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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08. 31. 금요일

너클볼러


 


 


야구는...


야구는 돈도 많이 들지만, 드는 돈 만큼 위험한 경기이기도 하다. 고무를 주 재료로하는 공 하나만을 쓰는 여타의 주요 구기 프로스포츠와는 달리 나무로 만든 빠따. 코르크나 고무 등을 가죽으로 감싸 108번(108번뇌와는 아무 상관없는) 꿰맨 돌덩이 같은 공을 함께 쓴다. 어디 그뿐인가. 규칙도 위험천만하기 그지 없다. 투수는 타자가 서있는 홈플레이트로부터 18.44미터 떨어져있는, 게다가 30cm나 높이 위치한 마운드에서(타자에게 위협감을 주기 위해) 시속 120-150km 정도의 속도로 공을 뿌린다. 어떤 선수들은 맞고도 아무렇지 않게 1루로 걸어나가지만(필자 이건 분명 '안 아픈 척'이라 본다) 잘못 맞았다가는 조때기도 한다.


 



 


주니치 드래곤스 시절의 이종범이 한신 투수 가와지리 데스로가 던진 120km짜리 커브에 팔꿈치를 맞아 골절상을 입었고(한국인 선수에 대한 고의적 빈볼이란 얘기도 있었지만, 홈플레이트 쪽에 무리하게 붙은 이종범의 스탠스와 스트라이크존에 가까운 공의 코스를 봐서는 고의라 보기 어렵다), 얼마 전 미쿡에선 가장 많은 연봉을 받아 처묵는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시애틀의 에이쑤 펠릭스 에르난데스가 뿌린 148km짜리 직구에 왼손등을 맞고 부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어디 그뿐인가, 보호장비 없이 몸과 몸이 가장 결렬하게 홈에서 부딛히기도 하는데, 지난 해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미래라 불리우던 버스터 포지는 플로리다의 포수 스캇 커즌스와 홈에서의 충돌로 다리골절에, 발목인대 세군데가 손상되는 큰 부상을 입기도 했다. 흔치 않은 경우이긴 하나, 야구가 한방에 훅가는 위험한 경기라는 걸 설명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고 하겠다.


 


 


야구라는 게...


야구는 단순하게 말하면 던지고 치는 게임이다. 그게 꽃이다. 빠따를 잡은 타자의 미덕은 정확하게 멀리 쳐내는 것이다. 사람들은 번트가 아닌 홈런에 열광한다. 김재박의 공중부양 개구리 번트 정도가 아니고서야 대개는 힘껏 멀리 날아가는 시원한 타구에 열광한다. 당연한 거다. 마찬가지로 투수의 미덕은 정확하고 빠른 공이다. 투수든, 타자든 파워의 시대에 걸맞게 튜닝되어 있어야 주목받을 수 있게 된다. 물론 구속보다는 다양한 구질과 완벽한 제구를 갖춘 컨트롤의 마법사 그렉 매덕스(그 역시도 초기엔 150km짜리 설익은 패스트볼을 뿌리기도 했다) 같은 투수도 있지만 대개 빠른 공을 선호한다. 시원한 투구폼을 사랑하고, 160km(100마일)의 직구가 포수의 미트를 찢어버릴 듯 쑤시고 들어가며 내는 질퍽한 '뻑' 소릴 사랑한다. 때문에 포수 뒤의 관중석은 가급적 포수와 가깝게 설계된다. 고로 가장 비싼 자리가 된다.


 



<가장 핫한 파이어볼러 저스틴 벌랜더와 염문설이 난 케이트 업튼>


 


관중들을 흥분시키는 광속구를 뿌려대는 투수를 우린 '퐈이어 볼러'라고 한다. 메이저리그 투수 연봉 5위안에 드는 요한 산타나, CC 사바시아, 클리프 리, 저스틴 벌랜더, 로이 할러데이 모두 포심 평균 구속이 140km(90마일)이상이다. 국내 최고의 우, 좌완이라 불리우는 윤석민과 류현진 역시 최고 150km이상, 평균 140km대의 직구를 가지고 있다. 아무리 못해도 140km 이상은 스피드 건에 찍혀줘야 직구다운 직구라 불리 운다. 거기에 볼 끝의 무브먼트까지 좋다면야 죽음인 거고.


 


2011년 45세의 나이로 200승을 달성한 보스턴 레드삭스의 팀 웨이크필드의 직구는 평균 120km에도 미치지 못한다. 파워의 시대에 직무유기도 이런 직무유기가 없다. 그런 그가 역대 111번째, 2번째로 많은 나이에 200승을 달성했다. 6이닝 동안 5실점이라는 좋지 않은 투구내용이었지만 팀이 18점을 얻어준 탓에 선발승을 따내고야 말았다. 200승을 달성하고 며칠 뒤 시즌 마지막 등판은 뉴욕 양키스와의 어웨이 경기였다. 5회 말. 선두타자 데릭 지터가 출루, 다음 타자 알렉스 로드리게스와 상대한 웨이크필드가 던진 마지막 공은 105km(66마일)짜리 너클볼이었다. 알렉스 로드리게스는 너클볼을 받아 쳐 출루했고, 이미 4실점한 팀 웨이크필드는 무사 1,2루 상태에서 강판되었다. 알렉스 로드리게스에게 던진 105km의 너클볼은 결국 시즌 마지막 공이 되었고, 동시에 그의 야구인생의 마지막 공이 되었다. 몇 달 뒤 그는 은퇴를 발표한다. 45세의 너클볼러는 그렇게 마운드를 떠났다.


 


 


팀 웨이크필드 #1



팀 웨이크 필드 Tim Wakefield


 


1988년. 1루수 팀 웨이크필드는 드래프트 8라운드에서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 지명, 월급 700불짜리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는다. 하지만 2할을 전전하는 타자에게 팀은 오랜 시간을 주지 않았다. 마이너에 합류 후 1년이 넘어가자 서서히 방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스프링캠프 감독인 우디 하이키가 제게 왔죠. 제가 다른 1루수와 캐치볼을 하면서 너클볼을 던지는 걸 본 거예요. 이렇게 말하더군요. '스트라이크도 던질 수 있나?' 그래서 '네. 고등학교 때 투수도 했어요. 못할 것도 없죠'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날 시합이 끝나고 마운드에서 조금 던져봤어요. 감독님은 아무 말 없었죠. 잠시 후 사무실로 저를 불렀는데 코치들이 앉자서 저를 평가하더군요. 영화 <열아홉 번째 남자>에 나오는 상황 같았어요. 케빈 코스트너가 감독에게 불려가는 장면 말입니다. '참 나도 하기 싫은 일이지만... 위에서 그렇게 결정해서 내려온 건데... 구단에서 자네가 1루를 맡는 걸 원하지 않아 투수로 변신했으면 하는 모양이야'


저는 싫었습니다. 뭐랄까. 기분이 상했어요. 이렇게 빨리 나를 포기하는 건가 싶었죠. 저는 아직 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감독님은 '안 돼'라고 말하니까요. 그러니까 간단하게 보면 투수로 전향하던가 집으로 돌아가라는 이야기였으니까요. '좋습니다'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었죠.


-다큐멘터리 '너클볼' 중 팀 웨이크필드.


 


1992년 깜짝 전향한 이 듣보 너클볼러가 거둔 성적은 13경기 8승 1패 방어율 2.15였다. 2할을 전전하던 타자가 투수로 전향해, 그것도 어쩔 수 없이, 먹고 살기 위해 억지로 전향하고서 방어율 2점대 초반을 찍은 것이다. 피츠버그는 이 듣보 신인 너클볼러에게 1993년 홈 개막전 선발을 맡긴다. 하지만 결과는 최악(볼넷 열개), 그 해 성적은 6승 11패 5.16. 다음해 팀은 그에게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당신 감독인 짐 릴랜드(현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감독)는 그의 깜작 데뷔를 '괴상한 일'이라고, 그의 급작스런 몰락을 '끝난 동화'라고도 했다. 너클볼은 그런 것이었다. 완벽하게 제구 되어도 늘 의심받는, 부상, 성적부진으로 인해 쫓겨나지 않기 위해 선택되는, 던지는 투수조차도 결국 어디에 꽂힐지 모르는 그런 구질. 최초의 너클볼러라 불리는 더치 레오나드의 너클볼 역시 '어깨부상으로 인한 퇴출'에 대한 불안에서부터 시작되었다.


 


1994년 피츠버그에서 방출된 팀 웨이크필드는 보스턴 레드삭스와 마이너계약을 맺는다. 팀 웨이크필드가 팀에서 방출되자, 눈여겨보던 보스턴이 필 니크로에게 팀 웨이크필드에 대한 의견을 물었고, 필 니크로가 '가능성이 있으니 무조건 잡으라'고 조언했다. 보스턴은 팀 웨크필드에게 선배 너클볼러인 필 니크로에게 너클볼을 전수 받는 조건을 포함한 마이너 오퍼를 넣었다. 팀 웨이크필드는 계약서에 사인하고 필 니크로와 만나게 된다. 필 니크로는 1960년대를 호령한, 46세의 나이로 300승을 거둔 너클볼의 제왕이었다. 하루아침에 노숙자가 된 신데렐라가 다시 드레스를 고쳐 입는 순간이었다.


 



웨이크필드를 지켜보는 필 니크로


 


너클볼Knuckleball


대부분의 투수들이 구사하는 구질들의 대부분은 잡는 모양, 스핀 등을 통해 안에서 밖으로, 위에서 아래로, 밖에서 안으로, 혹은 스트레이트로 공을 던질 수 있게 된다. 108개의 실밥이 그립에 따라 회전하며 다양한 형태로의 궤적를 만들어준다. 손가락 끝으로 회전을 주기 때문에서 투수들에게 손톱 관리는 필수적이다. 대부분의 구질이 손과 손가락을 이용해 잡아 긁으며 던진다면, 너클볼은 '밀어' 던진다. 대부분의 구질들이 인위적으로 공의 회전을 만들어 홈플레이트까지의 다양한 궤적을 만들어내는 것과 반대로 너클볼은 공을 찍어 밀어 던져 회전을 만들어내지 않음으로서 바람, 공기의 밀도, 습도 등의 저항에 의해 듣보스런 궤적을 만들어낸다.


 



최훈이 그린 너클볼에 대한 완벽한 써머리.


 


일반적인 포심패스트(직구)의 구속의 2/3의 속도로 날아오는 너클볼은 홈플레이트 앞에서 힘을 잃으며 저항에 의해 투수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변화를 만들어낸다. 그 무브먼트에 타자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하지만 그건 제구와 환경이 완벽할 때 얘기다. 공에 회전이 1-2바퀴라도 들어가게 되면 그 순간 너클볼은 타짜의 빠따에게 '어서옵쇼'하는 배팅볼이 되고 만다. 밋밋하고 느려터진, 치기 딱 좋은 배팅볼이 되는 것이다.


 


제왕 필 니크로도 이 마구를 완성하는데 10년이 걸렸다. 빠른 구속(좋은 어깨)을 요구하는 구질이 아니므로 누구나 입문할 수 있지만, 제어가 힘들다는 점 때문에 누구나 완성할 수 없는 구질이 된다. 제어가 되지 않음이 확인되는 '폭투'의 경우 필 니크로는 한 경기 두 자리 수 이상(10개 이상)을 11번, 전담 포수가 따로 있었던 팀 웨이크필드 역시 5번을 기록했다. 게다가 느린 구속으로 인해 도루허용이 빈번해 진다. 팀 웨이크필드는 2010년 4월 텍사스와의 경기에서 9개의 도루를 허용하기도 했다. 구단은 이러한 너클볼을 눈여겨보지 않는다. 팬 역시 항상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본다. 팀 웨이크필드는 말한다. '너클볼이 내 인생과 닮았다'고...


 


 


팀 웨이크필드 #2


200승이라는 결과는 그가 19년 동안 만들어낸 것이다. 하지만 방어율로만 놓고 보면 그리 화끈하지 않다. 시즌 중반에 데뷔해 13경기 8승 1패 방어율 2.15를 결과를 얻은 1992년과 시즌 풀타임 27경기 16승 8패 2.95를 기록한 1995년을 제외하고 풀타임 선발로 출장하여 4.0 미만을 찍은 적은 단 한차례도 없었다. 선발과 중간계투, 마무리를 오가면서 19시즌을 뛴 평균방어율은 4.41(463선발 200승180패) 한때 팀 동료였던 페드로 마르티네스의 경우 18시즌 평균 방어율은 2.93.(409선발 219승 100패) 비슷한 승수를 거두고 은퇴한 존 스몰츠의 경우 21시즌 평균방어율은 3.33이다.(481선발 213승 155패)


 



전성기 시절, 페트로 마르티네스


 


그런 팀 웨이크필드가 19시즌을 뛰는 꾸준함을 보여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선발, 중간계투, 마무리, 패전전용 중간계투를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때론 '모욕'을 느끼면서도 그는 팀이 요구하는 자리에 앉자 있었다. 불펜 강등에 따른 항변도, 트레이드 요구도 하지 않았다. 너클볼러로 전향하지 않으면 팀에서 쫓겨날 수 밖에 없었던 데뷔 1년차 상황을 19년 동안 반복 또 반복해왔던 것이다. 그것도 극성맞은 팬으로 치면 뉴욕 양키스와 더불어 최고라 하는 보스턴에서 말이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팀 웨이크필드에 대해 기억하고 있는 순간은 200승을 따낸 순간보다, 펜웨이파크의 그린 몬스터를 뒤로하고 은퇴기자회견을 하는 순간보다 2003년 앙숙 뉴욕 양키스와 붙은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쉽 7차전의 그 순간일지 모른다. 팀 웨이크필드는 1차전 6이닝 2실점 승리, 4차전 7이닝 1실점 승리로 시리즈 MVP로 거론되고 있었다. 게다가 팀이 8회까지 5-1로 앞서가고 있는 상황. 85년 만에 밤비노(미국 메이저리그의 보스턴 레드삭스가 1920년 홈런왕 베이브 루스를 뉴욕 양키스에 트레이드시킨 후,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지 못한 것을 루스의 애칭인 밤비노에 빗댄 표현)의 저주를 풀 수 있는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그러나 8회 동점허용. 결국 연장 10회 월드시리즈 진출을 대비해 휴식을 취하던 팀 웨이크필드도 출격한다. 10회를 잘 틀어막고 맞이한 11회 말. 팀 웨이크필드는 애런 분에게 끝내기 홈런을 맞는다. 밤비노의 저주를 깰 수 있는 기회를 날린 장본인이 되는 순간이었다. 뉴욕은 환호했고, 보스턴은 절망했다.


 


다행히 다음해인 2004년. 또다시 리그챔피언쉽에서 뉴욕 양키스와 맞붙은 보스턴은 역사적인 리버스스윕(3게임을 진 뒤 4게임을 이겨버리는)으로 월드시리즈에 진출해 내셔널리그 우승팀 세인트루이스와 만난다. 월드시리즈 1차전에 선발로 등판한 팀 웨이크필드는 4이닝을 채우지 못하고 5실점 한 채 강판되었으나 불펜의 선전으로 승리. 2차전 실링의 6이닝 1실점(무자책), 3차전 마르티네스의 7이닝 무실점, 4차전 데릭 로의 7이닝 무실점 호투로 시리즈를 스윕하고 월드시리즈 우승을 챙긴다. 아마 우승을 못했더라면 그에게도, 너클볼에게도 지울 수 없는 낙인이 찍혔을 것이다.


 



2003년 홈런의 순간(좌) - 좌절의 순간 (우)


 


2007년 보스턴은 또 한번의 우승을 경험 한다. 2009년 팀 웨이크필드는 메이저 데뷔 13년 차에 처음으로 올스타에 선발된다. 하지만 경기에 출전하진 못했다. 2011년 마지막 시즌에 거둔 성적은 7승 8패 방어율 5.12. 3,006이닝(통산 3224.1이닝)으로 보스턴 프랜차이즈 사상 최다 이닝 기록을 세웠고, 팀 최고령 승리투수(44세)가 되었으며, 단일팀(보스턴) 17년 활약이라는 투수 최장기록도 세웠다. 통산 2,000 탈삼진, 200선발승 이라는 기록도 만들어냈다. 2012년까지 계약이 되어있었고, 18승이 모자란 보스턴 팀 사상 최고승인 192승(사이 영, 로저 클레멘스)에 도전해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은퇴를 결심했다. 화려한 수상경력을 가지고 있지 않으나, 1995년 보스턴 이적 첫해 활약 (16승 8패 방어율 2.95)으로 아메리칸 리그 재기선수상을 받았고, 2010년 사회공헌이라는 가치를 실현한 선수에게 주는 로베르토클레멘테상을 수상했다. 조직에서 외면 받고,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너클볼러다운 수상경력이라 할 수 있겠다. 2012년. 팀 웨이크필드는 조용히 마운드를 떠났다.


 


 


조상구


 


'일어나요. 빨리. 처자식 굶기고 싶지 않거든 어서 일어나서 던져요'


 


마동탁에게 배팅볼을 던져주다 마동탁에 친 공에 맞고 쓰러진 유성구단의 후보 투수 조상구에게 마동탁이 던진 말이다. 하지만 조상구는 기분 나빠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 그런 조상구의 볼을 마동탁은 쪼개면서 홈런으로 연결시켰다. 마동탁... 씹쉐이.


 


조상구를 눈 여겨 본 전 유성구단 감독이었던 손병호 감독은 그가 준비중인 외인구단에 그를 초청한다. 손감독이 설정한 외인구단의 입단 조건은 '박대받고, 설움받는 선수'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박대받고, 설움받은 오혜성, 백두산, 최경도, 하국상, 외팔이 최관, 그리고 조상구 이렇게 여섯이 무인도로 지옥훈련을 떠난다.


 


지옥에서 돌아온 외인구단. 마동탁의 유성구단과 결전의 날을 앞두고 손병호감독은 선발로 조상구를 선택한다. 조상구는 경기에 앞서 아들에게 표를 건내지만 아들은 가지 않겠다고 한다. 몇 해 전 마동탁의 바지가랭이를 붙잡고 '연습상대로라도 제발 할 수 있게 해달라'며 애원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본 탓이었다. 마운드에 선 조상구. 하지만 그는 예전의 조상구가 아니었다. 9이닝 4안타 무실점 완봉승. 아들도 결국 눈물을 흘리며 기립박수를 보냈다. 조상구가 마동탁의 최강 유성구단에게 물 먹인 구질은 바로 손가락까지 잘라가면서 체득한 '너클볼'이었다.


 



손가락을 잘라 완성한 조상구의 너클볼


 


찰리 허프와 손병호


너클볼러들의 유대감은 다른 투수들과는 달라 보인다. 선배들은 후배들의 도움 요청을 마다하지 않는다. 자세를 봐주고,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그런 유대감을 통해 너클볼은 더치 레오나드에게서 시작되어 호이트 빌헬름(너클볼 마무리투수, 마무리 투수로 최초 명예의 전당 헌액), 필 니크로와 찰리 허프를 거쳐 팀 웨이크필드에게 전수되었다. 현재 팀 웨이크필드에 이어 R.A 디키가 너클볼러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R.A 디키 역시 팀 웨이크필드에게서 이어진 자신의 너클볼에 대해 너클볼러간의 유대감에 의한 결과라 주저 없이 말한다.


 


'(감독은)당장에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만 해서는 안 된다.

잘 못하더라도 지켜봐 줄 수 있어야 한다.


 


현재 활동중인 R.A 디키의 멘토인 찰리 허프가 한 말이다. 첫 선발 데뷔에서 완투승을 거두고도 마무리로 12년 동안 활동하고 나서야 다시 선발에 나서게 된, 그 역시도 너클볼러 였다.


 


배팅볼 투수인 조상구에게 모욕감을 주던 마동탁에게 손병호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2억짜리 선수답게 굴어. 프로 세계에선 선후배 관계도 없는 줄 알아'


 


마동탁은 팀 최고 스타였다. 아무리 감독이라도 함부로 할 수 없는... 마동탁이 불만스런 목소리로 '왜 지랄이냐'고 말하자 손병호감독은 시원하게 한마디 해준다.


 


'닥쳐 씹새야'


 


어깨가 망가져, 혹은 타자로서의 가능성을 구단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해 찾아온 선수에게 찰리 허프는, 배팅볼 조차 제대로 던지지 못해 한참 어린 후배에게 욕지거릴 듣던 조상구에게 손병호 감독은 이렇게 말하지 않았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천 번은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고 말이다.


 



손병호감독


 


너클볼을 받아랏


우리는 지금 성공시대를 살고 있다. 성공한 대통령이 '다 해봐서 안다'는 지 자랑을 쏟아내는, 성공보장 이벤트인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넘쳐나고, 성공한 사람들이 나와서 성공했으니 이제 힐링이 필요하다 대놓고 판을 벌리는 그런 시대, 바야흐로 성공시대에 살고 있다.


 


성공한 이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나도 힘들었다고' '그럼에도 성공했다'고 말이다. 성공한 이들이 실패를 거듭하고 있는 사람들 앞에 나와 '힐링'이 필요하다 떠든다. 성공이 아닌 평범한 삶에도 쉽게 접근하지 못해 아파하는 사람들에게 '왜 그러고 있냐' '문제없다' '다 그런 거다' '나도 이렇게 성공했다'고 말한다.


 


우리 함께 사는 곳엔 아픈 사람들에게 '성장통'이라 훈수 두는 사람과 '나도 아파 봐서 안다'는 무용담을 말하는 이들로 넘쳐난다. 아픈 이유에 대 진심으로 묻거나, 보건소를 많이 짓자고, 병원을 많이 짓자고, 보험의 혜택을 늘리자고 말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사람은 있는데, 아프게 해서 미안하다는 사람은 별로 없다. 천 번은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는 어른은 있는데, 천번도 흔들리지 않은 어른 탓이라고 고백하는 어른은 거의 없다. 자신이 힘들게 성공했다 말할 뿐이지, 누가, 왜 힘들어하는지 관심을 가지고 말하지 않는다. 멘토에 열광하면서 멘티에겐 관심을 주지 않는 불공평함이다. 쳇


 


우연히 김난도 교수의 '천 번은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의 출간소식을 접해 듣고, 너클볼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너클볼러 팀 웨이크필드가 떠올랐다. 나는 그를 오랫동안 사랑해왔다. 너클볼이 꼭 자신과 같다는 말을 꼭 내가 한 말처럼 입에 달고 살았다. 손에서 공 떠나면 끝이라는 책임과, 인생 언제 어찌될지 모른다는 불확실에 동의했다. 그렇다고 내게 조상구처럼 손가락을 잘라 성공할 그럴 용기는 없었다. 그만큼의 성공을 꿈꾸지도 않았다. 그저 때론 '네 탓이 아냐'라고 말해줄 누군가와, 함께 아픔을 나눌 '유대'가 필요했었다. 그 생각에 너클볼러라는 나의 닉네임도, 팀 웨이크필드가 떡 하니 걸려있는 프로필 사진도 10년 넘게 그대로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보지 않았지만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도 보게 될 것 같지는 않다. 이 힘든 시대에 필요한 건, 어른들의 훈계와 독려가 아니라 진심 어린 '반성', 함께 나누고자 하는 '유대'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 청춘이라는 너클볼러들에게 필요한 것이 '아픔을 극복하고 최고가 되라'는 성공의 독려인지, 아니면 조금 더 믿고 기회를 주고자 하는 신뢰와 유대일지 한번쯤은 생각해 볼 일이다. 세상 모든 청춘들이 '퐈이어 볼러'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니까 말이다.


 


** 릭키 스턴, 앤 선드버그감독의 다큐멘터리 '너클볼'과 김형준기자의 기사 일부를 인용했습니다.

 


 


 


너클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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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uckleballe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