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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한국야구가 강한 이유를 알려주마!

 

2009.10.29
에버프리

 

2009년 3월 16일.
샌디에고 파드리스의 홈구장 펫코파크에서는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 2라운드에 진출한 한국 대표팀의 첫 경기가 열렸다.
상대는 메이저리거를 다수 보유한 멕시코였다.
1회 대회 때도 2라운드에서 맞붙은 적이 있는 멕시코였고, 당시 이승엽의 결승 투런과 박찬호의 깔끔한 마무리로 2-1 간신히 승리한 바 있었다.

 

그러나 멕시코는 1회 대회보다 훨씬 더 강력한 전력을 구축하고 2회 대회에 임했다. 1회 대회에도 물론 메이저리그 최고 3루수중 하나였던 비니 카스티야 (2회 대회는 감독으로 출전) 등 몇몇 메이저리거들이 참가하긴 했으나 자국리그 선수를 중심으로 구성되면서 2라운드 진출국중 비교적 약체로 평가되었다.

 

그런데 2회 대회에서 멕시코는 작정을 하고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 참가하였다.
현역 메이저리거만 무려 14명이 포함된 강력한 라인업을 구성하였고, 실제로도 1라운드에서 가공할 공격력을 선보이며 2라운드에 진출한 팀들을 위협했다.

 

반면 한국도 숙적 일본에게 도쿄에서 벌어진 1라운드 승자매치에서 영봉승을 거두며 한껏 달아오른 사기가 있었고, 1회 대회에서 꺾어본 경험이 있는 멕시코가 맞상대이기에 해볼만 하다는 분석도 상당했다.
(사실 1회 대회때의 4강과 베이징 올림픽의 우승으로 인해 생긴 만용과도 같은 자신감이었다. 2006년 이전이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었지 아마?)

 

한국은 왼손 에이스 류현진을 선발로 내세웠고, 멕시코는 뉴욕 메츠 소속의 거물급 투수 올리버 페레즈를 선발 예고 했다.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소속이었던 2004년 9이닝당 10.4개의 삼진을 잡아내며
 이 부문에서 메이저리그 전체 1위를 기록하는 수준급 투수인 올리버 페레즈

 

사실 류현진의 등판은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베이징 올림픽때 명품 서클체인지업으로 쿠바타자들을 농락하던 모습을 상기한다면 공격적인 성향이 강한 중남미 타자들을 상대로 류현진만한 적임자는 없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일본과의 1라운드 최종전에서 짧은 이닝을 선보이며 대회 참가 직전 컨디션이 좋지 않은 것이 아니냐는 세간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빼어난 구위를 보여준바 있어 기대는 더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예상을 뒤엎고 멕시코타자들은 류현진의 서클체인지업을 골라내기 시작했다. 류현진은 자타가 공인하는 강속구투수다. 그러나 도쿄에서 보여주었던 150키로를 육박하는 강속구마저 무뎌진 모습이었다. 강속구 투수가 급격하게 뚝 떨어진 직구의 위력으로 속지 않는 서클체인지업만 갖고서는 난다 긴다 하는 메이저리거들을 상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류현진의 난조로 인해 온갖 기대와는 달리 2점을 먼저 내주고 불안하게 출발한 멕시코전....

 

그러나 이 경기에서 한국은 WBC 출전 역사상 가장 한국답고, 가장 강했던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이날 한국은 무려 8점을 쏟아내며 멕시코를 농락했다.
문제는 8점을 낸 과정이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아시아권에 속한 한국은 일본과 같은 세밀한 야구, 즉 스몰볼을 구사하는 팀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이날 한국은 홈런 세발을 쏴올렸다. 펫코파크라면 홈런이 잘 안 나오기로 메이저리그에서도 유명한 구장이다.
슬러거 유형의 이범호, 김태균이 친건 그렇다 쳐도, 발바리 같은 왜소한 타자 고영민의 홈런은 현지에서도 어메이징한 일이었다.

 

아... 한국이 이런 팀이었구나.. 라고 생각할 무렵
또다시 한국야구는 멕시코의 후두부를 강타하는 반전을 선보인다.
전타석에 홈런을 친 이범호가 페이크앤슬래쉬 (번트 모션을 취하다가 강공으로 공략하는 작전)를 구사하질 않나. 발이 느릴 것 같았던 이진영이 더블 스틸에 동참하질 않나...
결국 멕시코는 큰 것 세방으로 실컷 줘터지고, 작전으로 혼 나간 격이었다.

 


요게 바로 꽃떡밥 투척 장면

 

마운드도 만만치 않았다.
잔뜩 류현진의 서클체인지업을 대비하고 공략을 준비했던 타자들이 김빠지게 겨우 2점만 득점한 채 다른 투수들을 맞이하게 되는데 이 투수들이 사실 전혀 유형이 다른 투수들이었다.

 

왼손 투수 류현진에 이어 등판한 정현욱은 오른손 강속구에 폭포수같이 떨어지는 커브를 보유한 투수, 이어 등판한 정대현은 언더스로에 싱커계열, 다시 오른손 정통파 윤석민, 다시 왼손 슬라이더형 김광현, 다시 오른손 정통파 오승환으로 이어진다.

 

이거 타자들 입장에서는 환장하는 거다.
적응할만 하면 다른 유형,, 적응할만 하면 또 바꾸고...

 

말그대로 한국은 멕시코전에서 그간 갈고 닦았던 무기들을 전반적으로 선보였고 그 결과 멕시코는 메이저리거고 나발이고 허무하게 듣보잡 선수들에게 대패 당한다.

 

이런 기류는 급이 다른 메이저리거들이 총출동한 베네수엘라전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결국 한국은 총 2번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이전까지 같이 경기만 할 수 있더라도 “영광인줄 알아 이거뜨라” 였던 메이저리거들과의 경기에서 모두 승리하는 기염을 토한다.

 

대체 왜?
광주나 대구구장 따위에서 아직 프로야구를 하는 나라...
프로야구팀이 8개, 고교야구 팀이 50개, 총 야구인구가 3만도 되지 않는 나라...
외형적으로만 봤을 때 야구 후진국인 이 대한민국에서 대체 왜 기계들과 외계인들이 득실대는 메이저리그를 상대로 이런 말도 안되는 결과를 냈느냐는 말이다.

 

찬찬히 좀 살펴보자..

 


 한국야구는 과연 어떤 색깔일까?

 

파워풀한 메이저리그 ...
기본기를 중심으로 한 섬세한 플레이를 중요시하는 일본리그..

 

사실 세계 야구의 중심은 메이저리그이고, 그에 필적할만한 리그를 보유한 나라는 일본 밖에 없다. 야구 강국들이 즐비한 중남미에서도 자체리그를 운영하고는 있지만 대부분  메이저리그의 팜역할을 수행할 뿐 자국리그의 가치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종주국에서 운영하고, 전 세계에서 좋은 선수들만 뽑아 놓고 야구하는 메이저리그야 말로 전세계 야구 중심인 것은 분명하지만, 한수 아래라고 평가받는 일본리그는 그들만의 독특한 영역을 구축하며 메이저리그에 복속되지 않은 몇 안되는 리그다. (유일하다고 해도 사실 별 할 말이 없다)

 

메이저리그는 강한 파워를 중시하는 야구이다.
투수들은 엥간하면 93마일 이상(150키로)을 구사하고, 엥간한 타자들은 또 그 공을 담장너머로 넘겨버릴 힘을 갖고 있다.

 

섬세한 플레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주된 기류가 그렇다는 것이다.
신체특성상 그들은 크고 힘세고 유연하다.
선천적인 파워가 그들 야구에 원천적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일 것이다.

 

반면에 일본야구는 어떤가.
마쓰자카류의 강속구 투수도 있고, 마쓰이류의 파워풀 슬러거도 있다.
(사실 마쓰자카는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이후 강속구 투수라기보다는 공의 무브먼트로 승부하는 투수로 성공적인 변화를 한 바 있으니, 일본의 파워야구를 대표하는 투수는 현재 다르빗슈 정도일듯 하다)

 

그러나 일본 야구는 파워가 주된 무기가 아니다.
그들은 상대적으로 메이저리그보다 왜소한 신체적 조건을 최대한 활용하고자 던지고 치는 것 이외에 뛰고 잡는 야구의 또 다른 측면을 이용했다.
빠르게 던져야 못치고, 강하게 쳐야 점수 내는 원초적인 스포츠에서 그들은 속이고, 뛰고, 실수하지 않는 야구로 승부하고자 한 것이다.
그 결과 일본리그의 야구는 섬세한 플레이가 주를 이룬다.
데이터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야구에서 그들은 그 데이터를 충분히 활용하여 상대의 약점을 파고드는 야구를 구사했고, 상대적으로 딸리는 신체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훈련량으로 기본기에 충실하려 했다.

 

일본 야구가 아직 메이저리그를 뛰어넘었다고 볼 순 없지만, 분명한 것은 메이저리그와 상반된 그들만의 야구스타일을 정착시켰고, 그들의 야구는 메이저리그와의 격차를 상당부분 좁혔다고 봐야 할 것이다. 메이저리거들이 다수 참가한 월드베이스볼클래식을 2연패 한 것은 분명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일본식 야구가 메이저리그를 정복한 대표적인 사례 이치로
얄밉긴 하지만 빠르고 정교하며 섬세한 이치로를 최고타자라 부르지 못할 이유는 없다

 

그렇다면 한국야구는 어떤 색깔일까.
지리적인 여건과 그간 교류의 빈도수로 볼 때는 한국 야구는 일본 야구와 유사한 색깔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더구나 신체조건 역시 일본과 다르지 않아 메이저리그식의 파워풀한 야구를 구사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실제로 한국 야구는 90년대까지 일본 야구와 유사한 스타일의 야구를 구사했다.
비록 역사가 오래된 일본 야구보다 기본기가 떨어지고, 축적해 놓은 데이터가 적어 일본 야구를 따라잡긴 어려웠어도 지향점은 사실 일본 야구에 가까웠다고 볼 수 있다.

 

소위 말하는 스몰볼, 즉 잦은 작전을 통한 팀플레이를 강조하고, 훈련만이 살길이라는 인식 등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나 한국 야구는 90년대 중후반부터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된다.
미국 유학파 출신들의 지도자들이 서서히 한국 야구에 유입되고, 박찬호라는 걸출한 스타로 인해 팬들이 메이저리그를 접하는 빈도수가 급격하게 증가한다.

 

작은 것 같지만 이 변화는 한국야구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다준다.
한국 야구에 익숙한 팬들이 메이저리그를 바라보면서 “아~ 이런 야구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고 어딘가 모르게 메이저리그에 대한 동경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선수 개개인의 역량을 중요시하는 그들의 야구 방식은 한국 야구가 그간 보여줬던 야구와는 상반된 면이 있었고, 팬들이 느끼는 감정은 "시원시원한 메이저리그 야구가 훨씬 재미있고 볼만하다"는 식으로 변해갔다.

 

팬들의 그런 바램과 맞물려 이광환으로 대표되는 미국 유학파 지도자들이 등장함으로써 한국 야구판에서 "메이저리그 지향하기"는 현실화되기 시작한다.
빡센 집단 훈련을 통한 기량향상 보다는 선수 개개인이 책임의식을 갖고 자율성을 부여하는 방식이 성공하는 사례가 생기며 획일적인 방식의 선수단 운영이 점점 다변화 되가는 양상을 보인다.

 

결국 이런 움직임덕에 현 시점에서의 한국야구는 구단의 전통, 각 감독의 야구관과 철학에 따라 8개구단이 모두 제각각의 색깔을 갖는 형태로 변모했다.

 

 김성근은 정말 한국 야구를 후퇴시키는 주체인가?

 

2005년 한국에서 열렸던 아시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도중 뜬금없이 한국야구 감독들 끼리 논쟁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논쟁의 발단은 일본 대표로 참가한 스기우치라는 괴물 투수였다. (베이징 올림픽과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 참가했던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좌완 에이스 스기우치가 아닌 동명이인이다)

 

이 괴물투수는 당시 초고교급 구위를 장착했다는 소문으로 한국 대표팀  최대의 경계 대상이었고, 당시 한국에서도 괴물투수로 대우받던 한기주와의 맞대결로도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러나 대회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스기우치와 한기주의 맞대결보다는 스기우치의 엄청난 투구수가 큰 화제가 되었다. 연일 등판하며 완투를 했던 스기우치는 경기당 160구 이상을 던지기 일쑤였으며, 더 충격적인 것은 한경기에 6점 이상을 실점하더라도 끝까지 투수교체를 하지 않는 이해하지 못할 일본 감독의 투수 운용이었다.

 

당연히 그런 광경을 지켜본 한국  야구인들과 팬들은 술렁였다.
먼저 입을 연 것은 한화 김인식 감독이었다. 당연히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고, 그런  투수 운용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밝혔다. 스기우치는 혹사당하고 있고, 더구나 어린 선수의 혹사는 선수 생명에 있어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곧장 이어진 것은 삼성 선동렬 감독의 반론이었다.
무조건 많이 던진다고 선수 생명에 치명적인 지장을 주는 혹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많이 던졌으면 많이 던진대로 선수를 관리해주는 프로그램이 존재하느냐 아니냐가 중요하고 일본은 그런 메디컬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 많이 던진 투수들이 장수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는 논리였다. 선동렬은 마쓰자카의 예를 들며 그는 프로에 입단하기 전 고등학교 시절 웬만하면 혼자 모든 대회의 경기를 도맡을 정도로 많은 투구를 했고, 세이부 라이온즈에 입단해서도 140구 이상은 거뜬히 던지며 완투를 밥먹듯 했는데도 오랜 시간동안 씩씩한 공을 뿌리고 있다는 것이다.

 


논쟁이 있었던 이듬해 2006 한국시리즈에서 격돌한 두 감독

 

누가 옳고 그르냐를 떠나 이 논쟁 자체는 상당히 흥미롭다. 앞서 얘기한 대로 한국야구는 각 구단마다 서로 다른 야구관을 갖고 있는 감독들에 의해 상호 경쟁을 하고 있다는 의미기 때문이다. 더구나 현장에 있는 감독끼리 쉬쉬하며 꺼내지 못하고 있던 민감한 사안인 “혹사”문제에 대해 정면으로 논쟁을 벌였다는 것은 분명 한국 야구에 폭넓은 스펙트럼이 존재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필자 주 : 스기우치는 프로에 진출한 이후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하고 큰 어깨 부상때문에 수술하고 난 뒤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혹사의 영향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분명 억지이다. 따라서 일단 스기우치 논쟁에 한해서 최종 승자는 김인식 감독이다. 그러나 김인식 감독도 투수들의 혹사문제에 있어서 영원한 승자가 될 순 없다. 김인식 감독 자신도 일부 선수들의 혹사 논란에 휩싸였던 전력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누구도 혹사문제에 대해 정답을 제시할 순 없으니까... 어쨌든 본 글은 혹사문제를 논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니 이 문제는 이쯤에서 덮어두기로 한다.)

 

이쯤에서 최근 들어 가장 많은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받고 있는 지도자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바로 김성근 감독이다.

 

야신이니 뭐니 해서 SK를 한국시리즈 2연패로 이끈 명장 대우를 받지만, 사실 비난의 크기는 훨씬 더 크다.
김성근 감독이 비난받는 이유는 상당히 여러 가지이다.

 

재미 없는 야구...
일본식 옛날 야구...
혹사 야구...
치사한 야구...
등등등
(앞서 언급한대로 혹사 문제는 이번 글의 주제에서 제외하기로 하자. 워낙 다양한 논쟁 떡밥이 존재하여 얘기가 길어질 수 있으므로 본 글의 취지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기회가 있다면 다음에 박터지게 노가리 풀어 보기로 하고...)

 

그중 가장 많은 양의 비난은 일본식 구식야구를 구사함으로써 팬들에게 재미를 선사하지 못하며 이는 곧 한국 야구의 후퇴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요즘 야구의 트렌드는 호쾌하고 강한 야구임에 반해 김성근의 야구는 지나치게 작고 답답하다는 지적이다.

 

맞는 얘기다.
김성근 감독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버린 잦은 투수교체, 즉 벌떼 야구도 이런 맥락에서 비난의 대상이 된다. 당연하다. 야구에서 제일 짜증나는 시간이 사실 투수교체시간이고 안 그래도 경기시간 늘어진다는 불만이 크던 차에 김성근 감독의 잦은 투수교체는 고운 시선으로 봐주긴 상당히 어렵다.

 

또한 잦은 엔트리 변경, 지독한 훈련량과 방식, 데이터를 중시하느라 스타 플레이어를 키워내지 못하는 스타일 등등으로 80년대 야구나 고등학교 야구라는 비판이 주를 이룬다. 한마디로 호쾌하고 시원시원한 메이저리그식 야구가 아닌 일본식 야구를 구사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얘기다.

 


안티팬들이 부르는 김성근 감독의 애칭

 

필자는 이런 비난에 대해 많은 부분에서 공감하고, 사실 김성근 식의 야구는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그러나 단 한가지 이 비난들 중 필자가 격하게 반대하는 의견은, "김성근 야구는 한국 야구를 후퇴시킨다" 이다. 이런 비난은 타당한 비난이 아니라고 본다.

 

"싫어한다"와 "반대한다"는 엄청난 차이다.
개인의 호불호에 의해 싫어하는 것은 그야말로 개인의 취향이며, 팬들의 이런 다양한 취향은 한국 야구의 다양성을 반영하는 것이기에 어떻게 보면 상당히 의미 있는 현상이다.

 

그러나 "반대한다"라는 것은 "한국야구의 후퇴"라는 전제를 설정해 놓고,  "퇴출"이라는 궁극의 목적을 갖기 때문이다. 김성근 감독의 야구가 좋아하지 못하는 야구, 싫어하는 야구는 될지언정, 그렇게 발을 붙혀서는 안되는 저질 야구일까?

 

일단 김성근의 야구는 상당부분 일본식 야구를 지향하는 것은 분명하다.
앞서 살펴본 일본식 야구는 기본기와 데이터를 중요시하는 정교한 야구를 구사하고, 김성근의 야구는 그것을 꼭 닮아 있다.
그 분명한 사실을 전제로 깔아두고 얘기 한다면
김성근 야구는 일본식 야구
김성근 야구는 퇴출되어야할 야구
고로 일본식 야구는 퇴출되어야할 야구라는 논리가 성립된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일본 국민은 세계에서 가장 야구를 좋아하는 국민일 정도로 그들의 야구를 재미있어 하고, 사랑한다. 또한 실력도 이젠 야구의 본고장 메이저리그를 넘볼 정도로 강하다.
결국 일본 야구는 분명히 경쟁력 있는 야구로 인정받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니 일본식 야구를 구사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김성근 감독의 야구를 후진 야구라고 매도하고 퇴출까지 운운할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다.
(김성근 감독의 다른 비난거리는 차치하고, 일본식 야구를 구사한다는 것에만 국한하여 얘기하는 것이다)

 

사실 김성근 감독의 야구는 어렵다.
일반 야구팬이 이해하기에는 지나치게 고난이도의 전략/전술을 운용한다.
잦은 투수교체도 그에겐 모두 이유가 있다.
현재 마운드에 서있는 투수의 팔 각도와 릴리스 포인트, 상대 타자가 전 타석에서 보여줬던 배트 궤적과 노림수, 투수와 타자간 상대 전적이나 궁합 등을 전반적으로 고려하여 투수를 교체한다.
그렇기에 일반 팬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투수교체와 용병술이 등장하여, 많은 비난의 소지가 되기도 한다. 사실 이런 야구를 재미있어할 팬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매니악한 면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그의 야구에 열광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영화감독으로 따지자면 홍상수나 김기덕인 셈이다.
솔직히 말해 홍상수, 김기덕 감독의 영화... 마음 편한 상태에서 재미있게 보기는 어렵다.
때에 따라서는 보는 이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영화를 만들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홍상수나 김기덕을 한국 영화 수준을 후퇴시키는 감독이라 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히려 해외영화제에서 좋은 성과를 얻어온다면 찬사가 쏟아진다.
다만 "난 홍상수, 김기덕과 같은 스타일은 싫어" 라고 호불호를 밝힐지언정...

 

김성근의 야구도 마찬가지로 봐줘야하지 않을까 싶다.
퇴출되어야할 저질 야구가 아니라 "내가 싫어하는 야구", "재미없거나 어려운 야구" 라는 것일 뿐이고,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야구 스타일의 팀이 김성근 야구를 이기길 바라면 되는 것이다. 그러다 이기면 좋아하고 지면 아쉬워하며 프로야구의 재미를 느끼는 것일 뿐, 김성근 야구가 야구판에 발을 붙혀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한국 야구의 큰 재미꺼리 하나를 포기하자는 말과 다름없는 것이다.

 

실상 김성근은 SK에 부임한 이후 치밀한 전력 분석과 데이터 활용, 그에 따른 선수 육성법에 있어 그간 한국야구에서 쉽게 접하지 못한 고도화된 팀운영 스킬을 선보인 점에 대해 국내외 전문가들은 높은 평가를 하고 있다.

 


 우리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렇다면 일본 야구에서는 파워풀한 면면을 보지 못하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일본도 마찬가지로 각 팀의 4번타자는 파워풀하고 호쾌한 유형의 타자들이고, 요미우리와 같이 일본 야구답지 않은 스타일의 팀을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일본 야구의 근간은 세밀하고 정교한 쪽에 무게를 두는 야구라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가장 시원시원한 야구를 구사한다고 소문난 요미우리의 하라 감독도 1사 상황에서 번트를 대는 나라가 일본이다.

 

메이저리그 또한 마찬가지다.
메이저리그가 어떤 리그인데 기본기와 데이터를 무시하고 파워만 강조하겠는가.
그들의 훈련 방식이 자율적이라 하여 팀플레이를 무시하면 금방 도태되고 마는 곳도 다름 아닌 메이저리그이다.
그들도 정교함에 있어 절대 일본에 뒤지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역시 호쾌한 파워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야구를 한다는 것이 핵심인 것이다.

 

이런 틈바구니에서 한국야구는 이 세 리그중 가장 짧은 역사와 가장 열악한 환경을 보유한 리그이지만 빠르게 그들만의 장점을 도입하여 살찌우고 있다.

 

80년대 전형적인 동양야구를 구사하던 것에서 탈피하여 메이저리그 스타일도 과감하게 적용하여 팬들의 눈높이를 맞추는데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있다.
그렇다고 하여 선수들의 신체조건 등 여러 가지 환경을 무시하고, 메이저리그 방식만을 쫓았다면 지금의 한국야구는 없었다.
(실제로 대만 야구는 맹목적으로 메이저리그 방식을 지향하다가 이도저도 아닌 채 지지부진한 발전을 보이고 있다. 기본기의 중요성을 무시한 채 파워만 늘리려다 이젠 중국한테까지 따라잡히게 생겼다)

 


2008 아시아시리즈에 참가한 동아시아 4개국 챔피언 클럽 감독들..
예전보다 훨씬 많아진 이런 교류들 때문에 각국의 야구는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은 분명한 듯 보인다
.

 

필자는 이런 한국야구가 이렇게 역동적인 모습으로의 변화를 이룰 수 있던 것은 경쟁의 산물이라 보고 싶다.
서로 다른 야구관의 충돌, 또 그들이 자웅을 겨루며 엎치락 뒷치락 할 수 있었기에 한국 야구는 기본기에도 능하며, 파워도 만만치 않은 선수들을 양산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90년대 중후반 LG , 2000년대 초반 두산처럼 호쾌하고 선 굵은 야구가 대세를 이루나 싶었더니 2000년대 중/후반 선동렬, 김성근 등 지일파 지도자가 맡은 삼성과 SK의 섬세한 야구가 장기집권을 할 태세를 갖추었다. 그러나 이 기간에도 빅볼의 대명사 김인식은 건재하였고, 그의 제자 김경문의 야구도 열강의 대열에 합류하며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신선한 충격중 한 가지는 완벽하게 메이저리그식 야구를 도입한 로이스터가 만년 하위팀 롯데를 맡아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는 점이다.
로이스터의 도전이 실패로 끝날 것이라는 예상이 우세했으나, 보란 듯이 팀을 2년 연속 4강에 올려놓으며 한국에서도 이런 야구가 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사실 이광환, 김인식의 야구는 완벽하게 메이저리그를 지향했다고 보긴 어려웠으나, 그야말로 순도 100%의 메이저리그식 운영을 도입한 로이스터가 이 만큼이라도 성공했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야구의 토양 자체가 어떤 야구가 들어와도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할 정도로 역동적이라는 증거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먼저 로이스터의 성공을 점친 사람은 상반된 야구를 구사했던 김성근 감독이었다.

 

어쨌든 이번 한국시리즈를 통해서 장기집권의 조짐을 보이던 섬세한 야구가 한발 물러섰고 기아가 추구했던 호쾌한 야구가 다시 주류로 등장했다.
(여기서 잠깐... 김성근의 제자라는 출신 성분으로 인해 조범현의 야구를 작은 야구라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분명 올해 기아의 야구는 힘을 바탕으로 한 제법 큰 야구를 했다는 것을 부정하진 말자)

 


상반된 야구관의 소유자가 맞대결을 펼침으로써
한국 야구는 서로를 배우고 이해할 수 있는 토양이 다져지는 것이다.

 

필자는 SK가 이번에도 우승하게 된다면 앞으로 섬세한 야구가 대세를 이룰 것이고, 아무리 호쾌한 스타일의 야구를 구사하는 팀이 잠룡으로 버티고 있다고는 하지만 자칫 한쪽 스타일로 획일화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 아닌 걱정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야구판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섬세한 야구의 단점을 힘으로 눌러버린 09년 기아 스타일의 야구가 다시 전면에 나섬으로써 이 두 야구관의 빅뱅은 앞으로 점입가경이 될 것이 불보듯 뻔하다.
우리 야구팬은 그 빅뱅을 침 질질 흘리며 즐기면 되는 것이고... 으흐흐~~

 

한국 야구는 이렇다.
메이저리그식 야구던, 일본식 야구던 우린 모두 구사할 줄 안다.
이제 이게 한국야구의 스타일이 돼버렸다.
덩치 큰 메이저리거들을 상대로 할 때는 오밀조밀 하고 빠르게 움직이며 힘을 빼다가 그들의 장기인 큰 것 한방으로 게임을 매조지할 줄도 안다.
섬세함에 있어 지존인 일본 야구를 상대할 때는 김태균이나 봉중근과 같은 파워풀 플레이어들이 힘으로 눌러 압도하다가도, 또 그들의 장기인 치밀함으로 넋을 빼놓기도 한다.
어떤 야구든 우리는 능하게 소화해낼 수 있으며, 이는 한국야구가 그간 오픈마인드로 도입한 그들의 장점이 그 원인이다.
이 얼마나 역동적인 현상인가...

 

경배하자... 한국 야구는 강하다. 그리고  몹시도 재미있다.

 

사족.
이런 한국야구의 발전은 현장의 야구인들과 팬들이 만들어 놓은 산물이다.
이젠 한국야구에 남겨진 큰 숙제... 즉 저변확대와 인프라 구축으로 화답해야 한다.
누가? 야구 행정가들과 관련 부처들 너네 말이야... 제발 좀 씹새들아!!

 

 

 

에버프리(ahj20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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