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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29 14:20 KEB 하나은행 고시회차 159회


미국 달러가 약해지고 있다. 기준금리를 올린지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 오히려 약세다. (*일반적으로 미국기준금리가 올라가면 달러가 강세를 띈다)


여기엔 크게 두 가지가 작용한다. 하나는 외환시장의 특성이다. 모든 금융자산이 그렇지만 특히 외환시장에서는 미래에 대한 예측과 기대가 가격을 결정한다. 이번 3월 기준금리 인상은 오래 전부터 예견되었기 때문에 선물시장 환율에 반영이 끝나있었다. 반대로 깜짝 동결이 이뤄졌다면 외환시장이 크게 요동쳤겠지만, 예견된 대로 금리가 올라갔기 때문에 기준금리 인상 떡밥은 가격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오히려 기준금리가 인상된 직후에 주식시장이 크게 상승하자(미국 경기가 계속 좋을 것이란 기대에), 옐렌 연준의장이 코멘트를 남긴다.


“주식시장처럼 현재의 경제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있고, 종합적인 경제상황을 고려해서 천천히 금리를 올릴 것이다.”


이 말이 금리인상보다 외환시장에 더 큰 임팩트를 주었다. 옐렌 의장이 기준금리를 천천히 올릴 명분을 만들었다고 보고, 달러화는 약세를 띄었다. 이래서 금융자산에 투자하는 사람들에게 이미 보도된 ‘사실’보다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이 훨씬 중요하다는 거다. 



연준의 관한 이야기는 여러 차례 다뤘으니 각설하고, 달러 약세의 두 번째 이슈인 ‘재정정책’을 다뤄보겠다. 트럼프 당선 이후 미국 증시와 달러화의 가치는 “Trump Rally”라는 말 아래 급등해왔다. 트럼프가 1조 달러(천 조 원이 넘는다!)를 인프라 사업에 쏟아 붓고 미국 기업과 개인들에게 세금감면을 해주겠다는, 화끈한 경제 공약을 내걸었기 때문이다. 증세 없는 토목사업, 아니, 감세를 더한 토목사업을 시행하겠다는 공약이다.


이렇게 정부의 지갑을 활짝 여는 ‘트럼프노믹스’에 대한 기대감 덕분에 미국증시와 달러화는 최근까지 급등해왔다. 그러나 최근 일련의 사태를 겪으며 이에 대해 물음표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고, 이는 달러화 약세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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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현재 트럼프는 '트럼프케어' 2탄 논의에 들어간 모양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지난주 금요일에 있었던 미국의료보험 개정안 실패다. 재정정책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이슈는 아니지만, 트럼프노믹스 전반에 우려감을 주는 최근 가장 큰 이슈였다.


전임 대통령 오바마의 가장 큰 업적엔 ‘Affordable Care Act(일명 오바마케어)’라는 법이 있겠다. 아주 복잡하게 얽혀있는 의료보험체계 하에서 근 몇 십 년 만에 이뤄낸 개혁 법안이기 때문이다. 요약하면,


1. 정부가 보험사들이 제공하는 민간의료보험의 최저 보장치를 규제하고, (최소한 보험이라고 부를 거면 몇 가지 중병과 출산비용은 보장해주자는 의도. 과거에는 이런 최저치가 없어서 저소득 계층은 적은 돈을 내는 대신에 보장이 거의 안 되는 무늬만 보험을 가입해왔다)

2. 과거 병력 등을 이유로 가입할 때 차별하지 말고,

3. 대신 모든 미국인이 보험을 사도록 강제함으로써, 의료보험 자체를 개선한다.


이런 내용인데, 주로 저소득 계층이 제대로 된 의료보험을 갖도록 하기 위한 법안이었다. (*최저소득 계층은 정부에서 보장을 해주지만, 문제는 극빈층은 아닌 차소득 계층이다. 직장에서 제대로 된 보험을 보장해주지 않아 정부복지와 직장보험 사이의 사각지대에 방치되어왔다. 보험이 없는 대로 살던지, 자기가 부담할 수 있는 허접한 보험을 사야만 했다)


공화당은 이 법안을 아주 격렬하게 반대해왔다. 기본적으로 공화당은 정부의 역할이 커지는 것을 매우 싫어하고, 개인의 자유나 권리를 침해하는 것에 대해서 민감하다(총기소유라든지). 그런데 오바마케어는 이 두 가지를 모두 담고 있다. 정부가 나서서 재정보조 정책까지 쓰면서 저소득층의 의료보험을 지원하고, 예전처럼 싸구려 의료보험을 사거나 의료보험 없이 살 수 있는 자유를 침해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처럼 국가가 의료보험을 관리하는 나라에 살면 이해하기 어려운 얘기지만, 공화당 내 강경파들은 의료보험이나 의료혜택을, 국민이 누려야 할 권리가 아니라 개인의 선택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공화당 강경파 입장에서 오바마케어는 중산층의 세금을 퍼주는 포퓰리즘 복지정책일 뿐만 아니라, 저소득층이 보험 없이 살거나 싸구려 보험을 가입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악법인 셈이다.


공화당의 근본적인 가치에 도전하는 법안이기 때문에 공화당은 이를 ‘오바마케어’라고 명명하고, 폐기대상 1호로 삼았다. 오바마는 재임기간 동안 이 법의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Veto(거부권 행사)’하겠다고 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공화당은 수차례 표결을 시도하면서 대립각을 세웠다.



"Obamacare is a disaster."


트럼프도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오바마케어를 주구장창 깠다. 공화당처럼 자유주의적 신념을 가지고 깠다기보다는, 비판하기 딱 좋은 법안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공화당의 마타도어로 너덜너덜해진데다가, 2017년부터 의료보험 비용이 치솟고 있고, 기존 오바마케어에서도 보장이 미진한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트럼프 입장에서는 “이게 다 오바마케어 때문”이라는 프로파간다를 세울 수 있었다.


문제는 트럼프가 당선되고 공화당이 다수당이 되면서 판이 제대로 깔렸는데, 막상 오바마케어를 개정하려니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애초에 오바마케어가 비싸고 보장성이 떨어지는 건, 법안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꼬여있는 미국 의료보험체계 때문이다.


의료수가가 너무 높다보니 이걸 낼 수 있는 사람이 몇 되지 않고(의료수가가 높은 데엔 의사들이 학비로 인해 빚더미를 떠안고 시작한다는 이유도 있다), 비싼 수술에서 돈 떼인 병원들은 감기와 같은 일반진료에서 떼인 돈을 메우려고 비용을 늘린다. 여기에 민간 의료보험의 부작용까지 더하면? 복잡하게 꼬이는 거다.


각 집단들의 이해관계를 어렵게 조율해서 겨우 통과시킨 게 오바마 케어다. 만약 이걸 없애버리고 기존 오바마케어가 제공하던 보장성을 줄이는 순간, 이 법안의 서명한 의원들은 지역구 내 저소득자 유권자들과 시민단체들에게 뭇매를 맞는다. 특히 접전 끝에 당선된 의원일수록 여론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데, 이들은 오바마 케어를 개정하는데 소극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결국 공화당 지도부는 오바마 케어의 주요 조항들은 놔두고, 세부조항만 바꾼 개정안을 내놓았는데, 강경파 의원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쳤다. 강경파 의원들은 의료보험을 ‘옵션’이라고 보는 입장이라 오랫동안 오바마케어 전면폐지를 주장했다. 이렇게 오바마케어 개정의 폭과 방법을 놓고 강경파와 온건파가 충돌했다.


상황이 이러면 대통령이 나서서 컨트롤을 해야 하는데, 트럼프는 공화당내 기반이 부족한 외부인사다. 당내 발언권이 약한 데다, 의료개정안이 표류할 때도 민주당과 정치 시스템만을 탓하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후보 시절엔 모두까기 약발이 먹혔지만 대통령이 된 후에도 이런 모습은 리더십의 부재를 드러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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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트럼프는 지난주 금요일까지 ‘오바마케어를 대체할 법안을 통과시킬 것’을 의회에 요구했으나, 내부분열로 투표도 거치지 못하고 폐기되었다. 트럼프의 첫 번째 아젠다가 실패로 돌아간 것이다. 오바마와 민주당이라는 공통의 적 앞에서 한 목소리를 냈던 ‘야당’ 트럼프와 공화당은, 막상 집권하고 정책을 입안할 위치에 서자 시작부터 격하게 삽질을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의료보험법안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 하는데 인프라 개발법안이나 감세법안을 제대로 통과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 생겼다.


트럼프는 인수위를 통해 550조에 달하는 인프라 개발을 성공시키겠다고 공언한 바 있는데, 정부가 550조를 직접 투자하는 게 아니라, 550조에 달하는 민간 자금을 유치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동안 제대로 진행되지 않던 인프라사업이 갑자기 550조나 늘어날 리는 없으니, 트럼프는 여기에 ‘민간자본에게 137조에 달하는 조세혜택을 주어서 투자를 늘리겠다’는 복안(?)을 제시한다. 줄어든 137조의 조세 혜택은, 인프라 사업에 투입된 노동자들로부터 받을 과세수입으로 상쇄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 주장대로라면, 트럼프는 돈 한 푼 안 쓰고, 민간자본 550조를 유치해서, 1000조에 준하는 인프라를 지을 수 있다!


이 예산안이 현실성이 있는지 없는지를 따지기 전에 의회를 통과할 수 있을지조차 미지수다.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뉴욕시립대 교수인 폴 크루그먼은, 돈이 되는 공공사업이란 건 애초에 들어본 적도 없거니와, 연준에서 최저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는 정부가 아니라 높은 이자비용을 내고 수익을 추구할 민간 사업자가 공공사업을 벌인다는 건 병크라고 신랄하게 까기도 했다.


공화당내 온건파와 민주당에서는, ① 민간유치 방식에 따른다면 사업자의 수익을 보전해주기 위해 혈세가 낭비되고, ② 수익성 있는 일부 대도시를 제외한, 정말 인프라개발이 필요한 지방 소도시들은 소외될 것임을 들어 법안을 반대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공화당내 강경파는 무려 137조나 조세를 감면해주고, 정부가 지나치게 돈을 많이 쓴다는 점을 들어 반대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상원과 하원의 다수를 점하고 대통령까지 공화당임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개혁이나 공약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우려가 퍼지기 시작했다. 즉, 단순히 의료보험 개정 실패라는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트럼프가 과연 분열된 공화당을 이끌 수 있는지, 자기가 내건 공약들을 실행할 능력과 그 방안들에 현실성이 있는지에 대해 총체적인 의문이 생긴 것이다.


만약 인프라 개발이나 조세감면 법안들이 실패한다면, 트럼프의 집권으로부터 시작된 주식시장과 미국 달러 강세는 조정을 거쳐 원상복구 되어야 한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최근 달러는 약세인데다, 트럼프 주식으로 각광을 받았던 몇몇 종목들이 하락을 면치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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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복잡한 미국의 정치·경제적 상황을 장황하게 설명한 이유는, 이 사태가 대선을 앞둔 한국에게도 시사점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현재로썬, 민주당 쪽 혹은 안철수 후보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민주당은 현재 원내1당이다.


‘유리한 형국’이 된 데엔 국민들이 갑자기 진보적이 되었다기보단 이명박근혜 집권동안 삽질을 많이 해놓은 탓이 크다. 누가되더라도 차기 대통령과 여당은 엄청나게 험난한 정국을 헤쳐나가야 한다. 인수위라는 준비시간도 없이 이명박근혜 정권이 쌓아둔 똥을 처리해야 하는데, 보통 일이 아니다. 가계대출 문제부터 시작해서 부동산, 구조조정 등, 탄핵정국 동안 방치되어있던 뇌관을 해결해야 한다. 과연 어떻게?


당장 해결방법을 놓고도 민주당내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들 간의 의견이 크게 갈릴 것이다. 민주당은 ‘反박근혜’라는 절대 악에 맞서 성장한 정당이다. 우파 혹은 좌파로써 명확한 정체성을 갖거나 정책에 대해 토론이 많이 이루어지지 못했다(장기적으로는 이쪽에서 우파정당, 좌파정당이 갈라져 나와 대안을 제시해주는 게 맞다고 본다). 야당일 때는 모든 갈등이 수면 아래에 있었지만, 집권에 성공하면 불거질 것이다. 그리고 저쪽에선 이쪽이 안에서 흔들릴 때가 반격의 기회라고 생각할 것이고. 개헌이라든가, 개헌이라든가, 개헌이라든가.


리더십을 가지고 정국을 잘 헤쳐나가고, 성공적인 집권당이 되기 위해선 트럼프의 사례를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



뱀발
재외국민 대선투표등록(링크)이 3월30일 마감한단다. 아직 늦지 않았다. 해외거주하시는 분들도 많이 참여해주시라.




씻퐈


편집: 딴지일보 챙타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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