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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고등학교.

 

오세훈 서울시장을 하고, 공정택 서울교육감이던 시절, 이재오 전 의원 지역구인 은평 뉴타운에 세워진 자립형사립 고등학교다. 법인은 하나학원. 이사장은 하나금융그룹 김승유 회장. 청계재단 이사이기도 한 그는 고려대를 졸업했다.

 

참으로 인상적인 조합이다.

 

설립 초기부터 말이 많았다. 부지 특혜 의혹부터 하나그룹 임직원 전형까지. 교감이 학부모로부터 골든 리트리버를 받아낸 황당한 사건도 빼놓을 수 없다. 최근엔 성매매 하다 적발된 교사에게 '정직 3개월'을 내린 것이 들통나 거센 항의를 받기도 했다.

 

하나고 이야기에 '전경원 교사 공익제보'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전경원 교사는 하나고가 남여 학생 비율을 맞추기 위해 점수를 임의로 조작했고, 편입 과정에서도 문제가 있었으며, 정권 실세 자녀의 학교폭력을 은폐했고, 교사 채용 과정도 석연치 않다고 제보했다. 2015년 8월의 일이다.

 

그로부터 2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전경원 교사는 여전히 하나고 교사로 재직하고 있지만, 그에게 학교는 예전과 같은 곳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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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코코아:  / 전경원: )

 

 

0. 개국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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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하나고 개교준비위원이었어요. 


: 어떻게 참여하게 된 건가요?


박사학위 받고 시간 강사 하다가, 생활고 때문에 J여고 기간제 교사로 처음 갔어요.


: J여고? 거기 비리 사학으로 엄청 유명한 곳이잖아요.


: 그렇죠. 거기도. 딱 2년을 했는데 이 학교는 있을 곳이 아니다 싶었어요. 나중에 보니 그 학교에서 근무하던 선생님들이 경찰에 많이 불려가더라구요. 아무튼, Y고등학교 전근자리가 생겨 5년간 근무하고, G대학 입학사정관으로 갔어요. 성적으로 줄 세우는 입시제도를 고치고 싶어서요. 근데 6개월 근무해보니 현장으로 돌아가고 싶더라구요. 문제지 풀어주는 거 말고, 토론하고 발표하는 학교에 가고 싶었죠.

 

 

그때 하나금융그룹 신문광고를 본 거에요. ‘세계가 나를 키운다. 내가 세계를 키운다.’ 이런 캐치프레이즈. 최고의 학교에서 토론식, 발표식 수업과 세미나 수업을 할 분들을 모신다 그런 광고였어요. 딱 여섯 명 뽑았는데 뽑혔죠. 학교 이것저것 세팅하고 교가도 제가 작사했어요.

 

 

: 하나그룹과 관계가 있었던 건 아니네요.

 

 

: 그룹과는 전혀 성관없었죠. 개교준비위원으로 온 일반 교사들은 하나그룹과 아무 상관 없는 사람들이었어요.

 

 

그 개국공신이 공익제보자가 되자, 학교는 그가 작사한 교가부터 바꿨다.

 

치사하고 꼼꼼한 복수의 시작이다.

 

 

1. 어쩌다 슈퍼맨

 

 

: 처음 제보를 서울시의회에서 한 게 인상적이었어요. 보통은 언론을 통해 하잖아요.

 

 

: 그때가 김승유 이사장이랑 한참 싸우던 때였는데, 제가 서울시의회 증인으로 채택된 거에요.

 

 

: 아? 먼저 제보하신 게 아니구요?

 

 

: 네. 서울시의회에 하나고 입학 관련 민원이 여러 통 들어와서 ‘신입생 전형 업무’ 담당으로 돼 있던 제가 증인으로 나갔고, 하나고 비리를 말하게 된 거죠.

 

그전부터 학교랑 어마어마하게 싸우긴 했어요. 교감과 교장과 싸우다 안 돼서 이사장까지. 8월 1일 토요일이었는데 제가 당직이었거든요. 김승유 이사장한테 잠시 만날 수 있냐고 문자 받았어요. 당직근무라 했더니 직접 학교로 오더라구요. 10시 30분쯤.

 

 

: 정확하게 기억하시네요.

 

 

: 그럼요. 되게 중요한 날이니까요. 이사장실에 갔다가 언쟁이 붙은 거죠. 인권위에 진정 낸 문제, 교감 문제, 이동관 대변인 자녀 학교폭력 은폐 의혹 같은 문제로요. 그날 김승유 이사장이 그런 얘기도 했어요. "솔직히 이동관 전화 받았어요. 학기 끝날 때까지는 그냥 좀 놔두라고 부탁해서 교장한테 얘기했어요. 근데 그렇게 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전학 갔잖아요. 그러면 된 거지 뭘." 이렇게. 제가 "보통 가정의 아이였으면 학폭위 열고, 징계했을 거다." 이런 얘기를 했고요.  

 

계속 언쟁하다가 김승유 이사장이 절 이렇게 쳐다보더니, "전 선생. 우리 학교에서 징계하면 당신 다른 학교로도 못 가. 조용히 학교를 떠나시라." 딱 그러는 거에요. 그래서 제가 "정년이 2033년 2월인데, 그때까지 저는 하나고가 정의로워지는 것을 보겠습니다." 했어요. 김승유 이사장은 웃으면서 "그래요? 그럼 한 번 그렇게 해보세요. 내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못 견디게 만들어 드리죠." 하더라구요. 그게 마지막 대화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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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서울시의회에 출석한 거군요.

 

 

: 네. 3주쯤 지나서 시의회 증인 출석요구서가 학교로 온 거에요. 그런데 학교에서 출석요구서도 다 뜯어봤어요. 제 허락도 안 받고. 하여튼 그건 사소한 거니까 넘어가고..

 

 

하나도 사소하지 않지만, 여튼.

 

 

어느 시의원이 “전교 1등인 애가 하나고는 떨어진다. 학부모들이 왜 떨어졌는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한다”고 질의했어요. 증인 선서까지 했는데, 거짓말을 할 수 없는 거에요. 그래서 사실대로 얘기했죠.

 

 

: 즉흥적으로.

 

 

: 예. 그 자리에서 그냥 얘기 한 거에요. 제 앞에  ㅇㅇㅇ팀장도 교장도 거짓말을 하더라구요. ‘나도 계속 모른다고 거짓말을 해야 하나?’ 고민도 했죠. 근데 그날 제가 많이 화나 있었어요. 제자가 카톡을 보여줘서 알았는데, 이사장이 청문회에 학생들을 동원했거든요.

 

 

‘여러분 이사장님의 지시사항입니다. 2015년 8월 26일 서울시의회 몇 층, 몇 호에서 하나고 행정감사 청문회가 열리는데 전경원 선생님이 증인으로 출석한다고 합니다. 청문회 자리를 메워줬으면 좋겠다는 이사장님의 지시가 있습니다. 가급적이면 많이 참석해 주시고, 참석할 사람은 저한테 개인적으로 카톡을 주세요.’

 

: 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던 이사장은 '사제지간'의 약한 고리를 파고든다.

 

아끼는 제자들 앞에서 학교 이름에 먹칠을 할 수 있겠냐는 압박이다.



 

: 그전부터 학교에서 싸우고 있었으니까 제가 뭘 말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나 봐요. 졸업생 제자들을 방패막이로 세운 거죠. 무언의 압박을 하려고. 어떻게 교사를 제자들 앞에서 위증을 하게 하나 싶었어요. 너무 화나서 그날 청문회에서 그 문자를 그대로 읽었어요. 그리고 하나고 비리를 말했죠.

 

근데 저도 후폭풍이 그렇게 클 줄은 몰랐어요. (웃음) 그냥 신문에 조그맣게 나오겠지 했는데, 인터넷에 실시간으로 퍼지고 있더라구요. 경향신문 1면에 나오고. 난리가 난 거에요. 전화통이 막, 기자분들 전화 오고 KBS 9시 뉴스에도 나오고. 그렇게까지 커지리라고는.. 그러니까 정말 어쩌다 슈퍼맨이 된 거에요. ‘권력으로 이렇게 교사를 짓누르고 병신 만들 수 있나?’ 이런 분노가 컸죠.

 

 

2. 슈퍼맨, 그 다음 날


: 제보한 다음 날, 출근하셨나요?

 

 

: 했죠.

 

 

: 학교는?

 

 

: 난리가 났죠. 완전히 뭐. 교무실에 들어갔는데 싸한 분위기가 느껴지더라고요. 저랑 말도 안 하려 하고. 학부모들이 검정색 상복 입고 찾아오기도 했어요. ‘전경원 너도 교사냐, 사퇴하고 학교를 떠나라’ 라고.

 

: 동료 교사 중에서는 호의적인 분이 없었나요? 고맙다고 한다거나.

 

 

: 한 명도 없었죠.

 

 

: 그래요?

 

 

: 같이 의논하던 교사들도 문제 터지고, 학교에서 저를 징계위원회에 회부하고 파면시키겠다며 조직적으로 괴롭히니까 다 손 떼고, “전경원하고 안 친합니다.” 하고 다 돌아섰죠. 저랑 복도에서 만나도 말도 못 하고 고개 숙이고 가고. 공포심이나 두려움이 컸던 거 같아요.

 

 

: 아군이 한 사람도요?

 

 

: 한 사람도 없었죠.

 

 

: 행정실 직원이라도.

 

 

: 행정실에 제 제자가 한 명 있었어요. 그 제자조차도 저한테 인사를 못 했어요. 

 

 

: 아. 완전히 매장이네요.

 

 

: 그렇죠. 그렇게 안 하면 본인들에게 피해가 갈 정도로 괴롭히니까요. 회식 자리에서 모 직원이 테이블 돌면서 교사들한테 “당신을 가만히 있을 거야? 이번에 평가할 때 봐” 하면서 압박하기도 했어요. 학교에서 쓰는 내부통신망으로 메일 보낼 때, 수신인에 저를 두고 참조에다 전체 교직원을 다 걸어요. 그리고 저를 왕따시키는 내용을 보내요. 그걸 보면 무슨 생각을 하겠어요. 저랑 대화도 못 하죠. 밥도 그렇고. 제가 그래서 도시락 싸서 다녔어요.

 

 

: 학교에요?

 

 

: 예. 일 년을. 혼자 교직원 휴게실에서 도시락 먹었어요.

 

교직원 '식당'이 아니라, 교직원 '휴게실'.

 

 

근데 더 힘들었던 건, 제가 수업시간에 무슨 얘기를 했는지 애들한테 다 받은 거에요. 기숙사 학교니까 교사들 퇴근한 저녁에 부역자 몇 명이 기숙사 가서 A4 용지에 다 받았어요. “야. 전경원 선생님 수업 받은 애들 다 모여라. 오늘 무슨 얘기 했는지 써라.” 이렇게.

 

 

: 학생들을..

 

 

: 그때가 8월이었는데, 학부모들은 “두 달 있으면 입시이고, 9월이면 수시 원서접수인데, 선생님 뭘 기획하고 하는 거 아니냐” 했어요. 그러니까 제가 수시를 망치게 하려고 이렇게 한다는 거에요. 너무 황당했죠. 

 

 

: 학교에 나쁜 이미지가 생기면 입시에 불이익이 생길 수 있다?

 

 

: 네. 그런데 오히려 입시성적은 더 많이 갔어요. 그 해에.(웃음) '이 개새끼야, 니가 교사냐. 개자식아'라고 메일 보낸 학부모도 있었어요. 제 기사 댓글에는 제가 하지도 않는 말을 했다는 댓글이 달리기도 하고. 전경원 외부강의 나가면 사교육 기관에서 한 번에 100만 원을 받는다는 것도 있었고.

 

 

: 제보 내용이 아니라 개인을 공격하는 거네요.

 

 

: 인신공격 하는 거에요. 너무 힘들었어요. 극단적인 생각이 들 정도의 괴로움이... 운전하다가 반대 차선에서 차가 오잖아요? 살짝 핸들을 돌리면, 짧은 순간이겠지? 편해지고 싶다, 이런 느낌이 들 정도로 괴로웠어요.

 

공익제보를 하는 순간 본질은 사라지고 제보자의 도덕적 타락을 공격해요. 온갖 이상한 걸 가지고 와서 이상한 놈을 만들더라고요. 문제 있는 놈, 악감정의 조직에 해코지하려는 놈, 파렴치한 놈으로 매도하는 거에요. 제보자의 문제를 부각시켜야 제보 내용을 흔들 수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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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를 공격할 수 없으면 메신저를 공격하라.'

 

이 고전 전술은 여전히 가장 유효한 전략이다.

 

20년 넘게 학교에서 근무했는데, 그때 처음 저평가를 받았어요. 5점 만점인데, 동료 교사랑 학부모들이 1점대를 주더라구요. 연수대상자로 지정됐다가 서울시교육청에서 공익제보 보복이라고 심사해서 기각시켰어요. 그나마 아이들은 수업시간에 막 반항하고 냉랭하게 대하면서도 3점대를 줬어요. 얘들한테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그렇더라구요. 

 

 

: 징계도 있었나요?


: 징계위원회를 7차인가 8차까지 했어요. 계속 괴롭히는거에요. 결론은 안 내리고. 휴전 상황이었죠.

 

학생, 학부모, 교사를 학교의 3주체라 한다. 학생들의 반항, 학부모의 항의, 동료 교사의 외면. 그는 모든 주체에게 공격을 받은 셈이다. 궁금했다. 왜 계속 학교에 나간 것인지.

 

 

: 그런데 학교를 계속 나가셨어요. 휴직도 안 하시고.

 

 

: 휴직.. 정신과 상담 받고 진단서도 있었으니까 할 수도 있었어요. 근데, 굴복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정당한 문제제기를 했는데 왕따 당하고, 징계위원회에 끌려다니고 하는 상황에 대한 분노, 오기도 있었어요. 잘못된 주장을 하고 나를 공격하는 사람들이 물러날 때까지 버텨야 한다, 먼저 그만두면 안 된다고.

 

 

지금도 아쉬운 건 동료들이에요. 사실 교사라면 교과 지식을 전달하는 기술자를 초월해야 하는데, “그냥 애들만 잘 가르치면 되지, 쓸데없이 학교랑 싸우고 왜 그래” 여기서 벗어나지 않는 거죠. 물론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만 전경원이랑 같이 학교랑 싸우면 짤릴 것 같으니 침묵하는 선생님들도 많았어요. 부역자는 ⅓ 정도.

 

 

: 되게 높은 비율이네요. (웃음)

 

 

: 딱 나타나는 사람들이 있더라구요. 심지어 저랑 친했던 사람도 있었고. 그때 되게 많이 실망했어요.

 

 

: 교사의 영향력은 엄청나잖아요. 그 태도가 아이들에게 그대로 스며드는 건데..

 

 

: 그렇죠. 아이들이 뭐라고 생각하겠어요? 사회가 이런 거구나, 바른 소리 하면 짤려나가는 거구나. 학교에서 배우는 거죠.

 

 

저는 그거는 아니라고, 교육은 그래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먼저 물러날 수 없는 거고 지금도 싸우는거에요. 저를 강제로 쫒아 낼 수는 있지만 자발적으로는 나갈 수 없어요. 오히 려 제가 더 잘돼야 “바른 소리 하고 권력에 맞서 싸워도 잘 살고 성공할 수 있는 거구나” 이렇게 가르치고 싶어요. 학교 짤려서 폐인 되고, 가정 풍비박산 나고 이혼하는 결말보다는.

 

따돌림은 나쁜 거라고 가르치던 교사들의 따돌림은 1년이 넘게 이어졌고, 전경원 교사의 왕따 생활은 '따돌림은 부당하다!'는 동료교사들의 도움에 의해서가 아니라, 종이 한 장에 의해 끝나게 된다.

 

10월 31일. 법인 사무국장이 불러서 가봤더니, 해임장을 주더라구요. 표정 관리가 안 됐어요. "이 해임장이 얼마나 부당한지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서 확인받아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하고 자리로 돌아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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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임장 아래 행정조치 사항이 붙어 있었어요. '현 시간부로 선생님의 신분증은 작동하지 않고, 학교 출입을 금하여 노트북은 6시간 이내에 반납하시오.' 뭐 이렇게. 짐을 다 싸라고 하더라구요.

 

: 당일에 바로?


: 바로. 애들한테 뭐라고 인사해야 하나 고민되더라고요. 제가 학교에 많이 요구했던 것 중 하나가 기간제 교사가 오면 아이들이랑 인사하는 시간을 가지는데, 갈 때는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냥 싹 사라진다. 떠나갈 때 예를 갖춰서 우리가 모셔와서 고생한 선생님에게 시간이라도 줘야 하는 거 아니냐는 거였어요. 그래서 작별 인사를 하려고 인트라넷에 접속하려 했는데, 로그인이 안 되는 거에요. 해임장 주기 전에 이미 차단해 버린 거죠.

 

: 그 해임장, 혹시 가지고 있나요?


: 있죠.(웃음) 기념인데. 집에 잘 보관해 놨어요.

 

: 해직됐을 때 가족들은 어땠나요?

 

: 집사람이 되게 슬퍼했죠. 제가 혼자 생계를 책임졌으니까요.

 

: 해임까진 예상을 못 했던 건가요?


: 알았죠. 제가 의회 나가기 전에 그랬어요. 여기서 이야기하면 나는 틀림없이 해임될 거다. 근데 싸워서 복직되면 밀린 월급 받으니까 그때까지만 잘 견디고 대출을 받아서라도 살자. 진짜 파면되면 학원 강사하면서 살아도 된다. 걱정 마라. 이렇게. 집사람은 조용히 시골에 가서 살자고 그랬어요. 많이 힘들어했죠. 애들이 아직 어리니까.

 

전경원 교사가 해임장을 받은 10월 31일은 김승유 이사장의 임기 마지막날이었다.

 

 

3. 버티는 기술

 

: 해직 기간에는 어떻게 지내셨어요?


: 글 쓰고 산책하고 했죠. 책도 썼어요. <그림서사학>이라고.

 

: 아아. 책 봤는데, 동명이인인 줄 알았어요.

 

해직된 기간 동안 ‘이건 하늘이 준 기회다. 여태 못했던 공부 해보자!' 해서 글을 엄청 썼어요. <동아시아의 이상향>이란 책도 냈고.

 

: 둘 다 학술적인 책이네요. 잘 안 팔릴 거 같아요. (웃음)

 

: 아직 나온 지 얼마 안 돼서. (웃음) 


: 4개월 동안은 책을 쓰고..


: 제가 한문학을 전공하지 않았으면 그런 좋은 생각을 못 했을 거에요. 정약용 선생님 여유당전서를 보면 이런 표현이 나와요. “공무에 바빠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쓸 시간이 전혀 없었는데, 유배를 가게 되었으니 하늘이 나에게 특별히 내려준 고마운 시간이다." 그렇게 유배 사는 18년 동안 책을 다 쓰시잖아요. 그게 저한테 시사하는 바가 컸어요. 매일 술 마시고 괴로워하기보다는 스트레스 덜 받고 재밌고 의미 있게 시간을 보내다 복직하고 싶었거든요.

 

저한테 학교 정문에서 의자 몇 개 놓고 길거리 수업을 해라, 아니면 매일 일인 시위라도 하라는 분도 있었거든요. 추워 죽겠는데 겨울에.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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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벤트로는 좋은데 지속 가능하지는.. (웃음)

 

그렇죠. 물론 그 방법도 의미는 있는데, 좀 슬플 것 같았어요. 오히려 제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즐겁고 건강하게 지내는 게, 저 사람들을 이기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최근엔 의식적으로 가족들 신경 더 쓰고, 여행도 많이 가고 있어요. 어제도 춘천에서 온 가족 마라톤 대회하고 왔거든요. 어쨌든 건강하게 잘 살아야 하니까요.

 

 

승화시키셨네요. 원래 성격이 많이 긍정적인가요? (웃음)

 

 

: 되게 긍정적이에요. 그게 저의 장점이자 단점인데, 친구들이 "형은 너무 이상적이야"라고 조언을 많이 해줬어요. 근데 학교랑 싸우면서 이상만 가지고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어요. 이상은 아주 크게 갖되, 현실의 땅에 항상 발을 디고 있어야 한다는 거요. 하나고를 개혁하려고 하면 아주 철저한 장사치 같은 현실 감각이 있어야 하거든요.

 

사실은 하나고랑 싸우면서 죽을 수도 있겠구나 했어요. 주변에서도 많이 걱정했고. 혹시 집에 와서 불 지르지 않을까 해서 자료를 분산해서 보관할 정도로 신경이 곤두서는 거에요. 지금도 사실은 운전할 때 미행하는 차 없다 쳐다보고 그래요. 버릇이 돼서.


: 버티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네요.


: 조직적으로 저를 쫓아내려고 하는 곳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정신적인 압박을 견뎌내는 거거든요.

 

: 혹시 전교조에 가입하셨나요?

 

: 전교조는 학교랑 싸우면서 가입했어요.

 

: 학교에 전교조 교사는?


: 저밖에 없어요. 한 명.

 

: 학교에서 되게 싫어하겠네요. (웃음)

 

: 그렇죠. (웃음) 전교조에서 많이 도와줬어요. 사실 전교조 없었으면 혼자 못 싸우죠. 시민단체랑 전교조가 제일 큰 힘이 되어줬죠. 참여연대. 호루라기 재단. 흥사단, 한국 투명성기구, 전교조. 이런 곳.

 

: 나라에서 도움을 받은 건 없었나요?

 

: 아.. 국가 기관은, 사실 저는 믿을 수가 없더라구요. 예를 들면 제가 했던 말이나 자료가 학교 관계자에게 전달되는 경우가 있었어요. 신뢰할 수가 없는 거죠.


코: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제도도 없었고.

 

: 호루라기 재단에서 변호사님도 지원해 주시고, 참여연대에서도 도와주시고 그랬어요.


코: 주로 시민 사회에서 도움을 받으신 거네요. 


: 예. 저는 시민사회에 대해 별생각 없이 살아오다가 이 일을 경험하면서 엄청나게 생각이 바뀌었어요. 지금은 한 달에 내는 후원금만 해도 30만 원 정도 되요. 도움을 너무 많이 받아서 중요함을 깨달았죠.

 

 

4. 복직, 그러나

 

 

올해 2월 23일, 교육부 교원소청심사위원회는 전경원 교사 해임이 '공익제보에 대한 보복'이라 판단하고, 해임 취소 결정을 내린다. 하나고는 복직 명령을 내리지 않고 버틴다.
 
3월 10일, 직접 학교로 찾아간 전 교사가 학교장에게 문제를 지적하고 나서야 복직 명령이 떨어졌다. 첫 출근은 3월 15일. 개학이 2주나 지난 때였다.
 

: 복직하고 수업은 하고 있으시죠?

 

: 네. 수업은 하고 있어요.

 

: 학사 계획은 3월 전에 결정하잖아요. 배정된 수업이 있던가요?

 

: 아뇨. 다른 선생님들 수업을 조금씩 나눠서 하고 있어요. 

 

: 미리 선생님 몫을 짜지 않았던 거네요. 복직 안 된다고 생각했었을까요?

 

: 아유. 본인들도 그걸로 짜를 수 없다는 걸 알아요. 그냥 괴롭히는 거죠. 계속 혼자 밥 먹고, 수업 들어가고, 교재 연구하니까 강제로 보낼 수는 없잖아요.

 

: 그렇죠. 수업은 다 하니까.


: 네. 학사는 제대로 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더 싫겠죠. 잘라 내고 싶은데 제 발로는 안 나가고 따돌려도 버티니까.

 

: 아직도 도시락 싸서 다니세요?

 

: 복직한 다음부터는 식당에서 혼자 먹고 있어요. 생각해보니까 집사람을 너무 고생시키는 것 같더라고요. 지금도 제가 교직원 식당에 가면 근처에 아무도 안 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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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료 교사들의 행동은 여전히 이해되지 않네요.

 

: 그렇죠.


: 같이 교육자로 일하는 사람인데.

 

: 그러게요. 근데 저랑 가깝게 지내면 본인에게 파편이 튀니까. 그런 게 이해는 돼요. 제가 복직한 다음에 새로 기간제 선생님이 오셨는데, 반가운 마음에 "어디서 근무하셨어요?" 인사했더니, 화들짝 놀라면서 "XX고등학교요." 하고 교무실을 나가더라구요. 그때 교무실에 아무도 없었거든요. 근데 사람들 있는 곳에서 내가 말 걸면 얼마나 힘들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 뒤로는 대부분의 선생님들에게 인사를 안 해요.

 

저 때문에 상처를 입은 선생님들도 있어요. 제가 공익제보를 할 때 관련된 사람들이죠. 예를 들면 청와대 대변인 아들 학교 폭력을 문제 삼았을 때, 그 담임이나 조사했던 선생님이나. 교원 채용이나 입시, 편입도 마찬가지고요. 그분들은 저한테 좋은 감정을 갖기 어려울 것 같아요. 

 

: 하나고에서 왕따 생활은 얼마나 더 지속될까요?

 

 

: 글쎄요. 제일 큰 문제는 관리자에요. 교장, 교감, 이사장. 자리를 만들고 해결을 주선해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그걸 자기 지배수단으로 삼고 부추기는 한 이 문제는 해결될 수 없어요.

 

 

: 학생들도 체감할까요?

 

 

: 아이들이 다 알지는 못할 거에요. 다만 '학교에 권력을 쥔 분들이 전경원 선생님을 호의적으로 생각하지 않는구나' 정도는 알겠죠. 그러니까 수업시간에 약간 저항하듯 말하는 걸 거고.

 

 

: 이전이랑 다른가요?

 

 

: 확실히 다르죠. 수업시간에 아이들이랑 농담도 하고 사적인 이야기도 하던 게 완전히 사라졌으니까요. 공식적인 용어만 하는거에요. 개인적인 생각도 절대 말하지 않고. 모든 게 또 꼬투리가 되니까요.

 

: 수업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거네요.

 

 

: 그럼요. 아이들하고 교감을 못 해요.

 

 

: 그게 젤 중요한데.

 

 

: 예, 그렇게 만들어버린 거죠. 학교에서. 한번 사찰을 당해보니 그 트라우마가 엄청나요. 자기 검열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날 이후로, 가르치는 학생들과 교감할 수 없다.


: 사학 문제랑도 연결되는 거 같아요. 사립학교에서 교사 지위가 엄청나게 위태롭잖아요. 휘둘리기 쉬운 구조이고.

 

: 네. 그렇죠.


: 사립학교끼리 블랙리스트를 만들어서 학교에 반항하는 교사는 거른다는 이야기도 많이 떠돌잖아요.

 

: 있을 거에요. 당연히. 사립연합회는 유대나 친목이 튼튼한 조직 중에 하나에요. 정보를 공유하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옮기기 힘들지 않을까 싶어요.

 

: 그런 면에서는 오히려 사기업보다 취약한 것 같기도 하네요. 

 

: 특히 하나고는요, 전국에서 CCTV가 제일 많아요. 130개가 넘는 CCTV가 있어요. 이걸로 특정 교사들의 동선을 파악해서 학교에 보고했다는 의혹을 들은 적도 있어요.

 

 

: 학교에서 부정한 일이 생기면 선생님을 찾아가는군요. 좋은 구심점 역할이네요. (웃음)

 

 

: (웃음) 몰래 해요. 비공식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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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다수의 공익제보자들이 자신이 일하던 곳에서 나오잖아요. 선생님은 되게 기념비적인 사례이긴 하네요. 그 자리에서 버티고 있다는 게.

 

 

근데 운명이 참 묘한 게요. 저를 징계하려고 했던 사람들 있잖아요? 김승유 이사장은 임기가 끝났고, 교장은 퇴임. 교감은 파면 요구되고 곧 바뀌게 될 거고. 저를 탄압했던 사람들이 하나씩 사라지더라구요. 얼마 전에 하나고에서 성매매했다고 나온 교사도 저를 자르려고 앞장섰던 사람이거든요. 제가 제보 했을 때 학교 그만 공격하라고 단식한 후배도 있었는데 그 친구도 사직서를 내고 나갔어요. 자연스럽게 정리가 되더라구요.

 

저는 공익제보자들이 더 잘돼야 한다고 봐요. 윤석열 지검장 같은 분들이 더 출세해야 되거든요. 사실 청와대, 국정원, 검찰, 국세청 같은 권력기관은 공익제보가 더 활성화돼야 해요. 그래야 최순실 사태 같은 걸 방지할 수 있는 거잖아요. 지금보다 공익제보 해도 망하지 않는다, 출세할 수 있다 이런 케이스가 많아지고 조명돼야 공익제보가 확산될 수 있거든요.

 

: 알겠습니다. 끝으로 쭉 이야기 해왔지만, '어쩌다 슈퍼맨'이 된 소감을 여쭤보고 싶어요.

 

: 당시에도 지금도 고통스럽고 힘들지만, 잘 선택했다고 생각해요. 처음 제보 했을 때 저한테 항의한 아이들이 있거든요. 그때 제가 이런 말을 했어요.

 

"사람이 평생 건강하게 살 수는 없다. 어느 순간에는 곪아서 살이 썩을 수도 있다. 의사가 그 부분을 수술로 도려내야 한다고 할 때, 피 보기 싫고, 무서우니까 안 하겠다고 할 수는 없다. 의사를 나쁘다고 할 수도 없다. 수술해야 새 살이 나고 건강해지는 거다. 세월이 한참 지나서 이 상처를 볼 수 있을 때가 되면, 우리가 지금처럼 분열하고 갈등하는 선생님과 제자의 관계는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하나고가 몇 년 뒤에 10주년이 되거든요. 이 사건을 그때 돌아봤을 때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저로 인해서 혼란스러웠고 큰 상처가 생겼지만, 하나고의 입시가 더 투명해졌고 정의로운 학교 문화가 생겼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지금도 후회가 없고요. 그렇게 우리 학교가 '부끄럽지 않은 학교'가 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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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교사가 학교 이사장과 싸운다. 자신의 목줄을 쥐고 있는 사립학교 이사장이다. 정권의 실세로 불렸던 사람이자 금융 제벌이다. 돈도 어마어마하게 많다.

 

그 주변에 동료는 없다. 학부모, 동료교사 심지어 학생들까지 그가 학교 이름에 먹칠을 한다고 말한다. 그를 조직의 배신자라 부른다.

 

막막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그는 용기를 냈고, 버텼다. 그 힘은, 용기는 어디서 온 것일까.

 

그가 '어쩌다' 슈퍼맨'이 된 바로 그날, 서울시의회에서 했던 말에서 작은 힌트를 찾았다.

 

'저는 돈을 만지는 금융업 종사자가 아닙니다. 펜을 잡고 있는 교육자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와 있는 제자들이 졸업할 때, 제가 이런 글을 써줬습니다. 너희들이 사회에서 어떤 일을 하건 사회에 필요한 일을 하고 부끄럽지 않은 일을 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의사가 되면 소외된 사람들을 더 배려해야 되고 교육자가 되면 이 시대의 학생들이 무엇을 아파하는지에 대해서 고민하라고 가르쳤습니다.'

 

 

펜을 잡고 있는 교육자. 교사. 선생님. 

 

그가 온갖 수모를 겪으면서도 자신을 지켜냈던 이유는 아마도 그 단어의 무게 때문 아니었을까.

 

 

 

 

 

편집부 주 
 
 
본 이너뷰 기획 시리즈는 아름다운재단과 함께 한다. 
사회를 위해 용기냈던 분들을 딴지 기자들이 돌아가며 
찾아갈 예정이니 독자분들도 추천해 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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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미정
 
공익제보자, 공익활동가의 삶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아래의 링크를 참고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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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cocoa

 

사진 : 인지니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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