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2012. 6. 12. 화요일

제이(薺苡)

 

 

 

 

공직선거기간 중 인터넷실명제를 거부한 딴지일보에 대한

중구 선관위의 과태료부과 처분을 바라보며

 

 

 

 

 

 

 

 

‘행정편의주의’적 법률로‘재갈’을 물리다

 

 

 

 

 

중구선거관리위원회가 공직선거법 제82조의6 제1항(공직선거기간 중 인터넷실명제)을 위반했다며 딴지일보에 9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현행 법률을 위반했으니 절차에 따라서 행정처분을 받은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법률에는 큰 문제점이 있으며, 이 문제점을 바로잡아야 하며, 잘못된 법률에 근거한 이 과태료는 납부되지 말아야 한다. 단순한 돈의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다시 보는 그날의 마빡.

 

 

 

 

 

약간의 헌법적 시각으로 바라보자.

 

 

국가나 공권력이 국민에게 어떠한 권리의 제한이나 부담을 지우는 일을 행정처분이라고 볼 때, 이 행정처분에는 반드시 그 근거가 되는 법률(시행령, 시행규칙 등을 포함한 광의의 법률)이 필요하다. 딴지일보에 과태료 부과라는 행정처분을 내리면서 근거로 사용한 법률은 공직선거법 제82조의6 제1항이다.

 

 

 

 

 







 
 

[공직선거법 제82조의6 제1항]

 

- 인터넷언론사 게시판· 대화방 등의 실명확인

 

인터넷언론사는 선거운동기간 중 당해 인터넷홈페이지의 게시판· 대화방 등에 정당· 후보자에 대한 지지· 반대의 문자· 음성· 화상 또는 동영상 등의 정보(이하 이 조에서 "정보등"이라 한다)를 게시할 수 있도록 하는 경우에는 행정안전부장관 또는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제4호에 따른 신용정보업자(이하 이 조에서 "신용정보업자"라 한다)가 제공하는 실명인증방법으로 실명을 확인받도록 하는 기술적 조치를 하여야 한다. 다만, 인터넷언론사가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4조의5에 따른 본인확인조치를 한 경우에는 그 실명을 확인받도록 하는 기술적 조치를 한 것으로 본다.

 

 

 

 

 

이 법률은 공직선거기간 동안 인터넷언론사의 게시판, 대화방 등에서 일괄적, 필요적으로 실명을 사용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이를 위반하면 관련 법규를 근거로 다시 과태료 등의 제재를 가한다. 이번 딴지일보에 가해진 과태료 부과 처분 역시 같은 방식이다.

 

 

 

 

 

 

 

한 '음악웹진'의 편집장은 반복되는 선관위의 경고 전화로 인해 멘붕.

 

 

 

 

 

이러한 근거조항은 상당히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일괄적으로 행위를 제한해 놓는다는 것은 지극히 행정편의주의적인 입법이다. 인터넷언론사의 온라인 게시판에서 선거과열을 막고, 특정 후보의 지지나 반대가 적정수준을 넘어서게 될 경우 공명선거에 해악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에서 입법이 되고 개정이 된 취지는 그럴 듯하다. 하지만 선관위나 공권력을 행사하는 기관이 인터넷언론사의 게시판 등에서 발생하는 선거관련 문제들에 대해서, 개별적으로 법 위반 행위를 조사하고 제재를 해야 하는 것이 공권력을 가진 기관이나 선관위에서 취해야 할 입장이고, 국민을 상대로 기본권을 제한하는 입법을 할 경우에 이러한 요인을 반드시 고려해야만 한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사이버전담팀이나 온라인선거감시단 등을 운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헌법적인 시각을 한 가지 더 견지해 보자.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국가에서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들 중에서 민주주의를 유지하고 보장하는 가장 본질적인 권리는 언론․출판 및 표현의 자유, 집회 및 결사의 자유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권리들은 민주주의의 안정화를 나타내는 지표로 사용되기도 한다.

 

 

 

 

 

 

 

래리 플린트 : "나 같은 쓰레기가 수정헌법1조를 행사할 수 있다면, 당신들도 할 수 있다."

미국의 수정헌법1조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조항이다.

 

 

 

 

 

민주주의 국가들의 헌법들 역시 ‘언론․출판 및 표현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가 다른 기본권보다 우월한 지위를 갖고 있다고 인정하고 있으며, 대한민국헌법 역시 같은 헌법원리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더욱 두텁게 보호를 해야 하는 국민의 기본권이 바로 ‘언론․출판 및 표현의 자유’와 ‘집회 및 결사의 자유’인 것이다. 이러한 권리들에 대해 선거제도의 효율적인 통제와 관리를 위해서 일괄적으로 제한을 가한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본질적인 권리를 침해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인터넷실명제가 온라인에서의 근거없는 비방, 욕설, 인신공격 등의 문제들을 예방하는 데 일정부분 이상 효과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실명제는 심리적 강제나 위하적인 수단으로 국민들을 통제한다는 큰 문제가 있다. 다시 말해, 온라인상에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함에 있어서 필요적(의무적)실명제로 인하여 표현의 자기검열이 이루어져 위축되는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비판이나 풍자에는 익명성이란 가면이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한다. 또 그 수준을 유지할 문화적 분위기가 만들어진다면 실명제가 갖고 있는 기능을 대체할 수 있다.

 

 

 

 

 

자정능력을 상실할 경우라도 대안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일차적으로 각 인터넷언론사들이 일정부분 조정을 하게 하고, 이차적으로 선관위, 검찰이나 경찰 등의 공권력이 개입할 수도 있는 문제다. 방법은 또 있다. 엄격한 법의 적용과 처벌이다. 일괄적이고도 의무적인 실명제가 아니더라도 공명선거를 부정하거나 허위사실 또는 근거없는 비방으로 선거를 방해하는 사람을 철저하게 조사해 엄벌에 처하는 것으로도 인터넷실명제의 순기능은 충분히 대체될 수 있다. 처벌이나 행정처분은 필요최소한의 개입이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인터넷언론사의 게시판과 대화방 등을 강제적으로 실명제를 시행도록 한 공직선거법 제82조의6은 법률의 최소개입원칙이나 최후수단성이라는 원리를 완전하게 위반한 것이다.

 

 

 

 

 

 

 

제대로 된 법이 아니다.

 

 

 

 

 

 

 

 

선거를 방해하는 공직선거법 제82조의6 제1항

 

 

 

 

 

이번 행정처분은 선거의 의미와 기능이라는 측면에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대의제 민주주의 국가에서 주권자가 국가와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수단은 투표를 통한 선거제도 - 직접민주주의적인 요소들이 있다고 해도 주권자의 의지를 담아내기에는 현실적으로 역부족인 것이 사실이다 - 밖에 없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수백 년 이상이 걸린, 선거라는 주권자의 권리행사를 국민들은 이제 민주주의의 축제로 인식해 가고 있다.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아무런 대가도 없이 홍보하고 응원한다. 온가족이 주말이 되면 유세현장이나 선거캠프로 자원봉사를 나가는 일이 많아졌고,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이나 청소를 생업으로 하는 사람들까지 십시일반 자발적으로 정치인에게 돈을 후원한다.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위해서 홍보를 하거나 토론을 하는 일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인터넷실명제는 이러한 자연스러운 일을 자연스럽지 못하고 위축되게 만들어서 적극적인 의견개진을 막아 버린다.

 

 

 

 

 

 

 

알아먹어야 대화를 할 것 아닌가. 알아먹지 못하게 막으면 어쩌라고.

 

 

 

 

 

공직선거법 제82조의6은 최종적으로 2010년 1월 당시 한나라당의 주도하에 개정된다. 그 이전부터 다수당인 한나라당은 인터넷의 질서와 온라인상의 인권피해를 막는다는 명분 아래, 이 법과 관련법규를 개정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당시 선거분위기를 침체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비판도 있었고, 야당의 반대도 강했으나 결국 이 법조항의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가지고 한나라당이 국민들의 축제가 되어가고 있는 선거에서 투표참여분위기를 침체시키려고 했다는 결론을 유추하려는 것이 아니다. 정치인이라면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집단 또는 계파에게 유리한 결과를 만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최소한 국민들의 인기를 먹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이 법이 갖고 있는 민주주의와 선거의 기능에 치명적 오류를 폐기하여야 한다. 선거라는 축제를 입법자들의 입맛에 맞게 개정한 법률로 방해하는 결과가 된다면 이는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구더기 무서워 장을 담그지 못하게 하는 정부

 

 

 

 

 

민주주의는 모든 것이 가능한 공간이어야 한다.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게 되는 일을 철저하게 예방해야 하지만 그 피해가 현실로 드러나거나 현실로 드러날 개연성이 현저할 경우에만 정부의 제한적인 개입이 정당화 될 수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헌법은 국가의 개입이 필요한 이러한 경우에도 법률로써 최소한의 개입만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인터넷언론사의 게시판이나 대화방 등을 일괄적으로 실명제를 하도록 하는 것은, 자신이 누구인지 얼마든지 알아볼 수 있게 공개한 다음에, 매우 어려운 선거법을 준수하면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라는 것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선거법에 저촉되면 처벌을 받게 될 수 있고 그러한 규정을 잘 준수해서 글을 써야만 법을 위반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공권력은 그러한 사람을 쉽게 찾아낼 수 있도록 실명제를 시행하고 있다는 공표와도 같은 것이다.

 

 

 

 

 

글을 쓴 사람은 계속해서 자신을 돌아보게 될 것이다. “이 글은 법을 위반하지 않는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가?”, “더 추상적으로 써야 하는 것은 아닌가?”, “그냥 쓰지 않는 것이 좋지 않을까?”이러한 분위기가 팽배해진 공간은 절대로 민주주의적인 곳이 아니며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곳도 아니다.

 

 

 

 

 

 

 

ⓒ 조남준, 출처 한겨레신문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근다.’는 속담이 있다. 설명하지 않아도 누구나 다 아는 이 속담이 생각난다. 인터넷상에서 선거의 과열이나 혼탁을 가져올 수 있는 위험성이 있으니 자유로운 글을 쓰지 말라는 법률이 된 공직선거법 제82조의6 제1항. 이 법률을 근거 삼아 인터넷 언론사를 과태료 부과라는 행정처분을 통해 옥죄는 정부기관. 국민들에게 구더기는 정부가 책임지고 막겠으니 마음껏 장을 담그라고 설득해도 부족한 시대에, 지금의 우리 정부는 국민에게 구더기가 생길 위험이 있으니 장을 담그지 말라고 겁을 주며 입을 막고 있는 것 같다.

 

 

 

 

 

현 정부 들어서 권력자가 국민을 소통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고 계몽과 훈계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 때문에 발생하는 여러 문제들이 있는데, 이번 딴지일보에 대한 인터넷실명제 위반을 이유로 부과한 과태료 처분 역시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문화를 퇴보시킨 정부기관의 행태로 보인다. 공직선거법 제82조의6 제1항 역시 입법기관인 국회에서 개정해야 할 법률이다.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일괄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발상은 시대착오적이고 독재가 행해지던 상황에서나 가능한 사고이기 때문이다.

 

 

 

 

 

 

 

설마 이런 걸 꿈꾸는 건 아니겠지?

 

 

 

 

 

 

 

 

제이(薺苡)

banjang77@hanmail.net

 

Profile
딴지일보 공식 계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