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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통신원] 고기론의 서글픔
- 당신은 왜 고기론에 흥분하는가?


2009.7.3.금요일



 들어가며


일부 중국인들은 중국인들의 고기 소비량이 높은 데 비해 저소득국가일수록 고기 소비량이 낮다고 지적하며, 한국에선 비싸서 고기도 제대로 못 먹는다고 비꼬곤 한다. 개소문닷컴과 같은 댓글 번역 사이트에 가면 1인당 몇kg이라는 구체적인 수치까지 제시한 걸 볼 수 있다. 소위 고기론이다.


고기론이 유통된지 꽤 됐지만, 다른 한국 조롱 시리즈와 달리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쑨원(孫文)은 한국인 같은 루머는 아예 근거 자체가 조작된 낭설이니까 무시하면 그만이다. 말하는 쪽이 그냥 병신인 거다. 그렇지만 고기론은 좀 다르다. 수치를 대가며 고소득국가의 기준이 무엇이라는 주장을 펴는 마당이니 그게 아니라는 반론을 펴줄 상황이 생기는 거다. 더 나아가, 당신이 중국 여행에서 누군가를 만나 맥주 한잔할 때 이런 주제가 나올 수 있다. 그 상황에서 가장 지적인 근거가 필요한 주제는 한국의 단오제 세계문화유산 신청이다. 기회가 된다면 여기에 대해서도 설명을 하겠지만, 중국도 얼마전 단오절을 신청하면서 심층 보도가 이어졌고, 그래서 오해가 풀릴 여지가 제법 많은 상태다. 그에 비해 고기론은 그 시작도 알 수 없으면서 마치 근거 있는 주장인양 유통되고 있어, 필자의 최우선 해체 대상으로 지목된 것이다.


 고기론의 허구성


고기론이 확산되는 이유에는 주장의 근거로 삼는 그럴듯한 수치들이 한몫 하고 있다. 예컨대 중국과 미국과 한국의 1인당 고기소비량이 얼마라는 것들 말이다. 그 수치들을 여기 인용하지 않은 이유는, 대체 그 수치가 어디서 나왔는지도 불분명하거니와, 육류 소비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세상에 어느 기관에서 당신은 1년에 고기를 몇 kg이나 먹습니까?란 조사를 하느냔 말이다. 또 당신은 그걸 기억이나 할 수 있을까? 짜장면에 들어간 돼지비계 몇 점은 여기 포함이 될까 안될까? 공식적으로 육류 유통에 포함되지 않는 개고기는? 그러니 1인당 고기 소비량이란 수치가 신빙성을 갖기 어렵다.


그렇다면 산업적으로 따져봐서 1년에 도축되는 소, 돼지, 닭 등의 마릿수를 계산하는 방법은 가능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슈퍼마켓에 있는 햄과 소시지의 양까지 우리가 먹은 걸로 치게 되겠지만... 뭐 그건 이해할 수 있다 치자.


이 방법의 문제는 그 나라의 인구와 산업, 음식문화에 따라 그 의미가 왜곡될 수 있다는 점이다. 사실 여기서 말한 세 가지의 예는 상호 연관성을 갖고 있다. 그 나라의 인구가 많으려면 당연히 먹거리가 제공될만한 환경이 갖추어져야 한다. 러시아 땅이 아무리 넓어도 대개의 국토가 얼음과 황무지라면 인구가 더 늘래야 늘 수가 없다. 중국의 인구가 많은 것은 당연히, 역사적으로 중원(中原)이라 불렸던 비옥한 토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먹고 남는 게 있어야 비로소 축산업이 발달할 수 있는 법. 또 그걸 토대로 육류 요리법도 발달하고 활용법도 늘어난다. 황하 유역에서 문명이 시작된 게 우연이었을 리 없다. 중국의 고기 소비량이 많다는 게 사실이라면, 중국이 육류를 소비하기에 충분한 자연환경을 갖추었다는 증거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운송 수단의 발달로 어느 지역에서든 먹거리를 수입할 수 있고, 자기 처지에 맞는 가격의 제품을 선택하는 일도 수월하다. 따라서 어느 나라에서, 특히나 한국 같은 수준의 산업국에서 특정 식재료의 소비량이 적다면, 그건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일 뿐 국민의 가난 탓일 수는 없다. 한국의 고기 소비량이 적은지 많은지 모르지만, 만약 소비량이 적고 가격은 비싸다고 하면 그건 그래도 상관없기 때문이다. 만약 비싼 가격이 정말 문제가 된다고 하면 수입관세를 낮추든지 장기적으로 자국 산업을 육성하든지 해서 가격을 안정시켜야만 한다. 그러니까 우리 스스로가 비싸다고 느낀다 해도 그건 적정 범위 내에서 비싼 가격이다. 그러니 그 적정 범위의 수준이 다른 외국의 입장에서 국내의 쇠고기가 비싸거나 싸다고 지적하는 건 객관적인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가령 사우디아라비아에선 물값이 휘발유값보다 비싸니 그 나라 국민들은 마실 물도 못 사서 허덕인다고 하면 그게 이치에 맞는 말이겠는가.


더 설명할 필요 없이, 어류를 즐겨먹는 일본 사람들의 육류 소비가 적다고 하여, 혹은 축산업이 발달한 아르헨티나의 육류 소비가 많다고 하여 그걸로 고소득국가 여부를 가릴 순 없는 노릇이며, 국민 행복도 같은 개념으로 가면 더욱 관련이 없어진다. 한마디로, 육류소비량으로 국가 발전이나 국민의 행복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는 소리는 전혀 합리적이지 않다. 당연한 소리를 새삼 풀이했을 뿐이다.


 고기론은 왜 생겼을까


그런데도 유독 고기론이 한국을 겨냥하여 유포되는 데엔, 그 근거 자체를 우리가 퍼뜨린 까닭도 있다. 한우에 대한 집착이 유난히 강한 한국 사람들은, 중국 현지에서 푸짐하고도 저렴한 중국요리들을 접하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필자도 그 중 하나였다. "아주 맛있었습니다. 한국에서도 접하기 힘든 푸짐한 저녁이었습니다." 그러면 중국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물어보았다. "한국에선 이런 걸 먹기 힘든가요?" 필자는 종종 이런 대답을 했다. "값이 비싸요. 한국에선 고기가, 특히 쇠고기가 비싸거든요." 한우가 이것보단 맛있다는 얘기도 하고 싶었지만 예의상 그런 얘기는 생략하고 말이다. (의외로 중국인 면전에서 그런 말 하는 한국 사람, 상당히 많다.)



중국 여행이 잦은 분들은 아마 많이들 겪었을 상황이리라. 하지만 이렇게 오고 간 이야기는 양국의 문화 차이로 인해 엉뚱한 결과를 낳았다. 우선 중국인들은 한국의 식생활과 소득수준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었으므로 자기 위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중국에서는 식사 값도 싸지만, 식사 문화가 여러 요리를 시켜 여러 명이 먹는 방식이니 1인당 식비는 더 싸다. 그 정도 식사도 종종 못하는 사람들이라면 중국에서는 가난한 건 당연하고, 식사할 무리도 없는 사람이니 변변한 직업도 없는 부류일 가능성이 많다. 실제론 그런 사람들도 좀 허름한 식당에서 나름 잘 먹고 산다. 그러니 한국인이 저렇게 고기 먹기 힘들다고 한다면 생활 수준이 낮을 거라고 짐작하게 된다. 하지만 한국 드라마를 봐도 그렇고, 중국에 출장이나 여행을 온 걸 봐서는 모두들 가난하다고는 보기 힘들다. 그렇다면 한국 내의 사정도 중국처럼, 외국 한번 나가기 어려운 사람들이 득시글한 그런 상황일 거라 유추할 수 있겠고, 따라서 한국 서민들의 일상생활이 고기도 맘대로 못 먹을 정도로 곤궁하리란 인상을 쉬 갖게 되는 것이다.


한편 한국인들은 중국의 육류 소비 자체야 많을지 모른다고 인정하면서도, 우리처럼 고기 자체를 즐기는 방식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곤 한다. 우리의 육류 섭취 방식은 한우든 삼겹살이든, 일단 먹으면 고기로 배채울 때까지 먹는 방식이라, 평소에는 밥에 물 말아 김치나 먹더라도 고기 굽는 날만큼은 최대한의 만족도를 채운다. 하지만 중국인들은 고기의 질이나 양 보다는 요리법을 더 따져 대접한다. 중국인이 당신에게 신경써서 중국요리를 대접한다면, 필경 냉채부터 시작해 탕과 면까지 각종 향신료와 맛을 메인요리와 어울리도록 배치해놓을 것이다. 고기 요리를 대접하는 상황을 가정했을 때, 우리는 흔히 손님이 고기 먹다가 배터지도록 배려하기 마련이나, 중국인들은 그 모든 요리를 먹고 배터지도록 안배한다. 전채만 먹다 배불러 버린 상황이 중국인 탓은 아니다.


따라서 일부 한국인들로서는 중국인들의 고기 요리 대접이 좀 성에 차지 않을 수 있다. 특히 입이 짧아서 향신료와 느끼함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오직 소금만 쳐서 구워먹는 한국식 고기 요리가 눈에 선하리라(같은 이유로, 중국인들에게 제아무리 비싼 한우 구이를 대접해도, 그들 딴에는 한국 요리법이 아주 소박하다는 인상을 갖게 된다. 그러므로 중국 손님 접대엔 푸짐한 한정식을 추천하는 바이다). 그래서 고기소비량이 많다는 주장이 비합리적이라는 판단을 떠나, 그런 식으로 고기 먹느니 차라리 안 먹고 말겠다는 반응이 많은 것이다.


하지만 고기론을 그냥 음식문화를 둘러싼 해프닝과 오해라고만 치부한다면, 그 안에 녹아있는 심리적인 요인을 간과하게 된다.


 고기론이 보여주는 서글픈 현실과 미래


우선 우리부터 생각해보자. 우리가 중국 대륙에 여행할 수 있게 된 것은, 그 전에도 방법이 없었던 건 아니나 1993년 한중 수교 이후로 볼 수 있다. 그 즈음은 중국뿐만 아니라 외국 여행 전반이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때였다. 외국에서 보고 들은 모든 것이 민간 차원에서 새롭게 수입되고 해석되던 시기였다는 거다.


우리나라에는 예로부터 육류가 농산물보다 귀하게 여겨져왔다. 이유는 간단하다. 백성들이 충분히 먹고 살 정도로 농산물이 풍부하지 못했던 탓이다. 그나마 경작을 위해 소를 키웠으니 쇠고기 맛이라도 알았지, 순수 축산물의 성격이 강한 돼지고기를 접할 기회는 적었던 탓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꽤 오랫동안 냄새난다며 기피해오지 않았던가. 그런 이유로, 산업 발전으로 더 이상 먹을거리 걱정을 하게 되지 않은 후에도 고기는 귀하다는 인식은 곧바로 바뀌지 않았다.


그런데 외국 나가보니 사정이 달랐던 거다. 가장 크나큰 충격은 외국에선 쇠고기나 돼지고기나 값이 비슷하다는 사실이었다. 그 노린내 나는 돼지고기가 쇠고기랑 가치가 같다니, 말이 되는가? 한우 지상주의에 빠져있던 사람들은 이를 애써 설명하기 위해 세계 최고의 한우 품질을 강조하기에 이른다. 한우의 품질이 좋고 사육비용이 비싸다는 것까진 이해하겠지만, 사실 어느 나라나 자국의 소가 제일 낫다고 하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그 나라에선 쇠고기와 돼지고기 값이 비슷하다? 이를 계기로 우리는 우리나라 고기 값이 쓸데없이 비싸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됐다. 대개 그 혐의는 중간유통업자에게 돌아갔고 말이다.


그러므로 고기론에서 한국에선 비싸서 고기를 못 먹는다고 했을 때 우리는 맘 속으로 그걸 완전히 부인하지 못했던 것이다. 거품을 제거한다면 누구나 값싸게 고기를 먹을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현실이 바로 그 말 속에 담겨 있었다. 합리적으로 판단한다면 이 현실을 만든 원흉은 고기 값의 거품을 만든 사람들이 되겠다. 하지만, 그래서야 당신이 고기론에 움찔할 이유가 없다. 실제론 고기가 비싸든 말든 자신은 그걸 살 충분한 돈이 없다는, 경제력에 대한 자괴감이 고기론이 찌른 핵심이다. 당신이 고기를 사먹을 정도가 되는가 아닌가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 만연한 경제적 좌절감과 부익부 빈익빈의 양상에 있어 당신이 약자임을 절절하게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고기론에 흥분했다는 말이다.


이 경제적 좌절감은 또한 중국 인터넷 유저들이 고기론에 매달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앞서 중국인들을 만난 상황에서 그들이 한국 상황을 오해할 수 있다고 얘기했지만, 지금처럼 많은 중국인들이 우리나라를 방문하고 유학도 오는 상황에선 고기론의 허망함은 곧 들통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고기론이 지금껏 유통되는 이유는 한국이 그들에게 잘 알려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 드라마, 삼성 LG등의 글로벌 브랜드, 올림픽, 월드컵, 바둑 등을 통해 중국인들은 그 조그만 한국이 가진 장점을 갈수록 더 많이 알게 되었다. 그런데 중국은 뭘 내세울 수 있는가. 공식적으로야 얘기하기 힘들겠지만, 한국 드라마에 비해 중국 드라마는 남루하고, 한국 기업에 비해 중국 기업은 싸구려이며, 한국인에 비해 중국인은 못 산다는 인식을 다들 하고 있다(술 한잔 하면서 허심탄회하게 얘기해보라. 한국인이든 중국인이든 자기 나라 까대기에 바쁘다). 어쨌든 중국인으로선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당연히 이는 중국 사회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긍정적인 오기로 승화되어야 하고 그렇게 땀흘리는 중국인도 많다.


하지만 그 일부는 뒤틀린 심정에 의해 왜곡되어, 허망한 근거에 의존해서라도 자존심을 내세우려는 소위 대국주의로 흐른다. 중국은 아직 멀었다고 하지만 한국도 별볼일 없다고 얘기해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다. 중국이 한번 군사를 일으키면 한국쯤이야 아무 것도 아니고, 중국인들이 오줌 한 번씩만 싸도 한반도는 물에 잠기며, 중국 문화의 혜택이 아니었다면 한국은 아직도 국가 성립은커녕 돌도끼나 들고 다닐 거라는 얘기들이 그렇다. 그 연장선에 바로 고기도 맘껏 못 먹는 한국인들이 있다. 고기론은 결국 한국을 비롯한 국제 사회에 내세울 게 없다는 중국인들의 응어리가 잘못 표출된 결과물인 거다.



지금까지의 이야기에 동의한다면, 예견할 수 있는 서글픈 사실들이 있다.


한국이 계속해서 경제를 발전시키고 그에 비해 중국 전체의 발전은 완만하여 비교 대상이 된다면, 즉 한국이 계속 힘있는 나라로서 유지된다면 중국인의 경제적 자괴감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고기론 류의 루머도 없어지지 않는다.


또한 한국의 양극화 현상이 지속되고 상대적 박탈감이 증대된다면, 즉 소득수준에 무관하게 우리가 경제적 약자라는 압박에 시달리게 된다면 우리의 경제적 자괴감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고기론 류의 루머도 계속 우리를 자극한다.


그리고 그런 루머는 이야기의 합리성이 아니라 생산하는 자와 반응하는 자의 처지에 의존하여 효력을 얻기 때문에, 제아무리 그것이 잘못된 낭설임을 지적하더라도 생명력을 잃지 않을 것이다.


서글프지 않은가. 오해는 풀리라고 있는 것일텐데 말이다.



아홉친구(ninthpal@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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