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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야기


나의 손은 어느새 그 친구의 손에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진단을 내리면서... 만지다 보면 살짝 뭉친 곳이 있다. 그게 부드러워질 때까지 돌리고 누르고, 팔꿈치로 찍고. 어떻게 보면 안 시원할 수가 없는 거였다. 당연히 고객의 맘을 제대로 흔들었다. 안 그래도 넘치는 과자들 속에 초코렛들을 채우기 시작했다. 길가이버에 이어 동길보감을 펴낼 정도의 화려한 언술, 누구도 보지 못한 화려한 안마 기술...


이 뿐만이 아니었다. 교도관들에게도 환심을 사는 사건이 하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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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면, 친구들은 청소하려고 일어나는 날 그냥 앉아서 쉬라고 하고 대신 내 자리 치우는 걸 도와주었다. 뭐 굳이 움직일 필요가 없었다. 군대 말년병장마냥.


마사지 사건 이후로 난 시간만 나면 친구들과 함께 옹기 종기 모여 앉아서 쉴새 없이 과자를 까먹기 시작 했고, 받은 과자를 다시 친구들에게 돌려주면서 같이 까먹고. 그러다 보니 나의 수용소 생활은 힘들기 보다는 오히려 즐겁기까지 했다.


난 얘기를 할 때 온몸을 사용해서 얘기를 하는 편이다. 한국 동대문 쪽에 위치한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었을 때, 세일즈 스킬 강의를 한 적이 있는데, 좋은 반응을 얻었었다. 그때 내 강의를 들으신 지점장님 중 한 분께서,


"길 매니저는 얘기도 재미있게 하지만 표정도 그렇고 손짓 발짓이 재미있어서 좋아요."


난 칭찬을 들으면 그 후부터는 내 것으로 만드려고 한다. 남에게 칭찬을 들은 건, 다른 사람들도 좋게 볼 것이니까.


수용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난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스페니쉬) 들으면서도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제스쳐를 취해주었다. 나에 관한 얘기를 할 때도 큰 동작으로 무슨 말을 하나 듣고싶게, 크게 말해야지 주변 사람들의 관심을 살수 있으니까.


하루 장사 준비를 한다. 난 내 어깨를 주무르며 식탁에 앉아 있으면, 그 신호를 알아듣고 환자들은 줄을 서기 시작한다.


"어제 자기 전에 빵을 먹었는데... 좀 두드려 주면 안돼?"


좀 체했나 보다. 내가 하면 뚫리나? 똑같지... 


말을 하면서 수줍게 등 뒤에서 뭔가를 꺼내면, 나는


"으이그~ 그르게 나랑 나눠먹지... 으그..."


하면서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 사이 살이 위로 튀어 올라온 곳을 문질러 주면서 핀잔을 준다. 페이스북에서 본 그대로. 입은 계속 핀잔을 주면서. 그래도 좋단다. 사실 거길 만져주면 안 아픈 속도 살짝 더 좋아지는 기분도 나고. 오른쪽 방향은 오른쪽 어깨, 왼쪽은 왼쪽 어깨가 결릴 때 문질러 주면 좋다. 나도 가끔 문지르면 시원하니까. (이 글을 보면서 손 문지르는 사람 좀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난 누구 하나 가리지 않고 다 똑같이 해줬다. 친하다고 해서 더 해주는 것도 아니고, 잘 모르는 친구라고 해서 안 해주고 그런 적이 없었다. 난 수용소 생활을 처음 시작하면서부터 저  친구들과 친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컸기 때문이다.


그러다 내 자신에게도 놀랐던 진짜 기가막힌 사건이 생겼다. 친구들과 다과회가 많아지고, 이 자리 저 자리에서 날 불러대기 시작했다. 난 여기저기서 과자도 먹고 라면도 먹고 쏘다니던 중, 아마도 내가 그 수용소에서 10년을 살게 된다고 해도 편하게 살수 있을만한 엄청난 일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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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앙과 과자를 먹으며 마지막 남은 한 조각을 밀리앙에게 주려고 밀리앙의 손을 잡은 적이 있다.


밀리앙은 "에이~ 이거 너 먹으라고 놔둔 건데 240~"라고 말을 하며 나에게 밀었고 '내 침대 보이지??? 넘치고 있어~ 이건 너 먹어' 하며 밀리앙의 손을 펴 보았다. 바로 그때, 밀리앙의 손이 펼쳐지는 순간, 하얀 손바닥 위에 그림처럼 이쁘게 박혀있는 M자 손금을 보게 되었다.


"우와~ 밀리앙. 너 돈많이 버는 손금인데? 오호~ 이 친구 머리도 똑똑하구만~ 공부 좀 했네? 근데 공부를 더 하고 싶었는데 못했네?"


밀리앙은 순간, 과자를 잡기위해 움직이던 손을 멈추고 날 노려보았다. 아니, 노려보는 게 아니고 무슨 신을 영접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난 그냥 손금을 쬐끔 볼 줄 아는 것 뿐이었다. 그 역시 페이스 북을 통해서 본 거였다. 밀리앙이 영어도 잘 하고 스페인어도 할 줄 알고 그러니까 공부를 좀 했거나 뭐 그렇게 생각한 거였으니까. 그냥 훅 날린 얘기가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난 그때 처음 알았다. 아프리카에서 대학 가는 건 하늘에 별 따기다 라는 걸.


"아니... 어떻게 알았어? 어? 나 예전에 책에서 본 적이 있는데, 동양에서는 손으로 사람의 운을 알아보고, 무당도 있고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 혹시 이게 그거야?"


"어? 어? 어... 그런 건가부지... 응??'


말도 끝나지 않았는데 밀리앙은 자기 양손을 다 펴면서 좀 봐줘 봐줘~ 라며 들이댔다. 난 손금을 한참 바라보았다. 손가락을 접어보고 옆으로 돌려도 보고 내 손바닥이랑 비교도 하면서. 근데, 뭘 보면 아나? 하얀 건 손바닥이고 조금 들어간 곳은 손바닥 주름이지... 하지만 난 웃음기 없는 표정으로 밀리앙을 한참 쳐다보다가 천천히 입을 뗏다.


"밀리앙. 넌 참 머리가 똑똑해. 근데, 너 위에 형이 있지? 어릴 때 너희 형들 학교 먼저 다 가느라 넌 공부를 못 했어."


사람이 너무 놀라면 눈이 띠용~ 한다고 하던가? 밀리앙의 눈이 튀어 나오려고 했다. 흑인의 눈이 얼마나 하얀지, 그때 다시 알 수 있었으니까. 사실 난 그 전부터 밀리앙이랑 친했기 때문에 위에 형이 둘 있었다는 걸 알고 있었고, 우연히 형이 대학을 나온 사람인데 전쟁때문에 죽었다는 것, 그래서 자기 혼자 미국에 오게 되었다는 걸 들었다.


밀리앙은 내 어깨에 기대 어깨를 들썩이며 울기 시작했다. 그래도 자기는 형들이 너무 보고싶다고. 형들을 미워하지 않는다면서. 난 한국말로 형이랑 단어를 알려주고, 내가 니네 형 할게 라고 작게 속삭여 주었다. 밀리앙이 눈물을 닦고 밀리앙의 얼굴이 내 어깨를 떠났을 때, 이게 뭔 일이야~ 이게 뭔 일이야~ 하면서 내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자기들이 좋아하는 밀리앙이 내 어깨에 기대어 울고 있었으니 뭔 일인지 궁금해 할만도 했다. 그때 밀리앙이 모여든 사람들에게 말을 했다.


"240이 내 손금 봐 줬는데, 소름끼치게 맞는다~"


순식간에 사람들 사이에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아, 왜 저런 걸 말을 하고 그래... 순식간에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자기 손을 들이 밀며,


"내 손금 좀 봐줘 내꺼 좀 봐줘~ "


하면서 웅성대기 시작했고 어느 샌가 교도관까지 뭔 일인가 해서 내 옆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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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큰일났다. 이게 뭐야. 아니, 이제 와서 개소리 해놓고 사실 볼 줄 모른다고 하면 난 내 침대에 있는 모든 화폐를 사기혐의로 빼앗길 줄 모른다. 사실 내가 마사지 해 줘서 얻은 거긴 하지만 그만큼 날 신뢰하기 때문에 저렇게 준 거니까. 지금 그냥 던진 게 걸리면 그동안 마사지 하면서 떠들었던 말을 거짓으로 느낄 수도 있는데...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망할 수도 있다란 생각에 조심스레 밀려오는 손 중에서 한 손을 잡았다.


손을 한참을 만졌다. 돌려도 보고 나중에는 맛도 보려고 했다. 맛을 보고 짜기라도 하면, '너 소변 보고 안 닦았지?' 하면서 장난이나 치려고 했다. 그때, 둥그런 굳은살이 잡히는 걸 손끝에 느꼈다. 난 한참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눈을 감고 조용히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우리 아버지는 한전 공무원이셨다. 지금 한국에 계시는데 정년 퇴직 후에 강아지 미용을 하셨던 적이 있다. 난 그런 아버지가 너무 멋있었다. 애견미용샾을 오픈하기 전에 가족과 식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아버지는 가위때문에 생긴 굳은살을 보여주셨다. 그 위치와 비슷했다. 그 친구의 굳은살 위치를 보고 운동선순가? 뭔가? 헷갈려 하다가,


"음... 너 어릴 때부터 가난했네. 손기술이 좋구. 근데 너 미용사야?"


어느 샌가 옆에서 밀리앙은 통역을 하고 있었다. 영어를 스페인어로. 그 옆에선 아랍어로. 중계방송이 한 두개가 아니었다. 그때, 순간 방송이 끊겼나? 할 정도로 침묵을 이어갔다. 틀렸나 보다.


난, '아놔... 다 뺏기겠다. 저 과자, 내가 돈으로 산 거는 따로 챙겨야지.'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내 손 위에 있던 손을 얼른 빼더니,


"어떻게 알았어? 얘 진짜 여기 수용소에서 머리 깎아주는 애고, 엘 살바도르란 나라에서 미용실을 하다가 도망왔어."


밀리앙이 놀라면서 말을 했다. 귀신을 본 표정이었다. 하... 이런 기가막힌 우연이 또 있을까?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뒤에서 누가 손벽을 짝 치며 '오 마이 갓~' 하면서 뒤로 돌아섰다. 교도관이었다. 교도관은 나에게 엄지를 척 올리며 큰 목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이것 뿐만이 아니었다.


다들 알다시피 수용소에는 멕시칸들이 제일 많다. 진짜 살기 어려운 나라다. 사실 그 전 다과회를 할 때 들은 적이 있기도 하고, 이미 내앞은 돗자리가 깔린 상태고. 그때 한 4명? 정도 손금을 본 것 같다. 역시 선무당이 사람을 잡는다고 4명 다 거의 근사치로 맞춘 것 같다. 또 다른 손바닥이 내 앞으로 왔다.


누가 딱 봐도 게이 삘이 있는 애다. 그리고 몇 번 본 적이 있다. 밤에 요란한 화장을 한 모습에 이미 놀란 적도 있었고.


"넌 사실 여자가 될 수 없어. 왜 남자가 좋아?"


하고 물으니 다른 사람들도 그 친구가 게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그냥 쉽게 넘어가고 웃음을 주었다.


다음 손은 손금보다 손바닥이 먼저 보인다. 누가봐도 참 고생 많이 한 손이다. 난 그 손을 잡고 새끼 손가락을 옆으로 꺾기 시작했다. 페이스북에서 본 기억으로 손가락을 꺾고 난 후 생기는 주름이 자식운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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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줄? 3줄? 4줄? 잘 모르겠다. 아니, 저걸 내가 어떻게 알아...? 그냥 대충대충 본 건데. 내가 머리가 좋은 건지, 잔머리, 아님 신이 응답을 한 건지 잘 모르겠지만 난 빠르게 뇌를 굴리기 시작했다. 멕시코인들에 대해서 생각을 했다. 멕시코인들은 결혼을 참 빨리 하고 애기도 참 빨리 낳는다. 난 이걸 토대로 해서 그냥 그냥 막 던지기 시작했다.


어차피 몇 번 맞췄고, 이미 손금을 보고 난 다음에는 난 매번, "이건 그냥 재미일 뿐이야, it's not your destiny(니 운명은 아니야)" 라는 말을 꼭 해주었다. 빠져 나갈 구멍은 만들어야 했으니까. 생각보다 일이 너무 커졌는데.


"음. 넌 4명의 아이가 있어."라고 그냥 던지기 시작했다. 네 줄 이니까 4명이라고 한 거다. 그 손금의 주인공은 수용소에 온 지 20일 정도? 난 여기저기서 부르는 곳이 많아서 그 친구 침대에 간 적이 있었고 우연히 아이의 사진을 본 적이 있다. 그래서 그냥 던졌다. 그냥.


"뭐? 나 아이 둘인데? 에이~ 240, 잘 못보는 거 아냐? 에이~~~"


아 씨... 걸렸다. 젠장할.


"어 그래? 손금에 4명으로 나오는데? 아님 말어~ 오늘 여러번 봐서 그래. 한 번씩만 봐야 하는데."


그때


"어? 어?? 맞다, 나 아이가 4명 맞네."


얘기인 즉슨, 자기는 와이프가 2명이라고 했다. 멕시코에 2명의 자녀가 있고 자기 혼자서 미국으로 와서 일을 했는데 미국엔 또 다른 와이프가 있다고 했다. 그러던 중 얼마전 술 마시고 운전을 하다가 사고를 냈고, 신분 문제로 인해서 이 수용소에 온 친구였다.


"어 맞어. 생각하니까 맞네. 난 미국에서 일을 하면서 멕시코에도 돈을 보내고 있어. 두 아이를 위해서. 내가 여기 잡혀오기 전에 새 와이프가 쌍둥이를 임신했지."


난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이게 뭔 일이야. 나도 모른다. 이건 어떤 별명이 붙으면 좋을까. 이런 적이 없었으니. 






지난 기사


1편 밀입국

2편 국경을 넘어라

3편 미국 감옥에 들어가다

4편 감방 생활

5편 익숙해진 감방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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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