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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떠났다. 3월 10일 이후 오랜만에 3주 만에 맞는 역사에 기록될 만한 즐거운 금요일이다. 요즘 웬만한 前 사회 지도층들은 다 이사간다는 서울구치소, 그녀도 친구 따라 떠났다. 이미 많은 언론을 통해 독방 구조도 나오고 식단도 나왔다. 그러니 박근혜 전 대통령이 혼밥 먹고 설거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다. 그러나, 여전히 24시간 동안 서울구치소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생기는지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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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겨레>



본지는 서울구치소에 대해 '좀 아는' 사람으로부터 직접 얘기를 들어보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90년대와 2000년대, 두 번의 입주로 무려 2세기의 서울구치소를 경험한 A씨를 어렵지않게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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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간 내줘서 감사하다. 구치소에 관한 기사를 쓰려고 하는데, 본 기자의 과도한 청렴함으로 구치소와는 거리가 너무 먼 삶을 살아온 탓에 도움이 필요하다. 구치소하면 좀 무서운 이미지가 있는데, 처음 구치소에 들어간 사람이 겪는 일을 말해줄 수 있겠나?


조사를 다 받고 들어가면 새벽이다. 도착하면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이 그 작은 방에 10-11명씩 칼잠을 자고 있다. 도착하면 신고식이 시작된다. 아, 쫄지 마라. 신고식이라고 때리지 않는다. 다들 들어올 때 자기 몫의 판결문을 들고 들어오는데, 그걸 방짱에게 제출하면 방동기들이 같이 읽어본다. 내가 밖에서 17:1로 싸워 누굴 다 발랐다느니 하는 허세 다 필요 없고 판결문 읽으면 다 나온다. 그걸로 우리끼리 새로 온 놈이 얼마나 나쁜 놈인지 본다. 조금의 텃세는 있다. 잘 자리를 따로 안 만들어줘서 첫날은 거의 서서 잘 수도 있다. 물론 박근혜는 독방을 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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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국선도 홈페이지



2. 이번에 구치소에 새로 입주하는 분 별명이 바른생활소녀다. 직접 겪어본 바로는 바른생활소녀의 경우 구치소 생활에 잘 맞겠나.


음, 바른생활이 좋긴 한데… 구치소에서는 일과가 없다. 일어나는 시간과 자는 시간이 있을 뿐. 하루 30분씩 운동하는 것 빼고는 늘 방 안에 앉아서 계속 앉아있어야 한다. 방도 되게 작다. 독방도 작고, 혼방도 사실 엄청 작다. 그게 교도소가 사람에게 벌을 주는 방식이다. 이건 어지간히 집에만 있는 집돌이/집순이가 아니면 못 버틴다... 아... 그분이 알아주는 집순이라고...? 집에서 거의 안 나온다고...? 아휴 그럼 뭐 체질이네...



3. 그래도 매일 각자 하는 업무가 있을텐데, 그중에 추천할만한 꿀보직 같은 거 없나?


형이 떨어진 애들만 일한다. 교도소에서 징역을 사는 애들은 형이 떨어졌으니 노역을 하지만, 서울구치소 수감자들은 미결수다. 엄밀히 따지면 도망칠까봐 잡아두는 거지 죄수가 아니라는 거. 그래서 일은 안 시킨다. 하루 종일 방안에 있는 거다.


그래도 일할 게 있긴 하다. 나같은 경우는 통역을 했었고, 이발하는 것도 했었다. 일 하고 싶으면 신청하면 되지만 필요 없어서 어지간하면 안 시킨다.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을 데려다 쓰면 되기 때문에 자리도 없다. 그래도 죽어도 일하고 싶다면, 꿀보직인 우편물 정리를 권한다. 그건 행정실 안에서 교도관들과 같이 보낸다.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하다. 우편물 전해주며 빵도 받고, 참 좋은 일이야. 그거랑 원예. 계속 돌아다니면서 식물 가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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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원예가 더 좋겠지만, 생각해보니 키우던 개도 내버려두고 나오시는 분이라 현실적으로 힘들 것 같다. 음, 일은 힘들겠고… 독방에서 지내면서도 사람들과 친해질 방법은 없나.


일반 독방은 아닐거다. 박근혜 정도면 전두환, 노태우처럼 전 대통령 ‘예우’는 해줘야 하니까. 보통 10명~ 11명 지내는 방을 개조해서 안에 책상도 좀 놔주고, 바닥이 아니라 침대나 매트리스도 하나 놔주고.. 그 정도는 해줄거다. 예우는 해준다. 죽일년이든 아니든. 면회는 특별면회를 할텐데, 따로 마련된 장소에서 하루 종일 얘기할 수 있게 해주니 아마 거기 계속 있을 거다. 변호사 만나서 농담도 하고… 간수가 받아적긴 하지만, 아마 애들이랑 통화도 잠깐 시켜주고 할 거다.


그리고...독방은 얼마든지 짜웅(로비)을 할 수 있다. 간수랑 짜웅만 하면 들리는 말로는 치킨도 시켜 먹는다고 하더라. 전화는 안 돼도 카톡같은 건 하게 해주고 그런게 가능하다고 들었다. 독방에서도 운동 시간이 있는데, 여기서는 운동도 혼자 시킨다. 가운데 컨트롤타워가 있고, 각자 벽으로 갈라진 상태에서 혼자 걷는다. 혼방(여러 명이 수감되는 방)에서는 독방 소식 전해듣기도 어렵고 누가 있는지 모를 때도 있다. 사람들이랑 친해지려면 혼방으로 오면 된다. 말상대 없이 지내는게 너무 외로워서 일반인 중에서는 방을 옮기려고 하는 경우도 있다. 독방에서 혼방으로.



5. 그런데 일반인이 아니지 않나. (aka 여왕폐하, 마마) 혼방에서는 이런 사람들 대우가 좀 다른가?


혼방에서 대우가 다른 경우는 세 가지다. 방짱, 부방짱, 그리고 범털. 혼방은 10명이서 지내기 엄청 좁다. 방짱은 그 중에서 유일하게 제대로 누워서 잘 수 있는 사람이다. 방짱, 부방짱 선출에는 나이고 지위고 연고고 우리 아빠 누구고 상관 없다. 그냥 들어온 짬대로 정해진다. 그러니 구치소 신입생인 박근혜는 방짱 되긴 좀 먼 일이고…

범털은 가능할 것 같다. 범털은 경제활동을 하다 들어온 사람들인데, 박근혜도 경제적 공동체 활동 하다 들어왔으니 자격 충분하다. 범털은 영치금이 많다. 그 방에서 시켜먹을수 있는 빵이나 훈제치킨, 그 사람이 다 쏜다. 그래서 아무리 꼬붕이래도 이 사람은 설거지도 안하고 청소도 안하고 거의 준방짱 대우를 해준다. ‘우리를 먹여 살리시는 분이니까 편하게 쉬세요.’ 하는거지. 돈 많은 범털이 있는 방은 유통기한 넘기는 빵이나 우유가 생길 정도로 풍족하다. 그래서 남는건 강력범죄 애들 모여있는 방에 기부하면 저-쪽에서 “잘 먹겠습니다!!”하는 우렁찬 소리도 들린다.



6. 처음에 낯설고 무서웠던 것이 있었나? 아니면 (이런 일은 없어야 겠으나) 혹시 다시 가게 된다면 고쳐줬으면 싶은 것은 어떤게 있나.


안에서의 생활은 생각보다 풍족하다. 그런 의미로 부족한 게 없으니 고쳐줬으면 좋겠는 것도 없다. 다만 처음에 낯설고 싫었던 건 있다. 옷 홀딱 벗겨서 똥구멍 검사하는거 진-짜 싫어. 들리는 말로는 거부할 수도 있다고 하는데, 누가 그 순간에 거부하겠나. 구치소입장에서는 질병이 있는지, 그 중요한 부위에 뭐라도 숨겨왔는지 확인을 해야 하는데, 거부할 인간 없을 거다. (회상중)자, 양발 어깨 넓이로 벌리세요. 숙이세요. 그리고 뒤에서 본다. (다시 회상중) 더 숙이세요. 힘빼세요-  쪼이면 안 보이니까. 그거 누구나 하는데 진-짜 싫다. 박근혜는 안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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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지금까지 들어보니 아무래도 청렴한 본 기자는 구치소에 들어가기는 어려울 것 같다. 대신 밥을 굶는 언니를 위해 꼬옥 사식을 넣고 싶다. 그럼 우리 언니가 좋아하는 음식 싸들고 가면 되는 건가.


음? 구치소 밥이 생각보다 풍부하게 나온다. 한 달 식단이 나오는데 오차가 거의 없고 종류도 풍부하다. 운동량이 적으니 기름기가 많은 것보다 담백하게 나오는 편인데, 고기도 왕왕 나온다. 우리끼린 우리같은 사람들을 이렇게 잘 먹여서 가끔 미안했다. 그러니 아마 그 언니도 잘 먹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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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사식을 넣고 싶다면, 구치소에 가서 구입하면 된다. 밖에서 우리 언니가 평소에 좋아하던 핫바같은거 사간다고 넣어주지 않는다. 외부음식은 안 되고, 구치소 안에 메뉴판이 있으니 거기에서 골라서 구입해 넣어주면 된다. 혹시 그 언니가 독방 못쓰고 혼방에 가게 되면, 방털일 수도 있으니 같은 방 쓰는 수감자들 인원 수 알아보고 인원수 맞춰줘라. 안 그럼 센스 없다. 종류 다양한 것보다 한 종류를 인원 수대로 챙겨주는게 좋다. 어떤 종류 몇 개 필요하냐고 물어봐라. 그리고 웬만하면 빵이나 우유는 그만 줘도 된다. 방에 딴 애들이 받아온 것 이미 많을 거다.



8. 근데 면회하러 간다고 해도, 알지도 못하는 사람인데 나와주겠나? 면회 실패하면 사식도 못 넣어주는 것 아닌가?


일반인들은 모르는데, 방문 달그락 열고 신발 신고 나가는 것 자체가 꿈인데 어느 미친놈이 안 나가겠나. 나간다. 미결수는 하루에 한 번 면회가 가능하고, 변호인 접견은 무제한이라 하루에 몇 번도 갈 수 있다. 그냥 아침 일찍 가서 면회 신청하면 ...누구지? 하면서 엄청 설렌 상태로 나와줄 지도 모른다. 막상 나갔는데 진짜로 모르는 사람이 팬인데요...하고 앉아 있으면 수감자 입장에서는 하루 날리는 거다. 면회 온 사람 죽이고 싶을 거다. 그러니 목숨이 많이 아까우면 그냥 패스해도 좋다. 면회 안 가거나 못 만나도 영치금을 보내 필요한 것을 직접 구매하게 할 수 있다. 이건 구치소에 들어가면 박근혜만의 가상계좌가 생기는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누가 얼마를 넣었다고 박근혜가 볼 수 있다. 그러니까 박사모든 딴지든 넣을 수 있지. 가서 몇 만원 넣어주고 빵도 보내주고 그래라. ‘최고의 스타 화이팅!’ 이런 메시지도 좀 전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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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장시호는 의왕대학원에서 많이 배웠다고 했는데, 나에게 서울구치소는 이런 곳이었다고 할만한 것 있나.


감방은 한번 갔다 와볼만 하다. 하루 종일 방에 있으니 갔다 오면 생각이 많이 커져 있을 거다. 처음엔 이게 어디서부터 잘못된거지? 어떤 새끼가 나한테 배신을 때린거지? 누가 제보한거지? 별 생각 다 했다. 시간이 좀 지나면 이게 바꿀 수 없다는 걸 알게된 후에는 스스로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구치소 사람들이 대부분 일기를 쓰는 건 이런 이유다..



10. 마지막으로 구치소에 새롭게 들어오는 사람에게 ‘딴 건 몰라도 이건 꼭 좀 알고 가라’고 할 만한게 있다면? 참고로 그 사람은 아주아주 곱게 자라서 혼자 뭘 정상적으로 사거나 해본 적이 없으니 감안해줬으면 한다.


빨리 적응하시는게 좋다. 거기엔 개인을 위한 어떤 배려도 없고, 오로지 모두를 위한 제도만 있을 뿐이다. 개인적으로 안 맞거나 자기 입장에서 부당하다고 생각해서 그걸 개선하려 한다든지 하지는 않길 권한다. 그 방식이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이의 경험을 거쳐 형성된 거니까 괜히 본인이 고치려고 한다든지, 변호사에게 말해서 변경을 요구하는건 되게 쓸데없는 시간낭비다. 그냥 어차피 그렇게 된 거, 이 또한 지나가리라 생각하시고, 실제로 생각보다 빨리 지나가니까, 그 안에 있는 사람들과 유대관계 잘 해서 심리적으로 상처받지 않고 즐겁게 지내는게 좋다. 책을 읽는다든지, 사회에서 못 했던 걸 하려고 작정하면 꼭 단식원 들어온 느낌, 스파르타식 고시원 들어온 느낌으로 지낼 수도 있다. 언어를 마스터해서 나가는 사람도 있고, 평생 읽을 책을 다 읽을 수도 있고. 누군가에 의해 (엮여도 너무 엮여서) 감금됐다고 생각하지 말고, 자기계발에 집중하는게 좋겠다. 다이어트라든지 어학공부라든지. 나는 그 안에서 왼손으로 글쓰기를 연습했는데, 지금 디게 잘 쓴다. 진짜 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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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제 이사 그만 하고 싶다.


어렸을 때부터 전세살이로 집을 자주 옮기다 보니 어느덧 이런 생각이 들었다. 새집으로 이사가는 게 점점 귀찮고 싫어지는 시점이 있었다. 왜 사람들이 나이가 들수록 그렇게 내집에 정착하는 것에 집착하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그만큼 이사할 때 드는 정신적/육체적 에너지 소모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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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연합뉴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자기 집이 있으니 평생 그런 걱정 없이 살았겠으나 최근 들어 청와대에서 삼성동으로, 삼성동에서 서울구치소로, 짧은 기간에 이사를 두번이나 하며 어렴풋이 느끼고 있을 거다. 아... 이제 이사 그만하고 싶다.


그 마음을 아는 1인으로서, 또 이사하는 그녀에게 뭘 해 줄 수 있을까 생각하다 구치소 신입생을 위한 오리엔테이션을 만들었다. 이 오리엔테이션의 도움으로 거기서, 혹은 비슷한 환경에서 오래오래 정착하시길 바란다. 진짜 오래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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