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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은 한국 근현대사가 낳은 도시라 만하다. 원래 부산이란 해안가의 군사기지였던 '부산진(釜山鎭)' 이름에서 비롯된 것으로, 지금은 부산의 구가 버린 왕년의 거읍 동래(東萊) 비할 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강화도 조약 이후 원산, 인천과 함께 문호를 항구 하나가 되면서 고속성장하기 시작했고, 경술국치 쯤엔 인구 5만을 넘어섰다. 당시 한국 도시 5 인구를 넘어선 서울과 부산 뿐이었다고 한다. 인구 7 가운데 일본인이 2 명이 넘었다고 하지만.

 

부산이 한반도 중심의 역사에 건 역시 전쟁 때였다. 무려 1천여 일 동안 한국의 임시수도였거니와 수십만 명의 피난민들이 바다에 막히고 산들이 그득한 고장 곳곳에 뿌려지다시피 정착했다.

 

부산(釜山) 가마솥 같은 산들이 곳곳에 솟아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거니와 해안가 낮은 , 오늘날의 남포동 쪽에 일본인들이 떼를 지어 살았다면 조선인들은 산으로 기어올라 판잣집들을 짓고 살았는데, 전쟁이 터지자 높이는 올라간다. 바닷가 부두에서 보면 까마득한 중턱까지 판잣집이 낮에는 새까맣게, 밤에는 수만 호롱불로 산을 뒤덮도록 들어섰고 결국 모습 그대로 쌓인 지층이 오늘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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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 가면 산복도로(山腹道路) 경험해야 한다. 과거 서울의 낙산과도 비슷한 느낌이지만 산의’() 가르고 부산의 산복도로의 특징은 저지와 고지대를 잇는 것이 아니라 까마득한 고지대에서 수평으로 이어진 길들이 엄청나게 길게 이어진다는 데에 있다.

 

교통로도 교통로지만 판잣집 투성이에 호롱불을 켜다 보니 불이 하도 많이 나서불산이라고도 불렸던 곳인지라, 소방도로로도 닦아야 했던 길이리라. 가장 길고 유명한 곳은 부산역에 내리면 바로 올려다보이는 산동네를 관통하는 망양로일 것이다. 대신동에서 범천동에 이르는 10킬로미터의, 부산항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드라이브길이다.

 

예전에는 여기 올라오려면 버스를 갈아타거나 계단을 낑낑대며 걸어올라야 했는데 초량에 이바구길이라는 생기고 모노레일을 설치했다기에  구경이나 하자 해서 지난 설에 들렀다. 부산역 건너 초량에서 산복도로에 올라  하늘길(?) 누비는 코스는 가히 부산 역사 탐방으로 손색이 없다.

 

일단 부산역에 내리면 맞은편의텍사스 거리현판이 보일 것이다. 텍사스 거리란 미군과 항구에 들른 외국인을 상대로 홍등가의 속어였다. 어릴 적에는 '청소년 출입금지구역' 간판이 척화비처럼 있었는데 지금도 명색은 그렇다고 한다. 그런데 무슨 생각인지 텍사스 거리현판을 대문짝만하게 걸어 놨다요즘은 거리에 미국인들은 거의 없고 보따리 장사 러시아인들이 득시글거리는데캄차카 거리라면 몰라도 텍사스 거리, 그것도 유쾌하지 않은 이름을 그리 자랑스레 걸어놨는지 부산 공무원들의 심모원려를 도무지 이해할 없지만.

 

텍사스 거리는 차이나 타운과도 맞닿아 있다. 서울의 대림동과는 비교가 안되는, 전시용 차이나 타운 느낌이 들지만 이곳에 중국인들이 밀집해서 살았고 지금도 명맥을 잇고 있다. 1931 만보산 사건 부산에서도 이곳 초량 차이나 타운은 일대 습격을 받는다다행인 것은 중국 영사관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이다. 일본 경찰도 외교 공관은 보호해야 했고 일대 화교들은 영사관으로 몸을 피했는데 수천 명의 군중들이 영사관을 포위하고 돌을 던지며 경찰과 충돌하는 스펙터클을 연출했다. 서울에 이태원이 있다면 부산에는 초량 일대가 있는 셈이다고나 할까. 땅에도 팔자가 있다면 외국인과 매우 밀접한 팔자였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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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걸어 올라가다 보면 부산역 앞의 대로의 기억은 금새 사라진다. 70년대를 방불케하는 집들과 골목길들이 불쑥 나타나고 옛날 그대로 생긴 문방구가 아이들의 자질구레한 장난감을 잔뜩 매달고 있다. 주인 아주머니 말씨가 부산사람 같지 않아 물었더니 전주가 고향이고 이곳에 지는 40년이 넘었다고 한다. 부산은 토박이의 도시라기보다는 뜨내기들이 키워 도시. 때만 해도 압도적인 경상도 사투리 사이로 팔도의 사투리가 심심치 않게 들렸던 곳이란 사실이 새삼 떠올랐다.

 

산복도로로 이어지는 모노레일은 168계단 옆에 놓였다. 걷기 싫어하는 아이들은 모노레일을 태워 올려보내고 걸어 봤다. 신경을 써서 가꾼 길이었다. 계단마다 특징 있는 장식물을 붙여 놨고 오르는 계단 벽에 부산이 낳은 인물들을 소개하며 그들의 일생을 짤막하게 기술해 놨다.

 

한국 정치사에서 숱한 남정네들을 호령했던 박순천, 그리고 의열단원으로서 서장 앞에서 네가 죽여야 하는지 이유를 말하고 폭탄을 터뜨리라.” 김원봉의 명령을 그대로 수행해 기어코 서장을 죽였던 박재혁도 등장한다. 여러 독립운동가들에서 느끼는 것이지만 박재혁의 얼굴은 맑으면서도 결기가 넘친다. 사람은 눈을 보면 사람을 안다는 속설을 실감할 있는 얼굴이랄지.

 

이바구길을 걷다 보면 김민부 전망대라는 것도 나온다. 김민부가 누구냐 사람도 많겠으나 노래 하나를 흥얼거리면 '아하 사람이냐?' 하면서 고개를 상하로 크게 끄덕일 것이다. 바로일출봉에 뜨거든 불러주오' 시작하는 <기다리는 마음> 작사가다. 그는 부산이 낳은 시인이자 방송 초창기 부산 MBC PD이기도 했다. (서울 MBC보다 부산 MBC 먼저 생겼다는 사실!) 그가 만든 라디오 프로그램은 놀랍게도 지금까지 유구하게 이어지고 있는 , 그게 <자갈치 아지매>. 부산에서 사람들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사회 비평 프로그램.

 

계단을 오르면 부산항 일대는 물론 부산의 중심가가 훤히 내려다보이고 동시에 산의 배를 가르는 장쾌한(?), 그러면서 아슬아슬한 산복도로를 실감나게 마주할 있다. 성산일출봉에서 보는 바다와 자연과는 사뭇 다른, 온갖 인간들의 발걸음과 한숨과 악다구니와 노래 소리를 머금은 첩첩도시의 파노라마이지만 그래도 김민부의 노래가 흘러나올 만큼 마음이 흐는해진다. 기다려도 기이이다아려도 오지 않고...”

 

여기서 버스를 타고 서너 정거장에 가면 민주공원에 이른다. 지금 부산은그래도 자한당 기세가 아직 드높은 곳이지만 한때 명백한 야당 도시였다. “부산과 마산이 일어나면 정권이 바뀐다.” 자긍심이 드높던 곳이었고, 6월항쟁 당시 경찰이 사실상 진압을 포기할 만큼 어마어마한 위력의 대중 시위를 전개했다. 6월항쟁을 앞두고 광주 출신 이한열과 부산 출신 박종철이 희생된 것은 참으로 묘한 역사적 우연이라 하겠다. 민주공원은 지난했으나 감동적인, 생생하지만 어느덧 멀어져 버린 부산의 역사를 전해준다. 마치 부산의 산줄기를 이어주는 산복도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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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마을 버스를 타고 남포동으로 내려가는 길은 가히 롤러코스트다. 길은 좁고 집들은 많아 언제 사람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경사 만땅의 길을, 기사 아저씨는 브레이크를 거의 밟지 않고 내달린다. 서울에서 아이들은 멀미를 하고 손잡이를 잡고 부들부들 지경.

 

가다 보면 혜광고등학교가 나온다. 박종철의 모교. 그리고 영화배우 김윤석과 오달수의 모교이자 2019 대한민국에 초특급 태풍을 불러와 대한민국을 반쪽으로 갈랐던 조국 법무부 장관의 모교.

 

언젠가 장관은 모교 방문에서 뜻밖의 굴욕을 당했다고 들었다. 유명한 인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후배들은 김윤석과 오달수에 열광했을 , ‘이름이 별나고 크고 곱상한 교수님 누군지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에피소드를 떠올리며 키득거리며 웃다보니 혜광고등학교 담장을 끼고 버스가 달린다. 학교는 무슨 팔자라 박종철 같은 사람을 품었고 김윤석과 오달수를 길렀으며 조국을 졸업시켰을까. 혜광(惠光),  '은혜의 빛'이라는 이름은 대번에 기독교 계열 학교임을 알게 주는데, 학교는 1987 박종철의 죽음 자신들이 배출했던 박종철의 이름을 가장 잔인하게 짓밟은 이력이 있다.

 

"1987 3 혜광고에 입학한 박상현(48) 씨는 1학년 내내 박종철 열사의 이름을 밖에 꺼내지 못했다고 한다박종철 이름을 꺼내면 선생님들이 방송실로 끌고 심하게 구타했다... 박씨는 1987 12 박종철을 기리는 추모시를 썼다가...  사실을 문예부 담당 선생님께 끌려가 엄청나게 맞았다... 추모시는 갈기갈기 찢어졌고, 문학의 밤에 참석할 수도 없었다

(중앙일보 2018 1 10)

 

허기사 혜광은 내가 부산에서 고등학교 다닐 때에도 선생들 험하기로 유명했다.  소문이 산복도로 넘어 가야까지 전해질 지경이었으니...

 

부산은 가볼만한 곳이 많다. 어쩌면 서울보다도 다양한 모습을 지닌 도시일지도 모른다. 21세기와 20세기는 당연히 공존해 있고 100층이 넘는 건물들이 우뚝 섰지만 그림자 끝에는 판자촌이 시멘트 건물촌으로 변했을 뿐인 산동네가 띠를 둘러 산을 덮는다.

 

바다를 끼고 있지만 산이 징그럽게 많은 동네다 보니산은 산대로 물은 물대로볼거리가 많고 최전방에서나 있는지뢰주의팻말도 구경하고 일본 구경을 하고 싶으면 당일치기로 외국에 다녀올 있는 도시다. 시간 나면 다시금 부산을 샅샅이 다녀 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이제는 어릴 추억의 도시가 아닌 여행자로서 다시 부산을 뒤져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