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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대한민국vs가나 리뷰
- 한국, 아주 잘했다.

 

 

 

2009.10.12.월요일
필독

 

 

 

 

 

 

 

 

U-20(20세 이하 청소년 대표) 월드컵이 갑자기 사람들의 시야에 들어왔다. 한국 축구팬들에게 청소년 대표는 오랫동안 관심 밖의 대상이었다. 갑작스레 팀을 인솔하게 된 신임 청대 감독 홍명보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았다. 게다가 이번 청소년 대표는 스타플레이어도 한 명 없는 사상 최약체라고 평가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반드시 잡아야했던 카메룬에 0:2로 대파당하고 말았다. 강호 독일과의 조별예선 2차전에서도 선제골을 내주었다. 그런데 후반전, 홍명보호는 중원을 잠식하며 독일을 압박하더니 1:1로 비기는 근성을 보여주었다. 운이 따라주었다면 승부를 뒤집을 수도 있는 경기였다. 그래도 가장 걱정되는 경기는 미국이었다. 그런데 우리 청소년 대표는 미국을 3:0으로 관광 보내더니, 16강전에서 파라과이 역시 3:0으로 날려버렸다.

 

그리고 8강전 상대는 가나. 시합 결과는 우리 모두 알고 있지만, 졌지만 잘했다고 하기엔 지나치기 아까운 이야깃거리가 많다. 가나는 어떤 축구를 하는 나라인가?

 

 

 

 

 

 

 

 

8강 상대가 가나로 정해지고 나서 필자는 이거 쉽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세계 축구는 20년간 계속된 아프리카발(發) 검은 돌풍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카메룬이 검은 돌풍의 선두에 있었고, 가나와 나이지리아, 세네갈 그 뒤를 따르고 있다. 하지만 돌풍의 특징은 감을 잡기가 힘들다는 것. 2006년에는 미지의 토고가 월드컵 본선에 진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토고는 조별예선 1차전 상대였다. 안정환과 이천수가 한 방씩 먹여주어 2:1로 역전승했지만, 하마터면 승점 3점을 놓칠 수도 있는 경기였다(당시 언론에서는 아데바요르만 잡으면 된다고 떠들었다. 실제 경기에서도 우리 수비수들은 아데바요르 마크에 집중했다. 그 덕에 토고를 월드컵 본선에 올리기 위해 가장 많은 땀을 흘렸던 ‘영원한 주장’ 쿠바자가 한 골을 넣었다.).

 

 

 

한국이 유독 아프리카 팀에 약하다는 의견이 있다. 얼추 맞는 이야기지만 한국만의 징크스는 아니다. 아시아 팀이 모두 아프리카에 약하다. 일례로 가나는 월드컵 본선에서 아시아 팀에게 한 번도 진 적이 없다. 사실 유럽과 남미도 아프리카 스타일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했다. 가나는 2006 월드컵에서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체코를 2:0으로 침몰시켰다.

 

그러니 유럽과 남미를 바라보며 두 대륙의 수준을 따라가기 위해 뛰어온 아시아 팀의 입장에서는, 어느 순간 불어 닥치기 시작한 검은 돌풍에 맞서기란 정말 어려울 수밖에 없다. 왜 아프리카 축구는 파악하기 어려운 것일까.

 

 

 

인류학자들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다른 인종의 경우 누가 누군지 파악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무슨 말인고 하니 백인 여성이 흑인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했는데, 진범은 흑인 A인데 흑인 B를 가해자로 지목하는 현상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미국에는 이런 식으로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는 흑인이 적지 않으며, 나중에 무죄가 밝혀져 정부로부터 보상금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우리는 잠재적으로 아프리카 흑인들을 하나의 인종으로 파악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세계에 사하라 이남의 검은 아프리카만큼 다양한 문화와 인종, 언어가 혼재하는 지역은 없다(사하라 이남의 흑인들은 주변 종족의 경우 얼굴만 봐도 출신을 대략 짐작할 수 있다고 한다.). 아프리카 바깥의 사람들은 잘 분간하지 못하지만, 우리가 ‘흑인’이라고 뭉뚱그려 부르는 인종에는 엄청나게 많은 아종이 있다.

 


유럽과 남미의 플레이가 전혀 다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그 차이는 서로 다른 신체적 특성에서부터 시작된다. 히틀러가 그토록 자랑스러워했던 게르만족의 튼실한 육체가 없었다면, 독일축구가 몸싸움을 통한 압박전술을 선호하진 않았을 것이다. 반면 국가대표팀 중 평균체격이 가장 작은 멕시코의 경우 정확한 패스와 선수들 개인의 스피드, 속공(그리고 유럽 선수들에게 기죽지 않는 특유의 성깔)이 어우러진 특유의 팀 컬러를 가지고 있다.

 

 

 

흑인들은 종족에 따라 신체적 층위가 매우 다양하다. 세계에서 가장 키가 크다는 마사이족과 조그만 부시맨을 생각해보라. 마사이족과 부시맨의 신체적 차이는 한국인과 스웨덴인의 그것보다 훨씬 크다. 따라서 흑인들의 플레이는 이럴 것이다. 라는 통념은 별다른 정보를 주지 못한다. 잘 뛰고, 탄력이 좋고 등등. 그게 전부다. 실제로는 아프리카 흑인들의 신체적 특성이 너무 다양하기 때문에, 어떤 플레이가 나올지 웬만해선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이 나라가 다르고, 저 나라가 다르다. 게다가 한 국가의 대표팀도 여러 부족 출신으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아프리카 팀을 상대하기 어려운 이유가 그 실체를 파악하기가 힘들어서만은 아니다. 아프리카 선수들의 기량은 결코 낮지 않다. 특히 가나는 객관적 전력으로도 한국보다 훨씬 우위에 있었다. 그러니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액면가로도 불리했다.

 

 

 

 

 

 

 

 

아프리카는 축구의 신천지다. 현재 아프리카 대륙은 빠른 속도로 축구에 중독되고 있다. 사실 축구는 11명의 정예선수와 규정에 맞는 시설이 있어야만 가능한 게 아니다. 공 하나만 있으면 가능한 스포츠이다 보니 아래 사진과 같은 진풍경도 연출된다.

 

 

 


나무에 공을 튕겨 상대를 기만하는 플레이도 가능할 듯

 

 

 

아프리카는 몹 풋볼(축구문화사 잉글랜드 1편 참조)의 형태가 가장 많이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축구는 부족 간의 명예전쟁의 훌륭한 대체물이다. 명예전쟁이란 몇 명이 죽거나 다치는 것으로 끝나는 전사들의 거친 싸움으로, 전쟁이라고 하기엔 너무 소박하고 패싸움이라고 하기엔 너무 본격적인 폭력 활동을 뜻한다. 응원석에서는 무당이 굿을 하며 전사들에게 기를 보내주는 장면도 연출된다.

 


그러다보니 응원문화는 매우 폭력적이며, 경기 자체도 이에 못지않게 거칠다. 가나에서도 이 부족 간 전쟁’의 좋은 예가 있었다. 2001년, 가나의 1부 리그인 가나 프리미어 리그(원터치OneTouch리그라는 경쾌한 별칭이 있다.)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아크라 하츠(Accra Heart of Oak SC)와 아산테 코토코(Asante Kotoko FC)와의 경기에서 양 측의 팬들이 충돌했다. 경찰이 가스총을 쏘며 혼란을 가중시켰고 급기야 125명이 사망하고 수백 명이 부상당하고 말았다.

 

 

 

왜 이렇게 싸웠을까. 하츠의 연고지는 가나의 수도 아크라다. 아크라는 아크라 평원에 자리 잡은 도시다. 따라서 아크라는 가나의 수도를 뜻하기도 하고 평원지대를 뜻하기도 하는데, 이 아크라 땅 인구의 대부분이 가(Ga)족이다. 한편 아산테 코토코의 연고지는 쿠마시(Kumasi)다. 쿠마시는 옛 아샨티왕조가 있던 땅인데, 아산테라는 팀명은 이 아샨티에서 나왔다. 쉽게 말하면 경주를 서라벌이나 계림으로 부르는 격이다. 아샨티는 아칸(Akan)족들이 세운 왕조이다. 아칸 족 사람들은 아직도 쿠마시 땅에서 살고 있다.

 

 

 

아샨티왕국은 지금의 가나 국토 일대에서 가장 먼저 전제군주 체제와 관료주의를 확립했다. 왕국에는 노예도 있고 피착취자도 있는 법. 그 희생자의 상당수가 아칸 족보다 원시적인 상태에 머물러 있던 가 족이었다. 유럽제국주의의 침략으로 아샨티왕국이 와해된 후, 수백 년의 혼란을 거쳐 지금은 가 족이 가나 사회의 주류가 되었다. 수도가 아크라인 걸 보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그러니 이 두 메인 부족은 서로가 고까울 수밖에 없다. 2001년의 난동사건에는 이런 연고가 있는 것이다. 하츠와 코토코의 시합은 정규리그전이라기보다는 종족충돌에 가깝다.

 

 

 

참고로 이 얘기는 재밌어서 안할 수가 없는데, 아샨티왕조는 아직 남아 있다. 물론 현재 왕좌를 지키고 있는 오세이 투투 2세는 아칸 족만의 군주다. 대통령제 국가 안에 정부와는 상관없는 왕조가 버젓이 있는 것이다. 일본의 천황처럼 의례적인 역할만 남아있는 군주지만, 아샨티왕조가 아칸 족의 정신적 기둥이고 가 족이 아칸 족을 완전히 제압할 수 없는 이상 그들의 왕조를 건드릴 순 없었던 게다. 그래서 아샨티 왕권의 상징인 황금 의자(시카 드와라고 한다. 아샨티 왕들의 영혼이 앉아있다는 전설적인 의자다.)는 박물관이 아니라 오세이 투투 2세의 엉덩이 밑에 있다.

 

 

 


이것이 시카 드와. 엉덩이 밑에 있다는 건 농담조의 표현이고,
실제로는 중요한 의례에만 사용한다.

 

 

 

 

 

 


자 그럼 여러분이 가나의 감독이라고 치자. 가 족이건 아칸 족이건 상관없이 실력 순대로 스타팅 멤버를 정하겠는가? 아니면 팀워크를 위해 한 쪽 종족의 비중을 늘리겠는가? 이번 U-20 월드컵에서 셀라스 테테 감독은 후자를 택했다. 웹에서 도무지 정보를 찾을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 필자가 지금까지 확인한 바로 테테가 선택한 스타팅 멤버는 거의 전부가 아크라 평원 출신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모두 가 족이란 뜻이다.

 

 

 

우리와의 8강전에서 세 골을 합작한 공격 콤비 아디이아와 오세이, 둘 다 가 족이다. 주장 아예우는 프랑스 태생이지만 혈통은 가 족이다. 아예우의 아버지는 아프리카의 전설적인 선수 아베디 펠레의 아들인데(펠레는 그의 본명이 아니다. 이 이름은 ‘아프리카의 펠레’라는 그의 별명에서 나왔다.), 아베디는 아크라 출신의 가 족이다. 역시 우리 팀에겐 요주의 선수였던 오파레도 가 족이다. 반면 프랑스 1부 리그에서 활약 중인 아두는 스타팅 라인에서 제외되었다. 유럽 A급 리거를 뺀 것이다. 아두는 쿠마시 출신의 아칸 족이다.

 

 

 

참, 셀라스 테테 감독은 어느 종족 출신일까? 이쯤 되면 누구나 예상했겠지만 가 족이다. 테테는 우리나라의 김씨나 이씨처럼 가 족의 흔한 성이다. 경기를 본 분들은 느끼겠지만 가나의 신체조건과 플레이스타일은 매우 균일했다. 체격도 비슷해서, 신장이 대체로 우리 선수들보다 작았다. 지금의 가나 U-20팀은 가 족 단일팀에 가깝다.

 

 

 

종족단일팀. 아프리카 대표팀에서는 매우 특별한 경우다. 이번 대회에서 가나는 주력 플레이어 몇을 잃었지만 대신 조직력을 얻었다. 경기를 앞두고 우리 언론은 가나를 개인기는 뛰어나지만 조직력은 허술하다고 묘사했다. 이는 아프리카 팀에 대한 일반적인 관념을 가나 팀에도 그대로 옮긴 것으로, 당연히 틀린 말이다. 거기다 한 술 더 떠 우리의 뛰어난 조직력으로 가나의 허술한 조직력을 허물어뜨릴 것을 주문했다.

 

 

 

경기를 보니 홍명보는 이런 뜬소리를 한 귀로 흘린 게 분명하지만, 여하튼 가나는 개인기도 뛰어나고 조직력도 뛰어난 팀이다. 물론 우리의 조직력이 좀 앞서긴 했지만, 무너뜨릴만한 차이는 아니었던 것이다.

 

 

 

 

 

 


아프리카 축구는 국가별로 큰 격차가 있다. 우리는 아프리카 축구선수들이 신체조건과 재능이 뛰어나지만 다듬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끝내주는 한 방이 있지만 뭔가 어설프고, 개인기는 있지만 조직력은 없다고 말이다. 가나는 해당사항이 아니다. 아프리카 축구는 선진기술을 빠르게 습득하고 있고, 가나는 아프리카 축구발전의 정점에 있다. 심지어 가나의 원터치리그의 역사는 20세기 초부터 시작된다. 한국보다도 축구역사가 길다.

 

 

 

위에 언급된 아산테 코토코는 1935년 설립된 팀으로, <20세기 아프리카 최고의 클럽>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즉 원터치리그는 아프리카의 모든 리그 중 최상위권이다. 덧붙여 하츠와 코토코의 경기는 아프리카판 엘 클라시코 더비라 해도 무방하다(엘 클라시코 더비란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FC의 경기를 말한다. 엘 클라시코 더비 역시 주류인 카스티야인과 카탈루냐인의 종족대결이다. 축구문화사 스페인 편에서 자세히 설명하도록 하겠다.). 지금까지 원터치리그에서 코토코는 20회, 하츠는 21회 우승했다.

 

 

 


아산테 코토코 FC의 엠블렘.
코토코는 호저(고슴도치의 사촌 격)라는 뜻으로, 바로 엠블렘에 그려진 동물이다. 호저는 본래 아샨티왕국의 상징으로, 수많은 가시로 적들을 물리친다는 뜻이 있었다. 마스코트로 코토코(호저)를 쓰기 위해 아샨티 왕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당시의 왕 프렘페 2세는 이를 허락해주었을 뿐 아니라 팀의 첫 번째 후원자가 되어주었다. 아샨티 왕에게 코토코의 선수들은 그의 마지막 남은 친위대일지도 모른다.

 

 

 

국내리그가 받쳐줄 뿐만 아니라 유럽의 지원도 쏠쏠하다. 일례로 에이스 아디이아는 페예노르트 아카데미 출신이다. 페예노르트 아카데미는 네덜란드의 3대 명문구단인 페예노르트가 가나 현지에서 운영하는 유소년 육성 클럽이다. 가나의 대표선수들은 아주 잘 다듬어진 원석이다. 한 마디로 겁나 잘한다. 한국은 2006년 월드컵을 전후, 가나와 치러진 두 차례의 평가전에서 모두 1:3으로 대파 당했다. 냉정하게 말해서, 상대도 안 되는 경기였다.

 

 

 

 

 

 


그런데 가나는 A-매치보다 U-20 매치에서 특별히 강하다. 왜 그럴까? 이는 가나만이 아니라 아프리카의 일반적 특징이다. 피파 매거진이 그 이유를 아프리카 축구 최고의 권위자인 오토 피스터 감독에게 물은 적이 있다.

 

 

 


독일인인 오토 피스터는 아프리카 축구발전에 가장 많은 기여를 한 유럽인이다.
가는 르완다, 부르키나파소, 세네갈, 코드디부아르, 자이르, 가나, 카메룬 대표팀의 감독을 역임했고, 20년이 넘도록 검은 돌풍을 몰고 세계축구계를 침공했다. 그는 2006년 월드컵에서는 우리와 맞붙었던 토고를 지휘하기도 했다.

 

 

 

피스터는 말한다. "축구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일 뿐만 아니라, 절대적인 종교이기도 합니다. ... 아프리카에서 어린 소년들은 24시간 축구 생각만 하고, 적어도 해가 지는 저녁 8시까지 축구를 합니다. 진흙 밭이든 들판이든, 먼지 날리는 길거리든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특별한 훈련 없이도 자연적으로 기술이 생깁니다. 공을 다루는 특별한 능력과 노하우가 생기는 거지요. 소년들의 동작은 빠르고 기만적이며, 온 몸의 근육을 동원해 상대를 속여 넘깁니다."

 

 

 

브라질의 경우와 비슷하다. 축구 생각만 하고 축구만 하다 보니 공을 몸에 붙이고 노는 법을 익힌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왜 아프리카의 U-20 팀 중에서 유독 가나가 그토록 강한 걸까? 다시 피스터의 설명이다.

 

 

 

"아프리카에서, 젊은 소년들에게 가난을 벗어나고 사회적 지위를 얻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요. 바로 축구죠. 스타가 돼서 유럽에서 뛰는 게 젊은 친구들의 꿈입니다. 이 꿈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준비가 되어 있죠. ... 예를 들어 볼까요. 제가 가나에서 감독을 할 때였습니다. 선수들에게 새벽 3시까지 훈련준비를 마쳐놓으라고 했지요. 그런데 선수들은 새벽 2시 반에 모든 준비를 바치고 조용히 집합해 있었습니다. 축구를 배우려고 안달이 나 있는 거지요."

 

 

 


축구를 가르쳐달란 말이다.
백인 코치와 함께 포즈를 취한 가나 소년들

 

 

 

한마디로 독종들이란 얘기다. 아프리카 선수들은 자기도 잘 파악하지 못하는 재능에 의존해 뛰어다니는 순진한 짐승들이 아니다. 한국 선수들보다 더 지독하게 굴러온 인생들이다. 그러면 가나가 특별히 강한 이유는 대체 뭘까. 유소년 육성 시스템이 훌륭하기 때문이다. 많은 가나 어린이들이 G14의 유소년육성클럽에 소속되어 있다. G14란 맨유, 레알 마드리드, 아약스 등 유럽에서 가장 인정받는 14개의 명문 팀을 뜻한다. 가나의 엘리트들은 야생의 초원이 아니라 여기서 경쟁한다.

 

 

 

경쟁의 1차 목표는 U-20의 멤버가 되는 것이다. U-20의 멤버가 되어 국제대회에서 활약하면서부터 유럽 스카우터들의 시야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현 가나 U-20 팀은 태반이 유럽 유소년육성 프로그램의 수혜를 받았고, 이미 상당수가 유럽에서 활약하고 있다. 아디이아는 노르웨이 1부 리그(노르웨이 프리미어리그)에서, 오세이는 네덜란드 1부 리그(에레디비지에)에서 뛰며 유로화를 벌고 있다. 그 치열한 정글에서 살아남은 종자들인 거다.

 

 

 

반면 한국은 전원이 무명에 가까웠고, 상당수가 대학에 소속된 아마추어였다. 이런 우리 청대가 가나와 붙은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하지 않은가. 왜 가나는, 그리고 아프리카 국가들은 U-20이 그토록 강한 걸까? 20세 이하 청소년은 몇 년 만 지나면 성인이 되고 선수로서의 전성기를 맞는다. 그런데 10년도 넘게 U-20의 성적이 대표팀의 성적을 훌쩍 뛰어넘는 현상이 지속될 수 있을까? 이 뛰어난 소년들은 왜 더 뛰어난 아저씨가 되지 않을까?

 

 

 

아프리카는 유독 U-20이 강하다. 누구나 알면서 말은 못하는 이유, 심증은 있는데 물증은 없는 미해결 사건이 있다. 이름 하여 아프리칸 컨피덴셜(African Confidential 아프리카의 공공연한 비밀). 바로 나이 속이기다.  

 

 

 

나이 속이기가 가능한 이유는 아프리카 대부분의 지역에서 주민등록체계가 허술하기 때문이다. 전산화는커녕 서류화라도 되어 있으면 다행이다. 따라서 의심이 가도 증거가 없다. 선수를 배출한 부족의 추장이나 마을 촌장이 나이를 몇 년씩 깎아버리면 그만이다. 우리 마을 청년이 국위선양도 하고 돈도 좀 벌겠다는데, 그거 거절할 노인네들 없다.

 

U-20에서는 두어 살 차이로도 현격한 기량차가 생긴다. 전성기의 나이에 조금이라도 근접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그런데 아프리카에 선수들은 두세 살도 아니고 많게는 일곱 살씩 나이를 속이기도 한다. 최전성기의 신체로 꼬마들을 상대하겠다는 심산이다. 가장 먼저 피파의 의심을 산 나라는 카메룬이었다.

 

 

 

비겁해 보이지만, 아프리카 선수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프리카 내 U-20 대회의 열기는 대단하다. 정직하게 라인업을 짰다가 지면 우리만 손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U-20대회는 선수들 개인에게도 중요하다. 여기서 주목을 받아야 유럽행이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키울만한 재목으로 찍히면 인생역전이 가능해지니 그깟 나이쯤 속여 버리고 마는 거다. 늙기 전에 유럽에서 한두 시즌만 뛰어도 부자가 된다. 그러니 개인과 단체, 나라가 똘똘 뭉쳐서 아프리칸 컨피덴셜을 짜고 치는 것이다.

 

 

 

피파는 아프리카 선수들의 나이를 캐는 일을 거의 거의 포기하고 있다. 종족도 가늠하기 힘든데 나이는 더더욱 오리무중이다. <아프리카+흑인>이라는 조합도 폭탄이다. 지역과 인종을 무시한다는 혐의를 쓰면 차별주의자라는 코너에 몰리기 십상이다.

 

 

 

다시 가나를 예로 들면, 가나 U-20 선수들이 나이를 속였다는 증거는 물론 없다. 따라서 필자도 감히 그렇다고 주장은 하지 못한다. 하지만 하나님이 증인이라면 내기 걸 수 있다. 가나 선수들의 상당수가 아저씨라는 데 이 글의 고료를 건다.

 

 

 

 

 

 

 

 

이런저런 이유로 현재 가나의 U-20 팀은 아프리카 최강이며, 세계최강에 근접해 있다. 아프리카 내 공식 랭킹은 2위지만, 2009년 아프리카 청소년 챔피언십(African Youth Championship)에서 우승했다. 결승전 상대는 카메룬이었다. 가나는 조별예선 1차전에서 우리를 2:0으로 대파했던 카메룬을 역시 2:0으로 깼다. 즉 무명과 아마추어들로 구성된 우리 청소년 대표는

 


- 쟁쟁한 라인업을 자랑했던 성인대표팀을 두 번이나 3:1로 이긴 가나를
- 팀 조율도 완전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 성인대표팀 보다 훨씬 무서운 U-20을 상대로
- 그것도 얼마 전 아프리카 우승을 일구며 기량과 팀워크를 최상으로 끌어올린 멤버들을 상대로 싸운 것이다.

 

 

 

액면가로는, 대량실점에 이은 대패가 예상되는 경기였다.

 

 

 

 

 

 

 

 

하지만 가나의 테테 감독은 한국과의 경기를 앞두고 "한국의 상승세를 경계해야 한다.", "한국의 매서운 공격력이 무섭다."며 밑밥을 깔아놓는다. 축구에서는 한 대회에서 경기를 치를수록 강해지는 팀이 가장 무섭기 때문이다. 카메룬전에서 홍명보호는 독일전에서 팀 컬러를 가다듬더니 강호 미국과 파라과이를 차례로 부숴버렸다.

 

 

 

키 플레이어는 김민우였다. 김민우가 홍명보호 황태자로 불리는 이유는 단순히 이번 대회에서 득점을 양산해냈기 때문이 아니다. 홍명보는 리베로 출신이며, 아시아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고, 가장 성공적인 공격형 수비수였다. 수비수인 김민우가 처진 스트라이커 역할을 했다는 것은, 홍명보의 현역시절 플레이를 일부 연상케 한다. 경기를 읽는 능력이 뛰어난 홍명보는 김민우를 키 플레이어를 활용, 자기 자신을 모방케 함으로써 경기에 개입했던 것이다.

 

 

 

이 전략은 대성공했다. 중원을 압박하며 공과 상대 선수들을 적진으로 몰고 가다가 김민우를 중심으로 뒤에서 치고 올라오는 플레이는 미국 팀을 붕괴해버렸다. 파라과이전은 더욱 멋지다. 홍명보는 팽팽했던 전반전에서 파라과이의 구멍을 발견했다. 후반전 파라과이의 수비라인이 무너졌고 우리 팀은 불과 15분 사이에 세 골을 몰아쳤다. 여기서 우리는 파라과이의 수비가 뚫기 힘들기로 악명이 높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그래서인지, 한국을 잡기 위한 테테 감독의 작전은 막장이었다. 강팀이 약팀을 상대로 카테나치오(빗장수비)를 펼친 것이다. 수비수 4명에 한 명의 선수가 +알파로 끼어 4.5명이 수비하는 정통 카테나치오도 아니고, 공격수를 제외한 모든 선수가 하프라인 뒤에서 득실거리는 막장 카테나치오. 이게 테테 감독이 깔아놓은 밑밥의 정체였다.

 

 

 

 

 

 

 

 

가나의 플레이는 클럽팀과 대표팀, U-20 팀을 막론하고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기묘한 템포다. 가나 선수들은 공을 몸에 붙이고 다니면서 기회가 되면 바로 슛을 때리거나 날카로운 패스를 한다. 공을 찼다가 쫓아가는 일반적인 드리블과 다르다보니 템포가 느려 보인다. 공격이 느려 보이다 보니 슛과 패스가 워낙 돌발적으로 느껴진다. 보수적인 플레이를 하는 잉글랜드가 이 템포에 말려 가나에 0:4로 왕창 깨졌다.

 

 

 

묘한 팀 컬러, 뛰어난 개인기에 막장 카테나치오, 거기다 액면가로 훨씬 강팀. 역습에 당하는 건 당연한 거였다. 왜 세 번이나 당하도록 수비가 빈틈을 내줬는지 말이 많다. 하지만 카테나치오를 깨려면 중원을 먹어야 하고 그러면 뒤가 빌 수밖에 없다. 그리고 홍명보는, 아시아에서는 향후 수십 년간은 그 아성을 깨기가 힘들 정도의 경력을 자랑하는 수비수다. 어린 김민우가 홍명보의 역할을 꽉 채우기란 아예 산술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홍명보가 뛰어난 이유는 분신술을 하듯이 수비에 빈틈을 만들지 않으면서도 공격을 이끌었기 때문이다. 분신술을 못하는 김민우가 처진 스트라이커일 때, 빈틈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왜 굳이 틈을 만들어야 했나. 그야 공격하기 하기 위해서다. 이게 가나를 2:3까지 밀어붙이게 한 근성의 정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홍명보의 뛰어난 지도가 없었다면 가나의 개인기와 템포에 말려 학살당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홍명보는 전략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고, 선수들이 너무나 잘 따라주었다. 경기 종반, 양 팀 선수들이 지쳐서 흐느적거리는 모습은 우리 선수들이 얼마나 가나를 밀어붙였고 가나 선수들이 얼마나 시달렸는지 확연이 느끼게 해 주었다.

 

 

 

우리 선수들이 공을 옆과 뒤로 돌리던 모습이 욕을 좀 먹는 것 같다. 지고 있는 입장에서 답답하기도 했거니와 공을 지나치게 오래 잡고 있다가 실점을 당하기도 했으니. 하지만 상대 수비가 극단적으로 촘촘하고 게다가 개인기들도 뛰어나니 어떡하겠는가. 틈이 보일 때까지 공을 돌릴 수밖에 없는 거다. 그리고 공을 돌려야 상대 수비를 끌어내면서 빈공간이 생기는 건 상식이다. 이건 우리 플레이의 문제가 아니다. 공이 어디로 굴러가던 꿈쩍도 안 하는 가나의 수비가 막장이었던 거다.

 

 

 

경기가 끝나고 테테 감독은 한국 팀에 과할 만큼 찬사를 늘어놓았다. "경이로운 팀", "존경을 바친다.", 심지어 "한국에 감사한다." 등등. 이게 의례적인 언사나 승자의 여유인 걸까. 아니다. 이건 막장 플레이로 어거지로 이긴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였던 거다.

 

 

 

 

 

 

 

 

 

 

 

필자의 총평은 이렇다. 한국, 정말 잘했다. 이만큼 잘했으면 박수 진하게 쳐주는 게 맞다. 덧붙여 이대로라면 홍명보는 뛰어난 감독이 될 것 같다. 최약체 라인업으로 평가되었지만 놀라운 플레이를 보여준 선수들도 다시 보게 되었다. 한국 축구의 5년, 10년 후가 밝아진 것 같아 기분이 좋다.

 

 

 

한 가지 더. 아프리카 축구엔 앞으로도 한동안은 계속 말리겠지만, 이번 가나와의 경기를 보니 그 시간이 예상보다 훨씬 줄어들 것 같다. 아프리카의 강팀을 상대로 우위에 서게 될 때 한국 축구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상대가 가나라면 좀 더 좋을 것 같다.

 

 

 

 

 

 

 

 

 

필독(the.dog.on.the.fiel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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