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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는 직업을 잃었고 최순실은 감방에 갔고 새누리당은 해체됐다. 그런데 왜 이렇게 허무할까. 앓던 이 빠진 자리 금세 시리다.


정혜신은 말했다.


“이미 아프잖아요. 아파하고 있잖아요. 그게 치유의 시작이에요.”


머리가 띵하다. 내 얘기 같아서. 이 무감각에서 벗어나고 싶다. 아픔인지 뭔지, 뭐든 느끼고 싶다. 휴가(3월 28일)를 냈다. 팽목항으로 향했다.






#세월호


2014년 4월 16일, 그 때 나는 학교에 있었다. 후배가 “배가 침몰하고 있대. 고등학생들이 많이 탔대.” ‘어떡해’만 연발하는 후배에게, 남 걱정하지 말고 네 인생이나 걱정하라 했다. 뉴스에 나올 정도면 이미 구조하고 있을 거라고 말했다.


같은 주 일요일.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다가 패닉이 왔다. 에어포켓 어쩌고. 재난 수준의 사태임이 분명해지고 있다. 눈물도 나지 않았고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무섭다. 시름시름 앓았다.


그 날 하루만 슬펐다. 다음 주부터는 내 생활을 했다. 다만 세월호 이후, 전철에서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



#육지


팽목항에 간다고 말했더니 딴지일보 편집장이 숟가락을 얹었다. 얼떨결에 사진도 찍고 글도 쓰게 됐다. 그래 시바, 어차피 돈도 없고 취재비나 타서 보태야지.


새벽 기차를 타고 목포역에서 내리니 보이는 렌트카 매장. 5만 원에 SM5를 빌렸다. 운전이 싫은데 진도에서 팽목항 가는 버스가 하루에 몇 번 없어 어쩔 수 없었다. 운전하기 싫어 가는 길 내내 못된 망아지처럼 굴었다. 마구 욕을 했다. 왜 그렇게 싫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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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목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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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에 추모행사가 있다고 했다. 진도군에서 준비한 행사였다. 살풀이 연주와 창이 있고 난 후, 참가자들이 노란 풍선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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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 옆 분향소로 돌아왔다. 사람들이 분향을 마치고 신발을 신는 소리, 사각사각 외투 스치는 소리, 훌쩍이는 소리가 들린다. 들어가지 못하고 유리창 뒤에서 사진만 찍다가 도로 밖으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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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다시 방파제로 간다. 좌우 난간에 리본이 잔뜩이다. 오른쪽 난간 아래에는 미수습자 가족의 말을 인용한 현수막들이 있다. 가장 많이 쓰인 말은 감각에 대한 표현이다. 


‘만지고 싶다’


‘안고 싶다’ 


‘보고 싶다'


난간 위에는 미수습 희생자들 이름이 적힌 깃발들이 세워져있다. 그 이름을 눈에 담아 걷다 보면 방파제 끝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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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파제 끝, 우체통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누군가에게 편지를 써보라고 권한다. 상담전화번호도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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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 뒤 구석에 낮은 평상이 있다. 이곳에 머무르다 가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쉬었다 가라고 평상이 말하는 것 같다. 문득 소리가 들린다. 파다닥파다닥 물고기들 헤엄치는 소리. 


리본과 깃발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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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분향소에 왔다. 들어가긴 했는데 분향을 못하고 여기 있다가 저기 있다가. 사람들만 쳐다보다가 쫓기듯이 향을 피웠다. 이게 이렇게 어려웠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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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에 미수습자 가족이 해상 추모식을 마치고 돌아온다 해서 하선하는 곳으로 갔다. 보트를 타고 차례로 불교, 기독교, 천주교, 원불교 사제들이 들어온다. 미수습자 가족은 카메라들을 피해 빠른 걸음으로 지나간다. 기자회견은 없었다. 



#상봉


기삿거리 하나 포착하지 못하고 돌아가는 길, 너는 무어냐, 나를 향해 질문했으나 이 방문은 원래 개인적인 일이었다.


아까부터 미수습자 가족이 가건물 사이를 누비며 쓰레기를 주워 담던 자원봉사자가 주차장 빗물 고랑에 내려가 있었다. 


“수고하십니다!” 


외치니, 


“네, 감사합니다!”


하고 꾸벅 절을 한다. 마음이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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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에게 돌아간다고 보고하면서 분향소 사진을 보냈다. ‘왠지 슬프네요’, 답장이 왔다. 슬프다? 돌아가는 기차를 타는 순간까지 생각했다. 정작 나는 어떤 감정일까.


무척 피곤했는지 기차에서 내내 잤다. 전철을 타고 집에 가는 길, 여러 가지 생각을 하다 내가 내릴 역이 ‘상봉’이라는 걸 인지하고 울음이 터진다. 하필 전철에 사람이 많다. 참느라 고개를 비틀고, 숙였다 들었다 했다. 콧물이 나고 눈물이 흐른다. 몇 사람이 나를 쳐다본다. 그냥 내가 내릴 역이 상봉역일 뿐인데. 역 앞에 세워놓은 자전거가 걸려 빠져나오지 않아서 또 운다. 도로변에 가서 좀 울다 와서 자전거를 타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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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동안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다. 이상하게 기분은 나아졌다. 내가 운전하기 싫었던 건 사고에 대한 공포 때문인데, 세월호와도 연관이 있는 것 같다. 대중교통에서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건 질서 있게 가만히 있다가 돌아간 희생자들과 연관이 있는 것 같다.


이제 내가 슬픈 걸 느낀다. 슬퍼할 수 있어 다행이다.



#돌아, 봄


세월호가 돌아온다. “그 해 4월 15일로 돌아가고 싶다”는 현수막 문구가 생각난다. 하지만 지금은 2017년이다. 다음 달이면 3년이다. 살풀이를 하고 추모식을 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탈상을 준비한다. 나도 그 준비를 하지 않았나 싶다.


진도군은 유류피해를 막기 위해 방제선을 운영하고 있다. 목포신항에는 현장수습본부가 마련된다. 벙커1은 4월, 세월호 다큐멘터리 옴니버스 <돌아, 봄> 프로그램을 상영하고 같은 달 <프로젝트 부>의 영화도 공개된다.


‘잊지 않을게’, ‘기억할게’ 에서 온전한 기억으로 가는 길은 아직, 멀다. 그 사이, 우리는 바람 부는 방파제에서 물고기 파닥이는 소리들을 들으며 평상 앞에 서 있다. 차마 볼 수 없어 외면했던 나도, 이제 세 번째 돌아온 봄에 와서야 돌아본다. 아프다.  


정혜신의 말처럼 우리 함께 마음껏 아파해보자고, 감히 권하고 싶다.






무리수


편집: 딴지일보 챙타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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