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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범죄에 대한 엄정한 수사는 공정한 경쟁질서를 확립하고 우리나라 헌법의 핵심인 자유민주주의의 본질을 지키는 일이다. 공정한 선거를 만들자!”

 

지난 10일 서초구 대검찰청 대회의에서 열린 전국 지검장 회의에서의 윤춘장 발언이다. 윤춘장이 중앙선거관리위원장까지 겸직하고 있나 잠시 헷갈렸다. 이쯤되면 나와바리 침범당하고 공개적으로 물 먹은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의 대노(?)가 조중동의 헤드라인을 장식해야 한다. 

 

모든 사장들이 그렇듯 춘장도 자신이 어느 회사의 사장인지, 그 회사가 무슨 일을 하는 지를 종종 까먹는 듯 싶다. 검찰의 존재 이유와 역할은 ‘공정한 경쟁질서 확립’이나 ‘자유민주주의의 수호’, ‘공명선거’가 아니다. 범죄자를 기소해 처벌하여 정의에 입각한 법치주의 확립에 기여하는 것이라면 모를까. ‘헌법’, ‘자유민주주의 수호’는 그동안 독재자들이 자주 쓰던 말이었음을 기억하자.

 

아직 각 당에서 본선 후보도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공정한 선거를 만들자’고 한 것은 춘장의 기준에 맞는 ‘공정한 선거’를 만들겠다는 다짐(이라고 쓰고 ‘압박’이라고 읽는다)으로 읽을 수 있다.

 

춘장은 청와대 하명수사 의혹 관련하여 전현직 청와대 비서관을 비롯한 13명을 무더기 기소한 시점부터 ‘정권교체’로 수사의 방향을 튼 바 있다. 이 의지를 실현시키기 위한 첫 단계로 이번 21대 총선에서 여당이 다수당이 되는 일만큼은 막겠다는 의지를 천명하고 정해진 수순을 밟아나가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여당 후보들에게 공직선거법을 엄격하게 적용해 선거운동 단계에서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방법도 있고, 계속적으로 수사와 기소로 언론에 먹잇감을 던져주면서 야당(이라곤 하지만 자유당을 비롯해 춘장들의 이득을 위해 나서줄 선수들이 가득한 그 당들)을 위해 간접 선거운동을 하는 방식이 있다.

 

그럼에도 선거에서 여당이 다수당을 차지한다든가 하였다면, 상대 당의 떨어진 후보들을 부추겨 사소한 꼬투리를 잡아 선거법 위반으로 고발을 남발하게 하는 방법도 있다. 그리고 먼지떨이식으로 수사, 기소하여 '당선무효형'을 받아내 재보궐 선거판을 키운다. 

 

우리나라 공직선거법은 후보가 선거운동을 하라는 것인지 말라는 것인지 알 수 없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를 잘 알고 있는 춘장은 공직선거법을 십분 이용하여 이와 같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진혜원 검사는 춘장이 전국 공안검사들과 검사장, 고위간부들을 소환해 선거관련 회의를 한다고 하자 자신의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검찰의 선거개입을 ‘늙은 카사노바’에 비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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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혜원 검사 페이스북(링크)

 

과거 검찰이 수사‧기소권을 남발하여 선거에 개입, 공분을 산 사례들을 알아본다. 다가올 21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펼쳐지게 될 춘장의 계획들을 미리 파악하고 대비하자는 의미에서 말이다.

 

다만, 1970~1980년대 군사독재정권 시절에 벌어진, 너무나도 노골적이어서 부끄럽기까지 한(왜 부끄러움은 우리의 몫인지) 각종 빨갱이 조직 내지는 조직폭력배 무더기 기소 건은 새삼스럽게 언급하지 않겠다. 

 

 

1. ‘우리가 남이가’ 초원 복집 사건 

 

'초원 복집 사건'이 없으면 단팥 없는 단팥빵이다. 민주화 이후 권력이 가장 세진 검찰의 선거개입 클래식(?)이라 할 수 있다. 기획자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한없이 타락시킨 그 자, 김기춘 되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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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12월 16일 자 <한겨레>

 

DJ와 YS가 세게 붙은,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를 일주일 앞둔 날이었다. 김기춘은 부산 대연동에 위치한 초원복국식당에 부산지역 기관장들을 불러 모아놓고 “우리가 남이가!”를 시전했다. 민정당을 이어받은 민자당 소속 후보인 YS의 승리를 위해 대놓고 ‘지역감정’을 조장하고, ‘공무원 동원’을 모의하면서 불법선거 운동을 획책하였다. 김기춘이 법무부장관 자리에서 물러난지 채 두 달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김영환 부산시장, 정경식 부산지검장, 박일룡 부산경찰청장, 이규삼 안기부 부산지부장, 우명수 부산교육청 교육감, 박남수 부산상공회의소회장 등 부산을 대표하는 사정기관장을 비롯한 기관장들이 모두 자리했다)

 

정주영(현대 왕회장) 국민당 후보 쪽에서 몰래 녹음해 폭로해 알려진 이 사건은 대선 막판의 최대 쟁점이 되었다. 민자당을 비롯한 여권에서는 자신들의 주특기인 ‘뭐 뀐 놈이 성 내는' 작전을 편다. ‘불법도청 사건’으로 프레임을 전환한 것이다. 

 

알다시피 이 선거에선 YS가 승리, 14대 대통령이 되었다. 선거결과가 말해주듯 성공한 작전이었다.

 

 

2. 광우병 파동 관련 MBC PD수첩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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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4.29 재보궐 선거를 앞둔 3월, 검찰은 2008년 광우병 소고기의 위험성을 알린 MBC <PD수첩> 제작진을 기소한다.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다. 

 

2008년 광우병 촛불 집회부터 2009년 1월에 벌어진 용산참사까지, 연이은 실정으로 집권 초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MB정권에 대한 민심이 심상치 않던 시기였다. 4.29 재보궐 선거는 MB정부 2년 차에 사실상 처음 치러지는 정권 심판적 성격이 강했다. 여기에 영향을 끼치고 정부정책에 반대되는 보도를 한 언론인의 입을 막겠다는 의도였다. 당시 수사검사가 상부의 기소 압력에 반발해 사표를 던질 정도로 검찰 내부적으로도 파동이 적잖았다. 

 

16개 선거구(국회의원 5명, 기초단체장 1명, 광역의원 3명, 기초의원 5명, 시‧도교육감 2명)를 뽑는 선거로, 재보궐 치고는 전국적 규모였다. 어쨌든 4.29 재보궐 선거 결과는 당시 여당이었던 한나라당의 압승이었다. 전통의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호남 지역구를 제외하고는 한나라당 후보나 한나라당 성향의 무소속 후보가 당선되었다. 그리고 MBC는 PD수첩 제작진에 대한 기소를 필두로 친정부적인 성향으로 돌아섰다. 

 

MBC PD수첩 제작진은 2011년 9월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선고를 받았다. 이 사건은 2017년 12월 검찰개혁위원회 과거사위원회에서 과거사 재조사 사건으로 선정되었다. 

 

 

3.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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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벌어졌던 사건이다. 국정원이 댓글 작업을 통해 대선에 개입한 건을 검찰이 ‘국정원 여직원 감금사건’으로 둔갑시킨 뒤 민주통합당 소속 의원 4명(강기정, 김현, 문병호, 이종걸)과 당직자 정모씨를 약식 기소했다. 결재라인은 김진태 검찰총장과 황교안 법무부장관이었다.

 

국정원 직원 김모씨가 한 오피스텔에서 야당 후보를 비방하는 댓글 작업 활동을 벌였고, 민주통합당 소속 의원과 당직자들이 현장을 급습하였다. 제보를 받은 서울 강남경찰서 권은희 수사과장(바른미래 권은희 의원)이 나타나 문을 두드리며 열어달라고 하였음에도 김모씨는 열어주지 않았다.

 

이에 대해 대선후보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불쌍한 여직원을 물도 못 마시게 감금한 인권침해 행위에 대해 사과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로 인해 ‘셀프 감금’이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2017년 국정원 개혁위원회는 과거 국정원이 여론조작팀을 운영했던 사실을 확인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지난 2018년 대법원에서 국정원 댓글공작 활동으로 징역 4년을 선고 받았다. 검찰에게 기소 당한 민주통합당 의원들과 당직자에 대해서는 2016년 1심부터 2018년 대법원까지 모두 무죄가 났다. 

 

 

4. 나꼼수 김어준‧주진우 기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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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검찰은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와 주진우 기자를 불구속 기소한다. 2012년 4월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정동영, 김용민 후보를 비롯한 특정후보를 4월 1일부터 10일까지 8차례에 걸쳐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대규모 집회를 계속한 혐의다. 2013년 6월에는 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5촌 살해사건 등 허위사실을 공표한 혐의로(공직선거법 위반, 사자명예훼손) 또 다시 불구속 기소하였다. 어쨌든 두 사람은 최종적으로 무죄판결을 받았다. 

 

검찰은 기소를 통해 이들의 입을 막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겠지만, 오산이었다. 감옥에서도 할 말 다 할 사람이다.

 

 

5. 창조한국당 문국현 전 의원 기소 및 의원직 상실 

 

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사장은 17대 대통령 선거에서 혜성처럼 등장했다. 이듬해 치러진 제18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창조한국당을 창당하고, ‘왕(MB)의 남자’로 불렸던 이재오 전 의원의 지역구인 서울 은평을에 출마해 당선됐다. MB정부 출범과 함께 치러진 선거여서 특히 수도권에서 여당이 압승한 선거였으니, 문국현이 이재오에게 준 굴욕이 가히 대단하다 할 수 있었다. 

 

승리감도 잠시, 그해 4월 검찰이 문국현 전 의원을 공직선거법 및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기소하였다. 이한정 전 창조한국당 의원에게 당채 6억원 어치를 판 뒤 그 돈을 당에 입금한 혐의였다. 2009년 10월 대법원은 문 의원에게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하였다. 이로 인해 문 전 의원의 1년 5개월 남짓한 짧은 의정생활 뿐만 아니라 정치생명도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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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전 의원은 1·2심에서 검찰의 공소제기 과정에서 형사소송법의 원칙을 위반한 점을 들어 이의를 제기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법원에 상고를 제기하기도 하였다. 

 

“검찰의 공소장이 재판부에 유죄 선입견을 줄 수 있는 내용이나 물건 등을 빼고 공소장만 제출하도록 한 형사소송규칙의 ‘공소장 일본(一本)주의’를 위반했기 때문에 ‘공소 기각’ 결정을 해야 한다”는 재판실무상 유의미한 주장이었다. 그러나 말 많고 탈 많았던 신영철 대법관(몰아주기 및 인사 문제로 신입 판사들이 집단으로 항의해 들고 일어났던 그 인물)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이듬해 7월, 은평을에 재보궐 선거가 치러졌고, 이재오는 여의도에 귀환했다. 

 

 

6. 곽노현 전 교육감 구속 기소 

 

곽노현 전 교육감은 2010년 전국지방자치단체장 선거 및 시도교육감 선거에서 서울시교육감으로 당선되었다. 그러던 2011년 9월, 검찰이 곽 전 교육감을 구속기소한다. 서울시교육감 선거과정에서 후보단일화를 위해 단일화 상대 후보자 후보사퇴 대가로 금품 등을 제공하여 매수한 혐의(지방교육자치법률에 관한 법률, 공직선거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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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 교육감은 “금품을 준 상대방이 어려운 처지에 있어 2억 원을 준 것은 사실이 맞지만, 당시 후보단일화는 시민단체의 주도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대가성이 없다”고 주장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대법원에서 징역 1년 6개월에 추징금 2억 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 받았다. 결국 직을 상실하고, 수감되었다. 

 

2006년부터 도입된 교육감 직선제는 언젠가부터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 대결의 장이 되었는데, 2012년 치러진 서울시교육감 재보궐 선거에서 또 다시 진보성향으로 분류된 조희연 교육감이 당선되었다. 

 

 

7.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기소 

 

검찰은 2014년 6.4 전국 지방선거관련 시도교육감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한 조희연 교육감도 기소했다. 

 

조 교육감은 선거운동 과정에서 “고승덕 후보는 두 자녀를 미국에서 교육시켜 미국 영주권을 보유하고 있으며, 고 후보 자신도 미국에서 근무할 때 미국 영주권을 보유했다는 제보가 있다”며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이에 고승덕 후보는 “미국 영주권을 취득한 사실이 없는데도 조 후보가 허위사실을 공표해 심각하게 명예가 훼손됐다”며 조 교육감을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에 고발, 보수 시민단체도 조 교육감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그해 12월 검찰은 당시 고 후보자에게 미국 영주권이 없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확인된 사실로 치부하고 조 교육감을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였다. 

 

조 교육감에 대한 검찰의 기소는 즉각적인 여론의 반발을 불러왔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조 교육감 당선의 최대공신은 비정한 부정(父情)을 페이스북을 통해 고발한 고 후보자의 딸 ‘캔디고’라는 건 전국민이 아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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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국민참여재판으로 열린 1심에서 배심원 7명 전원이 유죄를 평결했고, 재판부는 이를 반영해 당선무효에 해당하는 벌금 500만 원을 선고했다. 그러나 2심에서 “공직 적격을 검증하려는 의도였고 악의적인 흑색선전이 아니어서 비난 가능성이 낮다”며, 벌금 250만 원의 선고유예 처분을 내렸다. 대법원은 2심을 확정했다. 

 

임기를 마친 조 교육감은 2018년 3선에 성공했다. 

 

 

 

이 밖에도 지난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고 장준하 선생의 아들 장호준 목사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일간지와 인터넷 등을 통해 “현 정권을(박근혜 정권) 투표로 심판하자”는 등의 내용이 담긴 광고를 게재했다는 이유였다.

 

반대로 선거에 개입한 전력도 있다. 과거 정권에서 여당에 유리한 결과를 위해 불법, 비리를 저지른 후보자나 당사자들에 대해서는 솜방망이를 휘두르는 방식으로 말이다.

 

대표적으로 2011년 10월 치러진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조직적으로 개입한 사건을 들 수 있다. 당시 여당이었던 한나라당은 박원순 후보의 당선을 방해하기 위해 개입했고, 검찰이 수사에 들어갔다. 그러나 검찰은 한나라당 최구식 의원 비서와 박희태 국회의장의 의전비서가 주도한 혐의만 밝혀내고 사건을 종결하였다. 이후 진행된 특검 수사에서 수사정보를 누설한 혐의로 당시 김효재 청와대 정무수석을 기소하였다.

 

이상이 검찰이 선거에 개입한 역사였다. 검찰에게 삼권분립의 원칙이란 과연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