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2. 10. 수요일
필리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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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에는 일러스트만큼이나 중요한, 껍데기 역할을 담당할 UI 리소스도 필요하다. 나는 UI 외주만큼은 정말 신중하게 주고 싶었다. 일러스트의 경우 한두 장 결격 일러스트가 포함된다고 해도 큰 문제는 없지만, UI가 잘못 뽑히면 게임 자체가 망가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캐릭터 중심의 RPG에서 일러스트보다도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이 UI라고, 나는 생각한다.
유아이[UI, user interface]
컴퓨터나 모바일기계 등을 사용자가 좀더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설계 또는 그 결과물.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그리고 이 외주는 의외로 순조롭게 해결이 되었다. 친분이 있던 아트 쪽 형님이, 실력 있는 UI 디자이너분을 소개해주신 것이다. 이 형님과 디자이너분 두 분이서 함께 작업을 하는 방향으로 진행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작업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나의 발목을 잡은 것은 UI는 정말로 기획이 중요하다는 점이었다. 내가 어떤 컨셉 UI를 원하는지, 어떤 규격인지 등을 정확하게 전달해야 하는데, 그것이 크게 부족했던 점이 갈등의 원인이 되었다. 기획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고,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이 아니어서 커뮤니케이션도 부족하다 보니, 내가 설명했던 것과 완전히 판이한 UI가 오기도 했다.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가 버렸는데 UI는 이미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진행되어 버린 것이다.
이걸 다시 작업하려면 외주자 입장에서도 비용이 더 들어가고, 내 입장에서도 기간이 그만큼 딜레이된다. 1년이라는 데드라인을 잡고 있던 나로서는 이런 딜레이가 너무나도 큰 스트레스였다. 그러다 보니 서로 의견이 충돌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과도하게 공격적으로 감정을 표출하는 경우도 있었고, 디자이너분도 덩달아 마음이 상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기도 했다.
카카오톡 게임 퍼피라이더의 UI 구성
문제는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UI 외주를 맡은 두 분은 회사를 다니고 계셨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주말 등의 여가 시간에만 외주를 주로 진행할 수 있었고, 개인적인 일이 생기면 진행이 잠시 멈춰지곤 했다. 그런데 나로서는 불운하게도, 정말 중차대한 집안일이 두 분에게 연달아 발생했다. 이건 두 분이 의도한 것도 아니며,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 정말 답답했다. 풀타임으로 지원해줄 수 있는 외주 전문 업체를 통하는 게 좋지 않았을까 후회하기도 했다. 하지만 두 분은 결과적으로는 훌륭한 UI를 완성해 주셨고, 개인적인 일이 종료된 뒤에는 나의 계속되는 추가 요청에도 적극적이고 신속하게 대응하여 작업해 주셨다. 이 자리를 빌어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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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UI 작업은 조금 늦어졌고, 1년으로 생각했던 나의 게임 개발 기간도 점점 딜레이되었다. 여기서 말해둘 것은, 결과적으로 UI 작업만 보면 실제로 딜레이된 기간은 길지 않았다. 다만, 내가 너무 낙관적으로, 그리고 타이트하게 일정을 잡은 것 자체가 문제였다. 육아휴직 1년 동안 아슬아슬하게 개발하여 서비스하는 일정을 생각했던 것이다.
결국 모든 일정은 언제나 딜레이된다는 불변의 진리를 간과한 나의 실수였다. 약간만 딜레이되어도 복직을 해야 하니, 게임 개발은 일단 중단된다고 봐야 한다.
이 시점에서 나는 중대한 사실을 하나 깨달았다. 육아휴직을 시작할 때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 하나. 게임을 제대로 팔아보기 위해서는, 내가 회사에 소속되어 있을 수는 없다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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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07년 1월, 공채로 회사에 입사했다. 그래도 회사의 실명을 밝히는 것은 좀 그렇기에-여기까지 읽으셨다면 이미 알고 계신 분도 많겠지만-그냥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회사' 라고 하겠다.
나는 앞서도 말했듯, 이 회사를 다니면서 정말 많은 것을 얻었다. 7년간 훌륭한 팀에 근무하면서 배운 것도 정말 많았고, 복지나 연봉 등도 충분히 대우를 잘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는 것은 더욱 망설임이 있었다.
아내의 경우는 더 말할 나위도 없었다. 기본적으로 남편이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다고 할 때 "네, 그러세요." 라고 대답할 아내는 세상에 없다. 게다가 아내의 경우 본인이 게이머였기 때문에, 게임 업계에서 우리 회사가 갖는 입지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프로젝트가 잘 되지 않아 다시 취업한다고 할 때, 게임 업계에서 이 회사보다 더 낫다고 잘라 말할 만한 회사는 없다.
나 역시도 고민이 컸다. 회사에 대한 애정도 있었고, 8년만의 이직에 대한 부담감도 있었다. 원래부터 창업을 결심했을 때야 회사를 그만둘 예정이었긴 했다. 그러나 막상 1년간 육아휴직을 하며, 떨어져가는 돈과 1인 개발 게임으론 명함도 내밀기 힘든 현실을 맞닥뜨린 상태에서는 결정이 쉽지는 않았다.
그리고 아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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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를 키우는 것은 즐거우면서 힘든 일이다. 만약 내가 육아휴직을 하지 않고 회사에 출근했다면, 이런 괴로움과 기쁨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을까? 불가능했을 것이다.
우는 것과 짜증내는 것 외엔 다른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던 아들이 어느샌가 방긋방긋 웃기 시작하는 순간. 침대 위에서 처음으로 몸을 뒤집고, 엉덩이를 들기 시작하는 순간. 두 손을 땅에서 떼고, 힘들게 몸를 일으켜 두 다리로 서는 순간. 그 모든 순간에는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고 아기를 보살펴줘야 하는 괴로움이 물론 있다. 하지만 단 한 번만 찾아오는 그 순간만이 가져다주는, 설명할 수 없는 환희도 있다. 아내와 내가 함께 하며, 정말 행복하다, 라고 느낀 순간을 헤아릴 수 없다.
하지만 육아휴직을 하며 다른 중요한 사실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아기를 키우는 일은, 돈이 필요하다. 이 녀석이 먹는 것, 입는 것, 마시는 것, 갖고 노는 것... 모든 것이 돈이다. 게다가 아기와 관련된 일은 아끼려면 뭔가 미안해지는 탓에 언제나 지출이 생각보다 크다. 그리고 아기가 자랄수록, 그 비용은 점점 늘어난다. 적지 않은 연봉을 주는 회사를 그만두는 것은, 그 연봉만큼의 무게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리고 아내와 아이, 두 가족의 무게만큼 무거운 일이었다. 아내의 검수를 받고 추가한다. 아내 말고 아이가 무겁다는 얘기다.
출처: SBS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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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회사를 다니면서 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당장 회사에 출근하며 프로젝트를 계속하기에는 남아 있는 작업들을 처리하기에도 벅찼다. 무엇보다도 회사에서는 겸직을 금하고 있기 때문에, 홍보의 전면에 내가 나설 수가 없는 것이 가장 컸다. 하다 못해 이런 글을 올릴 수도 없지 않은가. 당장 어느 회사의 누구인지 짐작하시는 분들도 제법 있을 텐데 말이다.
나는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아내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아내는 육아휴직 기간 동안만 게임을 만들겠다고 하더니 왜 자꾸 말이 바뀌냐고 반발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이런 위험한 나의 결정을 허락해주었다. 이쯤 되면 읽으시는 분들이 이 아내가 가상의 인물이 아닌가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아내가 허락해준 이유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해보고 싶은 것은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는 아내의 신조였다. 두 번째로는, 이제는 아내도 이 게임으로 충분히 시장에 도전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이 시점에서는 우리의 상태는 말 그대로 기호지세였다. 이제는 더 이상 내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무직 신분이 된 나는 그제서야 퍼블리싱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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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블리싱. 모바일 게임을 만드는 스타트업들을 가장 괴롭히는 단어일 거라 생각한다. 요즘 모바일 게임 시장은 퍼블리셔를 끼지 않으면, 정말 너무 힘들다.
가장 큰 부분은 역시 마케팅이다. 얼마 없는 자본을 개발에 투자하기도 바쁜데, 어느 정도 효과를 볼 수 있는 유의미한 마케팅비까지 책정하기는 쉽지 않다. 모바일 게임업계의 경쟁이 더욱 심화되어 마케팅비는 정말 하늘을 모르고 치솟고 있는 탓에 "유의미한"의 단어가 주는 무게는 장난이 아니다. 그 외, CS와 QA 등을 모두 외주 계약하거나, 직접 진행해야 한다는 부분에서도 굉장한 어려움이 발생한다.
나는 물론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어보려고 이 길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이왕이면 잘 되는 편이 좋지 않겠는가? 우리 부부의 기준에서 많은 돈을 투자했고, 회사도 그만두면서 하는 일인데, 대충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도 퍼블리셔를 구해 여러 가지로 도움을 받으면서 게임을 서비스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모바일 게임 업계에서 퍼블리셔는 그야말로 슈퍼 갑이다. 퍼블리셔가 필요한 개발사는 너무나도 많고, 퍼블리셔가 그 중 선택하는 게임은 극히 소수다. 그러다 보니 요즘은 퍼블리셔를 찾지 못하고 자체 런칭하는 게임이 대부분이다. 물론 그런 와중에 성공을 거두는 케이스도 있지만, 아무래도 흔하지는 않다. 나는 1인 개발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퍼블리셔를 한번 구해보고 싶었다.
퍼블리셔와 개발사가 50:50으로 수익을 분배한다.
(출처: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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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나는 좀더 많은 사람을 만나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무턱대고 퍼블리셔에 접근하기 전에, 보다 많은 것들을 알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의 조언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었다. 나는 할 수 있는 선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은 모두 만나보기로 했다.
이 무렵, 가장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 한 분 있었다. 어떻게 보면 나의 롤모델이라고도 할 수 있을,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모바일 게임을 성공시킨 1인 개발자분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분을 컨택할 경로가 전혀 없었다. 이분에게 한번 만나뵙고 싶다는 메일을, 그것도 그냥 고객센터 메일로 보냈을 때, 아내의 반응은 "아이고 의미없다" 였다. 이분이 나를 만날 이유가 하나도 없지 않느냐는 것. 3일 째에 메일이 도착했다. 평일 오후에 시간이 될 것 같고, 사무실로 찾아오면 된다는 답변이었다.
"오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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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은 다행히 1시간 정도면 갈 수 있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었다. 3인이서 개발한다는 기사를 보았기에, 커피를 4잔 사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사무실을 향했다. 하지만 도착한 사무실엔 20명 가까이 되는 인원이 근무를 하고 있었다. 나의 커피 4잔은 조금 쑥스러워졌고, 대표님-앞으로 대표님으로 부르겠다-은 건물의 1층 커피숍으로 내려가 커피를 한잔 마실 것을 제안했다. 다소 쌀쌀한 날씨에서 따뜻한 커피를 손에 쥐고 나는 간단히 소개를 하고, 대표님께 질문을 시작했다. 가장 궁금한 것은 역시 마케팅이었다.
"마케팅비는 얼마를 쓰셨나요?"
"제 케이스는 별로 도움이 안 될 거예요. 0원이거든요."
"0원요?"
진심으로 놀랐다.
"네. 0원이요."
"그러면 어떻게..."
대표님은 웃으며 얘기를 계속했다.
"제 방법은 그런 거였어요. 최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거예요. 판도라의 상자 같은 거죠.이걸 열면, 무엇이 나올까 하고 궁금하게 만드는 것. 저 같은 경우는 사전등록 페이지에도 별내용을 쓰지 않았어요. 그냥 글 한 줄 정도만 적어 놓았죠.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궁금증을 불러일으킬 요소가 되는 거예요."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한 가지 말씀드리자면, 이건 조금 조심스럽지만, 본인을 파시는 게 가장 좋아요."
"저를 팔다뇨?"
"이야기를 만드세요. 본인을 팔아서. 그게 매력적인 방법이 될 수 있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이 이 글을 쓰게 된 계기 중 하나다. 이 외에도 대표님은 좋은 얘기를 많이 해주셨고, 차후 큰 도움이 되었다. 많은 대화를 나누었지만, 일부만 적어보겠다.
"만약 게임이 바로 잘 되지 않더라도, 꾸준히 업데이트를 하면서 기다려 보세요. 기회는 다시 올 수도 있어요."
"너무 완성된 상태로 게임을 내놓으려 하지 말아요. 그러면 끝이 없어요."
"모든 걸 혼자 하려고 하진 말아요. 도와줄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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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이제서야 조금씩 길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나는 일단 아내의 조언에 따라 연출과 UI 등을 가다듬는 데에 전념했다. 아무래도 클라이언트 개발자가 아니다 보니, 클라이언트 구현에 부족함이 많이 있었다. 이대로 출시하면 멋진 그림을 그려준 작가분들께 죄송할 수도 있겠다 싶어, 최대한 '보는 맛'이 있는 게임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프로모션 동영상을 제작한 후 본격적으로 퍼블리셔 컨택을 시작했다. 우선 얼마 전부터 페이스북에서 눈여겨보았던 중국 쪽 퍼블리셔 분에게 메일을 보냈다. 저녁에 메일을 보냈는데, 일어나 보니 새벽에 답장이 와 있었다. 메일에는 계약을 하고 싶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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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둥절했다. 정말 너무나도 빠르게 답장이 온 관계로, 오히려 내가 정말 괜찮은 건가, 하고 망설임이 생길 정도였다. 하지만 여러 가지로 알아본 결과, 괜찮은 조건이며 충분히 믿을 만한 퍼블리셔라 판단이 되어 그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이 시점에서 자신감이 조금 더 붙었다. 충분히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남은 것은 한국 쪽 퍼블리셔였다. 한국 퍼블리셔를 구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었다. 나는 한국 유명 퍼블리셔들의 컨택 창구에 일괄적으로 메일을 보냈다.
감감무소식인 경우가 많았다. 5군데를 보내면, 3군데는 읽지 않고, 1군데는 답장이 오지 않는다. 남은 1군데 정도에서야 차후 결과를 알려드리겠다고 답장을 보내주신 후, 이후 한 달 정도 연락이 없는 대충 그런 상황이었다. 정말로 읽지 않았는지, 읽었는지, 검토 중인지, 등등은 알 수 없지만, 답답하긴 했다. 적어도 퍼블리셔에게 내 게임을 설명할 기회 정도라도 얻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컸다.
일단은 퍼블리셔가 구해지지 않았을 경우 목표한 출시 일정을 맞추기 위해 작업을 진행했다. 출시 전 최대 과제인 카카오톡을 붙이는 작업을 비롯해, 굵직굵직한 일들이 아직 남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형 퍼블리셔 한 군데에서 답장이 왔다. 좋은 제휴 제안으로 판단되어, 미팅을 하고 싶다는 메일이었다.
(다음 편으로...)
필리온
편집: 나타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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