인, 더 넓게는 인간과 동물 사이의 차이처럼,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져 있는 것에 대해 차별해선 안 된다는 거다. 우리가 성 평등을 넘어 성 소수자의 인권까지 고민해야 하는 이유, 최근 소수정당을 중심으로 조금씩 대두되는 동물권에 관해서도 한 번쯤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 모두 응보의 원칙에 근거한다.

 

시작이 좀 거창했다. 이번 편, 외국인 노동자에 관한 얘기다. 그들이 현장에서 겪는 차별과 멸시 등 익히 알려졌으나 변하지는 않는 것들에 대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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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아려보진 않았으나, 노가다판의 절반 이상은 이미 외국인이다. 외국인 비중이 갈수록 커지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뭉뚱그려 말하자면 효율성 때문이다. 노가다판이 대부분 비슷한 상황이라는 전제 하에, 형틀목수 이야기를 해보겠다.

 

한국 목수들, 평균 50~60대다. 망치질만 20~30년씩 한 사람들이다. 경력이 있으니 적어도 18만 원에서 많게는 23만 원까지 줘야 부릴 수 있다. 그만큼의 기술력도 있는 건 분명하다. 

 

문제는 기술력만큼 작업물량을 소화하지 못한다는 거다. 노가다 일이라는 게 기술 못지않게 힘과 체력, 지구력도 중요하다. 한국 목수로 말할 것 같으면 절반 이상이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다. 비하하려는 게 아니다. 현실이 그렇다. 인간의 몸도 결국 소모된다. 수십 년간 손목, 어깨, 무릎에 무리를 준 몸이 정상일 리가. 요령에서 앞설 순 있겠으나, 아무렴 젊은 사람 못 당한다. 그 차이는 아파트 현장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50~60대 한국 목수만으로 구성한 팀과 20~30대 외국 목수 중심으로 구성한 팀이 똑같이 아파트 1개 층 공사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그 차이가 실로 엄청나다.

 

기술력만큼 고집 세다는 점도 오야지를 골치 아프게 하는 요소다. 다른 조직사회도 마찬가지겠지만, 실력과 경력에 비례한 자기 확신이라는 건 상상 그 이상이다. 왜냐. 그렇게 일 해왔고, 큰 문제 없었으니까. 한국 목수는 같은 팀 동료끼리도 종종 싸운다. 이렇게 작업하나 저렇게 작업하나 결과는 똑같은데, 시공 방식을 가지고 싸우는 거다. 내가 볼 땐 큰 차이 없는데, 말하자면 그게 목수 자존심이다. 

 

“얌마!!! 너 망치질 얼마나 했어? 이건 이렇게 해야 한다니까 왜 이렇게 고집을 피워.”

 

“참나, 형님. 저도 망치질 할 만큼 했슈. 저는 그냥 제 방식대로 할 테니까, 형님꺼나 잘하슈. X발, 누구는 할 말 없어서 가만히 있는 줄 아나.”

 

“이 싸가지 없는 새끼, 말하는 거 보소. 얌마!! 내가 지금까지 지은 아파트가 몇 채인 줄 알어?”

 

“알았다고요. 저도 형님만큼 아파트 지어봤으니까, 그만 하자고요~”

 

그런 고집쟁이들을 컨트롤해가면서 공사를 진행하기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그러니 오야지 입장에서는 매우 당연하게 젊은 외국 목수를 부리려고 한다. 일당은 한국 목수보다 적게 줘도 되는데 일은 훨씬 빠르다. 그런 데다가 지시도 잘 따른다. 그런 여러 이유로 노가다판에선 한국인보다 외국인 찾기가 쉬워졌다. 

 

 

그러는 너는 완벽하냐고 묻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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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다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다. 한국 목수 한 사람이 다급하게 누군가를 찾았다.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저 사람이 지금 뭐라고 한 거지 싶었다. 

 

“얌마!!! 뻬뜨콩!!! 일루와바!!”

 

다른 현장은 어떤지 모르겠다. 내가 겪은 현장 대부분에서는 외국인을 국적 관계없이 두 분류로 나눠 부른다. ‘짱깨’와 ‘베트콩’. 짱깨는 중국인과 조선족을 통칭해서 부르는 단어고, 베트콩은 베트남, 필리핀, 태국, 캄보디아 등 동남아인을 뭉뚱그려 부르는 단어다.

 

모든 명사에는 그 대상에 대한 시선과 태도가 함께 담겨 있기 마련이다. 단적인 예가 개새끼와 반려견, 도둑고양이와 길냥이다. 둘 다 개와 고양이를 칭하는 단어지만, 뉘앙스는 분명 다르다.

 

짱깨와 베트콩. 우리는 두 단어에 담긴 부정적인 뉘앙스를 잘 안다. 그럼에도 굳이 짱깨와 베트콩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것도 보란 듯이 대놓고. 해서, 귀를 의심했던 거다. 너무 말도 안 되는데, 너무 당연한 일로 여겨져서. 반대로 생각해보라. 내가 일본에서 노가다를 하는데, 일본인이 나한테 이렇게 말한다고. 

 

“어이~ 빠가야로 조센징!!!!”

 

호칭 문제, 백번 양보해 기분 나쁘고 감정 상하는 걸로 끝날 수 있다 치자. 더 큰 문제는 함께 일할 때다. 한국 목수와 외국 목수가 섞여 있는 팀을 보고 있으면 정말 가관이다. 같은 일당 받고 같은 작업장에 투입된 이상, 상하 관계는 성립되지 않는다. 그게 노가다판의 암묵적인 룰이다. 그런데도 한국 목수들은 힘들고 위험한 일 절대 안 하려고 한다. 상급자처럼 외국 목수들을 부려먹는다. 

 

“얌마!!! 뻬뜨공!! 저~ 가서 저거 가져와!!” 

 

그러는 너는 완벽하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그렇지 않다. 나 또한 완전하지 못한 사람이다. 현장 분위기에 곧잘 휩쓸린다. 남들 하듯, 생각 없이 외국인 대할 때도 있다. 가끔은 나 스스로에게 놀라기도 한다. 내가 지금 저 사람에게 했던 말, 과연 한국인이었다고 해도 그렇게 했을까 하고 말이다. 한국 사람이었다면 설령 나보다 나이가 어리다고 해도, 그보다는 조심하지 않았을까 싶은 마음이 드는 거다. 그럴 때마다 반성한다. 그러지 말자고. 그들도 똑같은 인간이라고. 해서, 나는 외국인이라도 꼭 나이와 이름을 먼저 묻는다. 한 살이라도 많으면 존대한다. 어쨌거나 그게 한국식 예의니까. 

 

“레중딘 형님(베트남 37세)~~~ 이것 좀 도와주세요.” 

 

그럴 때면 “얌마!! 뭘 외국 애들한테 존댓말을 하냐?”라는 핀잔을 듣기도 한다. 그래도 그렇게 한다. 내가 특별히 고상한 놈이어서, 대단히 배운 놈이어서 그러는 건 아니다. 그냥, 어릴 때 아버지에게 들었던 말 때문이다. 가슴에 콕 박혀서 이따금 되새겨보게 되는 그 말. 

 

“니가 들었을 때 기분 나쁜 말이면 다른 누구에게도 기분 나쁜 말인 거야. 그것만 생각하고 행동해. 그러면 남한테 피해줄 일 없어.”

 

 

외국인 코를 꿰는 오야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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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을 괄시하는 언행과 태도, 그 정점에는 오야지들이 있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닐 테지만, 몇몇 오야지들은 정말 악독하다.

 

언젠가 중국인들과 일할 기회가 있었다. 같이 일하면서 우선 놀랐던 건, 쉬는 시간이 없다는 점 때문이었다. 노가다판에선 통상 9시에 오전 참, 3시에 오후 참을 먹는다.

 

근로기준법 제4장 근로시간과 휴식 제54조(휴게) “사용자는 근로시간이 4시간인 경우에는 30분 이상, 8시간인 경우에는 1시간 이상의 휴게시간을 근로시간 도중에 주어야 한다.”라는 법적 근거 같은 거 운운할 것도 없이, 고된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에게 약간의 쉬는 시간은 인간적인 배려다. 근데 그들은 참은커녕 담배 하나 맘 편히 피지 못했다. 왜 그렇게 일을 빡빡하게 하나 사정을 물었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서글펐다.

 

“중국 인구 많아요. 한국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많아요. 줄 섰어요. 열심히 안 하면 쫓겨나요.”

 

그날, 나랑 줄곧 대화 나누며 함께 일했던 형님은 45살 중국인이었다. 그 형님으로 말할 것 같으면 한국말도 곧잘 하고 일한 지도 오래돼서 일당을 좀 더 많이 받는 대신, 팀 내 중국인을 총괄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중국인 반장인 셈이다. 기본적인 소통 창구 역할은 물론이고, 한국 오야지 요구에 따라 중국에서 일할 사람을 데려오거나 내쫓는 역할까지도 맡고 있었다. 심지어는 숙소 관리와 저녁밥까지도 책임지는 듯했다. 

 

그 형님 말에 따르면 일하고 싶어 하는 중국인은 워낙 많은데, 그만큼 일거리가 없다 보니 인사권을 가진 오야지 말이 곧 법이라는 거였다. 그러니 알아서들 오야지 눈치 볼 수밖에 없고, 일이 점점 빡빡해지는 거였다. 

 

“그건 그렇고 형님, 숙소는 보통 오야지가 해결해주는 거 아니에요?”

 

“맞아요. 근데 그런 숙소는 너무 불편해요.”

 

얘기인즉, 오야지가 숙소(보통 20~30평 내외의 빌라나 아파트)를 구해줄 경우, 비용 절감을 위해 터무니없이 많은 인원을 한 숙소에 몰아넣는단다. 20~30명을 몰아넣는 경우도 봤단다. 그런 숙소에서 지내면 씻는 건 둘째 치고, 대소변도 맘 편히 볼 수 없게 되는 거다. 

 

때때로 외국인들이 작업장에서 똥을 싸기도 한다. 그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란다. 집에서 볼일을 못 봐 배는 아픈데, 화장실까지 갔다 오자니(화장실이 제법 먼 현장도 있다.) 오야지 눈치 보이고, 어쩔 수 없이 그냥 옆에다가 똥을 싸버린다는 거다. 

  

“그래서 우리는 3~4명씩 돈을 모아서 원룸에서 지내요. 근데 몇 달째 월세를 못 내고 있어요.”

 

“왜요?”

 

사정을 듣고는 화가 너무 났다. 9개월째 월급을 못 받았단다. 어떻게 그런 상황이 가능할까 싶겠지만, 노가다판에선 가능하다. 쓰메끼리(한국말로 굳이 해석하면 임금 지급 유보 기간인데, 이걸 왜 쓰메끼리라고 하는지는 모르겠다)라고 하는 이상한 관행 때문이다. 쉽게 말해 1월에 일한 월급을 2월 말에 주고, 2월에 일한 걸 3월 말에 주는 식으로, 거의 예외 없이 모든 현장에서 적게는 보름, 많게는 한두 달까지도 임금을 묶어둔다. 

 

이 관행을, 오야지들이 더욱 악용하는 듯했다. 말하자면 쓰메끼리로 외국인들 코를 꿰는 거다. 그렇게 코가 꿰인 외국인들은 임금이 더 밀려도 받을 돈 때문에 도망을 못 간다. 그런 식으로 한 달이 두 달이 되고, 두 달이 세 달이 되고, “다음 달엔 꼭 줄게. 나도 아직 하청에서 돈을 못 받아서 그래~” 하는 식으로 어물쩍 넘어가다 보니 어느새 9개월이나 임금이 밀리게 된 거였다.  

 

난 그날, 그 팀 오야지 손가락에서 눈깔사탕만 한 금반지가 번쩍이는 걸 보고 말았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에휴~ X벌, 진짜 X 같다.”라는 말이 깊은 탄식처럼 새어 나왔다. 

 

“해도 너무 하네. 형님, 다음에 밥 먹어요. 제가 밥 한 번 살게요.”

 

“고기 사줄 거야? 나 소고기 좋아해요!”

 

“네~ 고기 사드릴게요. 형님~ 우리 담배 하나 피고 해요! 팀장이 뭐라고 하면 내가 막아줄게요. 하하.”

 

외국인 노동자와 관해 하고 싶은 얘기가 참으로 많다. 시장경제라는 쉽고 간편한 논리로 내쫓기는 한국 노가다꾼의 현실, 그걸 방관만 하는 정부, ‘불법 외국인’ 노동자라는 이유로 더 불법적인 행태를 감내해야 하는 외국인들의 상황, 그걸 온전히 오야지 탓이라고 하기엔 너무 엉망진창인 건설 산업의 여러 부조리까지. 지면의 한계라는 핑계로(실은, 모든 얘기를 하자면 더욱 많은 정보와 이야기가 필요한데, 그걸 알아보고 정리할 여유가 없어서) 다 담지 못하고, 그저 “외국인을 차별하지 맙시다.”라는 도덕 교과서 같은 얘기만 하고 끝내게 된 점, 양해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