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걸다 우원회] 와니는 방을 치웠을까? 2002.1.19.토요일
"어머! 어머! 역시 남자는 바람둥이야. 한번에 여러 여자를 가슴에 품을 수 있다니 너무해! 그런 남자랑 사귀면 억울하자노" "아냐~~ 여자가 더 얄팍한 거야. 현실적인 게 너무 강해서, 과거를 싸그리 잊잖아. 오죽하면 방주인이 바뀐다고 하겠니?" "치이~~ 그래도 억울해~" <여고괴담2>에 나오는 그 섬세한 여고생 노트처럼 아기자기하게 장식은 못 하더라도, 가느다란 분홍색 펜으로 다이어리 한 켠에 "별을 사랑한 소년 이야기"와 같은 사랑에 관한 ABCD 끄작거려본 감성을 지녔던 여중고생이라면, 저 얘기 한번쯤은 들어봤음직하다. 원태연 류의 시나, 벙어리인 소년과 장님인 소녀(혹은 그 반대)의 사랑 이야기나 그런 여학생 다이어리용 사랑얘기 싫어했던 본 우원은(본 우원이 좀 메말랐다) 저 얘기 그냥 그렇고 그런 이야기로 흘려 들었었다. 그 후, 고딩 생활 마치고, 환상이나 상상 속에만 있던 연애란 것도 해 보고 나니, 문득 그때 했던 이 얘기가 떠올랐다. 비록 남자 맘 속에 방이 몇 개고, 여자 맘 속의 방은 몇 갠지 진실 여부는 확인할 길이 없으나, 사랑의 기억을 마음 속의 방으로 얘기한 저 비유 만큼은, 현실의 연애를 겪어본 본 우원의 가슴 속에 너무나 팍팍 와 닿았다. 글타! 본 우원! 오늘은 마음의 방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2001년 11월, <와니와 준하>를 보았다. 본 영진공에서도 등급을 잘 때렸듯이, 역시 보고나니 딱 덩가였다. 본 우원 여자치고 순정만화 삘이 열라 부족하고, 원체 연애질 무비에 그다지 넋놓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리고 엔딩 장면에서 보여준 알고보니 운명 따위의 순정만화 공식 같은 것도 본인의 취향은 아니다. 물론 영화 자체는 엄청 깔끔했다. 화면 구성도 깔끔하고, 너무 만화적이지도, 너무 현실적이지도 않은 영화의 공간은 연애질 무비 최고의 배경으로 잡혀 있었다. 연인들 사이에 놓여진 타인들과의 미묘한 관계를 회상씬이나 전화씬으로 잡아내는 것은 이 영화가 가진 최대의 매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연애질 무비로서의 이야기 구조 자체는 좀 빈약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와니가 자신의 내면과 자신의 과거를 응시한다는 의미로서의 영화는 상당히 좋지만, 그 깊은 와니와 준하와의 갈등관계는 (아무리, 와니랑 준하가 대놓고 표현 안 하는 성격들이라고는 하지만) 알고보니 운명이라는 허울로 너무 쉽게 풀어낸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 것이다. 갠적으로 가장 거슬렸던 것은 와니의 과거 남자가 하필이면 남동생이라는 점이다. 멀게는 강신제의 소설 <젊은 느티나무 (김혜수, 손창민 주연의 베스트셀러극장으로 제작되기도 했던)>부터 시작해서, 폭발적 인기를 끌었던 <가을동화>를 거쳐 <와니와 준하>까지. 어찌보면 이러한 설정은 로맨틱 장르에 매우 흔한 일이기도 하고 또 몇몇 독자나 시청자들에게는 그게 삘을 받게 하는 촉매제 역할을 할 터이나, 아무리 이복동생, 새엄마가 델꾸온 오빠, 어릴 때 바뀐 오빠라고 해도, 본 우원 갠적으로는 이런 설정이 너무 껄끄러워서 감정이입을 할 수가 없었다. 감정이입을 못하니, 연애질 무비로서 가치가 떨어질 수 밖에... 물론 남자형제 비스끄무레와 로맨틱 어쩌구에 삘받기에 실패하는 본 우원의 증상은 오빠랑, 어릴 때부터 박터지게 싸운 개인사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 어릴 때 본 우원은 네 살 터울의 오빠에게, 한대 맞으면 열대 때리기, 무협지 보는 거 엄마한테 꼰질르기, 얻어 맞아 억울하면, 방학숙제 다 찢어 버리기 등을 시행하였으며, 오빠는 나에게 어린 동생 꼬셔, 돈 뜯어내 조립식 완구 사기, 어린 동생 꼬셔, 돈 뜯어내 비디오 빌리기,어린 동생 꼬셔, 돈 뜯어내 만화 빌리기 등을 자행하였다. 혹 여동생이 없어서 여자 형제 환상이 쬐매라도 있으신 독자분덜 얼렁 깨어 나시라. 본 우원 친절하게 예를 들어 줄테니.
이렇게 본인의 취향과 다르다는 점, 연애질 무비치고 스토리 라인이 좀 약한 게 아닌가 하는 점, 영민이가 남동생이어서 삘받기에 실패해 감정이입이 안 된다는 점 때문에 본 우원 <와니와 준하>를 보고는잘 만든 영화다, 깔끔하고 아름답게 잘 그렸다같은 생각을 하면서도, 밍숭밍숭한 연애질 무비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담날로 영화 내용은 홀랑 머리 속에서 휘발된 듯 했다. 그러다 어느날, 웬일로 방을 치우던 본 우원, 갑자기 어느 한 생각에 사로잡혀 방 치우던 손길을 멍 하니 멈추고 말았다. .....와니는 그 방을 치웠을까? 영민이가 쓰던 그대로 방을 닫아 걸어 놓고, 같이 사는 준하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그 방. 프랑스에서 돌아온대도 다시 영민이가 돌아오지 않을 그 방을... 와니는 치웠을까? 안 치웠더라면, 그럼 걸어둔 문이라도 열었을까? 혹시 준하 말을 따라서 오디오랑 LP들은 거실에 꺼내 놓고 쓰고 있을까?
와니와 영민이는 방정도가 아닌, 집을 공유하던 사이이다. 이들이 이복형제라는 설정은 본 우원에게 껄끄럽긴 하지만, 이들이 집을 공유한 사이라는 점에서 와니가 가슴 속에 간직한 영민이의 공간이 얼마나 큰지를 은유적으로 나타내는 데에는 매우 성공적이다. <와니와 준하>의 이야기를 방이라는 공간을 초점으로 해 다시 한번 풀어보자. 준하는 와니의 방에 산다. 준하가 와니네 집에 살긴 하지만, 와니의 집에 있는 전화도 받을 수 없고, 와니가 들어가지 말라는 방에는 들어가지도 못하기 때문에 그는 집에 산다기 보다는 방에 산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 준하는 집안 구석 구석에 있는, 그러나 잡을 수 없는 흔적들 때문에 맘 속으로 괴로워했을 것이다. 그 때, 소양이라는 제 3의 인물이 찾아오고, 준하는 소양을 통해 꼭꼭 닫혀 있던 영민의 방(와니 마음 속에 있는 영민의 방이기도 한)을 비로소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제대로 둘러볼 사이도 없이, 소양과 준하는 와니에게 들키고 와니는 매몰차게 그 방을 다시 걸어 잠그고, 다시는 들어가지 말라고 경고까지 한다. 그러나, 준하가 금지된 방(연인의 마음속에 있는 다른 남자의 방)을 궁금해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준하는 그 방에서 찾은 칼로 연필을 깍다가 손가락을 베고 만다. 이것은 연인의 마음 속에 간직되어 있는 과거의 사람 방을 들여다 보는 것은 자기 스스로 상처를 내는 것이라는 진실의 은유이다. 와니는 영민에게 전화가 오자, "방 치워 놓을까" 부터 물어본다. 그러나 영민은 그 방으로 돌아오지 않는단다. 당연한 일이다. 그 방은 이미 주인이 떠난 방이다.
자신의 방, 자신의 집에서만 살던 와니는 스스로 그 곳을 떠나 준하의 방을 찾아간다. 동거를 하면서도 서울에 있는 준하의 방을 가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녀는 그냥, 니 방이 보고 싶어서...라고 이야기 한다. 그렇게 자신의 방에만 있던 와니가, 그곳을 떠나서 준하의 방으로 찾아왔다는 것부터가 이미 이들 연인이 가진 갈등은 풀린 것이나 다름 없다. 통빡이 여기까지 미치자 준하와의 갈등이 너무 쉽게 풀려서 스토리가 밋밋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본 우원의 오해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들도 해본다. 준하가 얼마나 성숙한지를... (사실 너무 이해심 많고 멋지기만 해서 현실엔 있을까 하는 의구심까정 든다) 만일 본 우원 같은 성격을 가진 남자였다면, 와니 허락 안 받고 그 방 들어가서 막 헤집고 다니고, 오디오 꺼내다가 TV에 연결해 버리고, LP판 다 거실로 내오고, 그래도 와니가 막 화내면 깽판 쳤을 것이다. 아마 그러다가 종국에는 와니한테 쫒겨나겠지? 그리고 돌아서면서 질투에 몸을 떨 것이고... 그렇다. 본 우원,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했다. 나는 연애질 하면서 상대방 마음 속에 내방이 아닌, 딴 사람 방이 있으면 마구 열어 제끼려고 했고, 나는 그 방 문 왜 안 열어주는지 억울해 했다. 어쩌다 비집고 그 방에 들어가면, 그 방에 있는 물건들을 끄잡아 내려 짓밟아 버리고, 태워버리려고 했다. 바보같이 사랑이 성숙해 지면, 방이 아니라집이 내 것이 된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내 집안에 다른 사람의 방 정도는 아주 작게 있어도 상관 없고, 또 지내다 보면 그 방은 내 것은 아니더라도 차츰차츰 나에게 다가오기 마련이란 사실을 몰랐던 거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빌었다. 와니가 이제는 그 방 잠궈 두고, 준하가 못 들어오게 하지 않기를. 그 방을 아예 싹 치워버리지는 않더라도, 준하로 인해 방이 조금씩 변해가는 것은 허락하기를. 그리고, 지금도 쓸 수 있는 그 좋은 오디오랑, 그 많은 LP들은 좀 내다 놓고 듣기를 말이다. 생각이 예까지 미치자 와니는 아마 그 방을 치웠을 것이라 여겨졌다. 최소한, 있던 그대로 두고, 잠궈 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적성에 안 맞는 연애질무비 얘기 쓰느라 닭살 돋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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