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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안의 변

겨우내 주말마다 광화문으로 나와야 했던 사람들이 그렇듯, 본 필자도 밀어 놓았던 일들을 하기 바쁘다. 특히 2011년에 썼던 책 개정 때문에 정신없다. 그러니 대선은 신경쓸 여력이 전혀 없었다. 무엇보다 새로 대통령 될 분이 일할 환경은 결코 녹록치 않다.

역대급 또라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한 스트롱맨 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역시 만만찮은 시진핑 중국 국가수석에 아베 신조 일본수상을 동시에 상대해야 한다. 이런 외부적 환경에, 안 민주 정부 9년 동안 쌓여온 각종 적폐청산을 하려면 어지간한 멘탈과 체력으론 택두 없다. 그러니 당내 경선이나 본선에서 벌어질 본격적인 개싸움의 규모가 클 수록 후보가 이 국가 재난 상황에 맞는지를 제대로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신경 끄고 있었다.

그런데...

삼성동 박씨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려보낸 광장의 시민들이 서로 지지하는 후보 갖고 SNS 상에서 치고 받고 싸우고 있는 걸 보는 순간 좀 깼다. 아니, 사람 한 번 잘못 뽑으면 얼마나 피곤한지를 누구보다 잘 경험하셨을 분들이 뭐 믿고 지지후보를 정했는지도 잘 모르겠더라. 거기다 터져나오는 민의를 어떻게든 받아 안겠다고 후보들이 뺑뺑이 돌아도 시원찮을 판국에 지지자들끼리 머리끄뎅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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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예산은 이미 작년에 통과됐다. 야당이 다수인 국회가 최순실 예산들을 빼내기 바빴다. 최순실과 박근혜 정권의 부패가 어디까지 닿아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개혁의 스피드를 가장 내야 할 정권 첫 해에 가시적인 정책들을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은 셈. 그리고 시스템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 안에서만 보게 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도 밖으로 내다보지 않아 뭔가 다른 것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선거는 어차피 아무말 대잔치가 벌어지는 공간. 우리 각자가 원하는 공약이나 사업을 정리해보는게 어떨까? 로또 맞춰주세요나 애인 만들어주세요 같은 것들만 아니라고 한다면, 그러니까 국가가 수행하는 것의 이익이 분명히 있는 사업이라고 한다면 요구 못할게 뭐 있나? 우리 모두가 꿈꾸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그에 대해 이야기 해보는 것, 그것도 나쁘진 않잖아?

하여 제안자인 본 필자가 첫 빠따로 나선다.


2. 아리랑 TV 그리고 한국의 방송환경

한국에 있는 사람들은 볼 일이 없는 채널이다. 하지만 밖에 나가 있는 한국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저 채널은 도대체 뭘 말하고 싶은 걸까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만든다. 아침 저녁의 뉴스, 몇 십년 전의 TV드라마, 언제 녹화된 것인지 알 수 없는 K-Pop 소개 프로그램도 아스트랄한데, EBS에서 방영해야 할만한 프로그램들까지 있다.

근데 이게 본방송 뿐만 아니라 광고들까지도 상태가 비슷하다. 도대체 뭔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알 수가 없다. 한 10년 전에 모 지자체가 하던 광고는 교통혼잡으로 고속도로에 갇혀 있는 외국인이 나오고 뜬금없이 헬기가 날아오는 거였다. 진짜로 길 막힐 때 헬기 보내줄 거 아니라면 과장광고라고 남의 나라 법정 불려가야 할 내용들이었다. 박원순 시장 이후로 서울은 그래도 좀 낫지만.

그러다보니 방송이라곤 쥐뿔도 모르던 법대 교수 방석호 같은 사람이 낙하산으로 날아가 흥청망청 돈 쓰다가 잘리는게 그렇게 이상하진 않다. 그래서 흑자를 만들지는 못하고 있지만 자본 잠식한 상태까진 아니다.

골때리는 건 이 정체불명의 채널이 송출되는 국가가 100여 개다. 그러니까 방송이라곤 쥐뿔도 모르고, 딸내미와 같이 해외출장 다니는 개념 상실한 사장이 방송을 책임지고 있는데 그게 100개 나라에 보여지고 있는 것. 이거, 도대체 누가 볼까 싶은데 의외의 시청자들을 확보하고 있다. 예를 들어 광대역 인터넷 통신을 쓰기 힘든 나라들에서 네트워크 게임은 할 수 없다. 그런 나라들에서 아리랑 TV는 인터넷이 연결되면 '저런 것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기능을 한다. 하여, 청소년들에겐 의외로 인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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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송출국가가 100여개 국이라는 것은 제대로된 컨텐츠만 실린다면 상당한 위력을 가질 수 있다. 문제는 현재 스코어. 대한민국의 방송국 상태가 똑같이 안 좋다.

공구리 마왕께서 대통령 되신 후, 처음 촛불 맛을 좀 드신 후에 가장 먼저 한 짓이 방송사 사장들 날리는 것이었다. 임기가 꽤 남아 있던 KBS 정연주 사장을 자르기 위해 대한민국의 모든 사정기관이 동원됐다. 그렇게 사장 날리고 나서 가장 먼저 했던 것은 그 사장이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프로그램들을 모조리 골로 보내는 것이었다. 정연주 사장 시절에 BBC와 맞먹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보자고 의기투합해서 만들었던 '인간의 땅' 프로젝트는 바로 찬밥 됐다. '철까마귀의 날'이 암스테르담 국제 다큐멘터리영화제(IDFA)에서 중편 부문 대상을 차지하니까 잠깐 틀어줬을 정도.

이렇게 시작한 세월이 9년이 흐르다 보니 KBS와 MBC의 취재력 있고 강단있는 기자와 프로듀서들은 회사 때려치고 나와서 뉴스타파에 합류해 있거나, 생뚱맞은 연수원 같은 곳에 가 있거나, 어디 연구동에 처박혀 있다. 그리고 그들의 자리는 일베 인증한 기자들로 대체되었다.

그런데 말이다. 안 민주정부 9년간 임명한 그 사장들의 임기는 아직도 많이 남았다. 뭔 이야기냐면 정부 바뀌어도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프로그램을 언제 방영하느냐 갖고 노조가 회사랑 싸우다가 편성 안 되서 쫓겨나가는 꼴을 그 사장들 임기 끝날 때까진 계속 보게 될 거란 말씀.


3. 외신, 그리고 알 자지라

4년 전, 공구리 각하의 지지율은 20% 대를 그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공정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글을 쓴 분이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도 불구하고 거시경제가 망하지 않았고, 빚 많이 지지 않았고 연평도 포격과 천안함 침몰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다는 것이 그 근거. 트럼프가 장벽 세우는 비용을 4대강 한다고 날려먹고, 최소 57조에 달하는 돈이 '자원외교'에서 없어졌다는 것은 이 분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던 셈.

이 글의 필자가 궁금하지 않으신가? 재택근무의 위험을 세계에 알린 Robert Kelly 교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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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의 장점을 잊지 말아요
원문 - 링크

외신 좋아하는 분들에겐 죄송하지만 대부분의 한국발 외신은 저런 식으로 조중동의 영어버전 기사가 우라까이 되어서 나간다. 외신들 상당수가 동경과 서울을 커버하도록 하고 있으니 직접 취재 여력이 그렇게 많지도 않다. 트럼프 덕택에 미국 언론 자유의 투사가 된 CNN은 이렇게 취재하는 대표적인 매체다. 특히 CNN은 모든 사안을 미국의 시각으로 보는 바, 2008년의 촛불 같은 경우엔 문제의 핵심들을 거의 짚어내지 못했었다.

미국이 보는 시각과 다른 시각이 필요한 경우, 아주 많다. 그리고 그런 시각이 아주 소중한 정보들을 제공했던 사례가 2011년 아랍의 봄이다. 아랍어로 '섬'을 의미하는 알 자지라라는 방송국이 없었다고 한다면 2011년 아랍의 봄도 없었다.

하마드 빈 할리파 알사니(Hamad bin Khalifa Al Thani) 카타르 국왕이 은혜롭게도 1억 3천 7백만 달러를 대출해주셔서 만들어졌고, 지금도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Tamim bin Hamad Al Thani) 국왕전하의 은혜로 방송국이 유지되고 있다. 2010년 현재 알 자지라의 지출은 6억 5천만 달러인데 이 중에서 최소 1억 달러는 카타르 정부에서 보전을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카타르 국왕전하께서 운영에 직접 개입하진 않지만 빵꾸나는 부분을 왕실에서 매워주고 있다. (참고 링크)

그래서 주변 왕국들에서 상당히 강하게 어필했었다. 언론자유 같은 '서방의 가치' 때문에 같은 친척끼리 그러면 되냐고. 사실 논조로 놓고 보면 2011년 이전과 그 이후는 조금 다르다. 아무래도 요즘은 많이 말랑말랑한 편이다. 이 문제 때문에 그만둔 기자들도 꽤 된다. 하지만 시리아 정부군의 전쟁 범죄를 기록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볼 수 있는 매체는 여기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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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군의 전쟁범죄 증거를 모으는 사람들
일베 기자들이 만드는 한국의 뉴스랑은 다른 차원의 세계다.


4. 아리랑 TV를 아시아의 알 자지라로 만들자

지금 국회의원들 중에서 정부가 방송사를 저 모양으로 만들어 놓는 것이 정당하다고 믿는 분들이 146분이나 된다. 300명 중에서 절반 살짝 안 되는 수준. 대선 이후에 이 분들과 일베 기자들 취재보내는 방송사 사장님들이 어떤 앙상블로 어떤 노래들을 부를지, 안 봐도 비디오 되겠다.

앞에서 이야기했지만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열강들의 상태도 최악이다. 거기다 한국을 세계에 알려야 한다는 것은 좌우 관계 없이 역대 대한민국 정부들이 항상 생각했던 것. 그렇다고 한다면 외국으로 송출하고 있는 종합편성채널을 대대적으로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여러가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통찰력을 가진 시사 보도 프로그램을 만들고(이거 만들던 기자들 지금 다 한직에 있다), 제작을 영어로 하면서 해외의 네트워크들을 확충해 나갈 수 있다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더 나아질 수 있다. 바로 당장 알 자지라가 요즘 만들고 있는 수준의 방송은 안 된다고 하더라도 그럭저럭 볼만한 수준의 프로그램을 만드는 시간은 JTBC의 보도부 사장으로 손석희 앵커가 간 이후의 시간을 생각해보면 될 것이다. 물론 영어다 보니 시간은 좀 더 걸리겠지만.

물론 항상 문제는 돈이다. 하지만 알 자지라는 운영하고 있는 채널이 한 개가 아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알 자지라 영어판 정도를 JTBC뉴스룸 정도의 퀄리티로 하루 4번 방송할 수 있는 수준을 말한다. 공정보도에 대한 기준을 알 자지라 초창기 수준으로 올리고 이를 보장할 수 있는 방법들을 강구해 나가면 아마 공중파 사장들 임기가 찰 것이다.

그때 이 기준에 맞춰 방송을 만들기 시작하면 만담 가지고 시간 때우는 현재의 종편 정도는 컨텐츠의 힘으로도 누를 수 있을 것이다.

아, 물론 돈이 문제다. 6억 5천만 달러면 대략 7천 2백 5십 4억원 정도 되겠다. 지금까지 아리랑 TV가 일년에 썼던 돈은 440억 정도. 하지만 알 자지라는 이미 여러 개의 채널과 여러 국가의 독립된 방송국을 운영하는 단계다. 뉴스를 중심으로 편성한다면 훨씬 적은 비용으로 가능하다. 무엇보다 삼성동 박씨 재임 시절에 썼던 홍보비 보단 훨씬 적게 들 것이다. 얼마라서 그러냐고? 여기 클릭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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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원문 - 링크 

정치인은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백화점 상품 고르듯 골라야 하고 우리가 시키는 것을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믿는다.






Samuel Seong

트위터 @ravenclaw69

 

편집 : 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