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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9. 4. 화요일

10일 계약 FA기자 UMC/UW

 

 

 

 

트로트 유감에 유감이... 유감...에 교차하는 만감

 

 

 

 

 

나는 왜 딴지의 필진들을 만났을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나는 왜 딴지의 필진들을 만나 술을 마시러 갔을까.

 

 

 

 

 

그보다 ㅅㅂ 존나 중요한 것은, 나는 왜 딴지의 필진들을 만나 술을 마시러 갔을 때 부편집장 필드도그의 유연한 혀놀림에 꽁꽁묶여 아 예 예 그럼 기사를 써드리겠노라고 고개를 주억거렸을까.

 

 

 

 

 

나는 논설우원 파토너클볼러, 춘심애비아외로워의 필력을 찬미하거나 좌린의 독특하고도 인간적인 앵글에 대해 칭찬을 늘어놓고는 정치부장 물뚝심송의 새 책에 사인을 받는 등 일련의 애독자행위를 일삼은 뒤 조용히 귀가하면 그만이었을텐데. 인사도 하지말 걸. 없는 사람 취급할 걸.

 

 

 

 

 

석달간의 고민이 이어진 가운데, 최종마감을 통보받고는 글을 쓰려하자 태풍이 왔다.

 

 

 

 

 

태풍이 흔들리는 나뭇잎을 비주얼 삼아, 뽐을 내며 본 기자의 집 앞을 지나간다. 정찰을 위해 창문을 열어 밖을 보면, 거대한 바람이 만나는 거리거리마다 그 큰 바람의 모양을 똑같이 닮은 작은 바람들이 나타나 나선형의 상승기류를 그리며 명멸을 거듭한다. 바람에 올라앉은 비닐봉지들이 울 집 맞은편 3층 당구장 창밖에서 춤을 춘다. 격렬한 움직임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이내 창문을 닫는다. 본 기자가 <아메리칸 뷰티>에서 봐서 안다. 저거 오래쳐다보는 사람의 아버지는 옆집 아저씨를 살해하게 되더라.

 

 

 

 

 

창문을 닫아도 보이는 저 편 당구장 아래 주차장 구석에는, 그렇지 않아도 저녁때마다 모여 끽연(喫煙)과 군무(群舞)를 즐기는 동네 양아치 친구들이 휴교령에 발맞추어 낮시간부터 나와 서로의 허벅다리를 더듬으며 웃고 떠든다. 아이들의 오늘 장난 소재는 뒤집어진 우산. 우산을 하늘 위로 날리며 본 기자가 기 언급한 작은 바람의 나선형 상승기류와 함께 놀고 있다. 내 나이꺼정 쳐먹고나면 지금 저 순간이 얼마나 행복한 장면으로 마음속에 남을지를, 저 미래의 희망들이 알 리가 없다.

 

 

 

 

 

이면을 모두 파악해도 행복할까?

 

 

 

 

 

난반사하는 모든 빛의 각도와 광원이 파악되어도, 파악된 것들이 바이너리 코드의 모임이 되어 분기를 이루고는 비트맵에서 jpeg으로의 압축과정을 거쳐도, 내 눈에 보이고 해석되는 것은 여전히, 내가 처음 차를 샀던 날 무작정 달려간 아름다운 금강 휴게소에서의 셀카 배경의 추억으로만 존재할 수 있을까?

 

 

 

 

 

입에 문 담배의 차콜필터 타들어가는 줄을 모르고 웃는 낯으로 우산을 날리며 노는 동네 양아의 순수한 행복이, 집안에서 자식걱정하느라 안절부절하며 창문에 덧댄 신문지에 매시간 물뿌리고 앉아있는 자기 어머니의 불안으로 변화하기 위한 필수전제는, ‘행복의 조건이 분석된 이후’라는 상황의 충족인가?

 

 

 

 

 

그렇다면, 그간 트로트 유감트로트 유감에 대한 유감, 트로트 유감 유감이... 유감으로 날선 공방을 이어온 너클볼러와 춘심애비의 온라인 나르시즘 대결에, 본 기자가 절이지 않은 푸성귀와도 같이 별 재미도 없는 그간의 연구결과를 디민다면, 우리 셋은 여전히 행복할 수 있을까? ‘그냥 트로트에 대한 간단한 유감에 지나지 않았는데, 네 놈이 잡지식을 갖다 대놓으니 음악 듣는 재미마저 사라지는 것 같다!’며 너클볼러와 춘심애비가 내게 치도곤을 안기지는 않을까?

 

 

 

 

 

[caption id="attachment_103459" align="aligncenter" width="622" caption=" "][/caption]

 

 

심지어 나는 저들과 친하지도 않은데 말이다(두 번 만났다). 게다가 술자리에서 구경해 보았더니 너클볼러는 여성들에게 인기가 매우 많았다. 본 기자 30대가 꺾여가는 현재까지 살아본 바 여자에게 인기 많은 남자에게 시비를 걸어서 좋은 결과를 본 기억이 없다. 단 (씨발) 한번도.

 

 

 

 

 

 

 

 

두 사람의 논쟁의 발단은 무엇일까? ‘트로트는 콜로니의 증거’라는 서사가 기분나빠서 인가? 아니면 트로트나 컨츄리와는 무관하게 안그래도 이미 우리 다 늙었는데 서로가 서로를 늙고 외로운 존재들이라며 디스했기 때문일까?

 

 

 

 

 

모르겠다. 그냥 써봐야겠다. 사실 저 두 사람보다 더 무서운 것은, 양순하게 내 오늘 먹을 미네랄이나 챙기고 마는 민초 SCV와 같은 본 기자를, 자신이 언덕럴커라도 된 양 내려다보며 잊을만하면 온/오프 가리지 않고 기사마감의 촉수를 내 뻗는 필드도그다.

 

 

 

 

 

[caption id="attachment_103460" align="aligncenter" width="182" caption=" "][/caption]

 

 

민간인에게서 기사를 빼앗아간다는 괴물(상상도). 실제로는 저렇게 생기지 않았다. 허나 나처럼 문사 노릇과는 거리가 먼, 강남대로를 거닐던 장삼이사에서 랜덤하게 추출하면 하나 나오는 흔한 일반인이 강압을 이기지 못해 무급단기계약FA기자가 된 것을 보면 그는 괴물이 맞다.

 

 

 

 

 

[caption id="attachment_103463" align="aligncenter" width="536" caption="좌로부터 남진, 나훈아, 빌리레이사이러스, 가스브룩스."][/caption]

 

 

 

 

 

장르를 ‘완성했다’는 수사를 평론가들이 편하게 갖다붙이고 싶어하는 인물들의 공통점은 폭넓은 대중인지도와 (급상승의) 한순간(이 여러차례 반복되며) 빵 터진 폭발적 인기이다. 아마도 평론가들의 머릿속에는 ‘완성’을 ‘익숙함’, ‘대중성’과 등치시켜버리면 독자들이 이에 속아 자신이 쓴 글의 신뢰도가 보장될 것이라는 믿음이 들어앉아 있을 것이다. 평론가의 믿음이 데블스 에드버킷 뺨치도록 견고해져(아마도 샤워하다 허벅지 사이의 고샅을 닦거나 라면의 건당근을 씹을 때마다 자기암시를 되풀이할 것이다 그래 이 가수가 완성이지 아암하고) 대중을 속여넘길 수준이 되고나면, 이것이 대중의 호응과 더불어져 음반제작사에게 공포를 선사하고, 음반업계는 이에 대응하여 ‘완성도 높은 뮤지션’들의 개짝퉁을 난립시키고, 그 가운데 괜찮은 뮤지션들이 간간이 나타난다. 이것이 대중음악의 역사다.

 

 

 

 

 

남진과 나훈아, 빌리 레이 사이러스가스 브룩스는 자신의 장르에서/ 자신의 등장이후/ 자신의 영향력이/ 다른 누구보다도 강했던 뮤지션들이다. 본 기자 뻥카치건대, 해 장르에 대한 대표성으로 따질 것 같으면 아무 말이나 막던지는 무례한 영국인 아무개 갤러거씨 만큼의 중량감이 있는 양반들이다.

 

 

 

 

 

 

 

서울역 야외에스컬레이터 아래에 누워지내는 현자에게서나 들을 법한 귀한 무학의 통찰이 공중파를 탈 수 있는 이유는 인터뷰이가 장르를 대표하는 뮤지션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음반 발매 이후 대중들이 먼저 들고일어나 시장이 뒤집어졌고, 논단은 이들을 완성이라 칭했으며, A&R들이 복제상품을 양산하며 역사가 굳어졌다. (남진 나훈아의 경우 조용필이라는 후대의 변수가 존재하나, 조용필은 당시 거의 모든 음악장르를 빨아들인 블랙홀이었으며 그의 존재에 대한 장르론 해석이 아직 다 이루어지지도 않았다. 뭔소리냐면 프로토타입으로서의 남진/나훈아의 존재의 아우라가 아직도 살아있다는 것이다.)

 

 

 

 

 

흔히 5세대 컨츄리의 대표주자라 불리우는 빌리 레이 사이러스와 가스 브룩스의 등장은 씨발 존나 대소동이었다. 1992년 데뷔앨범 의 첫 싱글 ‘Achy Breaky Heart’는 미 전역에 ‘에키 브레이키 댄스’를 유행시켰고, 할렘 언저리의 흑형들 조차 ‘아 ㅅㅂ 재밌음ㅋ’을 외쳐야할 정도로 강압적인 전파수준을 갖추고 있었다. 1990년의 이상은은 조용필의 시대를 80년대로 한정짓는 가요계의 새로운 국민영웅이 될 것으로 (순간적으로나마. 그도 그럴 것이 그 시절 이상은 선생처럼 입지 않았거나 하나 이상의 선생의 코디 아이템을 지니지 않았던 여학생은 롑흔리나에게 지랴랸다고 놀림을 받아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주목받았고 유수의 연예지들은 이를 ‘이상은 신드롬’으로 일컬었는데, ‘Achy Breaky Phenomenon’은 전국을 뒤덮는 파급력에 있어서만큼은 그와 비스끄무리했던 것으로 보인다.

 

 

 

 

 

 

 

메이저 음반사 계약을 따내고는 흥분에 피임을 잊고 말았던 빌리 레이 사이러스는 그해 나온 딸내미를 잘키워 가업을 잇게 했다. 사진은 데스티니 호프 사이러스(졸라 유치한 본명) aka 마일리 사이러스.

 

 

 

 

 

‘테네시의 엘비스’로 추앙받는 가스 브룩스는 본 기자 앞서 설명한 ‘장르의 완성’의 구현원리에 가장 가까운 인물이다. 89년 데뷔부터 2012년 상반기까지 128,000,000장 쬐끔 넘는 판매고로 미국 내 솔로 아티스트 중 고작 2위(1위는 진짜 엘비스. 브룩스와 요 몇 년 새 이 부문 타이틀을 놓고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를 기록 중인 가스 브룩스는 2차대전시기에 정립된 힐빌리 부기, 홍키통크, 블루그래스(다 장르 이름이다. mp3태그 붙일 때 본 기억들 있을 것이다. 독자열분덜이 해 장르의 스테레오타입을 익숙하게 들어둔 경험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고전 미드 <초원의 집>에서 였을 것이며 ‘아 기억난다’ 싶을 경우 너님은 1979~1983 사이에 최소 문맹을 벗어난 수준이었을 정도로 지금 늙어있다!)를 집대성한데다 당시 횡행하던 얼터너티브 락의 전자악기들까지도 채용한 음악을 만들어, 70년대에 랜디 트래비스가 들고 나온 신전통주의 운동(요새는 얼터너티브 컨츄리라고도 한다)의 움직임을 납작하게 뭉개며 컨츄리의 (진짜 뻥안까고) 대명사로 자리매김했다.

 

 

 

 

 

[caption id="attachment_103470" align="aligncenter" width="444" caption="천조국의 흔한 천만장 팔린 데뷔앨범. Garth Brooks(1989)"][/caption]

 

 

 

 

 

주법이야 장르별로 명확하게 다르지만, 원래는 통 현악기나 덜시머 계열(이 색기가 중요. 후에 다룬다)의 조곤조곤한 악기들로 만들어내던 리듬감의 자리에 일렉기타를 중용하다보니, 일단 당장은 더 신났다. 우리의 고정관념 속에서 돌리 파튼이나 카펜터즈로 자리잡혀 있는 얌전한 컨츄리가 컨츄리와 컨템포러리 차트를 벗어나 팝 차트로 진출하는 교두보를 저 두 양반이 제대로 확보한 것이다(20년 뒤가 지난 지금에는 한국인이 흔히 ‘LA메탈’이라는 이름으로 착각하는-세상 어디에도 그런 표현 없다- 헤어 메탈을 이어가는 밴드들이 사이러스와 브룩스의 계보를 이어받기도 했다. 물론 동일 장르의 선배인 본 좁이익스트림의 음반에서도 ‘어덜트 컨템포러리 팝’이라는 이름으로 우회명명된 컨츄리 트랙들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컨츄리 신전통주의 운동의 대표주자 랜디 트래비스. 신전통주의가 40년대식 복장, 혹은 거세지 않은 리듬 등을 강조하다보니 가수의 가창력이 중요해져서 장르이름과 달리 후대에는 발라드와 혼합된 ‘얼터너티브 컨츄리’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레이디 시벨럼이나 테일러 스위프트를 생각하면 쉽다. 사진은 이달 초에 음주운전을 하다 걸린 뒤 단속경관에게 총질을 하겠다며 난동을 피우다 경찰서에 들어가 스티커 사진을 찍은 랜디 트래비스. 그는 키가 69래요.

 

 

 

 

 

컨츄리가 팝/락, 혹은 얼터너티브 락을 만난 90년대 초가 오늘 본 기자가 문득 뒤를 돌아보았더니 가장 크게 눈에 들어온 분기였다면, 트로트가 오늘의 한국인들이 이해하는 ‘트로트’의 모습을 형성하기 시작한 것은 그 시초인 일제강점기를 건너뛰면 또한 가장 커보이는 실루엣이 남진과 나훈아다. 20세기가 도래한 후 언제나 그러했듯 대중음악장르가 수입되고 수입되다가 마지막으로 도달하는 종착역이었던 한국(지금의 케이팝이 수출하는 것은 음악이 아니라 문화인데, 좋은 뜻이기도 하고 나쁜 뜻이기도 하다. 나아중에 다른 글에서 다루기로 하자)에서 장르별로 가수를 구분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한국적 발라드의 계보의 뿌리에 위치하는 배호나 김정호, 소울의 창법을 견지했던 최희준, 통일주체국민회의 이후 시대에 신민요하면 떠오르게 된 유일한 인물인 하춘화의 노래 등을 죄다 비슷한 무대, 비슷한 TV프로그램에서 보거나 들을 수 있었고, 실제로 그 자신들의 인터뷰에서도 장르를 구분지어 문화적인 금을 긋는 노력은 딱히 보이지 않는다.

 

 

 

 

 

여기까지가 본 기자의 논지를 풀어내기 위한 앞대가리이다.

 

 

 

 

 

(上)편을 거의 다 쓴 현재 본 기자 스스로에게 고백컨대 A4 다섯 장 썼는데 대단하거나 새로운 얘기는 하나도 안나왔다.

 

 

 

 

 

그도 그럴 법 한 것이

 

 

 

 

 

미국인들에게 빌리 레이 사이러스나 가스 브룩스에 대한 이야기를 해도,

 

 

 

 

 

한국인들에게 남진과 나훈아에 대한 이야기(심지어 웬만한 아저씨 아줌마들은 대한민국 팬클 현피대전의 시조가 저 두사람인 것도 정확히 알고 있다. 컴터 놓고 가서 물어봐라)를 해도,

 

 

 

 

 

여기까지는 누구도 어렵게 느끼지 않을 전제이다. 1. 대명사에 가까운 활약을 한 2. 지난 수십년 사이의 가장 거대한 피규어들 3. 그들의 음악이 해 장르의 스탠다드로 자리매김... 했다는 이야기.

 

 

 

 

 

나와 DNA가 같은 악플쟁이들이 궁금해하는 바는 그 다음 이야기다.

 

 

 

 

 

그래서, 트로트는 컨츄리보다 기원과 변천과정에 있어 주체성이 떨어지나?

 

 

 

 

 

어디서 어떻게 왔길래?

 

 

 

 

 

결론 보류하고 기다려주시라.

 

 

 

 

 

물론 본 기자 다음 편에서도,

 

 

 

 

 

 

 

아주 듣도보도못한 이야기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Ps. 본 기사에서 언급한 한국의 뮤지션들은 왜 홈페이지도, 블로그 계정도 하나 없을까. 그렇게나 대단한 인물들이. 우리나라에서는 세대 x = 미디어 x’ 등식이 사실에 수렴하다니 아직 2G폰 문자쓰는 엄두도 못내시는 춘부장이 떠올라 속상하다.

 

 

 

 

 

UMC/UW

트위터 : @umcu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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