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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균 추천0 비추천0






1999.7.6.화요일

딴지일보 정치부 김 도균


경상도와 전라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변에 전국 각지의 문제아들이 모여 있는 고등학교가 있었으니, 이 학교에서 바라보는 주변 경치가 아름답다 하여 정취고등학교라 불렀다.

근데 이노무 학교가 전국 각 지에서 그것도 문제아만을 모아 놓은 문제학교다 보니, 1950년 개교 이래 허구헌 날 터지는 크고 작은 사고에 하루도 선생들 똥꼬 편히 눕힐 날이 없던 형편이었다. 이런 사고 속에서도 정취고교의 사건으로 현재까지 인구에 회자되는 대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1979년 <선도부장 퇴진사건>이었다.


사건 당시 정취고교에는 3개반이 있었는데, 1반은 경상도 학생이 주축이 된 한나리반, 전라도 학생들의 2반 궁민반, 3반은 충청도 학생들의 자민반이라 불렀으며, 왜 일케 불렀는지 설명하는 것은 白手之事라 하겠다. 이 당시까지 정취고교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전교회장은 1반에서 쭈욱 해 먹곤 했는데, 이는 1반학생 수가 타 학급에 비해 월등 많기도 하거니와 1반의 전교회장 출마자는 으레 학도호군단 출신의 무시무시한 어깨출신이었기 따문이었다.

그러나 1978년 겨울의 전교회장 선거에서는 예상을 뒤엎고 2반출신 김데중
이 당선되었는데, 이는 2반과 3반이 연합하여 밀어 줬기 때문이기도 했고, 이전 학생회장인 1반 기명삼 군의 무대뽀 운영에 의해 교내 매점의 운영권이 외지인인 암애포 씨에게 팔린 것에 학생들이 크게 분노했기 때문이었다. 암튼 처음 2반 학생인 김데중 君이 전교회장에 임명되자 많은 학생들은 그에게 기대를 했고, 초기에는 그도 이에 열심히 호응하며 외지인 암애포씨에게 넘어간 매점 운영권 중 상당부분을 되찾아 오기도 했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사건이 터진 것은 1979년 어느 늦은 봄날. 당시 전교회장의 오른팔로 등교시간 정문에서 학생들의 두발검사와 뺏지검사를 하는 등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던 선도부장 김테정 군이 육성회장단 임원의 자제인 최순엉 군을 복장불량이라며 학생부로 끌고 가 졸라 줘패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이는 그 전 달 화장실에서 담배피다 붙잡아 마땅히 토끼뜀을 시켜야 했을 대전에서 전학온 이쫑기 학생을, 쭈쭈바 몇 개에 눈감아 주는 <선도부비리사건>이 터지자, 이에 평선도부원들이 선도부장 김테정군 퇴진하라고 서명운동을 함에따라 이를 무마하기 위해 일으킨 사건이었다.

읍내의 유지로 구성된 육성회장단이 전체학생을 위한 활동보단 오로지 지네 자식들만 챙기는 꼬라지를 보다 못해 육성회장단 개혁운동을 밀고 나가려 했던 전교회장의 이해와도 맞아 떨어지는 사건이었다.

선도부에서는 육성회장단의 개혁을 위해 최순엉 군에 대한 조사가 불가피함을 천명하며, 학생부에 넘겨 조사하던 중 최 순엉 군의 학급회비 밀반출 혐의를 포착하고 그를 정학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육성회장단의 반발도 만만치 않아 이는 육성회장단 쥑이기이며 이러한 수사는 육성회비 납부를 기피케 해 학교의 운영을 어렵게 하는 것이라며 반발하였다.

그러나, 결국 최순엉 군은 퇴학조치를 당하게 됐고, 이에 최순엉 군의 여자친구 이헝자 양은 선도부장 여자친구인 연정히 양에게 쫄바지를 선물했다는 이른 바 이헝자리스트를 공개하자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되게 되었다. 이에 연정히 양은 쫄바지를 입은 적도 없을 뿐더러, 받지도 않았다고 해명했으나, 읍내 장날 그녀가 쫄바지를 입고 미팅하러 나왔다는 사실이 여러 증인에 의해 밝혀지게 되었고, 이는 1반 학급신문 조썬신문에서 대서특필되면서 학생들의 여론도 악화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당시 읍내 외국인학교 <너시아고등학교>와 자매결연을 위해 잠시 자리를 비웠던 전교회장 김데중군은 학교로 돌아와 첫 전교조회 시간에 이 사태는 전교회장단을 음해하는 세력의 공작이며 이에 편승한 일부 학습신문의 특종경쟁이 빚어낸 일이라는 발언을 하였으니, 이는 설사병 걸린 넘 아락실 맥이는 꼴이었다.

이렇게 사태가 급속도로 악화되는 가운데 <선도부원 진영구 군의 취중발언>사건이 일어났으니, 아니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게 되었다. 이 사건은 평소 선도부장 김테정군의 오른팔로 불리던 진영구 군이 점심시간을 틈 타 과학실습실에 있던 알콜램프의 알콜을 빼내 콜라에 섞어 마신 후 학급신문 관계자 앞에서 "지난 주 일부 취업반 학생들의 <야간자율학습시간 월담사건>은 자신이 만들어낸 사건이라는 실언을 한 것이 발단이었다. 그는 이 사건이 야간자율학습시간에 일부러 감시를 소홀히 하여 일부 학생들의 담치기를 방조, 묵인했으며, 이는 학생들의 기강을 바로 잡기 위한 선도부의 계산된 전략이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발언이 알려지자 취업반 학생들은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수업거부에 돌입하였다. 거기다 평소 선도부의 지시하에 있으며, 선도부 활동에 인력을 착출당했던 주번들도 <주전자 나르기, 책상 줄 맞추기 등도 힘든데 선도부 활동에까지 주번을 동원할 순 엄따..!>면서 주번권의 독립을 주장하게 되었다. 이에 김데중군은 사건을 수습하고자 학생회장단 개편을 단행하고, 평소 활발히 연극반 활동을 하던 손 순양을 미화부장에 임명했는데,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빗자루도 한 번 안 잡던 뇬이 무신 미화부장이라며 비난을 가하였다. 그러다 손 순양은 학예회 연극 중 육성회장단으로부터 격려금이 받는 장면이 학급신문에 의해 보도되자 미화부장에서 결국 물러나게 되었다.

이처럼 학교면학 분위기가 극도로 악화되고, 평소 삥땅하던 학급회비가 틀통날까봐 애태우고 있던 학급신문들도 이때다 싶어 학생들을 선동하여, 반발이 끊이지 않자 전교회장 김데중군도 자신의 위치마저 위태롭다고 판단, 결국 선도부장 김테정군의 완장을 회수하게 되었던 것다.


기왕에 김테정군을 짜를 거면 빨리 짜르던가 아니면 무슨 일이 있어도 밀고 나가던가 하지 못하고 결국 어중간하게 항복하고만 김데중군의 실수도 뜻있는 학생들의 실망을 사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사건이 이른바 <79년 정취고교 김테정 선도부장 사건>이며, 이 학교에서 일어나는 각종 우끼고 자빠진 사건들을 영화화한 것이 바로 7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얄개 시리즈인 것이다. 김테정군 퇴임사건도 결국 영화화 되었으니 바로 <선도얄개>...

이 영화에서 김테정군은 틈만나면 질질 짜며,김데중군 바지가랭이 잡고 늘어지는 최루연기를 안약도 엄씨 훌륭히 해내 그의 평소 기품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씨바넘.


끝.



 


- 딴지일보 정치부 김 도균 ( bluesens@netgo.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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